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82)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3화(284/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3화
베르는 그동안 착실하게 수호가 구해다 준 마정석을 먹고 마력을 야금야금 쌓아 왔다.
물론 여전히 효율은 낮다.
성진우에게 직접 마력을 공급받던 때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힘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재 베르 입장에선 이 정도도 감지덕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최대한 아끼고 아껴 가며 살아야 했다.
때때론 힘을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려도 꾹 참아야 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은 마력을 섣불리 소모했다간, 그만큼 줄어든 힘을 충전하기 위해 또다시 수호에게 손을 벌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은 정말이지…….
수호를 갓난아기 때부터 업어 키웠던 베르 입장에선 애기의 코 묻은 돈을 한 푼, 두 푼 빼앗아 살림에 보태는 기분이라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지금 이 지구에서 마정석 하나하나가 얼마나 비싸고 귀한 물건인데, 무슨 민폐란 말인가.
하지만 상대가 외신의 사도라면 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외신석으로 만든 무기라니. 대체 저만한 양의 외신석을 누가 어떻게 모아서 무기를 만들었단 말인가?
합리적인 의심.
추수꾼 하슬의 뒤를 은밀하게 쫓고 있던 베르는, 하슬이 외신의 사도거나 어떻게든 외신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끄나풀일 거라 확신했다.
심지어 S급의 마력을 지닌 빌런 아닌가?
진짜 저 여자가 외신의 세력이라면, 괜히 수호를 기다리다가 덜미를 놓치는 쪽이 훨씬 더 손해였다.
그래서 여차하면 자신이 그동안 열심히 모은 마력을 소모해서라도 직접 죽일 생각까지 했다.
일단은 도망치지 못하게 죽여 버린 다음에, 그림자 병사로 만들든, 자신이 직접 뇌를 파먹든 해서 기억을 끄집어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그런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키에엑! 소군주님!]그것은 베르에게도, 하슬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소인이 보고 싶어지셨나이까?!]마침 베르가 들어온 골목을 찾아온 수호의 등장에 베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크기가 쪼그라들었다.
수호가 왔다면, 이제부턴 수호에게 맡기면 된다.
가장 금상첨화는 하르마칸의 도움을 받아 하슬을 죽이고 경험치까지 얻는 것이겠고.
“……너는?”
갑작스러운 베르의 존재감에 짓눌려 있던 하슬은 때마침 등장한 수호의 정체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빵집?”
그는 바로 아침 시장에서 봤던 빵집 사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저 검은 개미 마수가 갑자기 저 남자 옆에 딱 붙어서 귀여운 척 아양을 떨어 대는 이유는 또 뭐고?
아니, 아양이 아닌가?
다시 보니 귀여운 척이 아니라, 귀여워하는 쪽인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혼란스러운 찰나.
치지직.
-……거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슬은 다급히 뒤로 빠지며 무전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직전까지 위압감 넘치던 개미 마수의 여파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정리가 잘 안 됐다.
그때.
휙-
“앗?!”
갑자기 하슬의 손에 들려 있던 무전기가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빼앗긴 모양새.
하슬의 무전기가 순식간에 허공을 날아 빵집 사장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하슬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
기묘하다.
스킬이라기엔 마력의 흐름이 아주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지배자의 권능’은 마력을 소모하지 않는 스킬, 태어날 때부터 수호가 갖고 태어난 제3의 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치지직-!
-응답 바랍니다. 낙원의 그늘, 지금 거기 무슨 일이…….
“안녕하세요, 우진철 협회장님. 베르입니다.”
-……?!
대뜸 수호가 하슬의 무전기에 대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잠시 그 너머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고.
순식간에 이쪽의 상황을 파악한 우진철이 침착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성수호 헌터님이십니까?
“어, 바로 알아보시네요?”
-그야 목소리가…… 아버지를 똑 닮으셨으니까요.
아들은 커 갈수록 점점 아버지의 목소리를 닮아 가는 법.
우진철은 무전기 너머의 수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자신이 성진우와 통화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 지금 이 세상에서 ‘베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인간’은 오직 저 하나뿐이니까요.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 있는 우진철의 목소리에선 어딘가 아련한 그리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
우진철은 지난 수십 년을 성진우와 함께했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동시에 지금은 잊혀지고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모든 사라진 역사들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억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예 성진우와 관련된 모든 전말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성진우가 윤회의 잔이 사용되기 전의 세계에서, 자신이 본 그림자 군주의 기억들, 즉 지배자들과 군주들의 전쟁에 관련된 모든 진실들을 우진철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전달해 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걸 노리고 그 가명을 쓰신 것 아니셨습니까?
“아, 예. 혹시라도 베르라는 이름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협회장님 쪽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그런 거였나이까?!]그 말에 베르는 깜짝 놀랐다.
[저는 분명히 소군주님이 언젠가 저처럼 훌륭한 개미가 되고 싶으셔서 제 이름을 쓰신 줄 알았…….]베르는 금방 시무룩해졌다.
어릴 때부터 새하얀 도화지에 검정 크레파스로 개미만 열심히 그려 대던 수호 어린이의 장래희망은 분명 개미였단 말이다.
-음. 역시 그러셨군요. 그보다 하슬은 무사합니까? 저희 쪽에서 그 도시에 심어 놓은 첩보원이라서요.
“예, 뭐…….”
그 말에 대답하며 수호의 시선이 하슬을 힐끔거렸다.
저 앞에서 하슬은 갑자기 수호와 우진철의 대화가 시작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동시에 수호의 곁에 딱 붙어 있는 베르의 존재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하슬을 위해, 수호가 갑자기 손에서 마술처럼 뭔가를 꺼내 하슬에게 건네주었다.
