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0)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1화(272/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1화
유진호와 하르마칸의 협업은 생각보다 엄청난 시너지를 가져왔다.
[흐음. 가상현실이라……. 이 물건으로 인간의 뇌를 자극한다고?]“그래. 뇌파를 이용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흐음.]본격적으로 가상현실 캡슐을 뜯어보기 시작한 하르마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으음.]유진호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원래 이 게임 캡슐이라는 물건, 대격변 전까진 마정석 없이도 돌아갔다고 했던가?]“그래. 지구에 마정석이 나타난 건 대격변 후부터니까. 그 전까진 순수하게 인류의 과학력으로 개발해 낸 장치다. 기본적인 원리를 알기 쉽게 말하자면…….”
대표로서 직접 개발에 참여했던 유진호는 하르마칸의 이런저런 질문에도 막힘 없이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하르마칸은 점점 더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마력이 없는 인간들이 만든 거라고?]“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너희가 만들었다는 이 가상현실 말이다…… 흐음.]캡슐 하나를 전부 분해해서 그 안의 구조를 전부 확인해 본 뒤.
하르마칸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이내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확실히 대답해 주마.]“직접 가상현실로 들어가 보겠다고? 그림자 병사인 네가?”
뜻밖의 말에 유진호는 반색하며 대꾸했다.
“그건 불가능해. 이 게임 캡슐은 인간의 뇌파를 이용한 장치다. 그런데 너희는 이미 죽은 영혼에 육신조차 따로 없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
[아마도 될 거다.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음?”
하르마칸의 확신에 찬 말에 유진호는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영혼과 뇌파의 관계.
이는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애초에 영혼에 대한 것 자체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던가.
하지만 과학자들 중에는 그 또한 언젠가는 결국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둥도 신이 내린 천벌이라 여겼을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인류의 과학은 결국 그것이 천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야 말았다.
그렇듯, 지금은 비록 불가능해도 미래에는 영혼과 사후 세계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정작 유진호 본인도 마령족이 악령을 이용해 주술을 사용하는 종족이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하르마칸에게 협조를 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르마칸은 유진호의 기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그에게 협조하고 있었다.
[이걸 머리에 쓰고 누우면 되나?]하르마칸은 게임 캡슐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뇌파 헬멧을 집어 들었다.
유진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그걸 머리에 쓴 뒤에 몸 곳곳에 근육 세팅값을…….”
[그런 건 필요 없다.]하르마칸은 게임 캡슐에 눕지도 않고 대충 걸터앉아, 헬멧을 머리에 쓰려 했다.
하지만 사이즈가 작았다.
아무래도 헬멧이 인간들을 위한 사이즈라서 하르마칸의 머리엔 맞지 않는 것이다.
“제작부서에 헬멧을 네게 맞춰서 만들어 달라고 할까?”
하르마칸은 그냥 뇌파 헬멧에 머리 대신 자신의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장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삐빅.
우우웅-
그러자 게임 캡슐이 작동을 시작했다.
원래라면 지금부터 뇌파 헬멧이 캡슐에 누워 있는 유저의 뇌파를 측정해 가상현실과 싱크로를 조율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로딩이 끝나면, 그들의 정신이 뷰티풀 월드가 제공하는 가상현실로 접속을…….
[접속합니다.]슈욱!
“……?!”
유진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눈앞에서 하르마칸의 거대한 몸이 헬멧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모, 모니터!”
깜짝 놀란 유진호가 다급히 하르마칸이 들어간 가상현실을 볼 수 있는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파앗!
그러자 그곳에는 놀랍게도…….
[흐음.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검은 증기를 이글거리는 그림자 마령족.
캡슐 속으로 빨려 들어간 하르마칸이 그 모습 그대로 새하얀 가상현실 안에 버젓이 서 있었다!
번쩍! 번쩍!
모니터 안에서 하르마칸의 두 손에 주술진이 펼쳐졌다.
그 주술진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하르마칸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놀랍게도…….
[이봐. 보고 있나?]……?!
하르마칸이 모니터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유진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오싹.
