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83)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4화(285/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4화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사라락-
너울너울 낙하하는 붉은 단풍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결국 온 하늘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가을이 도래하였다 경고합니다.]가을은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와, 순식간에 떠나간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인간들 스스로가 가을을 앞당겼다 말합니다.]실라드의 말대로다.
이곳의 가을은 유독 빨랐다.
마치 시간이 10배는 빨라진 것처럼, 어젯밤만 해도 푸릇푸릇했던 잎사귀들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낙엽이 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러한 광경이 몹시도 신기하고 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븐우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굉장히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누군가의 피를 흠뻑 빨아들이고 붉게 물든 낙엽들이…… 그 피의 무게를 못 버티고 결국 무거워서 낙하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엘프들에게 가을이란 곧 멸망의 징조.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서둘러 피난을 가야 하는 계절.
혹한의 군주 실라드가 경험했던 모든 엘븐우드들이 그러했듯이.
이 도시에 자라난 알브헤임도 결국 이름만 다를 뿐, 여느 엘븐우드와 똑같은 계절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사락, 사라락-
붉게 물든 단풍이 온 시야를 뒤덮고, 낙원이라 불리던 모든 땅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온 세상이 피처럼 붉게 물든 도시 위에 ‘멸망의 징조’가 시작되었다.
촤아악-
슈와아악!
“컥?!”
“뭐, 뭐야, 이건?!”
갑자기 붉게 물든 땅 위로 솟구쳐 올라온 알브헤임의 뿌리들이 서로 드잡이질을 하던 빌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꿀꺽! 꿀꺽!
“커헉! 이, 뭔……?!”
땅속에 숨어 있던 뾰족한 촉수들이 그들의 몸을 푹푹 찔러 대고, 마음껏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자, 잠깐! 그만 덤벼! 지금 알브헤임이 미쳤…… 끄아악!”
꿀꺽! 꿀꺽!
정신없이 싸우고 있던 빌런들은 모두 기겁하며 일시적으로 전투를 멈췄다.
그리고 알브헤임이 자신들의 몸에 다짜고짜 쑤셔 박은 나무뿌리들을 황급히 뜯어내고 잘라 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슈왁!
샤아악!
온 땅이 붉은 낙엽으로 뒤덮였기에, 언제 어디서 나무뿌리들이 땅을 뚫고 솟구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감각이 높은 빌런들이라도 무리였다.
애초에 이 낙엽들은 평범한 낙엽이 아니었으니까.
[소군주님! 이 낙엽들에 인지 저해 효과가 있나이다!]베르가 한눈에 낙엽들의 실체를 확인하고 수호에게 경고했다.
수호는 깨달았다.
“감각이 둔해졌군. 이 낙엽들이 도시 전체를 인지 저해의 결계로 만들어 버렸나.”
졸지에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이 거대한 인지 저해의 결계에 갇혀 버린 형국이었다.
수호조차도 감각이 둔해졌을 정도니, 다른 빌런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불쑥불쑥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나무뿌리들에 속절없이 몸이 꿰여 죽어 갈 뿐이었다.
그렇게 알브헤임은 그동안 그들에게 먹였던 열매들의 힘마저 고스란히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곳의 알브헤임은 그동안 수호가 봐 온 어느 엘븐우드보다도 가장 거대하고 잘 큰 나무였다.
그만큼 놈의 뿌리가 빌런들의 힘을 빨아들이는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도, 도망……! 끅!”
“끄어……!”
그 뿌리들을 피해 빌런들은 사력을 다해 도망쳤으나, 그 사이에도 곳곳에서 미라처럼 순식간에 말라붙어 죽어 가는 희생양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죽어 가고, 필사적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사이에.
빌런들은 결국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언젠가의 모든 엘프들의 그러했듯이.
“설마 지금까지……?”
그렇다.
더 이상 알브헤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아니었으리라.
그저 식량.
알브헤임에게 자신들은 그저 그동안 토실토실 살을 찌워 키운 양질의 가축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만 것이다.
끄아아아악……!
도시 곳곳에 비명들이 난무한다.
그들의 머리 위에선 여전히 하늘하늘 낙하하는 붉은 낙엽들이 온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덧없이 죽어 간 건 아니었다.
휘아아악!
반월의 검기가 허공을 벤다.
붉은 단풍들이 휘몰아치며, 그 사이로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추수꾼 하슬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 하슬이다!”
“추수꾼들이……!”
속절없이 도망치던 빌런들의 눈에 희망이 생겼다.
