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84)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5화(286/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85화
슈와아아아악-!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사뿐사뿐 새하얀 눈꽃송이들을 밟고 뛰어 올라가는 시르카의 걸음걸이는 보기에는 마치 산책하듯 가볍고 경쾌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어, 어느새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속도를 따라잡아 버렸다.
[이 무슨……!]혹한의 정령들은 당황했다.
[감히 우리에게 대항하려 하다니!]그들의 분노한 목소리가 눈보라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자신들은 혹한의 정령.
겨울의 집행자였다.
[한낱 엘프 따위가 겨울을 거스르려 하느냐!] [그저 받아들여라!] [복종하고 감내하여라!]겨울은 감히 한낱 피조물 따위가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피조물에게 주어진 운명일지니!]후와아악!
사방에서 몰아치는 눈보라가 시르카를 집어삼켰다.
그 매서운 한파에 하늘을 달리는 시르카의 입에서 결국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겨울을 집행한다!] [겨울을 집행한다!]쐐애애애액-
하지만 그 무엇도 시르카의 걸음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그 강력한 추위 앞에서도 시르카는 조금도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보라가 사나워질수록 시르카의 속도는 더더욱 빨라질 뿐이었다.
‘엘프의 발걸음’의 극한.
그리고.
“정령기갑!”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수록.
새하얀 눈송이들이 시르카의 몸에 점점 엉겨붙었다.
쩌저저저정-!
시르카의 전신에 더덕더덕 거대한 얼음의 갑주가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점점 커지며,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자 얼음나무의 창이 돋아나 거대한 해머로 변했다.
후우우웅- 쿠왕-!
그대로 후려쳤다.
그 한 방에 엄청난 폭발과 함께 눈보라의 방향이 뒤집혔다.
[……!]시야를 다 채울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의 혹한의 정령이 눈에 띄게 휘청거렸다.
‘먹힌다!’
시르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 순간 시르카가 휘두르는 거대한 해머도 무럭무럭 커져 갔고.
또 한 방.
쿠왕!
눈보라가 비명을 지른다.
매서운 혹한이 사정없이 찢기고 나부낀다.
그만큼 시르카의 공격은 무자비했고, 거침없었다.
쿠왕! 쾅! 쾅! 쾅! 쾅!
[그아아아아아아!]분노한 혹한의 정령들의 거대한 손이 시르카를 움켜쥐었다.
퍼엉!
시르카는 그대로 뚫고 나와 놈들의 손을, 팔을, 어깨를, 안면을 강타했다.
그 광경은 실로 경악스러운 모습이었다.
혹한의 겨울.
엘븐우드의 열매에서 태어난 겨울 그 자체.
그 압도적인 존재들을 상대로도 용맹하게 덤벼드는 시르카의 모습은 차가운 얼음 바닥을 뚫고 기어코 싹을 틔운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정령들과 드잡이질하지 말고, 그저 지배하라며 다그칩니다.]실라드의 잔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수호에게도 시르카에게도.
시르카는 그의 조언을 새겨들었다.
“이렇게 말이죠?”
덥석-!
시르카는 까마득히 높은 하늘 끝까지 뛰어올라, 기어코 거대한 얼음의 장갑으로 뒤덮인 손으로 혹한의 정령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그아아아! 감히-!]혹한의 정령이 반항했다.
그러자 일대의 모든 눈보라가 솟구쳐 시르카를 튕겨 냈다.
아니, 밀어냈다.
아니, 조금도 밀어내지 못했다.
여전히 놈의 머리를 움켜쥔 시르카가 그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닥치고 복종해.”
여왕처럼 도도하고 고압적인 눈빛으로.
“넌 이제 내 거야.”
[……그아아아!]그 단호한 눈빛에 놈이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울부짖으며 반항했다.
뭔가 잘못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낱 엘프 따위가!
[피조물 따위가 어떻게……!]“겨울을 거스르지 말라고?”
놈의 반항에 시르카는 코웃음을 쳤다.
