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1)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72화(273/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2화
문제는 10번째에서 발생했다.
시르카의 아이스 골렘을 나침반 삼아 찾아낸 10번째 엘븐우드는 이전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여긴 또 뭐야?”
[……키엑?]수호뿐만 아니라 베르조차 당황할 정도.
“요새?”
묘한 풍경이었다.
여태까지의 엘븐우드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숲속 마을이었다면, 지금 수호 일행의 앞에 나타난 도시는 높은 성곽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야말로 요새처럼.
[주변에 결계와 인지 저해 마법이 없나이다.]베르의 말대로 이번 엘븐우드 주변에는 지금까지처럼 돔 형태의 투명한 결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푸른 안개가 있긴 하나, 인지 저해 마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자리에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돌과 시멘트, 철근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철벽이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마스터, 공격할까요?]“…….”
언제나 앞장서서 돌격을 외치던 퀘이가 주춤거리며 수호의 눈치를 살폈다.
[일단, 흠흠. 엘븐우드는 저기 보입니다만.]퀘이의 뾰족한 창끝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의 정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를 가리켰다.
높은 성곽에 나무 기둥이 반쯤 가려져 있긴 했지만, 엘븐우드인 건 확실했다.
그 증거는 그 주변을 배회하는 정령새들이었다.
놈들은 가증스럽게도 마치 도시의 평범한 새들처럼 한가로이 요새 위를 날아다니거나, 엘븐우드의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앉아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시르카가 수호를 쳐다봤다.
“수호, 어떡할까?”
“음. 잠시 생각 좀 해 보자. 여기가 대충 어디쯤이더라? 평양은 진즉 지나쳤고…….”
일단 수호는 이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사실 그동안은 지나온 도시의 이름을 일일이 궁금해하지도 않았었다.
애초에 지명을 알아서 뭐하겠는가.
어차피 지금의 북한은 폭주한 정령들과 기상 이변으로 지형이 제멋대로 바뀌어 있었다.
도시였던 곳은 용암이 흐르고 있었고.
산이었던 곳은 반으로 쪼개져 호수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정확한 지명보단 이동 방향이 더 중요했는데, 지금 같은 경우엔 최소한 지명이라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성곽 어디에도 간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북한 땅 한복판에 떡하니 이런 높은 성곽에 둘러싸여 있는 요새 도시가 존재한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소군주님,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나이다.]베르가 날이 저물어 가는 하늘을 보며 수호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수호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시르카를 앞세웠는데도 저쪽에서 먼저 하이엘프들이 마중을 나오지 않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저 안에 엘프들이 없나?’
그때, 침착하게 요새를 살피던 수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사람?”
수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인간’이다.
자세히 보니 노을이 지는 성곽 위로 엘프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군인처럼 무장한 보초병이.
“엘프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엘븐우드라고? 좋아, 결정했다. 직접 들어가 보자.”
[예! 그럼 저희가 성벽을 무너뜨리겠습니다!] [음무우!] [푸르륵!]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퀘이가 미노, 타우와 함께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섰다.
“뭐하러? 어차피 결계도 없는데, 그냥 걸어 들어가 보자고.”
[예! 그렇다면 저희가 성문을 박살……!]“다 들어가 있어.”
[…….]시무룩.
수호의 한마디에 그림자 병사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시르카, 우리끼리만 들어가서 상황부터 파악해 보자. 뭐하는 동네인지 분위기라도 알아야겠어.”
“으응. 그럼 나도 아이스 골렘은 놔두고 갈게.”
그렇게 수호와 시르카 둘이서만 요새의 출입구를 찾아 다가갔다.
평범하게 걸어서.
그림자 병사들 중 유일하게 베르만 그런 수호의 그림자 위로 빼꼼 얼굴만 내민 채 조용히 따라붙었다.
* * *
“누구냐!”
커다란 성문 앞에 다가가자, 그곳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수호와 시르카의 앞을 막아섰다.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어?’
이상한 일이다.
문지기들의 억양에 북한 사투리가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문지기들이 한국인이라고? 북한 한복판에?’
수호는 태연하게 문지기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뭐하는 곳입니까?”
“뭐야, 한국인이네?”
문지기들도 수호의 억양을 듣자마자 출신을 파악하고,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반가운 기색마저 느껴질 정도.
아무래도 이런 타지에서 동향인을 만나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임무에 충실했다.
“한국인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그들은 수호와 시르카에게 날카로운 창끝을 겨누고 질문을 던졌다.
수호는 솔직히 대답했다.
“어떻게라면, 그냥 걸어서 왔는데요.”
“걸어서? 남한에서 여기까진 상당히 먼 거리인데?”
“조금 뛰기도 했고요.”
대화가 조금 붕 뜬다.
하지만 그사이에 문지기들의 시선은 수호와 시르카의 행색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전투의 흔적들.
뚜렷한 생채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호와 시르카가 입고 있는 옷에는 생생한 전투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용암길이라도 지나쳐 왔는지, 옷에 탄내도 가득했다.
경비대장이 물었다.
“너희 둘이 전부냐? 다른 일행들은 없나?”
“없는데요.”
“누가 가서 보고 와.”
“예!”
경비대장의 명령에 몇 명이 직접 수호와 시르카가 나타난 방향으로 직접 달려가서 혹시나 다른 일행이 숨어 있는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뭐야? 진짜 너희 둘이 전부라고?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다른 일행은 진짜 없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수호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문지기들의 표정이 조금 숙연해졌다.
“……다 죽었나?”
“음, 네. 뭐, 그렇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더 숙연해졌다.
물론 수호의 대답에 딱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은 그림자 병사들이 다 죽은 녀석들인 건 맞으니까.
