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310)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10화(311/331)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10화
‘이딴 게 외신교의 시초였다니.’
막상 이렇게 진화의 사도의 본체를 발견하긴 했으나, 수호는 조금 허탈한 기분이었다.
어항 속에 갇혀 있는 분홍색 뇌.
고작 이깟 놈 때문에 외신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전 세계로 별가루나 별조각 같은 것들이 퍼져 나간 것이다.
고작 이깟 놈 때문에.
수호가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뇌만 남았지?”
[그 노쇠한 몸뚱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건 마나 손실이 크더군요. 그래서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한 겁니다.]“그게 진화라고?”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언.
진화의 사도는 노인의 몸에서 깨어난 후.
이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해 많은 책을 탐독했다.
그러는 사이에, 강제로 신앙심을 주입당한 이들이 그를 중심으로 ‘외신교’라는 이름의 종교 단체를 만들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음지에서 그 세를 알음알음 늘려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요한 태풍의 중심에서, 진화의 사도는 그저 휠체어에 앉아서 인간들이 기록해 둔 책을 읽었다.
-책이라……. 이 행성에선 정말 원시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군.
진화의 사도는 마음만 먹으면 1초 만에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독서’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기억만 전달하면 될 것을,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해석을 담아서 남들에게 전파하다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사락사락……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진화의 사도는 계속해서 독서에 빠져들었다.
이 ‘독서’라는 지식 전달법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더욱 그에게 지식의 목마름만 더해 줄 뿐이었다.
책마다 정보가 다르니, 대체 뭐가 맞는 정보인지 도저히 기준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이곳의 피조물들은 하나의 주제를 두고도, 책과 논문을 통해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굉장히 느린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또한 일종의 ‘진화’인 것 같다고, 진화의 사도가 결론을 내렸을 때.
그는 결국 깨달았다.
[인간의 육신을 지배하는 건 결국 ‘뇌’더군요. 그래서 저는 필요한 것 하나만 남기고, 쓸모없는 부위는 전부 퇴화시켰습니다.]척.
분홍색 뇌가 꾸물거리며 마치 코를 치켜세우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입니다. 얼마나 효율적입니까? 저는 이 안에서 지시만 내리고, 제 지시에 따라 수족처럼 대신 움직여 줄 인형들을 점점 늘려 나가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정한 진화의 방향성입니다.]그렇다.
외신교.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수많은 인간이 외신교라는 이름 아래 세계 각지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다.
각자의 신앙심에 따라.
외신교 본단에서 내려오는 지령을 따라.
강해지고자 하는 저마다의 욕망에 이끌려.
별가루, 별조각, 외신석…….
그에 따라 증폭되는 마력과 그로 인해 따라오는 부와 명예.
그 수많은 미끼로 외신교는 세를 점점 불려 온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우진철 협회장 덕분에 빌런들의 기세가 억눌려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사정이 달랐다.
땅덩이가 넓은 국가일수록 범죄자들을 통제하기가 어렵고.
빌런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특히 빌런들이 활동하는 음지의 세상은 철저히 강자존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으니.
외신교가 퍼뜨리는 별가루가 가장 절실한 이들이 바로 빌런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외신교’입니다.]외신교.
처음에는 분명 그런 이름으로 모였던 단체였으나, 북한이나 중국처럼 아포칼립스화가 진행된 지역에서는 오히려 종교의 색채를 벗어던지고, 훨씬 더 노골적으로 빌런들로만 이루어진 도시 국가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수호가 북한에서 무너뜨렸던 ‘낙원’ 같은 도시처럼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우뚝.
[…….]갑자기 수호와 대화를 나누던 진화의 사도가 말을 멈췄다.
[아아, 마침내……!]그러더니 시험관 속 분홍색 뇌가 덜덜 떨리며 묘한 만족감을 내비쳤다.
수호의 눈이 좁아졌다.
“뭐가 마침내지?”
여차하면 시험관을 깨부술 것처럼 주먹을 치켜드는 수호 앞에서도 진화의 사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딘가 설렘마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입니다.]쿠구궁……!
진화의 사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공간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엄청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변을 느낀 수호는 즉시 검을 꺼내 휘둘렀다.
쩌정-
시험관이 반으로 갈라지며, 투명한 액체가 밖으로 촤악 쏟아졌다.
동시에 수호가 반대쪽 손을 뻗자, 그 안에 있던 분홍색 뇌가 허공에 떠올라 수호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진화의 사도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아아, 이건 지배자의 권능이군요. 당신은 정말 신기한 분이십니다. 제가 여유만 된다면, 당신을 직접 잡아서 연구해 보고 싶었으나……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지?”
