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302)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302화(303/308)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02화
지금은 비록 휴학 중이지만, 이래 봬도 수호는 미대생이었다.
붓과 연필을 들고 캔버스 앞에서 고민하던 시간들.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고, 도자기를 빚고, 작품의 의미를 고찰하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이 때로는 지금의 자신에게 특별한 시선을 선물해 주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호는 문득 수업 때 자신이 앞에 나가 발표했던 일본의 도자기 수리 기법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킨츠기(Kintsugi)’
모든 것은 완벽할 수 없다.
깨지고, 부서지고, 금이 가는 것.
그것이 삶이고 예술이며 인생이다.
-……킨츠기는 ‘금’으로 ‘금’을 잇는다는 뜻으로, 산산조각이 난 도자기 조각을 옻칠로 이어 붙인 뒤,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를 발라 보수하는 일본의 공예 기법입니다.
-그 기법에는 어떤 철학적 함의가 담겨 있나요?
강당에 울리던 교수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수호는 준비한 피피티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킨츠기 기법에는 단순히 물건을 수리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상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상처조차도 아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삶에서 겪는 상처나 결함을 포용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정답입니다. 발표 준비를 잘하셨군요.
교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새것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닌, 깨진 자리를 금으로 메워 오히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 그것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설명했다.
-그릇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또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 때로는 상처를 받고, 금이 가고 깨지고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완벽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호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당연했다.
-……그 불완전함마저 비로소 사랑하는 것. 우리의 영혼 안에 켜켜이 쌓인 상처들 또한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누적된 삶의 흉터들 또한, 우리가 스스로 일궈낸 진정한 투쟁의 역사인 것을…….
‘금으로 금을 잇는다.’
그것은 단순한 수리가 아닌, 상처를 통한 승화였으니…….
번쩍!
그 말처럼, 수호의 앞에 우진철의 전신이 황금빛 결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런 고도의 주술이라니……!]그에 누구보다 경악한 이는 그림자 마령족 하르마칸이었다.
자비에르의 영혼석.
그 안에 담겨 있던 성진우의 주술진이, 그 신비로운 황금빛이 우진철의 몸 곳곳에 쩍쩍 갈라져 있던 균열을 따라서 종횡무진 질주하고 있었다.
슈와아아악-!
그 모습은 마치 갈래갈래 뿌리를 뻗은 나무의 뿌리처럼.
오밀조밀 정교하게 조형된 거미줄처럼.
깨어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장인의 손길처럼.
성진우의 결계가 우진철의 금이 간 그릇을, 그가 지나온 투쟁의 역사를 황금빛 실로 정교하게 꿰매기 시작한 것이다.
[자비에르의 영혼석이 ‘스킬 재구성’을 시작합니다.] [스킬들이 새로운 체계로 재구성됩니다.]그렇게 공예가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나는 도자기처럼, 우진철의 그릇은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그동안 우진철의 안에 터지기 직전까지 과도하게 주입되어 있던 수많은 스킬이 하나둘씩 녹아들어 새로운 형태로 융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진철의 안에서 ‘위기 감지’와 ‘독 내성’이 만나, ‘생존 본능’이라는 더 깊은 통찰력으로 거듭났고.
‘체력 강화’와 ‘마력 집중’은 ‘강체’라는 본질적인 힘으로 승화되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스킬들이,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서서히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래야 했던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로.
[스킬 재구성 완료.] [새로운 스킬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스킬 과부하로 파손된 그릇이 수복됩니다.]“……이게 아버지의 뜻이었나 보군요.”
시간이 멎은 듯한 적막 속에서 수호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대체 그날, 아버지는 어디까지 내다보았던 것일까.
본체도 아닌 분신.
고작 그만큼의 편린으로도.
성수호의 아버지, 성진우는 지구에 남겨진 이들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안배를 해 두고 떠난 것이다.
심지어 단 한 줌의 마력도 쓰지 않고.
고작 마령족의 영혼 하나를 재료로 삼아.
슈와악!
마침내 황금빛 결계가 걷히고, 우진철의 모습이 드러났다.
“괜찮으십니까?”
수호가 물었다.
“…….”
우진철은 천천히 자신의 두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더 이상 금이 가 있지 않은 새하얀 손바닥.
대신 그 피부 깊숙이, 마치 혈관처럼 은은하게 비치는 황금빛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 낸 도자기의 금줄처럼 아름다웠다.
“……몸이 가볍군요.”
우진철이 중얼거렸다.
스킬을 일정 이상 습득했을 때부터 줄곧 따라다니던 지끈거리는 고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그릇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우진철의 말에는 깊은 감회가 서려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스킬들이 서로 충돌하며, 자신의 몸을 찢어발기려 했던 난잡한 흐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불협화음을 내던 악기들이 한 줄기 아름다운 선율로 조화를 이룬 것처럼.
그리고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황금빛 결계가 성진우가 자신을 위해 남긴 배려라는 것을.
성진우는 겉으로는 조금 무심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그와 오랫동안 함께해 온 자신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자상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감히 예상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성진우는 저 머나먼 외우주에서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혹시라도, 만에 하나, 성 헌터님께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시는 일이 생기시게 되면…….
자신이 줄곧 그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도 성 헌터님의 가족분들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협회를 만들고, 협회장이 되고…….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의 근본적인 동기.
-어?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경찰서장이 그렇게 사적인 목적으로 부하들을 굴리면 징계감인데요?
피식.
우진철은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애초에 자신이 협회장이라는 권력을 공고히 다졌던 이유.
최선을 다해 2회 차 인생을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이유.
그 모든 근간에는 지극히 사적인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그 약속대로 성진우의 가족들을 지켜 내는 것.