하슬을 비롯해, 그동안 은행의 의뢰를 받고 열매를 따 오던 추수꾼들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열매를 따기 위해 저 높은 나무 기둥을 매일같이 올라야 했던 추수꾼들은 능숙하게 알브헤임의 뿌리들을 상대해 나갔다.
그리고 그건 추수꾼들을 부려 먹던 은행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행원들은 그동안 모든 급료를 열매로 받았다.
그걸 되팔아서 코인을 벌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다른 시민들에 비해 많은 열매를 먹은 자들.
그들은 몸속에 잠재된 열매의 힘 덕분인지, 낙엽이 만들어 낸 인지 저해 효과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도망쳐!”
“자, 잠깐! 그 전에 저 열매들 좀……!”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몇몇 은행원은 바닥을 가득 메운 낙엽들 사이에 섞여 떨어져 내린 열매들을 발견하곤 탐욕 어린 눈빛을 빛냈다.
열매의 효능을 몸소 체험한 이상, 그 임자 없는 열매들을 줍는 행동은 본능과도 같았다.
“커헉!”
그러다 죽는 은행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재량껏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혀를 찹니다.]이 모든 일련의 광경들을 바라보며, 실라드는 짙은 회한을 느꼈다.
결국엔 엘프들이 겪어 왔던 가을이 인간들에게도 도래한 것이다.
아무리 다른 종족이라도, 이 꼬락서니를 또다시 보게 되는 건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이런 젠장, 벌써 시작됐나?”
게이트를 통해 다른 나라로 건너갔던 은행장이 이 도시로 되돌아온 건.
한발 늦게 도시의 상황을 보게 된 은행장은 이를 갈았다.
최대한 서두른다고 서둘렀으나, 러시아 놈들이 계속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속도는 비상식적으로 빨랐다.
불과 오전 중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지 않은가.
‘이 모든 게 다 베르 그 새끼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신참만 어제 도시에 들이지 않았어도, 이런 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오면 돌이킬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순리대로 할 뿐.
“하아…… 내가 여길 어떻게 새로 키웠는데.”
은행장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러시아에서 한가득 사 온 열매들을 전부 자신의 입에 꾸역꾸역 쑤셔넣기 시작했다.
열매들의 개수가 꽤 됐으나, 그걸 그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럴수록 은행장의 몸이 점점 변해 갔다.
온 피부가 메마른 고목처럼 딱딱한 껍질로 뒤덮였고, 인체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근육들, 근섬유들이 고스란히 나무줄기처럼 갈라졌다.
“은행장님……!”
은행원들이 은행장의 귀환을 뒤늦게 눈치채고 반가워하며 몰려왔다.
이미 인간의 형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은행장은 무기질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명령했다.
“여긴 텄다. 서둘러 이탈한다.”
“그 전에 열매들을 좀 챙기…… 컥!”
푹-
은행장은 자신의 말에 감히 토를 다는 직원의 심장을 단숨에 찔러 죽이곤, 찡그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닥치고 바로 떠난다. 이러다 집행관들이 나타나면 다 끝장…… 아, 씨발.”
순간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은행장은 다급히 고개를 들고 머리 위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곳엔…… 모든 낙엽이 지고 앙상해진 알브헤임의 나뭇가지 위로, 다섯 개의 열매가 울룩불룩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저게 뭐야?”
“열매?”
은행장을 따라서 위를 쳐다본 은행원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익히 알고 있던 알브헤임의 열매들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와 형상.
그것은 마치 열매라기보단 ‘알’과 같았다.
“씨발, 튀어!”
순간 은행장의 몸이 용수철처럼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이제부턴 각자도생.
직원들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은행장의 모습에 은행원들도 무언가를 직감하곤 혼비백산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늦었다.
퍼펑! 펑!
비이상적으로 울룩불룩 부풀어 오르던 열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풍선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집행관’들이 튀어나왔다.
인간들에겐 집행관이라 불리고 있으나, 그들의 실체는 인간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휘오오오오오-!
그 안에서 터져 나온 건 ‘겨울’ 그 자체.
실라드의 표현대로라면, 혹한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악-!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안에서 시작된 어마어마한 눈보라가 온 도시를 집어삼켰다.
붉었던 계절이 순식간에 온 시야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으아악! 은행장님!”
“이건 또 뭡니까?!”
“뭐긴, 집행관들이지! 당장 여기서 탈출 못하면 다 얼어 죽는다! 이제부턴 알아서들 살아남아라!”
그 말을 끝으로 은행장은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아악!”
곧이어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은행장의 비명 소리에, 그의 뒤를 따르던 은행원들은 주저 없이 방향을 돌려 뿔뿔이 흩어졌다.