이놈들은 처음부터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전대 군주인 실라드가 혹한의 땅에 성역을 만들고, 그 얼어붙은 땅 위에서 엘프들을 살게 했던 이유.
그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태어나게 될 자신의 후손들 중 누구라도.
아이스 엘프들 중 누가 자신의 뒤를 잇게 될지라도.
다시는 아무도 겨울 따위에게 굴복하지 말라고.
“우리의 겨울은 태어날 때부터였어. 그러니 지금 이곳에 내가 아닌 그 어떤 아이스 엘프가 있었더라도…… 너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흡족하게 입매를 올립니다.]“그러니, 당장 꿇어라.”
그의 의지를 이은 시르카가 단호히 말을 이었다.
후와악!
그렇게 한 손으로 놈의 머리통을 움켜쥔 시르카가 해머를 쥔 다른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뒈지게 처맞기 싫으면.”
그리고 가차 없이 내리쳤다.
쾅! 쾅쾅! 쾅쾅쾅!
몇 번이고.
계속해서.
놈의 거대한 몸이 짓뭉개져 결국 바닥에 납작 엎드릴 때까지.
[키에에엑…….]“……많이 아프겠는데.”
그 모습을 저만치 멀리 떨어져 바라보고 있던 수호와 베르는 할 말을 잃었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들은 강하다.
그만큼 독하지 않으면 버텨 낼 수 없는 곳이었기에.
하지만 놈들은 총 다섯.
시르카가 저렇게 직접 패 죽이고 있는 혹한의 정령은 고작 한 놈에 불과했다.
그럼 나머지 넷은?
[그아아아아아!]휘오오오오오-
눈보라가 어지럽게 나부낀다.
그 방향이 두서없는 것을 보니…….
“음. 설마 저거 도망치는 건가?”
[그런 것 같나이다.]나머지 정령들 넷이 시르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친다기엔 그 기세가 너무 압도적이고 살벌하긴 했다.
[겨울을 집행한다!] [겨울을 집행……!] [겨울을……!]뭐, 나름의 명분은 있어 보였다.
고작 이 도시에만 겨울이 찾아올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만 놈들을 저대로 도망치게 뒀다간, 지나간 모든 길에 혹한기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명백했다.
“쟤네 그냥 두면, 지구 전체가 아이스 엘프들의 세계처럼 얼어붙겠지?”
[그렇나이다.]“쟤네를 잡아야 레벨업도 할 거고?”
[그렇나이다.]수호의 물음에 베르가 넙죽넙죽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다 알면서도 그들이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하르마칸.”
[예, 주인님.]슈우욱-
수호의 부름에 기다렸다는 듯이 하르마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밤에 수호는 한국에 다녀오면서, 유진호와 함께 가상현실을 연구하고 있던 하르마칸을 잠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엘븐우드의 낙엽들 때문에 주술진을 짜는 것이 조금 오래 걸리긴 했으나, 조금 전에 막 완성했습니다.]“잘했어.”
투쾅!
[그어어억?!]시르카를 피해 멀어지려던 혹한의 정령들은 갑자기 투명한 역장에 막혀 도시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이 결계는 무엇인가!] [감히 우리를 가두려 하느냐!]휘아악! 콰콰쾅!
혹한의 분노가 투명한 벽을 강타했다.
그 어마어마한 공격에 도시를 둘러싼 역장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휘청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어떻게……!] [마령족의 주술 따위가 어떻게……!]끄덕이 없었다.
‘인스턴스 던전’
마령족의 대주술사이자, 차기 군주감이었던 칸디아루의 유산인 이 광대한 결계는 차원의 틈새를 찢어 낙원 도시를 통째로 이면 세계로 이끌었다.
일단 이곳에 갇혀 버리면, 아무리 혹한의 겨울이라도 차원의 벽을 뚫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칸디아루가 놈들의 비해 격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칸디아루의 축복 ‘무병장수’ 또한 ‘디버프 : 혹한’에게 먹히지 않았듯이.
둘 사이의 격은 비슷했다.
칸디아루는 마령들의 왕, 환계의 군주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었던 환계의 영원한 2인자였다면.
