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66)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66화(267/269)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66화
녹아내리는 어둠.
끝도 없는 망망대해.
잔잔히 흔들리는 해수면 위로 수많은 뗏목이 악마들을 태우고 떠다니고 있었다.
쏴아아-
귓가에 들리는 것은 오로지 노가 끈적한 바닷물을 밀어낼 때 나는 미약한 소음과 그에 따라 맞바람 치는 오염된 공기의 흐름뿐.
‘사후의 바다’
이 어딘가에 있을 세계수의 냄새를 추적하며 노를 젓고 있는 악마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겉보기엔 그저 평온하고 아늑해 보이는 여행 같았으나, 사실상 악마들은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옥’을 탐험하고 있었다.
뗏목 밑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무저갱.
그 아래에 숨어 있는 수많은 잡초들이 악마들을 잡아먹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출렁-!
[또다!]갑작스런 파도에 뗏목이 크게 출렁이는 순간.
굶주린 잡초들이 허기를 못 참고 검은 바닷물 속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런 순간조차도 악마들은 흔들림 없이 노를 저었다.
[잡아!]소리를 친 이는 악마들이 아니라 수염 난쟁이들이었다.
취아아악-!
그림자 드워프들의 호령에 뗏목 위에서 그림자 거미들이 거미줄을 펼쳤다.
검은 그물망이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잡초들을 낚아 올렸다.
[월척이군!]그림자 드워프들은 껄껄 웃으며 날 선 도끼와 톱날을 치켜들었다.
콰직! 콰직!
슬겅! 슬겅!
동시에 적막하던 뗏목들 위에서 연장질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좋아! 이 정도면 뗏목을 두 배로 증축할 수 있겠어!] [질 수 없지! 악마들아! 아직 방향을 못 찾겠으면, 차라리 잡초들이 더 많은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
[쯧쯧. 묵묵한 놈들. 생긴 건 무섭게 생긴 놈들이 겁은 많아 가지고.]“겁먹은 게 아니다.”
그림자 드워프들의 재촉에도 악마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잊나 본데, 우리는 너희처럼 불사가 아니다.”
[끌끌. 거 안타까운 일이군.]“쯧.”
악마들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림자 드워프들의 저런 말이 자신들을 조롱하려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화를 내기에도 애매했다.
드워프들은 진심으로 악마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악마들의 영혼이 오염된 탓에, 그림자 병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닐지도 몰랐다.
수호가 쓰는 파멸의 불은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이용한다면 어쩌면 악마족도 그림자 병사가 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 있는 악마들 입장에선 수호에게 자기들 좀 불태워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
파멸의 힘에 불태워 달라니?
그러다 화력 조절에 삐끗 실패하는 순간, 정화가 아니라 그대로 영혼이 소멸해 버리면 누가 그걸 책임지냔 말이다.
차라리 싸우다가 잡아먹히는 것이 낫지, 그건 그냥 개죽음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바다에 도사리고 있는 잡초들에게 잡아먹히는 것 또한 개죽음이었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놈들에게 존재 자체를 뺏겨 버리기 때문에 악마들의 신중함은 지극히 당연한 태도였다.
물론 드워프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초반부터 뗏목의 크기를 잔뜩 키워 놓고 출발하는 편이 장기적인 관점에선 탐험에 유리한 건 당연.
하지만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작은 뗏목으로 적들이 많은 곳에 갔다간 좌초되고 말 거다.”
그림자 거미들의 그물질보다 덤벼드는 잡초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순간, 이 조악한 뗏목은 속수무책으로 박살 나고 만다.
벌써 그런 식으로 좌초된 뗏목만 해도 수십 척.
그나마 다행인 건 목숨을 잃은 악마들은 아직까지 없었다.
뗏목이 좌초되는 순간, 수호의 그림자 거미들이 잽싸게 그림자 드워프들과 악마들을 등에 태우고 다른 멀쩡한 뗏목으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잠시 그 위에서 머물면서 뗏목을 새로 만들어서 독립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뗏목을 키우는 속도가 늦춰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자원을 나눠 써야 하니까.
[쯧쯧. 세계수를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구먼.] [그러게. 악마들이 냄새만 맡으면 금방 찾아낼 줄 알았더니.]“……바다가 너무 넓다.”
물론 악마들도 핑곗거리는 있었다.
“게다가 이 바다에선 오감이 둔해진단 말이다.”
이곳이 괜히 사후의 바다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캄캄한 시야도 그렇지만, 이 사후의 바다는 악마들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인식 저해 결계라도 펼쳐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래선 세계수의 냄새를 포착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뿐.
말 그대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래도 반드시 찾고 만다.”
에실은 이 같은 상황을 부하 악마들에게 일일이 공유받으며, 캄캄한 바닷속을 꿰뚫어 보듯이 안광을 형형히 빛냈다.