그 술김에 내뱉었던 약속을 위해, 굳이 자신은 수많은 재벌들 중에서 유진호 대표와 손을 잡았던 것이고.
굳이 양평에 가장 믿을 만한 협회 헌터 김철을 지부장으로 보냈던 것이다.
[방심하지 마라. 고작 임시방편일 뿐이다.]그때, 그의 상념을 깨고 베르의 목소리가 우진철의 귀에 파고들었다.
줄곧 성진우의 곁을 지켜온 베르는 이 주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 결계는 왕께서 오래전에 수많은 마령족들과 함께 연구했던 주술진이다. 그 용도는 깨지기 직전까지 위태로워진 그릇을 강제로 붙잡아 두기 위한 대비책. 원래는 성일환 님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무력함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함에서 시작된 연구였지.]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활용되었다.
바로 차해인.
[그러다 차해인 님께서 소군주님을 임신하셨을 때, 배 안에서 점점 소군주님의 존재감이 무럭무럭 커져 감에 따라 차해인 님의 진통도 점점 심해지셨다. 급기야 그릇이 깨질 위기까지 처하셨지.]“……뭐? 나 말이야?”
그 말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의외의 상황에서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 것이다.
[예. 평범한 인간이 소군주님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차해인 님의 그릇은 하루하루 한계치를 점점 넘어서고 있었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 주술진이 사용되었나이다.]결계의 목적은 한계치에 다다른 그릇의 수복.
[결과는 대성공이었지요.]천만다행이었다.
주술진으로 차해인을 둘러싼 순간, 진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차해인의 그릇 또한 무사히 복구되었으니까.
그렇게 가까스로 성수호가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왕께서 차해인 님의 곁에 딱 붙어서, 저 결계에 지속적으로 마력을 주입시켜 주셨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요. 그만한 보조 없이, 저 결계 자체만으로는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하나이다. 당장이야 위기를 넘겼으나, 여기서 또 무리를 했다간 그릇은 또다시 금이 가기 시작할 겁니다.]임시방편.
말투는 차가웠으나, 베르는 결국 우진철을 걱정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스킬을 늘리지 말거라. 그때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조언 감사합니다, 베르 님.”
[……조언이 아니라 경고다.]“경고도 감사합니다.”
[…….]우진철은 베르의 마음을 알기에 그저 웃었다.
그리고 수호를 비롯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행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성진우가 생일 선물로 사 줬던 검은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모처럼 건강해졌으니, 이제 일 얘기나 해 볼까요?”
* * *
그렇게 수호는 한참을 우진철과 마주 앉아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물자들을 전부 건네주었다.
가뜩이나 물자가 떨어져서 근처에서 자체 수급하고 있던 우진철 일행은 갑자기 눈앞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자가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우진철도 이번만큼은 솔직히 당황할 정도였다.
그 물자들은 한국 정부와 협회에서 보낸 것 외에도, 유진호 대표가 대형 길드들의 창고를 탈탈 털어 뜯어낸 군수 물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무기들 중에서 가장 쓸 만한 것들은 이미 수호의 그림자 병사들의 손에 들려 있었지만, 그보다 못한 퀄리티의 장비들조차도 우진철 일행에게는 소중했다.
헌터들의 무기는 결국 소모품.
아무리 단단한 검과 방패라도, 그것들로 마수의 질긴 가죽과 딱딱한 뼈를 수도 없이 잘라 내고 부러뜨리면 결국 이가 상하고 마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북한 같은 아포칼립스에 쓸 만한 대장장이나 대장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엔 모두가 똑같이 발과 주먹으로 마수들과 우악스럽게 드잡이질을 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진호 대표님께 나중에 크게 보답하겠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
“전달은요. 그냥 직접 말씀하시죠?”
“……예?”
파아앗!
우진철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호의 그림자 위로 생성된 게이트를 보며.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한국을 보며.
“다들 잠시 쉬었다 오시죠.”
“……?!”
수호는 그렇게 놀라는 우진철 일행을 전부 양평 병원으로 보내 요양을 시켰다.
한국의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어마어마한 소란이 일어났겠지만, 다행히도 모두가 다음 날 일찍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서 아무 소란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하룻밤 사이에.
이미 수호는 근처에 있던 모든 엘븐우드를 베어 내 사후의 바다로 보낸 뒤였고.
그 모습을 본 우진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일정을 결정했다.
“푹 쉬고 왔으니, 앞으로 북한에 남은 엘븐우드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성수호 헌터님은 바로 러시아로 넘어가시죠. 어차피 그 땅에 훨씬 더 많은 나무들이 있으니…….”
그리고 수호에게 하슬을 넘겨주며 말했다.
“하슬이를 데리고 가시지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 이 외신석으로 만든 낫은…… 러시아에서 넘어온 박사가 넘겨준 물건인데, 그를 만나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박사요? 과학자?”
의아한 말에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우진철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가 누군지는 저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긴 했으나,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상황도 아니었지요. 당시엔 외신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니까요. 다만 성수호 헌터님이 그를 만난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일단 가 봐야겠네요.”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수호가 러시아의 국경을 넘는 순간.
사라락…….
갑자기 하늘에서 세차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이 아니었다.
일종의…… 세포였다.
[소군주님, 경계하십시오!]베르의 경고와 함께, 작은 세포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수호와 하슬의 앞에서 한 여인의 형체를 이루었다.
새하얀 피부.
분홍빛 머리칼.
그 아름다움은 너무도 완벽해서 오히려 기괴할 정도였다.
여인은 하슬이 들고 있는 추수의 낫을 힐끔 바라보더니, 수호를 향해 차갑지만 공손한 어조로 인사했다.
“박사님의 47번째 인형입니다. 성수호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 만남을 기다려 왔다는 듯한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