그런데 대답을 할수록 어째 분위기가 점점 더 엄숙해져 가고 있었다.
“흠. 그래, 젊은 친구가 고생이 많았겠군.”
“여기까지 오는 길이 좀 험난하긴 하지.”
“그런데 이 엘프는 어디서 구했냐. 어떻게 잡았지?”
‘엘프를 잡아?’
순간 수호의 눈에 빠르게 이채가 떠올랐다.
뉘앙스가 묘하다.
문지기들은 수호의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르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얌전한 녀석이군.”
“머리색이 특이한데?”
“따로 목줄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목줄이라니요?”
오히려 수호가 궁금해서 그들의 대화를 끊고 물었다.
하지만 문지기들 입장에선 그 말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응? 목줄을 몰라? 이거 말이야, 이거.”
“아아.”
그들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주자, 수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익히 알고 있던 물건이었으니까.
‘마력 구속구’
그들이 꺼내든 건, 다름 아닌 지산교도소에서 빌런들의 양쪽 발목에 채웠던 ‘전자발찌’였다.
저 안에는 매우 강력한 초소형 폭탄이 들어 있어서, 전자발찌에 충격이 가해지거나 착용자가 마력을 사용하면 바로 폭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매우 흉악한 수갑이었다.
‘대격변 초창기 때 우진철 협회장님의 주도하에 발명된 장치라고 했던가.’
문득 예전에 백미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실 협회장님은 애초에 그 폭탄을 발목이 아니라 목에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었어요.
그렇다.
당시에 우진철 협회장은 마력을 쓰면 바로 목이 날아갈 정도는 되어야 빌런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개발 당시의 이름도 ‘폭탄 목걸이’.
하지만 그 안건은 결국 인권 탄압의 문제로 부결되었고, 발목에 채우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 버렸다.
‘그런데 그게 왜 여기서 갑자기 튀어나와? 그것도 목줄이라고? 설마 여기선 목에 채워서 사용되고 있는 건가?’
대화를 나눌수록 궁금한 것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아무튼 이런 걸 갖고 있는 사람들이면, 결국 둘 중 하나라는 말인데…….’
빌런 아니면 협회.
혹은 알려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집단?
역시 다짜고짜 공격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수호의 시선이 스쳐 가듯 문지기들의 목과 발목을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몸 어디에도 마력 구속구가 채워져 있지는 않았다.
‘아무튼 뭐라도 대답은 해 줘야 의심을 사지 않겠군.’
문지기들은 ‘목줄’을 차지 않은 시르카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나마 경계심이 옅은 이유는 시르카의 귀여운 외모 덕분이었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작고 어린 엘프.
작은 몸뚱이에 풍성한 은발이 허리까지 다 덮고 있어서, 뒤에서 보면 무슨 커다란 햄스터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르카는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몰랐다.
차해인은 성진우가 선물로 준 목걸이 덕분에, 수호는 시스템의 효과 덕분에 시르카와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시르카는 아까부터 문지기들이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듣고 멀뚱히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무해한 표정으로.
툭.
수호의 손바닥이 시르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문지기들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이 녀석에게 목줄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저한테 비슷한 스킬이 있어서요.”
“뭐? 스킬?”
“스킬이라니? 무슨 스킬?”
의아해하는 문지기들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직접 보여 주는 편이 이해가 빠를 것 같았다.
‘그레이를 보여 줄까? 아니지. 요즘 그레이가 덩치가 제법 커져서 괜히 경계심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결정했다.
그림자 병사도 아니면서, 딱 봐도 위협적이지 않은 녀석.
“라그나.”
슈욱!
“……?!”
그 순간, 문지기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갑자기 수호의 손에서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뿅 하고 나타난 것이다!
“삐용?”
멍청한 눈망울.
등에 날개가 달린 작은 도마뱀이 수호의 손바닥 위에서 입을 헤 벌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 좀 살쪘다?”
“삐이?”
갸웃?
수호의 말처럼 라그나는 요즘 토실토실 살이 쪄서 보기 좋았다.
아무래도 안타레스가 라그나의 마력량을 늘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소환 스킬?”
“소환술사였나?”
문지기들은 수호의 스킬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스킬들이 많지만, 소환 스킬은 흔히 보기 어렵다.
특히나 제 한 몸을 지킬 능력이 없는 보조 계열, 그중에서도 어중간한 직업인 소환술사들은 아포칼립스로 전락해 버린 북한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 이 엘프도 설마 잡은 게 아니라 네 소환수인가?”
“뭐, 비슷합니다. 혹시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면 엘프를 역소환해야 할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냥 이 목줄을 하나 빌려줄 테니 목에 채워 놔라. 나갈 땐 반드시 반납하고.”
“……감사합니다.”
수호는 문지기가 건네주는 ‘목줄’을 받아 들며 생각했다.
시르카가 한국어를 몰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수호는 시르카의 목에 목줄을 대충 걸어 주었다.
다만, 잠금 장치와 작동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언제든 스스로 풀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자 비로소 문지기들은 수호를 겨누고 있던 창끝을 아래로 내렸다.
“그래서 여긴 어딥니까?”
“말해 뭐해? 직접 들어가 보면 알 텐데.”
문지기들은 수호에게 경계심을 풀고 성문을 개방해 주었다.
촤아악-
그렇게 수호의 앞에 문이 열린 순간.
바로 보이는 건, 화려한 네온사인.
[LAST PARADISE]“……어?”
수호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북한 땅.
아포칼립스로 전락한 인세의 지옥 한복판.
엘프들의 신목, 거대한 엘븐우드를 중심으로 드리워진 그늘 아래…….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어서 와라. 북한에 남은 마지막 파라다이스, ‘낙원’에 온 걸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