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2)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73화(274/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3화
“…….”
수호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첫인상은 뭐랄까.
‘……차이나타운?’
물론 차이나타운에도 다양한 곳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여긴 꽤 불량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속했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난잡하고 무질서한 거리.
곰팡이가 잔뜩 낀 허름한 벽들.
그리고 그 돌담 구석에 모여서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내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찌들어 있었다.
“오, 맞아! 나도 딱 이런 표정이었어!”
수호의 표정에 경비대장은 또다시 킬킬거렸다.
“왜? 많이 놀랐냐? 이 도시에 처음 온 녀석들은 다 지금 너 같은 반응이란 말이지.”
“…….”
경비대장은 마치 이 도시에 자부심이라도 있는 듯 수호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묻기도 전에 술술 설명해 주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여긴 좀 차이나타운 같은 곳이다. 한국인도 있고, 북한 사람도 있고, 거기에 중국인, 러시아인들도 섞여 살고 있지.”
그의 말대로 이 무질서한 도시에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행색은 각양각색이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국적도 다양했다.
그 밖의 다른 나라는 없는 이유는 뻔했다ㅣ.
여기 북한의 위치가 중국과 러시아, 한국과 인접해 있기 때문일 터.
하지만 그건 그렇고, 수호가 주목한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군주님, 여기 있는 인간들 전부가 마력을 지니고 있나이다.]끄덕.
베르의 속삭임에 수호는 말없이 끄덕였다.
‘각성자들의 도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각성자가 아니고서야 북한에서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대부분은 마수들에게 죽임당했거나, 아니면 마력에 침식되어 미스트 번이 되어 불타 죽었을 터.
애초에 이 도시까지 도착하는 여정 자체가 각성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그리 놀라운 부분은 아니었다.
그보다 수호의 눈에 들어온 두 번째가 문제였다.
“저 녀석들 목에 채워진 목걸이가 궁금한 거지?”
“……예.”
역시 척하면 척.
경비대장은 수호가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곤 히죽 웃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폭탄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섞여 있었다.
그런데 시르카에게 걸어 둔 것과는 모양이 조금 달랐다.
목걸이 겉면에 LED로 된 ‘숫자’들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목걸이는 네 소환수에게 빌려준 목걸이와는 다른 거다. 마력 구속 기능을 없애고, 폭탄만 남겨 둔 개조품이지.”
“마력 억제 기능이 없다고요?”
“그래. 물론 충격을 가하면 터지는 건 마찬가지라, 함부로 벗었다간 머리가 날아가는 건 똑같다.”
“……?”
수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빌런들을 구속하기 위한 장치에서 마력 억제 기능을 없앴다니?
그럼 저건 대체 뭐하는 물건이란 말인가.
“하지만 사용 목적이 완전히 다르지. 이름은 ‘크레딧 초커’라 불린다.”
“크레딧 초커? 신용…… 목걸이요?”
“아니, 대출 목걸이.”
히죽.
아까부터 내내 친절하기만 하던 경비대장의 미소가 처음으로 서늘해졌다.
“초커를 찬 놈들은 전부 빚쟁이들이다. 은행 대출을 아직 못 갚은 놈들이지.”
“은행 대출?”
“그래. 이해가 안 가지? 어차피 금방 적응될 거다. 어차피 너도 이곳에서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때마침 그들 앞에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낙원 은행]경비대장이 성문에서부터 직접 수호와 시르카를 안내해 데리고 온 건물 위에는 커다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은행?”
“그래,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최소한 밥 사 먹을 돈은 필요하지 않겠냐? 잠도 자려면 숙박비도 필요할 거고.”
‘아, 이런 거였나.’
그제야 수호는 이 도시에 들어온 순간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쩐지 경비대장은 험상궂은 생김새와는 달리 상당히 친절하게 수호를 대해 주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만 빼면, 정체 모를 외부인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해도 싶을 정도로 환영을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명색이 성곽을 지키는 문지기가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의 목적은 마수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
그게 마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특히나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각성자라면 이 도시에선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선 다른 나라의 화폐 같은 건 쓸모 없어. 오로지 우리 도시에서만 통용되는 코인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지지. 그래서 너처럼 이 도시에 처음 들어온 녀석들은 제일 먼저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부터 빚쟁이가 되는 거군요.”
“맞아. 그렇다고 뭐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라. 다들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거든. 어차피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
그 빚이라는 걸 갚는 방법이 궁금했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여어! 신참 받아라!”
경비대장이 호쾌하게 은행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그 안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반색했다.
“오, 박영준 님! 오늘이 경비대 당번이셨습니까? 신규 고객을 데리고 오셨네요?”
“으하하! 그래, 인마! 당장 소개비 내놔!”
