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306)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06화(307/308)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06화
설원 위에는 지평선 너머까지 까마득하게 눈이 쌓여 있었으나, 헌터들이 이만큼이나 모여 있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눈이야 녹이면 그만이고.
화염 스킬 정도는 최종인까지 갈 것도 없이 우진철을 따르는 헌터들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최종인이 나서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
최종인의 화력이면 눈만 녹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파묻혀 있을 유의미한 흔적들마저 깡그리 불살라 버릴지도 모르니까.
화륵! 화르륵!
그렇게 우진철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협회 헌터들이 눈을 녹이며 설원 아래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고.
화염 스킬이 없는 나머지 헌터들은 적당한 곳에 주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여기 머물러야 할지 모르니, 간편한 천막보다는 조금 본격적인 거점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얼음 기둥을 지키기 위한 방진을 짜는 것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
철저히 보호받고 있는 얼음 기둥을 문득 바라보던 우진철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르카.
성수호의 동료라던 아이스 엘프가 갇혀 있다는 저 얼음 기둥은, 성수호의 말대로라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알 같은 상태라 했다.
그리고 그 알이 깨지는 때가, 시르카가 혹한의 군주의 힘을 계승하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설마하니 내가 혹한의 군주의 후예를 지켜 줘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혹한의 군주.
한때 고건희 회장님을 살해했던 작자의 후손을 직접 이 손으로 지켜 줘야 하는 상황이라니.
아무리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새삼 헛헛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을 추스르는 우진철이었다.
‘아니, 세월이 반대로 돌아간 것이 먼저인가.’
애초에 세계가 통째로 리셋된 이후, 고건희 회장님은 오랫동안 무병장수를 누리다 돌아가셨다.
수많은 사람의 존경과 추모를 받으며.
지금의 세상에서는 없던 일이 되어 버린 일을 가지고 어린 후손에게 혈채를 받아 낸다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 큰 적을 상대하기 위한, 일시적인 동맹. 일단은 그 정도.’
시르카에 대한 우진철의 입장은 딱 그 정도였다.
게다가 전력도 전력이었다.
그는 군주라는 존재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전부 이해하고 있지 못했지만, 최소한 인간들의 범주를 넘어선 이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시르카가 무사히 군주과 되었을 때, 성진우와 성수호에게 누구보다 도움이 될 존재라는 것을.
……동시에 인간들의 힘이 이 전쟁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득 그 생각을 하자, 우진철의 입가에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어차피 이 전쟁에서 인류의 역할은 없다. 그저 우리는 성수호 헌터님의 발목을 붙잡는 인질일 뿐.’
지독히도 냉정한 평가.
하지만 어쩌겠나. 명백한 사실이고, 이미 한 번 실제로 경험까지 해 본 걸.
우진철은 종말의 때에, 인류가 얼마나 무력한 종족인지를 처절하고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쓸데없는 잡음으로 인간들끼리 우왕좌왕만 안 해도 중간은 간다.’
그래, 전쟁으로 치면 민방위쯤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해 보며, 우진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그분의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역할은 아들이 맡게 된 것 같으니.’
성수호.
성진우의 하나뿐인 아들.
그의 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부터.
우진철은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후련했다.
여태껏 양쪽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특히나 그가 직접 열어 준 게이트를 타고 아진 병원의 푹신한 침대 위에서 링거를 맞으며 잠들었던 그날 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푹 잠들 수 있었다.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달고 살던 불면증 따위.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던 다크서클 따위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흐.
그렇기에 이렇게 얼빠진 웃음마저 입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가는 말투로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됐으니, 어울리지도 않는 협회장 직함은 떼도 되겠군요.”
……?!
“……옛?!”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
그의 갑작스러운 충격 발언에 근처에서 제설 작업을 하고 있던 모든 헌터가 기겁하며 귀를 의심했다.
아니,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천하의 우진철이 협회장을 그만두겠다니?
갑자기 왜?
한국에서 우진철 협회장의 막대한 존재감과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감히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진철은 진심이었다.
“전쟁 준비. 딱 거기까지가 제가 맡은 역할이자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하는 헌터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눈부신 설원이 비치는 검은 선글라스를 반짝이며.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저에겐 감시과 과장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단 말이지요.”
……?
그의 말에 헌터들은 혼란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감시과라니?’
‘대체 협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감시과라면…….’
감시과는 헌터들이 일으키는 범죄를 억제하고,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부서를 말했다.
즉, 던전 공략보다 대인전.
마수를 상대할 때보다 같은 인간들을 상대하는 데 최적화된 스킬들로 무장된 집단이 바로 감시과였다.
그리고 한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라진 역사 속에서.
‘우진철 과장’은 그 감시과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인 전투력을 보유했던 최정예 요원이었으니…….
“요컨대, 이런 말입니다.”
뚜둑, 뚝.
우진철은 한결 가벼워진 어깨를 풀며 슬며시 무기를 꼬나들었다.
“이제 거추장스러운 감투 따위 벗어 버리고, 한 명의 헌터로 돌아가도 되겠다는 것.”
……!
그 순간이었다.
저 아래, 눈에 파묻힌 ‘은행’의 흔적을 발굴하고 있던 헌터들의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온 것은.
“찾았습니다!”
“수상한 석판을 발견했습니다!”
“마력이 느껴집…… 아니, 점점 커집니다!”
