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89)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90화(291/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90화
짙은 물안개 너머.
본격적으로 ‘침식’이 시작되었다.
[생육하라.]슈와아악-
낙원의 사도는 물안개 속을 한가로이 거닐며, 무분별하게 자신의 씨앗을 뿌려 댔다.
그렇게 뿌려진 씨앗이 땅을 파고들었고.
양평의 청정한 산림이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번성하라.]쯔욱- 쯔우욱-
깨끗했던 흙이 점점 검보랏빛으로 물들더니, 마치 살점처럼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 위로 엘븐우드의 뿌리가 혈관처럼 퍼져 나갔다.
푸슉- 푸슈슉-
지면을 뚫고 솟구치는 뿌리들이 주변의 모든 것을 감싸기 시작했다.
나무줄기가 기괴하게 꿈틀거리며 자라났다.
그것은 더 이상 나무라 부르기도 힘든 형태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성장했다.
[이곳이 나의 새로운 낙원이 될 터이니.]촤아악-
지저분한 균사체가 숲을 덮었다.
그것은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며 주변의 모든 것을 감염시켰다.
나무도, 풀도, 돌도…… 심지어 공기마저도.
모든 것들이 점차 낙원의 사도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이 모든 것들을 나의 위대한 신, 이타림께 바치노라.]……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양평의 청정한 자연이 외우주의 것으로 변해 갔다.
쑤와악-
습한 안개 속에서 엘븐우드의 싹이 여기저기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라나,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
건강하게 자라던 소나무들이 엘븐우드의 뿌리에 감염되어 썩어 들어갔고.
썩어 문드러진 나무들은 엘븐우드의 새로운 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노닐던 작은 동물들이 흉측한 마수처럼 변이되기 시작했다.
키야아아!
[하아아. 좋구나.]낙원의 사도는 이 친숙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며, 자신이 만들어 낸 낙원 끝에서 흉악하게 이를 드러냈다.
이는 그동안 그가 다른 곳에서 화분을 만들어 냈을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이는 지금 낙원의 사도가 얼마나 이를 갈고 있는지, 자신에게 치욕을 준 수호에게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때.
그 기괴하게 변질되어 가는 양평의 끝자락에서.
[……인간들인가.]번뜩.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낙원의 사도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째선지 저곳만 환하게 밝혀 있는 느낌이었다.
“언니! 이것 좀 봐!”
“우와, 예쁜 꽃이다!”
“나도 볼래, 나도!”
꺄르륵, 해맑은 웃음소리.
왁자지껄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소담스럽게 꾸며진 널따란 정원에서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순수한 웃음소리가 아직 침식되지 않은 맑은 하늘에 울렸다.
히죽.
[고아원이군. 마침 잘됐구나.]멀리서 걸어오며 그곳을 발견한 낙원의 사도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처음 지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는 본디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일말의 관심이 없었다.
이 행성에 어떤 생태계가 조성되었는지 알아서 뭐하겠는가.
어차피 전부 다 죽여 버리고, 한 줌의 마나로 녹여 버릴 것들인데.
그저 지금 이렇게 침식하고 오염시켜, 자신이 살았던 익숙한 생태계로 바꿔 버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유리 오를로프의 곁에 머물다 보니, 우연찮게 그의 눈에 띄는 모습들이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족’
자신들의 세계에는 없는데, 인간들에게는 존재하는 개념.
바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낙원의 사도에겐 지극히도 생소한 문화였다.
굳이 따지면 자신을 창조한 이타림이 부모에 가까웠으나, 인간들의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일단 인간들은 자신들을 창조한 부모를 신으로 섬기고 받들지 않는다.
그들의 부모 또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이 명령을 어긴다고 소멸시키지 않는다.
그 점이 꽤 신기했고, 동시에 거북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부모에게 버려진 인간들이었다.
신에게 버려진 피조물이라니?
익숙하지 않은가.
신의 명령대로 전쟁터에 내몰려 싸우다가, 인격과 능력까지 갈기갈기 찢겨져 다른 차원으로 보내진 파편화된 영혼.
그것이 바로 낙원의 사도 본인의 상태였기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러시아에서 유리 오를로프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그 인간의 뻔하고 노골적인 욕망에 자신이 기꺼이 협조한 이유도 사실 그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리 오를로프 또한 고아 출신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그의 결핍된 욕망의 근원이 기꺼웠던 것이다.
그런데 유리 오를로프의 옆에서 인간들의 생태를 더 지켜보았더니,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바로 고아원이다.
대체 어째선지.
인간들은 부모를 잃거나 버려진 피조물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호하고 지켜 주겠다는 명분하에.
정말이지…… 거북하고 쓸데없는 짓거리였다.
“자, 모두 그만 놀고 들어와! 이제 점심시간이야!”
“와아! 오늘은 뭐예요?”
“카레 돈가스!”
“진짜요? 아싸!”
“우와아-!”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이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정말이지…… 거북하지 않은가.
하지만 낙원의 사도는 이제 안다.
저것도 결국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었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여러 고아원들을 구경한 감상을 말하자면, 글쎄.
겉으로는 저렇게 평화로움을 연기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그 아이들을 이용해 어른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집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사는 고아들의 영혼은…….
[……아주 맛 좋은 먹잇감이지.]꿀꺽.
그렇게 양평 아동보호센터로 천천히 다가선 낙원의 사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군침을 삼켰다.
결핍이 큰 영혼들, 억눌린 욕망으로 일그러진 영혼들이야말로 자신의 병사로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재료였다.