유진호는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섰다.
“어, 어떻게?!”
터무니없다.
아무리 마령족이라도 그렇지, 가상현실에 접속한 상태에서 모니터 밖을 쳐다보다니!
하지만 정작 하르마칸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느냐. 인스턴스 던전은 내 전문이라고.]“뭐? 그게 무슨 말…….”
하르마칸의 말에 유진호의 표정이 굳어 가기 시작했다.
모니터 안에서 하르마칸은 자신을 둘러싼 가상현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결국 확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하다. 여긴 가상현실 같은 게 아니다. 차원의 틈새를 이용한 인스턴스 던전이지.]……?!
“뭐?! 그게 무슨 말이냐! 거기가 가상현실이 아니라니? 우리가 만든…….”
[인간인 너와 고작 이런 걸로 논쟁을 벌일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여긴 인스턴스 던전이 맞다.]유진호의 반응 따윈 무시한 채 하르마칸은 모니터 안에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이 궁금한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 당연하지. 우리 개발진들이 총력을 기울여…….”
[아니, 틀렸다. 다시 묻겠다. 떠올려라. 이 시스템을 정녕 너희가 설계한 것이 맞느냐? 개발 단계에서 누군가 너희를 도와준 적이 정말 없는가?]“누가 도와줬냐니? 우리가 세계 최초인데, 외부의 도움을 받았을 리가 없…….”
당연히 그의 입에서는 반박부터 튀어나왔다.
뷰티풀 월드는 명실상부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그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을 외부에서 과연 누가 도와줄 수 있었겠는가.
“당연히 우리 연구진들이 다 같이 연구해서…….”
하지만 유진호의 목소리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동시에 유진호는 개발 당시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지구가 아직 평화로웠던 시절.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대격변이 아직 발생하기도 한참 전.
아직 유진호의 회사 아진 소프트가 컴퓨터 게임만 출시하던 평범한 게임 회사였던 시절…….
유진호는 그 당시 자신과 함께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했던 연구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우뚝.
“……어?”
순간 유진호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뭐야 이거?”
뭔가 잘못됐다.
머릿속에 떠오른 연구원들 중에 유독 기억이 흐려진 얼굴들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기억이 통째로 지워진 것처럼.
자신의 기억 위에 강제로 누가 낙서라도 찍찍 덧씌워진 것처럼!
이목구비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연구진들 사이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나!
“어어? 어어어?”
……아니!
이상한 건 고작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연구원들과 똑같이 연구복을 입고 있는 이들의 실루엣조차도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령족?!”
[그래. 정답이다.]비로소 하르마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호가 마침내 공백의 기억을 떠올려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유진호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 수호가 자신의 손에 쥐어 줬던 그림자 열쇠.
수호의 도움으로 지금은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시대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렸던 경험.
그 덕분인지 유진호는 하르마칸과의 간단한 대화만으로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지워 버린’ 기억을 되찾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진실을 품고 있었다.
[애초에 이 능력은 고작 인간 따위가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영혼을 다루는 마령족이 사용하는 주술이지.]“……영혼이라고?”
[그렇다. 뇌파가 아니라 영혼.]하르마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장치는 처음부터 살아 있는 육신에서 잠시 동안 영혼을 뽑아내는 주술진. 인스턴스 던전을 간접적으로 경험시켜 주는 주술적 장치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충격에 빠진 유진호의 입이 벌어졌다.
“설마…… 유체 이탈을 말하는 건가?”
[좋은 표현이군.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안전한 방식이다. 영혼이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끔 이 게임 캡슐 안에 차원 좌표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굳이 표현하자면 유체 이탈보다는 ‘꿈’이 더 정확하겠군.]“……루시드 드림.”
유진호는 홀린듯이 중얼거렸다.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이른바, 자각몽(自覺夢).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현상.
결국 하르마칸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아진 소프트의 대표작인 이 가상현실 게임이 사실은 처음부터 영혼을 불러내 자각몽을 꾸게 해 주는 용도로 개발되었다는 말인 것이다.