반대로 혹한의 정령들은, 실라드가 군주가 되기 위해 힘으로 굴종시켰던 최강의 정령.
서로 비슷한 급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디아루가 오로지 단 한 명, 그림자 군주만을 위해서 혼신을 다해 설계했던 주술들의 대부분은 보다 격이 높은 군주급에게도 통하는 고도의 술식이었다.
[그아아아아아아!] [당장 우리를 내보내라!] [겨울을 집행할……!]덥석!
“어딜 도망가?”
마구잡이로 투명한 결계를 후려치고 있던 혹한의 정령들 중 한 놈이 결국 등 뒤까지 쫓아온 시르카의 손에 붙잡혔다.
[……?!]그 순간, 놈은 뒤를 돌아보고 기겁했다.
앞서 시르카에게 붙잡혔던 정령이 어떤 꼴이 되고 말았는지를 보았으니까.
순백의 설원!
겨울의 집행관이었던 절대적인 무언가가…….
완벽하게 짓뭉개져 있었다.
시르카의 발아래 납작하게 엎드린 채.
온 세상을 향해 자유로이 나부껴야 하는 혹한의 겨울 입장에선 더없는 굴욕이었다.
쾅! 쾅! 쾅! 쾅!
“너도 복종해. 뒈지기 싫으면.”
물론 두 번째 정령도 다를 건 없었다.
또다시 시작된 폭력과 강압.
그리고 이러는 사이에, 도시의 빌런들만 죽어 나가고 있었다.
“흐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던 그들은 결국 하나둘씩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설원 위에 쓰러져 갔다.
겨울을 피해 도망치다 얼어 죽었던 언젠가의 엘프들처럼.
하지만 굳이 이들의 죽음을 애도할 필요는 없으리라.
[살인을 저질렀던 악령들이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재료지요.]하르마칸은 웃고 있었다.
악령들을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건 언제나 재밌는 일이다.
특히나 오늘 있었던 빌런들의 폭동과 지독한 아비규환을 보면서, 하르마칸은 이번 인스턴스 던전을 만들 때 한 가지 주술식을 첨가했다.
띠링!
[인스턴스 던전 전역에 ‘스킬 : 신기루’가 발동됩니다.]‘신기루’
해운대에서 싸웠던 마령족 자비에르가 사용했던, 대상의 기억 속에서 가장 끔찍하거나 강렬했던 순간을 꺼내서 보여 주는 강력한 환술.
그 환술을 통해 자비에르는 인간들의 저열한 내면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공포를 즐겁게 감상했었다.
그런데 하르마칸은 자비에르 따위보다 훨씬 격이 높은 마령족의 대족장.
당시에 자비에르가 모래 폭풍을 재료로 환술을 썼다면, 하르마칸은 이곳의 눈보라를 재료로 보다 강력한 환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를 왜 죽였어?
-그렇게 살려 달라고 빌었는데…….
“……!”
설원 위에서 비몽사몽 의식을 잃어 가던 빌런들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자신들의 손에 죽임당했던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말라붙은 피범벅이 된 싸늘한 시체의 모습이 되어.
“뭐, 뭐야. 어떻게……?”
“부, 분명 내가 죽였었는데……?”
그 끔찍한 악몽 앞에서 빌런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추위로 얼어붙은 그들의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살려 달라 그렇게 빌었는데에-!
“으아아악!”
“사, 살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불러들인 악몽에 사로잡혀 죽어 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도시에 살던 빌런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그동안 쌓아 올린 악업이 많았기 때문일까.
수호는 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수호의 시선은 상태창에 있지 않았다.
힐끔.
인지 저해를 일으키던 낙엽들이 설원에 덮인 덕분일까?
둔해졌던 감각이 돌아왔더니,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고개를 치켜든 수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눈 덮인 하늘 위를 노려보며 물었다.
“누구냐, 너.”
고오오오오오-
[낙원의 사도가 당신을 주시합니다.]인스턴스 던전 너머, 까마득히 먼 어딘가에서 꺼림칙한 시선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