스아아아-
그리고 그의 발걸음을 따라, 뒤에서는 숲의 나무들이 썩어 들어가고 대지가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 자욱한 어둠이 저 겉보기에만 행복한 척 연기하는 가엾은 영혼들의 웃음소리를 덮어 버리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언니, 저기 봐! 또 꽃이 폈어!”
건물 앞 정원에서 한 소녀가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며 웃고 있었다.
그 손가락 끝이 낙원의 사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뒤로 돋아나고 있는 외우주의 꽃들.
이 행성에서는 이를 ‘엘븐우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지만, 낙원의 사도가 살았던 우주에서는 이런 개체들을 ‘포식 식물’이라 분류했다.
히죽.
어느덧 낙원의 사도는 한 소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미소에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이걸 먹어 보겠느냐.]“……?”
대답 대신에 낙원의 사도는 탐스러운 붉은 열매 하나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 * *
양평.
초목의 푸르름과 아스라한 물안개가 어우러진 천연의 절경.
그 깎아지른 절벽 위에 두 눈을 감은 채 정좌를 하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초로의 노인.
희끗한 백발이 성성한 사내의 전신에는 주먹만 한 푸른 보석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외신석.
외우주의 마나가 고도로 압축된 그 보석들에서 새어 올라오는 그 이질적인 기운은 이 사내에겐 저주이자 축복이었다.
이를 매개체로 외우주에서부터 흘러드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 대가로 그 어마어마한 힘이 몸을 시시각각 갉아먹고 있었다.
쯔억- 쩌적- 쩍.
어마어마한 차원의 압력.
그 탓에 지금 그의 피부와 근육들은 당장이라도 산산이 찢겨 나갈 것처럼 위태로웠다.
몸에 이식된 수많은 외신석들이, 그의 몸에서 차원의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꿈틀대는 것이다.
하지만…….
‘버틴다.’
버텨 내야 했다.
이 힘은 결국 자신에게 강제로 이식된 힘이었으니, 그 균열이 벌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것 또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으니.
후욱-
말 그대로 찢길 듯이 부풀어 오른 근육.
늙었다기엔 터무니없이 발달된 육체.
무엇보다 인간이라기엔 너무나도 능숙하게 이 이질적인 기운을 다루는 노련함이, 그에겐 존재했다.
그렇다.
능숙했다.
인간답지 않게.
이게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렇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을 몸에 받아들여 본 것이.
아니, 한때는 오히려…….
이보다도 훨씬 터무니없는 힘조차도 이 비루한 육신에 억지로 욱여넣어야 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어 가며.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
성일환은 이를 악물었다.
그릇은 충분하다.
요령도 안다.
그저 지금 하는 일은 과거에 겪었던 고행의 길을 다시 한번 되짚는 것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별수 없으나, 이론적으로는 명백히 가능한 일이었다.
‘반드시 해내고 만다.’
고오오오-
공허 게이트.
정좌하고 있는 그의 바로 뒤에는 차원의 틈새로 이어지는 문이 열려 있었다.
그 너머로 고작 한 걸음만 건너가면, 지금 자신을 찢어발기려는 이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차원의 틈새 안에선 자신은 안전하니까.
하지만 그 한 걸음을 앞두고, 굳이 이 앞에서 이 모든 압력과 고통을 몸 곳곳에 올올이 새겨 넣는 과정은 일종의 훈련이었다.
고통을 감내하고 몸의 내구력을 키우는 것.
근육이 찢어질 때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것.
마나의 그릇이 깨지기 직전까지 영혼을 혹사시키는 것.
그렇게 버티고 버텨낸 끝에, 한 걸음씩 성장하는 것.
요컨대,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쯔어억- 후욱!
쩌저적! 콰직!
그렇게 성일환은 일부러 외우주의 마나를 자신의 몸에 끌어들여,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가족에겐 비밀이다.
자신이 이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히 모두가 뜯어말릴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했다.
전쟁은 끝났으나, 새로운 적들이 찾아왔고.
그 적들은 예전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은 여전히 홀로 그 모든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물론 자신도 안다.
녀석은 이제 다 컸다.
언제 저렇게 커 버렸는지 허탈할 정도로.
더 이상 아비로서 도와주거나 조언해 줄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들도 이제 어엿한 어른으로 장성해 버렸다.
게다가 이미 그 녀석도 언제 그렇게 커서 한 아이의 아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녀석은 자신의 아들이었고.
‘나는 아버지다.’
아무리 훌륭히 장성한 아들이라도, 그 녀석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가만히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아비가 세상천지 어디 있단 말인가.
녀석이 세상을 지키려 투쟁한다면.
‘……나는 아들을 지킨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러니 반드시…… 이 힘을 내 것으로 만든다.’
번쩍!
그때였다.
공허 게이트 앞에서 고요히 명상을 하던 성일환이 갑자기 눈을 떴다.
“……흠?”
뭔가가 달라졌다.
공기의 기질이 바뀌었다.
물안개 너머 어딘가.
차원의 벽이 출렁이는 감각이 살갗을 타고 느껴졌다.
이는 스킬도 무엇도 아닌, 본능적인 감각.
그의 몸에 박혀 있는 외신석이 웅웅거리고 있었다.
울부짖고 있었다.
“뭐지, 이건?”
성일환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며, 무서운 표정으로 물안개 너머를 응시했다.
어딘가 불길하면서도 친숙한 감각이, 저 너머 어딘가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누구냐. 누가 나타난 거냐.”
정체까진 모르겠다.
하지만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있었다.
그 정체가 뭐든 간에, 외신석이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 절대로 인간의 편은 아닐 거라는 건.
“직접 찾아 주마.”
고민은 짧았다.
성일환은 주저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