에실이 이처럼 아득한 망망대해에 흩어져 있는 부하들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악마들의 왕이 되면서 깨우친 ‘혈정’ 덕분이었다.
에실은 어디서 어떤 악마들이 세계수를 찾아내든, 그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할짝.
문득 세계수의 잎사귀를 떠올리자, 에실은 입맛을 다셨다.
한 번 그 잎사귀의 맛을 본 이상, 어째서 볼칸이 탐욕스러운 악마라 불렸는지 에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자신이 ‘탐식의 군주’가 되었는지도.
악마족에게 세계수의 맛은 그야말로 극상의 맛이었던 것이다.
“뗏목의 크기를 한 방에 키울 방법이라…….”
그렇기에 에실은 그림자 드워프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다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뗏목을 증축할 재료를 잔뜩 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위험한 일은 자신의 나약한 부하 악마들보단 군주가 직접 나서는 편이 효율적이었고.
에실은 이미 출발 때부터 줄곧 앞장서서 잡초들이 많은 곳부터 찾아다니며 놈들을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이제는 잡초들이 영악하게도 에실의 뗏목만 보이면 피해 다니는 형국이 되어 있었다.
[흠. 잡초들이 도통 나타나지 않는군.]드워프의 말에 에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잡초들의 기척을 찾아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고요한 적막뿐이었다.
에실은 혀를 찼다.
“영악한 놈들.”
[이대로면 전함은커녕 영원히 우리 배는 뗏목 수준을 벗어날 수 없겠소이다. 어디 큼직한 놈이 하나쯤 튀어나와 주면 좋겠…… 커헉?!]푸욱!
“……?!”
그때.
갑자기 에실의 곁에 와서 투덜거리던 그림자 드워프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튀어나온 뾰족한 물체가 있었다.
깜짝 놀란 에실은 이내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표정이 환해졌다.
[‘아이템 : 그림자 열쇠’를 사용합니다.]슈와악!
그 열쇠를 중심으로 그림자 드워프의 몸 안에 구멍이 뻥 뚫리며 그림자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빼꼼.
[지옥의 악마들이여! 잘하고 있느냐!]그림자 드워프에 뚫린 게이트 속에서 얼굴을 내민 베르의 근엄한 눈빛이 에실의 주변을 날카롭게 훑었다.
그리고 악마들의 뗏목의 크기를 보고는 호통을 쳤다.
[키에엑! 이 게으른 것들! 왜 아직도 배가 요만한 것이냐!]“어쩌겠어. 재료들이 우리가 무섭다고 다 숨어 버렸는데.”
에실은 투덜대며 대꾸했다.
“나는 그나마 직접 잠수해서 잡아 오면 되는데, 내 부하들에겐 너무 위험한 일이야. 애초에 잡초들도 우리가 그래 주길 바라고 서로 기싸움만 하는 중이지. 내가 일일이 잡아서 나눠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쯧. 너희가 이럴 줄 알고, 우리 소군주님께서 친히 너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왔다.]“뭐?”
[그러니 감사하고 경배하거라.]고개를 갸웃하는 에실의 앞에, 수호가 그림자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빈손이 아니었다.
쑤우욱-
“뭐, 뭐야? 이 나무는?!”
에실은 기겁했다.
수호가 엄청난 괴력으로 크고 굵은 나무 기둥을 게이트 밖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엘븐우드야.”
……?!
그 대답에 옆에 있던 모든 그림자 드워프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차올랐다.
[에, 엘븐우드?!] [엘프들의 신목……!]첨벙!
수호가 불에 그을린 ‘엘븐우드의 파편’을 사후의 바다 위에 내던지자, 검은 바다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편의상 파편이라 불렀지만, 수호가 직접 뿌리를 다 끊어 내고 기둥만 뽑아서 들고 온 것이라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스케일만으로도 악마들이 타고 있는 뗏목들이 삽시간에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악마들과 드워프들이 경악하며 수호를 쳐다봤다.
[크으! 역시 우리 주인님이시다!] [이 귀한 목재를 어떻게 구하셨습니까?!]“어때? 그냥 불태워 버리기 조금 아까워서 통째로 들고 와 봤는데, 뗏목 재료로 써먹을 수 있겠어?”
[더할 나위 없나이다!]오오오오!
수호의 말에 그림자 드워프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탐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엘븐우드의 파편을 바라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톱과 망치를 들고 그 위로 뛰어올랐다.
아무리 크기가 커도 나무는 한 그루였고.
서두르지 않으면 다른 뗏목에게 저 귀한 재료를 뺏기고 말 테니까.
“아, 조심해. 그 나무 아직 싱싱하거든.”
슈와악!
[……컥?!]“아, 이미 늦었나.”
수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븐우드의 파편에 붙어 있던 잔가지들이 그림자 드워프들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불사의 병사.