당장이라도 수호가 손을 움켜쥐면, 자신의 뇌가 터져 버릴 수도 있었음에도 그는 느긋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만든 최후의 실험체가 막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수호는 감각을 극도로 확대해 주변을 탐색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공간, 이 차원 자체가 무너지고 있을 뿐이었다.
[슬슬 밖으로 나가십시오. 이곳은 곧 무너질 겁니다. 저를 죽이셔도 좋고, 버리고 가셔도 좋습니다. 제 역할은 끝났으니까요.]꽈르릉!
그 말과 함께 수호를 둘러싼 던전이 산산조각 난 유리창처럼 처참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던 진화의 사도의 실험실과 함께.
[소군주님! 이쪽입니다!]수호는 베르가 다급히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가, 들어온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여전히 손에는 분홍색 뇌를 든 채로.
[저를 잡아가셔도 곧 죽을 겁니다. 방금 깨뜨리신 실험관이 이 뇌의 생명을 억지로 유지해 주고 있었거든요.]손에 들린 진화의 사도가 보이는 태연한 반응에 수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개운해 보인다? 지금까지 불사를 연구해 왔던 녀석이.”
[그야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까요.]“대체 뭘 한 거지?”
[흐흐. 언젠가 아실 겁니다. 아, 참고로 제가 이대로 죽더라도, 절대 그림자 병사로는 만들 수 없으실 겁니다. 이 뇌 안에 담겨 있는 제 파편은 그림자 병사가 될 만큼 멀쩡한 상태가 아니니까요.]수호도 그건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 본 이타림의 사도들은 그림자 병사로 만들 수 없었다.
그건 성진우가 군주들과의 전쟁 후에, 죽은 군주들을 병사로 만들지 못했던 이유와도 비슷했다.
이타림의 사도 또한 죽은 군주들과 비슷한 격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진화의 사도는 이미 수도 없이 보았다.
그 소름 끼치는 모습을.
외우주의 먼발치에서 목격한 성진우가 이타림의 병사들을 죽이고, 순식간에 자신의 그림자 군단으로 일으켜 세우는 광경을.
그 터무니없이 위대하고 압도적인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면, 아무리 적이더라도 그저 전율이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진화의 사도가 성진우의 위대한 권능을 흉내 내고 싶어진 순간은.
‘죽음을 다스리는 왕, 그림자 군주’
바로 그야말로 진화의 사도가 생각하는 진화의 정점이었으니……!
그래서 그는 이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필사적으로 그에 대해 연구했다.
그와 최대한 비슷한 권능을 얻기 위해 흉내를 내본 결과가 바로 47호 같은 불사의 존재.
영혼이 없는 생체 병기였다.
하지만 겉보기엔 비슷해도, 자신의 인형들을 그림자 군단과 비교하는 건 대단한 실례였다.
애초에 내재된 힘의 크기도 다를뿐더러, 그림자 권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적들의 영혼을 빼앗아 아군으로 만든다는 부분 아니던가.
반면에 자신의 실험체들은 어떠한가?
적군이 아군이 되기는커녕, 그냥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아무리 공장처럼 찍어 내고 싶어도, 들어가는 재료도 만만치 않으며 굉장히 섬세한 제작 과정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지독하게 비효율적.
대실패였다.
하지만 진화의 사도는 인간들의 격언 중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 실패를 몇 번이고 경험한 덕분에, 그는 결국엔 단 한 번의 성공을 이루어 내고 말았으니…….
그 결과물은 그가 원했던 처음의 목표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흡족한 결과였다.
[시르카.]……!
진화의 사도에게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잠깐, 너 설마?”
[처음에 알고 나서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죽은 군주의 힘을 계승하는 후계자가 있었을 줄이야. 평범한 피조물을 우리와 같은 사도급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이 행성에 존재했을 줄이야!]* * *
그 시각.
시르카가 얼음 기둥이 되어 잠들어 있는 곳.
우진철과 그리드가 중국에서 넘어온 빌런들을 학살하고 있는 얼음 기둥 앞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쏴아아악-!
“무, 무슨?!”
갑작스러운 사태에 우진철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새하얀 설원 위를 적시고 있던 붉은 핏물!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 죽어 간 수많은 빌런의 시체에서 새빨간 핏물이 모조리 빠져나와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촤아아악!
[주의해라! 외신의 신성력이다!]그리드의 강력한 경고와 함께, 모두가 긴장한 눈빛으로 저 높은 하늘 위에서 하나로 뭉쳐진 새빨간 핏덩이를 올려다봤다.
