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75)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76화(277/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76화
수호는 경비대장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철 협회장이라…… 어쩐지 협회의 북한 공략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했더니, 이런 내막이 있었나.”
수호도 이곳에 직접 와 보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동안 우진철 협회장이 북한에서 마수들만 소탕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마수들뿐만 아니라 빌런들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빌런들이 이런 식으로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진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국에서는 우진철 협회장의 오랜 부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실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기껏 협회를 만들어 놓고는, 정작 협회장 본인이 그 자리를 계속 비워 놓고 다른 곳을 떠도는데.
게다가 하필이면 그가 북한에 끌고 간 협회 헌터들 중에 S급 헌터인 ‘최종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제일 큰 문제였다.
최종인만 한국에 남겨 뒀다면.
아니, 차라리 협회장 자리를 최종인에게 물려주고 떠났다면 지금처럼 우진철의 행보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걸어다니는 전쟁 병기인 S급 헌터 한 명의 존재감은 그토록 컸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 수호가 북한행을 허락받기 위해 거쳐야 했던 여러 번거로운 절차들도 결국 최종인의 부재 때문에 파생된 나비효과인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오히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마수들보다 이런 도시의 존재가 훨씬 위협적이지.’
바로 머리 위에 빌런들의 도시가 존재한다는 건, 대격변 전에 북한이 건재했던 시절보다도 훨씬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협회장 입장에선 빌런들의 도시를 보이는 족족 소탕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행보였으리라.
게다가 제아무리 많은 빌런들이 모여 있다고 한들 그에겐 딱히 위협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곁에는 ‘최종인’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수호가 엘븐우드를 불태웠듯이, 최종인도 화염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S급 헌터였기에 엘븐우드를 불바다로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터였다.
우진철과 최종인을 떠올리자 수호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 도시는 왜 아직까지 이렇게 무사한 거지?”
[그야…… 아직까지 우진철에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그게 집행관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진철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도시를 재건하는 것. 게다가 이번 도시의 성벽은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합니다.]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대단하다는 우진철 협회장이라도, 북한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이 땅은 푸른 안개가 짙어서 인공위성 카메라도 먹통이었다.
집행관들이 우진철이 이미 지나쳐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도시를 새로 만들면 그의 동선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집행관들만 무사하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도시는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참나. 무슨 바퀴벌레 소굴도 아니고…….”
[벌레들의 왕, 역병의 군주가 귀를 쫑긋거립니다.]“들어가. 너 부른 거 아니야.”
수호는 퀘레샤의 존재감을 물리치며, 경비대장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베르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첨언했다.
[소군주님, 이러면 어떠십니까? 평소처럼 다 불태우고 계시면, 제가 병사들을 끌고 밖에서 몰래 도망치는 놈들을 색출하겠나이다.]“아냐. 집행관들이 누군지도 모른다잖아. 처음부터 도시 안에 없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해.”
어차피 아무도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면, 이곳의 빌런들을 다 죽여서 병사로 만든다 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제 발로 기어 나오게 해야 한다는 말인데……. 잠깐, 집행관의 역할이 뭐라 했지?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그럼 답이 나왔네.”
경비대장의 말에 수호는 짓궂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녀석들이 이 도시의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지게 만들어 주면 되겠어.”
히죽.
무법 지대라기엔 생각보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도시.
이곳의 체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방법이 수호에게는 차고 넘쳤다.
“흠. 그럼 일단 시작은…….”
집행관을 제외하면, 이 도시를 드러난 곳에서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총 세 곳.
은행.
사냥꾼 길드.
그리고 자유시장 연합.
이 셋 중에서 딱 봐도 가장 만만해 보이는 곳은 역시나 장사꾼들과 빚쟁이들이 모여 만든 느슨한 연합체.
시장이었다.
“일단 ‘시장’ 쪽부터 흔들어 볼까.”
대략적인 계획을 정한 수호는 히죽 웃으며 시르카를 돌아보며 물었다.
“시르카, 피곤하지? 슬슬 자러 가자.”
“어디서 자게?”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르카.
하지만 경비대장은 자신에게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재빨리 움직여 자신의 죽은 시체의 품속에서 꿍쳐 뒀던 돈주머니를 꺼내 수호에게 공손히 바쳤다.
[얼마 안 되지만, 이 정도 돈이면 한동안 숙소를 얻으시기엔 충분하실 겁니다.]“오, 역시 친절한 사람.”
짤그락.
수호는 피식 웃으며 기꺼이 돈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고맙긴 한데, 숙소는 필요 없어.”
파아앗!
수호는 ‘그림자 던전의 열쇠’를 꺼내 들었다.
“잘 때는 역시 마음 편한 곳에서 자야지. 그리고 내가 아직 오늘 치 일일 퀘스트를 안 했거든.”
[그림자 던전에 입장합니다.]그렇게 수호는 시르카와 함께 그림자 게이트로 사라졌다.
* * *
그리고 얼마 뒤.
“……뭐?”
느긋하게 수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은행 직원은 뒤늦게 경비대장의 비보를 전해 듣고 표정이 굳었다.
