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90)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91화(292/292)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91화
슈와아아악-!
세찬 맞바람이 몸을 때린다.
낭떠러지로 뛰어내린 성일환의 몸은 그렇게 희뿌연 물안개 속을 뚫고 끝도 없이 낙하했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는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섭기는커녕 고작 이 정도로는 마력을 사용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옛날엔 훨씬 흉한 꼴도 많이 겪어 보지 않았던가.
‘……시작은 낙오였던가.’
지금은 모두에게 잊힌 세상.
그 사라져 버린 역사 너머에서, 그는 대격변 초창기에 각성한 헌터였다.
아니, 사실은 ‘헌터’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정착되기 전의 시기.
헌터들의 등급 체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간혹 그때를 떠올리면,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때 과연 자신은 몇 등급 헌터였을까?
그때는 전 세계의 어떤 각성자도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할 수 없었다.
마력 측정기가 개발되기 전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엔 모두가 그렇게 무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힘이 어떤 수준인지 모르기에.
어떤 미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던전을 공략하겠다며, 정체불명의 게이트로 스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간혹 공략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 걸리면,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당시의 그들에겐 낭만이 있었다.
스스로의 힘을 가늠할 수 없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무모한 용기.
오로지 세계를 지키겠다는 사명 하나를 위해, 자신들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게이트가 닫히고, 나 혼자만 던전에 고립됐었지.’
낙오.
고립.
그렇게 차원의 틈새에 갇힌 채로 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앞에 나타난 지배자들…….
그다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같은 건, 이제 와선 다 지난 일이니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운 좋게 지배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지구로 돌아와 보니…….
자신은 이미 몹쓸 가장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실종으로 인해, 세계를 구하겠다는 무모한 용기로 인해…….
자신의 아내 박경혜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었고.
자신의 아이들, 성진우와 성진아는 아빠를 잃었다.
심지어 그 직후에 자신의 아내는 익면증에 걸려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졸지에 자신의 아이들은 부모를 둘 다 잃은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학 진학까지 포기했을 정도로.
‘……나는 몹쓸 아비였고, 몹쓸 남편이었다.’
그래서 막대한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더더욱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때의 역사는 다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고, 세상 모두에게 잊힌 역사의 편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찌 잊겠는가?
몹쓸 남편이자, 아비였던 자신만큼은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느꼈던 죄책감과 무력함, 무책임했던 가장으로서의 무게감만큼은 여전히 성일환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지킨다. 반드시.”
적어도 이번 세상에서는.
다시는 그때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성일환은 그렇게 다짐하며 무서운 표정으로 안개가 자욱한 숲 위를 내달렸다.
* * *
그 시각, 소녀에게 열매를 건넨 낙원의 사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군침이 감도는 향취.
이 열매는 영혼의 결핍이 클수록 더더욱 그 허기를 자극한다.
영혼이 굶주린 이들에게 더없이 유혹적인 마력을 뿜어내는 것이 포식 식물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그런데도.
“싫은데요?”
[……뭐?]우뚝.
순간, 낙원의 사도는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소녀의 눈망울은 엘븐우드의 열매를 눈앞에 두고도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원장 할머니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 함부로 먹지 말랬어요.”
[……?]너무도 당연한 말.
똑부러진 아이였다.
하지만 낙원의 사도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고장 난 기분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어리고 나약한 인간 따위가?
그것도 심지어 부모를 잃고 결핍된 영혼 따위가 감히 포식 식물의 유혹을 버텨 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손님이시면 저쪽 원장실로 가 보세요! 저는 이제 카레 돈가스 먹으러 가야 해요!”
도도도도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저 없이 짧은 다리를 움직여 식당으로 향하는 소녀의 뒷모습에 낙원의 사도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저 소녀의 뒷덜미를 잡아채, 입을 강제로 벌리고 열매를 먹이면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고아원에 갇혀 사는 피조물 따위가 감히 포식 식물의 유혹을 버텨 낸단 말인가!
[자, 잠깐. 원장이라고? 그게 누구지?]“……네?”
등 뒤로 들려오는 물음에 식당으로 달려가던 소녀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다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열매를 거절할 때만 해도 단호하던 소녀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원장님이 누구냐고요? 우움…….”
하지만 질문 자체가 너무 맥락이 없었기에.