새하얀 눈보라 속, 그 너머에 비친 무언가를 언뜻 봐 버린 것이다!
그곳엔 은행장의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쥔 거대한 괴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혹한의 정령] [혹한의 정령] [혹한의 정령]…….
드디어 수호의 눈앞에 놈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집행관이 정령이었나?”
수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감각 스탯이 경종을 울린다.
그동안 대체 알브헤임에 들러붙어서 얼마나 많은 양분을 빨아먹었던 걸까?
단순히 정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그동안 여기까지 오면서 가볍게 물리쳤던 정령들과는 격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키엑! 저건 설마……?!]베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히 수호를 불렀다.
그동안 외우주에서 성진우를 따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베르의 곁에는 항상 지배자들의 병사, 천사들이 잔뜩 있었다.
그렇기에 베르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저 집행관이라는 놈들이 태어나는 광경을 보자마자 깨닫고 말았다.
[소군주님! 저놈들, 세계수의 열매에서 천사들이 태어나는 모습과 비슷하나이다!]“뭐?”
그 말에 수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사후의 바다에 뿌리를 내린 세계수는 죽은 영혼들을 양분 삼아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들 중, 가장 많은 에너지를 품은 특별한 열매들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천사였다.
그런데 이곳의 알브헤임, 아니 엘븐우드 또한 마찬가지였다니?
양분으로 삼는 것이 영혼이 아니라 육신이라는 것만 다를 뿐.
생명체들을 키워 양분으로 빨아먹고, 수많은 열매들 중에 가장 특별한 열매들의 안에서 ‘혹한의 정령’이 태어난 것이다.
‘엘븐우드가 세계수를 흉내 내는 건가? 아니면, 원래부터 다 같은 종자인가?’
치밀어 오르는 궁금증이 있었으나, 지금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실체를 드러낸 혹한의 정령들을 가리키며 베르가 외쳤다.
[이렇게 보니, 천사라는 존재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결국 정령이나 다름없나이다! 그 말은 결국 저 혹한의 정령들도……!]지배자들의 병사, 천사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고작 다섯 개의 열매.
다섯 마리가 태어났을 뿐인데도, 이 일대를 다 뒤덮고도 모자라 온 세상을 얼려 버릴 기세인 한파라니!
때마침 수호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들이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디버프 : 혹한’이 발동합니다.] [실시간으로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실시간으로 공격 속도가 느려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디버프 : 혹한’의 효과가 계속 누적됩니다.]그야말로 천재지변.
마치 사후의 바다에 진입했을 때처럼, 강력하고 살벌한 경고음들이 경종을 울려 대고 있었다.
하지만.
……화르륵!
그때와는 달랐다.
용제의 심장에서 끓어오른 업화가 수호의 전신에 이글거리고 있었으니까.
[‘용제의 심장’이 ‘디버프 : 혹한’의 효과를 상쇄시킵니다.]오히려 이런 세상에서도 수호의 체온은 검붉은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혹한의 정령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었나 보다.
후와아악-!
[……누구인가.] [우리를 거스르려는 자가.]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주변에 온기를 띄고 있던 모든 생명체에게서 열기를 앗아 가던 혹한의 정령들 다섯이 일제히 수호를 돌아봤다.
그들이 주변의 눈보라와 함께 몸집을 부풀리자, 온 하늘을 가득 채우기 부족함이 없었다.
[겨울을 집행한다.]고오오오오-
집행관.
그들이 엘프들의 재앙이었던 겨울을 집행하기 위해 수호를 둘러쌌다.
하지만.
“그래서 좀 어떤 것 같아?”
수호는 웃고 있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쓸 만해 보여?”
그런 수호의 물음에 옆에 있던 시르카가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쭈우욱-
“하아, 시원하다-.”
더없이 상쾌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며.
휘오오오오오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혹한의 눈보라 속.
태초부터 줄곧 엘프들의 재앙으로 존재했던 저주스럽고 참혹했던 혹한의 겨울.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애초에 시르카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세상에서 첫 숨을 쉬고, 걸음마를 뗐던 겨울의 아이란 말이다.
수호가 용제의 심장으로 추위를 이겨 냈다면.
시르카는 그 반대.
“고향에 온 기분인걸?”
오히려 이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의미심장하게 이를 드러냅니다.]그렇다.
최초의 아이스 엘프였던 실라드.
그의 후예가 히죽 웃으며 혹한을 향해 주저 없이 달려 나갔다.
사뿐사뿐 눈보라를 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