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4)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75화(276/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5화
그동안 시르카를 혹독하게 굴린 보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수호가 무너뜨린 엘븐우드는 총 아홉 그루.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하이엘프들이 비굴하게 연명하던 목숨을 잃었으며.
그들의 몸속에 기생충처럼 우글우글 모여 있던 정령들은 혼비백산해 도망쳤고.
오히려 악귀처럼 덤벼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 모든 정령들은 결국 수호에게 잡혀 불타 죽거나.
시르카의 손에 붙잡혀 굴종을 강요당했다.
수도 없이.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곳.
이 땅에…….
휘와아악!
강림했다.
쩌저저적!
“……!”
시르카의 작은 몸에서 시작된 차가운 서리 바람이 어둠이 드리워진 골목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그 순백의 눈보라에 닿은 강화인간들의 몸이 하나둘 얼어붙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 이게 뭐……!”
공포에 질린 비명과 함께 강화인간들은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시르카의 혹한의 기운은 순식간에 골목 전체를 얼음 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골목 위로 뾰족뾰족하게 솟구친 얼음 가시들.
강화인간들은 경악한 표정 그대로 얼음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쩍쩍쩍-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빚쟁이들의 몸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 이식된 마수의 팔과 다리도 얼음 조각처럼 산산조각 났다.
“끄어어…….”
그렇게 가까스로 얼음을 깨고 밖으로 빠져나왔으나, 그들의 신체는 이미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은 추위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 숨겨 뒀던 ‘열매’를 꺼내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휘익-
“……?!”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열매들은 모조리 베르의 손에 빼앗겨 수호에게로 들어왔다.
띠링.
[‘아이템 : 오염된 엘븐우드의 열매’를 획득했습니다.]“…….”
그 모습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화인간들의 눈에서 서서히 생기가 빠져나갔다.
그 순간.
콰쾅!
[키엑?]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의 목에 채워져 있던 크레딧 초커가 여기저기서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쾅쾅! 콰콰쾅쾅!
“……빚쟁이들이 죽으면 자동으로 터지게끔 설계되어 있나 보네.”
생각보다 크레딧 초커의 폭발력이 상당해서 수호는 조금 놀랐다.
시르카도 깜짝 놀라 얼음의 벽을 만들어 폭발의 여파를 막아 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강화인간들의 시체에는 머리통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앞으로 저들을 상대하실 때는 근접 공격은 피하시는 편이 좋겠나이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이럴 수가…….”
이 모든 광경을 골목길의 가장 끝에서 지켜보고 있던 경비대장의 표정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고작 몇 초.
아니, 바로 1초 전까지만 해도.
결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도, 도망쳐야…….’
경비대장의 머릿속에선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두 발목 또한 시르카의 얼음에 단단히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앞으로…… 필연적인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 아니. 이건 오해야!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나는 그저, 그저……!”
아아.
수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얼음판 위를 걸어서.
“저, 정말이야! 진짜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고! 그러니까 딱 열매를 먹어야 할 만큼만……! 이건 어디까지나 의례적으로 누구나 겪는……!”
공포에 젖은 경비대장의 입에서는 두서없는 핑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수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해 주었다.
“음, 오해라……. 하긴, 그럴 수도 있죠. 아저씨가 지나치게 친절했던 것도,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모습에 경비대장은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왜 몰랐을까.
어째서 이제야 깨달았을까!
돌이켜보면 저 녀석은 처음부터 줄곧 저런 모습이었다.
38선을 뚫고 북한까지 도망쳐 온 빌런들이라면 당연히 악에 받쳐 있거나, 살기등등해서 모든 것을 경계하곤 했다.
이런 지옥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달랐다.
호구라 생각할 될 정도로 순순히 자신을 따라다니며 안내를 받았다.
마치 여행지에 온 여행객처럼.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태평하게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수호에게서 조금의 살기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 경비대장에겐 오히려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자, 잠깐! 나는 이용 가치가 있어! 살려만 주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말해 줄게! 이 도시에 적응하려면 너도 어차피 알아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나를 죽였다간……!”
[아아. 그건 걱정 말거라, 친절한 빌런이여. 어차피 죽으면 더 친절해질 터이니.]“……?!”