소녀는 갑자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손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배는 고프지만, 아무튼 고아원을 찾아온 손님 아닌가.
“그니까 우리 원장 할머니는요…… 누구냐면……. 으음.”
게다가 아이들은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길 좋아하는 법.
특히나 이곳을 만든 원장 할머니는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할머니였기에, 누가 뭘 물어보더라도 무엇이든 잘 알려 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원장 할머니는…… 아주 옛날에 하나뿐인 아들이 갑자기 실종됐었대요. 뭐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죠. 중학생이면 누구나 한두 번은 가출 정도는 하잖아요?”
[아니,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아니, 근데 들어 보세요?”
[…….]“그때 우리 원장 할머니가 아들 찾겠다고 엄청나게 고생하셨단 말이죠? 그런데 결국 아들이 제 발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거예요! 그것도 2년 만에! 진짜 대박이죠?”
[…….]아무리 낙원의 사도라도 한 번 시작된 수다쟁이 소녀의 말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라리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쉬운데, 문제는 이 소녀의 영혼이었다.
지금 낙원의 사도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손은 소녀의 앞에 열매를 내밀고 있는 상태에서 멈춰 있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 열매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진짜 결핍이 없나?’
기묘하다.
지나치게 밝지 않은가.
한낱 고아원에 갇혀 사는 피조물 주제에.
이런 맑은 영혼을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낙원의 사도는 홀린 듯이 소녀가 떠드는 수다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본인도 배가 고픈지, 얼른 식당에 가기 위해 워낙 말을 따발총처럼 쏟아 내기도 했다.
게다가 가출은 별일 아닌데, 가출했던 아이가 제 발로 집으로 돌아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면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이 소녀의 수다를 멈추기 위해선 차라리 저 목 위에 달린 머리통을 통째로 뜯어내는 쪽이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때! 원장 할머니가 워낙 아들을 찾겠다고 열심히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다녀 보니까, 정작 아들이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우리 같은 애들이 계속 눈에 밟히더래요! 그래서 결국 차린 곳이 바로 여기……! ‘양평 아동보호센터’랍니다! 짜라란!”
후아-
그렇게 아주 훌륭히 소개를 끝마쳤다는 표정으로, 낙원의 사도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는 소녀의 미소가 더없이 개운해 보였다.
“아, 맞다! 그리고 우리 원장님 이름은 ‘박경혜’예요!”
[그딴 인간의 이름 따위…….]덜컥.
순간, 그 말에 낙원의 사도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동시에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잠깐. 지금 박경혜라 했느냐?]“네! 박 자, 경 자, 혜 자를 쓰세요! 아무튼 이제 됐죠? 더 물어보실 거 없으면 저 진짜 밥 먹으러 가요?”
[그럼 이 열매를…….]“아, 됐다니까요!”
도도도도-
자신의 할 말을 마친 뒤, 다시 주저 없이 등을 돌려 식당으로 달려가는 소녀였다.
히죽.
하지만 낙원의 사도는 아까와는 달리 환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공교로울 데가 있나.]참으로 공교롭다.
이제 저 소녀의 영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보다 훨씬 훌륭한 먹잇감을 발견했으니까.
‘양평 아동보호센터’
‘박경혜’
이 둘 모두, 마침 유리 오를로프가 건네준 자료에 나와 있던 이름들 아니던가.
[여기부터 시작하면 되겠군.]그는 소녀에게 먹이려던 열매를 이 고아원의 정원에 심었다.
그리고 막대한 신성력을 이 땅에 쏟아부었다.
쑤아아악!
그러자 빠른 속도로 이 땅이 오염되며, 그 위로 포식 식물의 싹이 돋아나 잎을 피웠다.
깨끗했던 흙이 점점 검보랏빛으로 물들었고.
그 위로 엘븐우드의 뿌리가 혈관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휘청.
[큭. 성수호 이놈이…….!]갑작스러운 현기증에 낙원의 사도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성수호!
대체 그놈이 지금 북한에서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시시각각 북한 땅에 남아 있던 화분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 화분들에게서 흘러 들어오는 힘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낙원의 사도는 살벌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서둘러야겠군.]이렇게 되면 시간 싸움이다.
자신의 본진이 털리는 것이 먼저인지.