“예, 예. 바로 지급해 드리지요. 운이 좋으시네요. 하필 당번이신 날 신참이 제 발로 찾아오시고.”
순간 직원의 시선이 빠르게 경비대장의 곁에 서 있는 수호와 시르카의 모습을 훑어 내렸다.
그러고는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며 수호의 앞에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한 장은 시민 등록증, 다른 하나는 생활 정착금을 대출해 드리기 위한 차용증입니다.”
“…….”
서류를 스윽 보니, 한국어와 중국어, 그리고 러시아어로 나란히 번역되어 있었다.
시민 등록증이야 그냥 이름만 쓰면 되는데, 문제는 생활 정착금이었다.
정착금을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문제는 금리였다.
‘금리가 미쳤군. 어지간한 사채업자들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고리대금.
이런 양아치 같은 대출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은행이라니.
하지만 도시 밖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싫으면 이 도시에서 나가면 되니까.
그 증거로, 수호가 서류를 찬찬히 읽어 보다가 직원에게 반문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혹시 돈을 빌리는 건 나중에 해도 될까요?”
“예, 당연하지요! 저희는 절대로 대출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친절한 말투와는 달리, 직원의 눈가가 아주 잠깐 찌푸려지는 것을 수호는 포착했다.
하지만 직원은 빠른 속도로 환한 표정을 지으며, 수호를 직접 데리고 온 경비대장에게 눈치를 주곤 변명하듯 말했다.
“저희 도시에 처음 방문하신 분들이 크레딧 초커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건 으레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은 마세요. 어차피 저희 은행에서 내드리는 의뢰들을 몇 개만 수행하시면, 정착금 정도는 금방 갚으실 테니까요.”
“의뢰요?”
“예. 게임으로 치면 퀘스트랄까요? 하핫, 아무래도 젊으신 분들은 게임을 예로 들면 이해가 빠르시더라고요. 퀘스트를 수행하면 보상금이 나가는 식이죠.”
“아, 내 보상금부터 주라고!”
“참고로 지금 이분처럼 외부인을 처음으로 발견해서 은행까지 안내해 주는 일도 보상금이 나온답니다.”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수호를 데리고 온 경비대장이 직원에게 소개비를 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직원은 알겠다며 경비대장에게 동전 몇 개를 건네며 말했다.
짤그락.
“자자, 됐죠? 거, 몇 푼이나 된다고 빚도 없으신 분이. 아무튼 그럼 대출 쪽은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고. 일단 이 시민 등록 서류에 이름만 적으시고 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에 소개비를 받고 희희낙락하던 경비대장이 수호의 옆에서 툭, 하고 한마디했다.
“참고로 가명도 된다?”
“……?”
수호가 그를 쳐다보자, 경비대장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야, 설마 여기까지 와서 멍청하게 본명을 쓸 생각이었어?”
그 말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당당하게 직원 앞에서 가명으로 시민 등록을 하라는 말보다, 그다음에 이어진 말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우진철이 쫓아와서 어흥, 하고 잡아간다?”
“…….”
“쯥, 재미없냐? 하여간 요즘 것들은.”
그 재미 없는 아재 개그를 들으며 수호는 비로소 깨닫고 말았다.
[소군주님, 여기…….]‘그래.’
이 도시의 진정한 정체를.
이곳은 다름 아닌, 우진철 협회장을 피해 북한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빌런들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것이다.
‘그럼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도망친 빌런들이겠군.’
[당장 다 죽이시지요. 아, 그 전에 하르마칸이 있어야 이놈들에게서도 경험치를…….]옆에서 사악한 눈빛으로 조용히 대량 학살을 계획하던 베르가 하르마칸의 부재를 깨닫고 실의에 빠졌다.
빌런들을 발견했다고 다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그 전에 하르마칸에게 이 일대를 인스턴스 던전으로 둘러놔야 이들에게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잠시 두고 온 하르마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대출이고 뭐고 이 은행부터 불태웠으리라.
“그런데 손님은 진짜 운이 좋으시네요. 그 어린 엘프는 대체 어디서 잡으신 겁니까?”
마지막으로 시민 등록을 마치고 은행을 떠나는 수호를 향해.
은행 직원까지도 수호의 곁을 얌전히 따르는 시르카를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 * *
“자, 은행 위치와 크레딧 초커에 대해서만 알려 줬으면 사실상 소개비 받은 값은 다 치른 셈이고…… 주의할 점만 몇 개 조언해 주마.”
은행 밖으로 나온 뒤.
경비대장은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호에게 도시를 한 바퀴 구경시켜 주며 말했다.
“참고로 여긴 시청이 따로 없다. 애초에 무법지대라서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다만, 너무 힘만 믿고 나댔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잠잘 때는 무방비잖냐.”
그의 손가락이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 대로를 가리켰다.