그것은 단순한 핏물이 아니었다.
전직 외신교의 대사제였던 그리드와 사제였던 아이언은, 저 기괴하게 뭉글거리는 핏덩이 안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신성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지금 저것이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난 건지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만 것이다.
[마, 막아라!] [저놈이 시르카에게 접근 못하게 해!]이미 늦었다.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후와아아악-
허공에 생성된 빨간 핏덩이가 빠른 속도로 시르카가 잠들어 있는 얼음 기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몸으로 막아-!]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리드와 아이언이 하늘로 뛰어올랐다.
* * *
“시간을 끈 건가?”
수호가 분홍색 뇌를 노려보며 물었다.
“나를 여기에 붙들어 두는 동안 시르카를 가로채려고?”
[아닙니다. 제가 분명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성수호 헌터님이 제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린 겁니다. 처음에 제가 계획한 일정대로만 움직여 주셨다면, 애초에 저는 여기서 당신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당신의 손에 죽을 리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험이 성공했으니, 이 정도의 오차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중간중간 수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기는 했으나, 진화의 사도는 처음 만났을 때와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계획을 수호에게 말해 준 이유 또한, 시간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인간들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원래 저처럼 뒤에서 열심히 노력한 이들이 꼭 성공을 하면 자신의 성과를 남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 안달이 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가 그동안 해 온 모든 고생을 당신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들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자, 이제 얼른 저를 죽이시고, 시르카를 구하러 가 보시지요. 이미 늦었겠지만.]“끝까지 거짓말을 하네. 인간에 대해 잘 배운 건지, 잘 못 배운 건지.”
마지막 유언을 늘어놓는 진화의 사도를 보며, 수호는 피식 웃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게 아니잖아. 너, 여기서 죽으면 그 실험체 안으로 네가 직접 들어갈 생각 아냐?”
[……허. 끝까지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당신이라는 인간은.]수호의 날카로운 지적에 진화의 사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노회한 늙은이의 너털웃음 같기도, 철부지 어린아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하하핫! 정답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당신이 저를 직접 안 죽이셔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뇌는 막 생명력을 잃었으니까요. 지금 이 목소리는 제 마지막 남은 마력의 잔재로…….]“그래, 바쁘니까. 거기서 다시 보자?”
수호는 이를 드러내며 색을 잃어 가는 뇌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림자 교환.”
[‘스킬 : 그림자 교환’을 사용합니다.]그 순간, 수호의 전신이 그림자에 휩싸이며 시야가 뒤집혔고.
슈와아악-
아이언과 위치를 교환한 수호의 눈앞에 시르카를 노리고 날아오는 붉은 핏덩이가 보였다.
“야, 반갑다?”
수호의 인사에, 때마침 핏덩이 안으로 들어온 진화의 사도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존재는 그가 죽기 전까지 스스로 이뤄 낸 수많은 연구의 집약체이자.
지금은 죽고 없는 낙원의 사도가 남긴 마지막 양분마저 빌런들의 죽음을 제물로 고스란히 융합시킨 최후의 진화체였으니…….
[악몽의 사도가 당신을 적대합니다.]진화의 사도는 그렇게 새로운 이름으로 수호의 앞에 나타났다.
“악몽의 사도라고?”
후와악-
소름 끼칠 정도로 막대한 살기가 해일처럼 수호를 덮쳤다.
고오오오오오-!
[제가 막겠습니다!]그리드는 러시아로 넘어갔던 수호가 되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주저 없이 수호의 앞으로 튀어 나가 저 붉은 해일 앞을 막아섰다.
처음엔 붉은 핏덩이에 불과했던 저것은, 갑자기 그 안에 진화의 사도가 깃든 직후 어마어마하게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백의 설원이었던 이 땅을, 이 추위마저 온통 새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기괴한 기운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어떤 놈인지 모르니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그렇게 수호를 지키기 위해 나선 그리드의 전신에서 검은 증기가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 붉은 해일이 안개처럼 그리드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밖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악몽의 사도가 당신을 비웃습니다.]“웃어?”
수호의 눈썹이 씰룩였다.
“베르.”
[예, 소군주님.]수호가 물었다.
여전히 손에 들고 있는 ‘진화의 사도’였던 것을 들어 보이며.
“너 이거 먹으면 어떻게 되냐?”
그 말에 베르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일단 먹어 보고 알려 드리겠나이다.]스킬, 포식.
베르는 주저 없이 ‘뇌’를 집어삼켰다.
캬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