살기 등등한 나뭇가지에 몸이 꼬챙이처럼 꿰뚫리고도, 그림자 드워프들은 그 상태로 열심히 슥삭슥삭 톱질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몸에 꽂힌 엘븐우드의 잔가지를 트로피처럼 번쩍 들어 올리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허허! 이런 영광이 있나!] [내 생전 엘프들의 신목을 직접 만져 보는 날이 올 줄이야! 물론 이미 죽어 버렸지만!] [아마 살았을 때 이런 짓을 했어도, 그날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었겠지! 크허허허!]그림자 드워프들은 잔뜩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븐우드라니!
이 귀한 엘프들의 신목을 직접 만져 본 드워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도 드워프 역사를 통틀어 봐도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조차도 분명히 운 좋게 그냥 껍질을 살살 만져 보기만 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톱질을 하는 불경스러운 짓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귀쟁이 엘프들이 얼마나 살벌하고 집요한 놈들인데!
정령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그 귀한 나무를 직접 톱으로 썰어 버린 것이다!
이걸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황송한 일이었다.
[내 톱이 오늘 횡재를 하는구나!] [엘프들의 신목으로 배를 만든다?] [그것도 사후의 바다를 모험하는 배를?!] [캬! 이게 낭만이지!] [내 드워프 인생,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물론 이미 죽어 버렸지만! 껄껄껄!]평범한 재료는 사후의 바다에 흐르는 죽음의 공기와 바닷물에 닿으면 금방 삭아 버린다.
하지만 엘븐우드쯤 되는 목재라면, 평범한 재료라 부르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으음. 그런데 엘븐우드가 원래 이런 나무였나?]아무리 자신들이 엘븐우드를 말로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어도.
수호가 가져온 엘븐우드는 뭔가 많이 이상했다.
느껴지는 기운도 그렇고.
잔가지를 쉴 새 없이 꾸물거리며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모습이 뭔가 대단히 불길했다.
[들었던 바로는 굉장히 신령스럽다던데.] [이래선 마치…… 수목형 마수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아니.”
드워프들의 말에 반박하며, 에실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엘븐우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악마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 나무가 엘프들의 신목이라고요? 느낌이 무슨, 이곳의 잡초들과 너무 비슷한데…….”
“네가 봐도 그렇지?”
에실의 말에 수호도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싸워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엘븐우드는 어쩐지 좀 사후의 잡초들과 세계수 그 사이 어딘가의 느낌이야.”
그것이 수호가 직접 체감한 엘븐우드의 습성이었다.
수호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에실에게 이야기해 주자, 에실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라면 설마…… 사후의 잡초들이 우리 악마들뿐만 아니라 엘프들도 잡아먹고 있었단 건가요?”
“정확한 내막은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방식만 다를 뿐, 좀 비슷하긴 하지?”
방식의 차이.
직접 사냥하는 것과 키워서 잡아먹는 것.
사후의 잡초들이 틈새의 주민이 되어, 악마들을 사냥하고 잡아먹는다면.
엘프들을 천천히 키워서 잡아먹고 있던 엘븐우드가 처음엔 사후의 잡초였다 해도 충분히 그럴싸해 보였다.
과정조차 비슷했다.
사후의 잡초는 ‘죽은 영혼’들을 뜯어먹고 진화한다면.
엘븐우드는 ‘정령’들과 공생하며 성장한다는 것.
“확실히 비슷하긴 하네요. 영원히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는 점이 특히나. 그렇게 점점 강해진 전사들이 지배자들과의 전쟁에 투입되는 걸 ‘절대자’가 원하는 피조물들의 운명이었다면 더더욱…….”
어쩐지 몰랐던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기분에, 에실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애초에 엘븐우드의 근본이 잡초든 아니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결국 지금은 죽고 없는 절대자가 원했던 것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 피조물들의 전쟁을 구경하는 것이었으니, 엘븐우드는 그 절대자의 목적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는 부속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훌륭한 목재가 되었지요.]그러거나 말거나, 킬킬대는 베르였다.
그리고 신나게 엘븐우드를 썰어 대던 그림자 드워프들이 수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주인님, 혹시 이 엘븐우드를 어디서 구하셨습니까?]“왜?”
그들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눈치챈 수호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더 구해 달라고?”
[설마 가능하십니까?!]그 말에 깜짝 놀라는 드워프들이 광분하며 너도나도 외쳤다.
[이 엘븐우드의 생존력을 보십시오!] [어찌나 독한 놈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잔가지를 뻗쳐서 바닷속에 숨어 있는 잡초들을 직접 잡아 오고 있습니다!] [이 원리를 적극 활용한다면, 스스로 자가 수복이 가능한 사후의 전함을 만드는 것도 꿈이 아닙니다!]“확실히.”
수호 또한 이런 꼴이 되고도 여전히 잔가지를 꿈틀거리는 엘븐우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드워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얼마든지 더 구해 줄 수 있다. 너희 뗏목을 전부 엘븐우드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흐어억?!]그래…….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