그것도 정체불명의 마령족의 도움으로!
“……대체 왜?”
지금 이 순간.
유진호가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이유였다.
“어째서 우리 연구진들 사이에 마령족들이 섞여 있었던 거지? 그때는 지구에 대격변이 오기도 한참 전인데?”
수많은 연구진들 속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섞여 있던 그 마령족들!
그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의 회사를 도와줬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노리고!
[흐음. 이유를 모르겠다고? 나는 어쩐지 알 것 같은데.]유진호의 충격 따위는 알 바 없다는 듯 모니터 너머에서 텅 빈 가상현실을 거닐며 느긋하게 주위를 구경하던 하르마칸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그는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오래전 지배자들과의 전쟁 때, 우리 마령족들이 살던 환계는 결국 멸망했다. 전쟁에서 패한 우리 마령족들은 대부분 죽었으며, 혹은 나처럼 뿔뿔이 흩어져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지.]스르륵.
하르마칸은 검은 증기가 이글거리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도 이렇게 드디어 죽어 보니 알겠더군. 영혼을 다루는 마령족에게 죽음은 곧 축복. 그림자 병사가 되는 순간, 생전보다 훨씬 더 양질의 주술을 연구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그의 앙상한 손이 주먹을 움켜쥐자, 그 위로 새로운 주술진이 펼쳐졌다.
손가락 끝으로 그 주술진을 자유자재로 희롱하며, 하르마칸의 시선이 다시 유진호에게 향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하는 일을 몰래 도와준 마령족들이 있었다면, 그 뒤에 누가 있었겠느냐.]그 대답을 유진호는 결국 스스로 깨닫고 말았다.
그것은 머릿속을 스쳐 가는 짧은 기억이었다.
-요즘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예, 형님! 벌써 완성이 코앞입니다! 공간 구현의 마지막 단계에서 애를 좀 먹고 있지만, 그것만 어떻게든 해결하면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의 탄생인 거죠!
“……형님.”
탄식하듯 내뱉어지는 그 이름, 성진우.
촤악!
조촐한 술자리.
그 기억 속에선 성진우의 앞에서 사이다를 시원하게 들이켜며 당당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던 유진호가 있었다.
-캬!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습니까? 게임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형님부터 시켜 드릴게요!
-뭐? 나부터? 그거 위험한 거 아니냐?
-위험하다뇨! 저도 당연히 같이 들어갈 건데요!
-너도 같이?
-당연하죠! 세계 최초! 우리 둘이서만 나란히 가상현실에 들어가는 겁니다!
-…….
자신을 향해 피식 웃으며 대꾸하던 성진우를 향해 당시의 유진호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형님은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제가 지켜 드릴게요!
-……뭐, 그것도 나름 재밌겠네.
그 짧은 대화의 끝에서 형님이 짓고 있던 표정이 어땠더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눈빛에 담겨 있던 건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고, 유진호는 생각했다.
-그래. 어디 한번 잘 만들어 봐라. 응원하마.
그림자 군주의 응원.
그것은 과연 말뿐인 응원이었을까.
이제는 전부 없었던 일로 되어 버린 기억을 되찾아 버린 유진호였기에, 그날의 기억을 막연히 추측해 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확신이 드는 것은 하나였다.
어쩌면 자신이 갑자기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졌던 그 마음 또한, 실체도 모르는 기억을 막연히 그리워하던 자신의 무의식이 낳은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어쩌면 형님 또한…….
* * *
쉬아아악!
그리고 그 시각.
수호는 거침없이 북진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 군단과 함께.
눈앞에 나타난 모든 적들을 물리치며.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이 풍년이었다.
‘역시 북한행을 결정하기 잘했어.’
진짜 속이 다 시원하다.
북한에 오니까 헌터법이나 다른 길드 간의 문제 같은 번잡스러운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사냥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투는 아마도 ‘그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레벨 업 꿈.’
아버지가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던 꿈.
그때는 지독히도 고생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야말로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다.
“또 한 그루.”
쿠구궁!
벌써 아홉 번째 엘븐우드가 그의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