오싹!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베르가 세상 친절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에 경비대장은 기겁하며 회심의 한 수로 숨겨 두었던 단검 두 자루를 갑자기 꺼내 수호의 심장과 목을 향해 투척했다.
쐐액-
“죽어!”
하지만 단검들은 속임수!
단검이 수호에게 채 닿기도 전에, 그는 악에 받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수호를 향해 마구마구 퍼부어 댔다.
“크아악!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어차피 나를 죽였다간 너희도 무사할 수 없을……!”
푹-
“아, 혹시 대화 중이었어? 갑자기 공격하길래.”
“…….”
어느새 다가온 시르카가 얼음나무의 창으로 경비대장을 찔러 버리곤, 수호를 돌아보며 너무나도 무해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와 동시에 악에 받쳐 있던 경비대장의 눈에서 생기가 스르륵 빠져나갔다.
[키에엑! 소군주님의 아까운 경험치가…….]사람들이 이렇게나 죽었는데도 옆에서 경험치 타령만 하는 베르.
이 정도면 어느 쪽이 빌런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수호도 만만치 않았다.
“아냐. 어차피 경험치를 많이 줄 만한 놈들도 아니었으니까.”
딱히 죄책감은 없었다.
어차피 협회를 피해 북한까지 도망쳐 왔을 정도의 빌런이라면, 기본적으로 사형당할 짓을 했던 놈들뿐.
애초에 그 이하의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런 살기 팍팍한 아포칼립스까지 제 발로 도망쳐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어나라.”
수호는 주저 없이 죽은 이들의 그림자를 추출했다.
…….
아아아아아-!
조금 일찍 겨울이 찾아온 차디찬 골목길.
초커의 폭발로 머리통이 날아간 빚쟁이들의 그림자들에게서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죽음 속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생전에는 빚에 허덕이며 근근이 생존을 이어 오던 그들의 영혼에는 더 이상 초커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림자 강화병 Lv.1] [그림자 강화병 Lv.1] [그림자 강화병 Lv.1]…….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병사들의 모습을 훑어보는 수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몸에 이식된 마수의 신체가 죽어서까지 유지가 되는군. 시타가 보면 조금 억울하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시타가 실험을 통해 완성시킨 용인족들과 비슷하나이다.]인류를 강화하겠다며, 인도에서 그 난리를 쳤던 시타는 수많은 실험 끝에 인간을 용인족으로 개조했었다.
하지만 이곳의 빌런들은 그들과 원리는 다른데, 결과물이 꽤 비슷했다.
“육신의 변화가 영혼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니, ‘열매’의 효과가 생각보다 더 좋은가 본데.”
수호는 베르가 회수해 온 ‘열매’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 오염된 엘븐우드의 열매]입수 난이도 : ??
종류 : 소모품
엘프들의 신목, 엘븐우드의 열매입니다.
섭취하면 회복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켜 주는 대신, 엘븐우드의 씨앗이 몸속에 뿌리를 내려 영구적인 변이를 일으킵니다.
정체불명의 기운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효과 ‘회복력 증폭’ : HP, MP 회복 속도 200% 증가
-부작용 ‘침식’ : 신체의 영구적인 손상
정보창을 읽어 내리던 수호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먹으면 몸속에 엘븐우드가 뿌리를 내린다는데? 동충하초 같은 느낌인가. 그보다 뭐에 오염되었다는 거지?”
정보창을 아무리 살펴봐도, ‘오염’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베르가 주의를 주었다.
[얼핏 이타림의 기운이 느껴지나이다. 절대로 그냥 드시면 안 됩니다.]“안 먹어.”
어차피 수호도 먹을 생각이 없었다.
“저런 걸 보고도 찝찝해서 어떻게 먹어?”
수호는 강화인간들의 시체들을 가리켰다.
꾸물꾸물.
영혼은 그림자 병사로 변했으나, 그 자리에 남은 시체의 상처 안에선 가느다란 나무뿌리들이 촉수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피가 흐르지 않는 혈관들을 보는 것 같아서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다.
“어떤 원리로 마수의 몸을 붙인 건지 알겠네.”