그 전에 자신이 이곳에서 놈의 본진을 터는 것이 먼저인지!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자신의 화분은 북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퍼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놈의 일가친척은 전부 이 땅에 다 모여 있지 않던가.
양평 아동보호센터.
그 앞에서 낙원의 사도가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뿜어내며 기함했다.
[자라나라, 엘븐우드여!]쑤와아아악!
그는 이 고아원을 통째로 새로운 엘븐우드를 위한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다.
[성수호! 네놈이 나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면, 나 또한 너의 모든 가족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주마!]푸슉- 푸슈슉-
서두르자.
침식의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고아원을 중심으로, 낙원의 사도가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일대가 급속도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나무줄기가 기괴하게 꿈틀거리며 자라났고, 그 흉측한 줄기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고 서로 얽혀들어, 고아원의 정원을 둥지처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낙원의 사도는 박경혜를 찾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식당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 이 카레, 원장님이 직접 만드신 거예요?”
“진짜 대박! 원장 할머니가 해 준 김치가 난 제일 맛있어!”
[……저기로군.]낙원의 사도의 눈이 번뜩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노부인.
박경혜 원장이었다.
유리 오를로프가 건네준 성수호의 할머니라던 사진 속 얼굴과 똑같이 생긴 늙은이가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모여 있었다.
낙원의 사도가 그곳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쉬이이익-!
그러자 엘븐우드의 뿌리가 식당 바닥을 뚫고 그대로 솟구쳤다.
“으아!”
“이, 이게 뭐야!”
갑작스런 사태에 기겁한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그 한가운데, 박경혜는 흉측하게 생긴 나무뿌리에 칭칭 감겨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원장님!”
“원장님, 위험해요!”
아이들이 박경혜를 구하기 위해 나무뿌리에 매달려 낑낑댔다.
하지만 박경혜는 자신의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애들아, 어서 도망가!”
“안 돼요!”
“원장님을 두고 못 가요!”
아이들이 울먹이며 더더욱 모여들었다.
그러다 자신들 또한 결국 나무뿌리에 붙잡혀 휘감겼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원장 할머니, 박경혜는 아이들에게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매일 아침 따뜻한 밥을 해 주고, 아플 때면 밤새워 곁을 지켜 주고, 슬플 때면 안아 주던 존재.
부모도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박경혜는 전부나 다름없었다.
“아, 신고! 누구 핸드폰 있으면 협회에 신고해!”
당황한 찰나, 개중에 똘똘한 아이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나무뿌리에 붙잡혀 있던 아이 하나가 낑낑대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툭.
물론 그 시도는 무산되었다.
낙원의 사도의 손짓 한 번에, 나무뿌리가 아이의 손을 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으니까.
[방해꾼은 사양이다.]낙원의 사도는 느긋하게 웃으며 오염된 땅을 거닐었다.
[지금부턴 온전히 나의 시간이거든.]그리고 나무뿌리에 칭칭 감겨 있는 박경혜에게 다가가, 새로운 붉은 열매를 박경혜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먹어라.]“누, 누구…….”
자신을 보며 당황하는 박경혜의 대답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니.
[당장 이 열매를 먹지 않으면, 이곳의 아이들을 다 죽이겠다.]“……!”
그 말에 박경혜의 표정이 삽시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그에 낙원의 사도는 더없이 즐거워졌다.
그리고 더 즐거워지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아니지. 죽이지 않고, 사지를 하나씩 잘라 내겠다. 처음에는 손가락, 그다음에는 팔, 그다음에는…….]“머, 먹을게요! 제발 그만!”
그는 결국 박경혜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냈다.
히죽.
[그래, 먹어라. 너는 어차피 마력도 없는 인간이니, 열매 하나로도 충분하겠구나.]그리고 북한의 빌런들이 그러 했듯이.
이 여자 또한 그렇게 자신의 화분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새싹이 되리라.
그렇게 낙원의 사도는 음험하게 웃으며, 박경혜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열매를 가져갔다.
그리고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성수호, 그 가증스러운 놈의 눈앞에 자신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놈의 할머니를 보여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런데 그때였다.
오싹.
막 박경혜에게 열매를 먹이려는 순간,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콰앙-!
그 순간, 벼락처럼 식당의 천장을 뚫고 내려온 한 남자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여, 여보……?”
성일환, 그는 순식간에 나무뿌리를 힘으로 뜯어내고, 박경혜를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