후와아악-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대에 있던 모든 헌터들에게도 그 마력의 파장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누구보다 가장 먼저 그 위험한 감각을 포착했던 우진철은 그곳을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옵니다. 모두 전투 준비.”
번쩍!
수상한 석판.
눈이 점점 녹으면서, 그 아래 얼어붙어 있던 석판이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그 위로 생성된 정체불명의 게이트에서 ‘인간’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뭐야, 여긴 또 왜 이 꼴이야?”
“류즈캉을 피해 간신히 도망쳤더니…….”
중국어.
척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중국인들이 눈 덮인 설원을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대체 어떤 수라장을 거쳐 온 건지,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나타난 중국인들은 척 봐도 빌런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한국의 협회 헌터들을 발견하곤 히죽 이를 드러냈다.
“허? 이 새끼들은 또 뭔데?”
“우리랑 해보자고?”
분명 지금의 상황은 중국 빌런들도 예상치 못했을 상황.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위축되는 모습 없이 도리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게이트를 통해 걸어 나오고 있는 중국인들의 숫자는 족히 수백.
반면에 한국 쪽은 고작 수십에 불과했다.
명백한 수적 우열.
심지어 지금 한국 쪽은 S급 최종인마저 부재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중국 빌런들 중에는 A급도 몇 명이나 섞여 있었다.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 우진철은 유창한 중국어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 국경을 넘었군요.”
“뭐, 이 새끼야?”
“어쩌라고.”
눈을 부라리는 그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가치는 없었다.
우진철은 이미 확인했으니까.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묘한 무기들을.
그 디자인이 흡사 추수의 낫을 연상시키는…….
“외신기. 일단은 그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뭐?”
우진철은 ‘박사’가 만든 무기들을 외신기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하슬이 사용해 본 경험에 따라, 저 외신기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어떠하랴.
“외신기를 들고 있는 타국의 빌런들이 국경을 넘어왔으니, 강제 집행하겠습니다.”
후와아악!
어마어마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진철은 앞장서서 놈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혀, 협회장님!”
그 민첩한 속도에 곁에 대기하고 있던 협회 헌터들마저 당황할 정도였다.
동시에 중국 빌런들은 그를 비웃으며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를 발산했다.
“멍청한 새끼가!”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오는구나!”
그렇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을 터다.
그들의 눈에는.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진철은 전직 감시과 과장.
대인전에 가장 특화된 정예 요원이었으니, 그의 주력 스킬 또한 그러했다.
인간들 간의 일은 인간들끼리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이 시대에서는 특히나.
“광역 디버프.”
……!
순간, 소리 없는 파장이 우진철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가 풀어내기 시작한 온갖 스킬들이 하나하나 이 일대를 집어삼킨 것은.
“공격력 약화.”
“속도 둔화.”
“감각 둔화.”
“방어력 무시.”
“시야 차단.”
……?!
순간, 중국 빌런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고, 힘이 빠져나가고, 시야가 어두워진 것이다.
“미, 미친!”
“이런 잡스러운 스킬 따위!”
당황하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로 마력을 일으켜 그가 펼쳐 낸 디버프 스킬들을 튕겨 내려 시도하는 모습에서 빌런들 또한 얼마나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대격변 이후 2년.
그들이 살아온 아수라장은 고작 2년에 불과했으니.
슈칵!
“……?!”
우진철의 검에 목 하나가 날아갔다.
비명도 못 지르고.
슈칵! 번쩍! 촤촤악!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다음, 다다음 목이 날아갔다.
“……마, 막아!”
“끄흑?!”
그렇다.
마수가 아닌 인간.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라면, 우진철은 무적이었다.
스윽,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우진철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뭣들 하십니까. 전부 죽이고 외신기를 회수합시다.”
“……네, 넵!”
한 템포 늦은 우렁찬 대답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들은 깨닫고 말했다.
조금 전 우진철이 말했던…… 협회장이 아닌, 한 명의 헌터로 돌아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지난 2년간, 우진철 협회장이 쌓아 올린 어마어마한 업적들.
뛰어난 정치력과 행정 능력들.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이 대한민국 헌터계의 역사였으며, 그는 누구보다 협회장에 잘 어울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헌터였다.
그것도 누구보다 헌터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숙련된 전사.
적 앞에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진정한 전사였으니.
히죽.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명의 목을 베어 낸 우진철은 웃고 있었다.
더없이 홀가분하게.
“이젠 죽어도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몸 사리는 건 이제 지긋지긋했다.
파아아앗-!
우진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게이트 너머로 기어 나오고 있는 수많은 빌런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저 많은 놈들이 하필 지금 이 순간에, 굳이 이 처참하게 멸망해 버린 폐허로 몰려드는 이유를 금방 눈치챘다.
바로 시르카.
저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엘프 공주님밖에는, 저들이 이곳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필 이럴 때 다른 곳으로 출장 보낸 최종인이 아쉽긴 했으나, 대안이라면 이미 있었다.
“나오시죠, 황동수 씨.”
[그리드라 불러라. 주군께서 하사하신 이름이니.]고오오-
우진철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그림자 병사 그리드가 거구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침략자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더없이 험악한, 지극히 빌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환영한다. 사이비 종교에 오염된 범죄자들아.]투쾅!
외신교의 전직 대사제, 그리드가 전력을 담아 놈들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