“아무래도 엘븐우드의 뿌리가 인간의 몸과 마수의 몸을 안쪽에서 강제로 엮어 준 것 같아.”
시르카도 표정이 굳어 있었다.
“실라드, 엘븐우드가 원래 이런 놈들이야?”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자신도 이런 건 처음 본다 말합니다.]“경비대장.”
[예.]수호가 그림자 병사가 되어 앞에 서 있는 경비대장을 쳐다보자, 그가 전신에서 검은 증기를 일렁이며 부름에 응답했다.
“이 열매를 동시에 여러 개 먹으면 어떻게 되지?”
[효과가 중첩됩니다.]“몇 개까지?”
[거기까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워낙 비싼 물건이라,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만 한꺼번에 여러 개를 먹습니다.]“그렇군. 영 찜찜한 열매네.”
“결국 이 열매를 많이 먹을수록, 몸속에 엘븐우드의 뿌리가 점점 많아진다는 말이네.”
“그러다 결국엔 걸어 다니는 나무가 돼 버려도 이상하지 않겠는걸.”
수호는 고개를 들어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지붕이자 천장을 뒤덮고 있는 아름다운 나뭇가지와 나뭇잎들.
그 까마득히 높은 곳에 맺혀 있는 피처럼 붉은 열매들.
수호는 다시 시선을 경비대장에게로 향하며 물었다.
“경비대장.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 뭐든 좋으니까.”
[예. 이 도시는 크게 4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은행’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금융기관이지만, 사실상 이 도시를 통제하는 실세죠. 특히나 열매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모든 거래의 중심에 있습니다.]“그리고?”
[두 번째는 ‘사냥꾼 길드’입니다. 마수의 신체를 이식받은 강화인간들의 모임으로, 도시의 실질적인 전투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의뢰를 수행하며 열매를 얻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의뢰에 따라 도시 밖으로 나가 마수를 사냥하거나 물자를 구해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도 이들입니다.]“열매를? 그들이 계속 열매를 얻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나?”
[강화인간들은 자기들이 인간을 초월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뛰어난 마수의 신체를 몸에 이식하고 싶어 합니다.]“음.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라 봐야 하나.”
[예. 정확한 표현이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유시장 연합’이 있습니다. 도시의 장사꾼들과 빚쟁이들이 모여 만든 느슨한 연합체로, 공식적인 조직은 아니지만 도시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제외한 모든 물자를 거래합니다.]“열매만큼은 철저히 은행이 통제한다는 말이군.”
[예. 빚쟁이들이 은행의 의뢰를 받아 따 온 열매들이 고스란히 은행에게 귀속됩니다. 그러다 다치면 자신들의 손으로 따 온 열매를 또 빚을 내서 사 먹어야 하는 굴레입니다.]“…….”
수호는 잠시 침묵했다.
아까 자신을 활짝 웃으며 환영해 주던 은행 직원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 보니 새로운 손님이 아니라, 새 노예가 추가되어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럼 마지막 세력은 뭐지?”
[‘집행관’입니다.]“집행관?”
[예. 집행관들은 다른 세력과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엔 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저도 듣기만 했지만, 집행관 중에는 S급 빌런도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S급 빌런이라고?”
경비대장의 설명을 듣던 수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쩐지 무법지대라기엔 생각보다 체계가 잡혀 있다 했더니. 뒤에서 보이지 않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지?”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얼음으로 뒤덮인 골목길을 돌아보며 물었다.
“집행관은 언제 튀어나오지? 우리가 이 정도로 난장을 피웠는데도 아무도 안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빌런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서…… 이 정도 소란은 제법 있는 편입니다.]히죽.
그 말에 수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그놈들이 튀어나오는데?”
[소군주님, 그야 이곳의 빌런들을 다 죽이면 나오지 않겠나이까.]베르의 말에 경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가 망하면 집행관들은 언제나처럼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날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지요.]“언제나처럼?”
[예. 제가 처음에 설명했듯이, 이 도시는 북한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낙원. 예전에는 이곳 외에도 빌런들의 도시는 더 많았습니다. 그 망한 도시들에서 빠져나와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만든 이들이 바로 집행관들입니다.]“그 도시들은 왜 망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