“잠깐 이거라도 먹고 있어.”
“……!”
순간 하슬의 눈이 반짝였다.
딸기 케이크다!
그것도 이번엔 조각 케이크도 아니고, 완벽한 원형을 이루고 있는 제대로 된 케이크!
그걸 곱게 두 손으로 받아 든 하슬은 곧장 얌전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아까 남겨 둔 마지막 조각 케이크를 지금 바로 먹기로.
-그보다 제가 성수호 헌터님께 묻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 도시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혹시나 여건이 된다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보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 아버지의 친구분이시라면서요.”
-하하. 괜찮습니다. 저는 존댓말이 편합니다. 하필이면 옛날에 인류최약병기라 불리던 E급 헌터가 세계를 구원하는 모습까지 봐 버렸더니, 다시는 누구한테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거든요.
“아이고, 저런.”
적당한 농담과 함께 수호는 우진철이 건네는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질문은 역시나 성진우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수호의 대답에 우진철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그래도 차해인 헌터님과 유진호 대표님, 토마스 안드레까지 기억이 돌아온 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인류에게 아주 큰 전력이 생겼군요. 또 다른 분들도 계십니까? 그리고 혹시나 성수호 헌터님께서는 원하시면 누구든 사라진 기억을 되돌려줄 수 있으십니까?
우진철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이번엔 수호가 아닌 베르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네놈처럼 군주님과 직접적인 인연이 닿아 있던 인물들의 기억을 되돌리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왕께 은총을 받아 목숨을 구원받았으니, 간접적으로는 인연이 닿아 있긴 하다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무리가 좀 있지.]-자, 잠깐! 설마 지금 말씀하신 분, 진짜 ‘베르’ 님이십니까?!
베르의 목소리를 알아본 우진철에게서 수호 때보다 훨씬 경악하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흐뭇.
그 반응에 베르는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수호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셨나이까? 제가 이 정도입니다.]-진짜 베르 님이셨군요!
그에 우진철에게서 크게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성진우가 지구에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베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란 말인가.
우진철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S급 헌터들이 총력을 기울였던 제주도 레이드!
그곳에서 그 모든 헌터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천재지변급 재앙이 바로 베르라는 마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해서 성진우의 핵심 전력 중 하나가 되어 있었으니, 인류에겐 실로 어마어마한 전력이 충원된 셈이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으음.”
베르의 목소리만 듣고도 크게 안도하는 우진철의 반응에 수호는 조금 심란한 표정으로 미니 사이즈의 베르를 쳐다봤다.
[키엑? 왜 그런 눈으로 보시나이까? 얼마든지 우러러보셔도 되나이다.]“…….”
지금도 열심히 수호에게 베르의 정말 대단했던 리즈(?) 시절에 대해 설명해 주는 우진철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지금 이렇게 작아져 버린 베르의 모습을.
‘……마정석을 더 구해야겠다.’
굳게 다짐하는 수호였다.
그리고 수호에게서 여러 궁금한 사항들을 다 전해 들은 우진철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그 도시는 어떤 상황인 겁니까? 고작 하루 만에 시민들을 부추겨서 은행에 폭동을 일으키게 하셨다고요?
우진철은 이미 수호가 벌인 일들을 하슬에게 전달받은 상황.
다시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결국 중요한 건 앞으로의 계획이었다.
-혹시 어떤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그 도시는 저희 쪽에서도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곳이라, 첩보원만 심어 두고 내부 사정만 살피는 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진철이 이끄는 협회 헌터들은 빌런들의 도시를 발견하는 족족 소탕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 이 도시만큼은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성벽.
도시를 둘러싼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철벽은 최종인의 화염 공격으로도 불타지 않는 굉장히 견고한 방벽이었다.
그리고 그 방벽 덕분인지, 그동안 협회를 피해 뿔뿔이 흩어졌던 모든 빌런들이 하나둘씩 이 도시에 몰려들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모인 빌런들의 전력은, 한국에서 우진철이 데리고 나온 협회 측 헌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무리를 하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는 있겠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빌런들의 도시를 무너뜨렸음에도, 또다시 새로운 장소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된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 우진철 입장에서도 비교적 최근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빌런들을 전부 소탕하기 위해선 집행관들을 잡아야 합니다. 이 사실도 하슬을 그 도시에 살게 한 덕분에 알게 된 정보입니다. 저희 쪽 사람들은 이미 그곳의 빌런들에게 전부 얼굴이 알려져 있어서 아무나 그 도시의 관문을 통과할 수 없거든요.
쿠콰콰쾅-!
이 한가로운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실시간으로 이 도시는 치열한 전쟁터로 전락하고 있었다.
피가 튀고, 비명이 터지고.
이제는 누가 아군인지, 적인지도 상관없어진 혈투.
어차피 서로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던 빌런들이, 상대를 죽이면 열매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피와 살점이 온 도시에 뿌려지고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렇게 죽어서 말라비틀어진 모든 시체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땅속으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사라락.
“……아.”
낙원 도시의 변두리.
수호와 하슬이 들어간 으슥한 골목길 밖에서 빌런들의 전쟁을 멍하니 구경하며 망을 보고 있던 시르카는 떨어지는 낙엽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하늘에서…… 붉은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어젯밤까지도 파릇하던 알브헤임의 나뭇잎들마저 점점 울긋불긋한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붉은 단풍들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아름다운 풍경 아래.
“……익숙한 냄새가 나네.”
시르카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코끝에 익숙한 겨울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시르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겨울이 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