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3)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74화(275/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4화
수호는 경비대장의 설명을 듣고, 이제야 비로소 이 도시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라스트 파라다이스.
빌런들의 도피처이자, 동시에 그들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요새.
그리고 이 도시에서 엘븐우드의 열매를 먹으며, 다친 신체를 마수의 부위로 대체하면서까지 살아남은 ‘강화 인간’들.
그리고 그들에게 빚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계속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맡기는 은행이라는 존재.
수호는 중얼거렸다.
“결국 저 나무가 이 도시의 생명줄이군요.”
“맞아. 알브헤임이 없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전부 죽었을 거야. 마수들의 공격이나 기상 이변으로 다치고 병들어도, 저 나무의 열매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거든.”
경비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킬킬거렸다.
“뭐, 다들 그렇게 점점 빚쟁이가 되고, 강화 인간이 되어 가는 거지.”
“열매라…….”
수호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알브헤임을 올려다보았다.
그 높이는 너무 높아서 뒷목이 뻐근할 정도.
둘레는 장정 수십 명이 손을 잡고서도 모자랄 듯 보였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엘븐우드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살이 찐’ 엘프들의 신목은 지극히도 아름답고 생생한 에너지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의 엘븐우드의 기둥 아래를 둘러싸고 있는 건 인간들이 만든 잿빛의 낡은 콘크리트 건물들이었으니…….
그 화려하면서도 어둡고, 어딘가 불량하고 슬럼가 같은 풍경은 마치 홍콩의 구룡채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서 보면, 이곳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화분 같군. 이 도시 전체가.’
그렇다, 화분.
이 도시의 구조는 오직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화분 같았다.
그 화분을 가꾸는 이들이 하이엘프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만 달라졌을 뿐.
결국엔 이곳의 빌런들 또한 엘프들처럼 엘븐우드를 위해 사육당하며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니, 결과만 놓고 보면 오히려 인간들 쪽이 엘븐우드를 더 훌륭하게 잘 키우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열매다.
‘지금까지의 엘븐우드들에는 열매 같은 건 없었으니까.’
사실 크기도 크기지만, 이곳의 엘븐우드에게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잎사귀의 색깔.
하이엘프들이 살던 엘븐우드들의 나뭇가지에는 언제나 푸릇푸릇,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엘븐우드는 푸릇한 잎사귀들 사이사이에 붉게 물든 잎사귀들이 울긋불긋 섞여 있었다.
곧 떨어질 낙엽처럼 말이다.
“……가을이 시작된 거야.”
때마침 옆에서 수호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시르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실라드도 동조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이 땅에 이미 수확의 계절이 찾아왔다고 말합니다.]그 말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한을 견뎌 내고 군주가 되었던 실라드의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엘프들의 계절은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오롯이 엘븐우드의 성장도에 맞춰 흘러가는 것이다.
가을이 찾아왔기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엘븐우드가 열매를 맺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을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럼 결국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이 도시는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 확언합니다.]시르카는 이미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익숙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혹한에서 태어난 시르카에게 엘프들의 겨울이란 고향처럼 친숙한 것이었으니까.
“조만간 겨울이 찾아올 거야.”
따라서 그 겨울이 언제 찾아올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저 나뭇잎들이 전부 붉어졌을 때. 낙엽이 전부 지면…….”
그리고 그날이 바로, 이 도시가 멸망하는 날일 것이다.
수호는 시르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저 높이 보이는 붉은 잎사귀들 끝에 달려 있는 열매들을 쳐다봤다.
수호가 뭐라 묻기도 전에 경비대장이 눈치 빠르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저것들이 바로 ‘열매’다. 알브헤임의 혈액이라고나 할까?”
경비대장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현처럼 열매들의 생김새가 멀리서 봐도 붉은 피가 둥글게 뭉쳐져 나뭇가지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말이지.”
경비대장이 갑자기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사실 저 열매를 따는 일은 쉽지 않아. 위험하기 짝이 없지.”
“위험하다고요?”
“그래. 알브헤임은 나무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생명체거든. 자신의 피를 뽑아 가는 걸 좋아할 리가 없잖아?”
하기야 원래 엘븐우드라는 놈들이 엘프들을 직접 잡아먹는 위험한 나무 아니던가.
“그래서 은행에서도 알브헤임의 열매를 따 오라는 의뢰를 내놓곤 해. 보통은 빚쟁이들이 맡지. 목에 초커를 찬 놈들 말이야.”
“의뢰금이 높은가 보군요.”
“당연하지. 목숨을 걸고 저 나무 위를 직접 기어 올라가야 하는 일인데. 도중에 추락만 해도 허리가 아작나는데, 심지어 나뭇가지들이나 정령들이 훼방을 놓거든.”
경비대장이 씩 웃으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수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의도 또한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열매를 따기가 더 힘들어졌어.”
“그건 왜죠?”
“알브헤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거든. 열매를 따러 가는 놈들의 절반 이상이 돌아오지 못해. 아니면 다쳐서 돌아와선 결국엔 기껏 따 온 열매를 자기가 먹게 되지.”
경비대장은 은근한 목소리로 수호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너 열매 따기 의뢰를 맡아 볼 생각 없냐?”
“제가요?”
“그래. 넌 소환술사잖냐. 아까 그 도마뱀 소환수 불러내서 나무를 기어 올라가게 시키면 되지 않겠냐?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아하. 이거였군.’