“경비대장이 시체로 발견됐다고?”
“예. 같이 끌고 갔던 강화인간들까지 전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대가 전부…….”
“얼어붙어 있었다?”
“예. 상당한 수준의 빙결 마법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이 정도 위력이면 최소한 A급입니다.”
“A급? 소환술사라더니…….”
초커를 낀 빚쟁이에게 보고를 전해 들은 은행 직원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에 차 있었다.
아까 수호를 환영했을 때의 표정과는 정반대의 분위기.
“그럼 그 엘프는 뭐였지? 설마 소환수가 아니라 직접 사로잡아 길들인 건가? 아니면 아예 다른 스킬?”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경우의 수가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단순히 A급 빌런 한 놈이 도시에 나타난 거라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이 안에서 먹고살기 위해선 어차피 결국 돈이 필요할 테니까.’
애초에 모든 시민들이 빚쟁이가 될 필요는 없었다.
오늘처럼 도시에 처음 온 신참을 빚쟁이로 만드는 일은 의례적인 행사일 뿐.
그보단 신참의 수준을 시험해 본다는 의미가 컸다.
이번 놈은 어디에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스킬들도 확인할 겸.
게다가 그를 상대로 강화인간들까지 끌고 간 경비대장이 전멸했다는 사실 또한 엄청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대체할 병력이야 사냥꾼 길드에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촉이 안 좋단 말이지.’
그래, 이번 신참은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표정이나 태도에서 은은히 드러나는 여유로움.
결코 허세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은 아포칼립스가 된 북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문득 은행원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했다.
그곳엔 그가 남기고 간 시민 등록 서류가 있었다.
‘이름 : 베르’
“……쯧. 가명을 써도 꼭 이런 중2병 같은 이름을. 무슨 게임 아이디 만드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요즘 것들은.
다시 봐도 한심한 녀석 아닌가.
어차피 이 도시에선 다들 가명을 쓴다곤 하지만, 어쨌거나 앞으로 그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입장에선 영 네이밍 센스가 별로인 것이다.
하지만 저 이름조차도 이쪽의 방심을 유도한 것이라면?
어째서?
“……혹시나 우진철의 끄나풀일 가능성은?”
상정하는 경우의 수 중에서 가장 최악을 입 밖으로 꺼낸 은행원의 말에 앞에 있던 빚쟁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랬다면 이렇게 대놓고 일을 키우기보단 적당히 넘어갔을 겁니다.”
“하긴. 아무튼 영 꺼림칙한 녀석이니까 당분간 계속 주시해야겠어. 그래서 그 베르라는 놈, 오늘은 어느 숙소에서 묵고 있지?”
“그게…… 없습니다.”
“뭐? 뭐가 없는데?”
은행원의 차가운 눈빛에 빚쟁이는 쩔쩔매며 대답했다.
“지, 진짜입니다. 하늘로 꺼졌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시체들이 발견된 골목길에서부터 그놈의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찾아! 경비대장의 돈주머니도 다 빼 갔다면서 설마 노숙을 할 리가 없잖아!”
“정말입니다. 지금 안 그래도 제 밑의 부하들을 총동원해서 그 일대를 다 뒤져 보고 있는데도 도저히…….”
“이 한심한 것들이! 밤을 새서라도 어떻게든 찾아!”
“네, 넵!”
은행원의 불호령에 빚쟁이는 쫓겨나듯이 은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사라진 수호의 행방을 찾아서 밤을 꼴딱 새서 온 도시를 수색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이 무색하게도…….
아침이 되자 수호는 시장 한복판에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차, 찾았습니다! 지금 막 시장에……!”
“네놈들이 찾은 게 아니잖아! 빚 탕감은 꿈도 꾸지 마라!”
“……!”
그 말에 좌절하는 빚쟁이.
빚이 이렇게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신이 보고할 일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베르라는 놈이…… 아침부터 시장에서 뭘 팔기 시작했습니다.”
“뭐? 갑자기 장사를 시작했다고?”
은행원은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에 막 도착한 신참들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바로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이번에도 촉이 좋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지? 아무래도 내가 직접 봐야겠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빚쟁이는 자신의 빚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겠다는 사실에 화색을 띠며 앞장을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빚쟁이의 안내를 받아, ‘베르’가 장사를 하는 곳에 도착한 은행원은 그 자리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저, 저것들은 다 뭐야?”
터무니없다.
말도 안 된다.
도시의 시장은 넓고도 넓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은행에서 빚을 갚기 위해.
혹은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장사를 한다.
하지만 그 물건이 다 어디서 나겠는가?
기껏해야 한국에서 가져온 소지품.
그것들은 고작 반나절이면 금방 동이 난다.
그다음엔 결국 모두가 그러하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시 밖으로 나가서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아와야 했다.
그런데…….
“저 많은 것들이 다 어디서 나온 거냐고!”
은행원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이런 음식을 먹어 보는 게 얼마 만이지?!
생크림 케이크까지 있잖아!
……베르, 아니 수호는 시장 한복판에서 한국의 음식을 팔고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마트를 통째로 들고 온 것처럼 어마어마한 물량의 식료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