“여기 큰 대로를 사이로 한쪽은 중국인들이, 반대쪽 구역은 한국인들이 모여 산다. 북한과 러시아 구역은 저쪽이고. 그렇다고 여기가 국적으로 갈라치기가 심한 건 아닌데, 그나마 동향끼리 모여 살면 잠자리가 안전하거든. 물론 어디까지나 마음의 문제지만.”
불법과 위법도 아닌 무법지대.
이곳에선 누가 갑자기 숙소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은밀하게 찾아와 죽이려 들어도 누구도 지켜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특히나 목에 초커 찬 빚쟁이들을 조심해라. 숫자 높은 놈들은 진짜 위험해. 아까 금리 봤지? 걔네 목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거든. 그러다 결국 빚을 못 갚으면 꽝! 하고 터지는 거야.”
“결국 죽기 싫으면 은행에서 내주는 의뢰를 수행해야 하는 거군요.”
“수수료 떼먹히기 싫으면 직접 장사를 해도 돼. 빚만 없으면 물물거래가 더 편할 때도 많고.”
수호는 문득 아까 은행 직원의 옆에 붙어 있던 수많은 의뢰서를 떠올렸다.
의뢰 내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요약하면 대충 이런 식이었다.
1. 엘프 사냥
2. 마수 사냥 (식용이 가능한)
3. 의뢰인이 요구한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을 도시 밖에서 찾아오기
그중에는 은행이 직접 내거는 의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 도시에 사는 누군가가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은행에게 부탁하는 식이었다.
그 중간에서 은행은 중개료를 받아 챙기고.
그런데 역시나 가장 궁금한 건 ‘엘프’였다.
대체 왜 여기 사람들은 엘프를 사냥하는 걸까?
‘나는 그렇다 쳐도, 이 사람들은 경험치를 받는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왜지?’
수호는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까 엘프들을 잡아 오는 의뢰가 가장 보상금이 크던데, 엘프들은 왜 잡아야 하는 겁니까?”
“왜긴. 그야 당연히…….”
그에 경비대장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이 도시의 정중앙에 우뚝 솟은 엘븐우드를 가리키며.
“저 알브헤임을 키우는 데 엘프의 시체만큼 좋은 거름이 없거든.”
“……!”
수호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시르카의 귀를 막았다.
어차피 한국말이라서 못 알아듣었겠지만.
그리고 눈을 돌려 엘븐우드를 다시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찾아냈던 아홉 그루의 엘븐우드들과 이곳의 엘븐우드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크기.
유독 이 도시에 자라는 엘븐우드가 2배가량 두껍고 컸다.
설마 그 이유가…….
“이 북한 땅에서는 희한하게 엘프들을 제법 발견할 수 있거든. 놈들을 잡아서 이 땅에서 묻으면 알브헤임이 아주 좋아하지.”
수호는 물었다.
“알브헤임이 저 나무의 이름입니까?”
“아아, 너 혹시 신화에 약한 편이냐?”
“대충은 압니다.”
알브헤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엘프들의 땅을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아마 엘프들이 저 나무를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에 기인해서 붙인 이름인 듯했다.
뭐, 어떤 이유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수호는 경비대장이 했던 말 중 한 부분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저 나무를 키운다는 게 무슨 말이죠?”
“알브헤임에 거름을 바치고 살찌우면 ‘열매’가 맺히거든. 이 도시엔 힐러가 없어. 그래서 우리는 다치면 그 ‘열매’를 먹는다. ‘열매’는 원기 회복에 재생력까지 극도로 높여 주거든. 심지어 저런 것까지 되지.”
마침 경비대장이 초커를 찬 빚쟁이들이 모여 있는 으슥한 골목을 가리켰다.
그곳엔……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수호와 시르카, 심지어 베르까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팔이…….”
“……!”
[……!]참고로 완벽히 잘려 나간 팔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상급 힐러들만 가능한 능력이었다.
하물며 이 도시엔 그보다 못한 힐러들조차 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팔이 잘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단면에서 발생하는 출혈만으로도 죽을 텐데.
그런데 경비대장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 있는 빚쟁이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의 팔이 있어야 할 어깨에, 거대한 마수의 팔이 붙어 있는 기괴한 모습을 한 인간들이.
“대단하지? ‘열매’를 먹으면 마수의 몸까지 우리 몸에 이식할 수 있거든.”
비로소 수호의 시야에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클럽가처럼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로 치장된 화려함 아래 드리워진 짙은 어둠들.
이곳의 빌런들은 자신의 몸에 괴물의 신체를 이식하며 목숨을 연명해 온 누더기들이었다.
“저 누더기들을 우리는 강화 인간이라 부른다. 너도 아마 언젠가 다치면 결국 제 발로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받게 될 거다. ‘열매’를 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