기대감에 찬 경비대장의 눈빛을 보자, 수호는 비로소 경비대장이 내내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소환 스킬이 전투에서는 애매해도, 열매 따기에는 제격일 것 같단 말이지? 게다가 너 당장 오늘 밤부터 어쩔 거냐? 밥도 문제지만, 숙소를 잡는 것도 돈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할 거야.”
경비대장은 수호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원래 수호처럼 이 도시에 처음 온 사람들은 처음엔 다들 은행 대출을 꺼려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뿐이었다.
“잊지 마라. 이 도시는 이래 봬도 빌런 놈들만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이라는 걸. 언제 누가 갑자기 강도로 돌변할지도 모르는 동네에서, 열매 한두 개쯤은 다쳤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챙겨 두는 게 좋아.”
“이래저래 미리 열매를 따 두라는 말이군요.”
“그래. 막상 다치고 나서 열매를 시장에서 구매하려 했다간, 갑자기 값을 비싸게 부를걸? 여기가 워낙 무법지대라 시세도 그때그때 다르거든.”
“흠.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이. 너무 그렇게 빼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네가 나무 아래에서 소환수를 부리는 도중에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내가 옆에서 지켜 주마. 난 이래 봬도 경비대장을 할 정도로 알아주는 탱커거든.”
경비대장이 수호에게 원하는 것은 결국 동업이었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헛소리를 들으며 수호의 그림자 속에서 베르가 낄낄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리석은 인간. 우리 소군주님께는 어차피 포션이 있는데 저딴 불길한 열매 따위가 필요할 리가 있나.]“아무튼 잘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오늘 밤에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다 보면 바로 생각이 바뀔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비대장은 자신의 관할 구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 그리고 노숙할 때는 빚쟁이들을 조심하라고! 특히 초커 숫자가 높은 놈들은 인정사정없거든.”
경비대장은 멀어지는 순간까지도 수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나마 노숙하기가 안전한 골목을 알려 주었다.
“끝까지 친절한 사람이네.”
[말이 너무 많나이다. 설명충 같으니.]“……?”
수호의 시선이 잠시 베르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시르카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 아무튼 이제 우리도 슬슬 잠을 잘 곳부터 찾아볼까?”
“잠을 잘 곳?”
한국말을 몰라서 군말 없이 수호의 곁을 따르고 있던 시르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소군주님, 귀하신 분께서 무슨 노숙입니까. 그냥 그림자 교환으로 한국에 가셔서 편하게 주무시고 오시지요.]“물론 그래도 되긴 하지.”
베르의 조언은 실로 현명했다.
스킬 한 번이면 곧장 한국의 푹신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하르마칸을 데리고 오시지요.]“그 말도 맞지.”
[……?]베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가 자신의 말을 전혀 따를 생각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의 발걸음은 경비대장이 가르쳐 준 노숙하기 좋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이상하지 않아?”
골목길을 들어서는 수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방금 그 경비대장 아저씨, 그 친절한 아저씨도 결국은 한국에서 도망쳐 나온 빌런일 텐데 너무 친절하단 말이지.”
[키엑?]불쑥.
때마침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
수호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씨익.
자신의 주위를 포위한 이들을 둘러보며, 수호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경비대장이 알려 준 골목길에는 벌써 먼저 온 손님들이 진을 치고 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에 걸린 초커.
마수의 팔을 이식한 기괴한 모습의 거렁뱅이들.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의 신참만 노리는 거리의 하이에나들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골목길.
그리고 그들의 맨 뒤에는, 끝까지 수호에게 친절하게 굴었던 경비대장이 어느새 다시 돌아와 팔자 좋게 앉아 있었다.
“또 뵙네요?”
“아아, 너무하다고 생각하진 마라. 은행에서 주는 의뢰가 하나 더 남았거든. 신참에게 도시를 안내해 줄 것. 그리고 은행에서 빚을 지게 할 것.”
수호의 인사에 빚쟁이들 뒤에서 경비대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난 진심으로 네 스킬이 열매 따기에 최적화된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일단 열매가 필요해지게끔 먼저 팔 한 짝이라도 뜯어 놔야 말을 잘 들을 것 같아서.”
어쩐지 아까 은행 직원이 경비대장에게 눈치를 주더라니.
그 눈빛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은 수호가 피식 웃었다.
“대출을 강요하지 않는다더니, 어떻게든 빚쟁이로 시작하는 게 국룰인가 보네요?”
“맞아. 원래 그런 동네거든. 다들 뭐하냐, 한꺼번에 덮쳐!”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시의 빚쟁이들이 일제히 수호를 향해 덤벼들었다.
몸에 이식한 거대한 마수의 팔을 휘두르며.
[소군주님, 기왕 이놈들을 죽이실 거면 하르마칸이 있을 때…….]이 와중에도 경험치를 걱정해 주는 베르의 충언이 눈물겨웠다.
그 말에 수호는 히죽 웃으며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알아. 아직 여기서 알아볼 것도 있고.”
파앙!
“……?!”
수호의 가벼운 손짓에 코앞까지 짓쳐들어온 빌런의 거대한 주먹이 그대로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그 모습에 경악한 빚쟁이들의 표정 너머로, 경비대장의 부릅뜬 눈동자에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기색이 언뜻 보였다.
“아하?”
반면에 시르카는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진 몰라도, 이건 알겠네.”
휘오오-
내내 한국어를 몰라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시르카의 손에 얼음나무의 창이 생겨났다.
그리고.
쩌저정!
……?!
가을이 막 시작된 알브헤임의 어느 날 밤.
아주 약간 이르게 찾아온 겨울바람이 으슥한 골목길을 통째로 얼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