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315)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15화(316/331)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315화
후와아아아악-
사후의 바다에 때아닌 겨울이 찾아왔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혹한의 눈보라에 의해 세계수의 나무 껍질 위로 새하얀 성에가 끼기 시작했고.
쩌저정!
그렇게 거대한 나무 기둥을 따라, 혹한의 추위가 세계수의 뿌리 끝까지 뻗어 나갔다.
그와 함께 아득한 무저갱의 검은 해수면 위로 새하얀 살얼음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쩌저저저저적!
그 모습은 흡사 거미줄처럼, 아니 수많은 눈꽃의 결정체처럼 무한히 뻗어 나갔다.
시시각각 얼음의 무늬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갔고.
급기야 거대한 결정이 수면 위에서 자라나 얼음꽃을 피워 냈다.
하얀 서리가 그려 내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빛나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춤을 추었다.
마치 만화경(萬華鏡)처럼.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번져 가는 하얀 세상.
끝없이 뻗어 나가는 얼음의 정원.
죽음의 바다에 바야흐로 진정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설인들의 왕, 악몽의 군주 시르카의 가호 아래.
‘어디 너도 견뎌 봐.’
시르카가 세계수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겪은 겨울을.’
그러자 그 모습에서 언뜻 실라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실제로 시르카의 눈을 통해 혹한의 군주 실라드는 아주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 도망치던 동족들.
폭주하는 엘븐우드에게 잡아 먹혀 죽어 간 시체들.
그 후, 스스로도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어 버린 엘븐우드의 모습을…….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버틸까, 이놈은?
과연 세계수는 이 혹독한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 진짜 세계수가 엘븐우드들처럼 얼어 버리면 사후의 바다는 어떻게 될까?
그다음엔?
하지만 이미 실라드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봄이 오겠지.]문득 중얼거리는 실라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애초에 세계수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그 이유가 뿌리를 갉아 먹는 니드호그 때문인지.
아니면 세계수를 이곳에 심었던 절대자가 죽었기 때문인지.
거기까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그걸 알기에.
이 매서운 혹한의 바람은 더 이상 악몽이 아니었다.
이 혹한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이곳 또한…….
그어어어억!
[키엑?]이 틈에 갑자기 니드호그가 격렬히 몸부림치며 베르의 손아귀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추위를 피해 세계수의 기둥을 타고 기어 올라 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놈의 뒷모습을 보며 베르는 쩝,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놈을 뒤쫓아 다시 붙잡기에는, 악몽의 힘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베르의 몸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악몽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악몽의 성역이 무너져 내립니다.] [‘디버프 : 악몽’이 흩어집니다.]쩌적!
파사삭!
급기야 주변을 장악하고 있던 악몽의 영역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악몽의 사도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 완벽한 계획이라고 자신했으나, 상상도 못한 강력한 변수 하나에 간단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정보가 부족했을 뿐입니다.]빠득!
그가 이를 갈며 수호를 표독하게 노려보았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당신에 대해 조금만 더 연구했더라면……!]그 눈빛을 받으며 수호는 공격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였다.
더 이상 그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주변의 악몽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시르카를 모방해 다크엘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악몽의 사도의 형상 또한 시시각각 흩어지고 있었으니까.
수호는 분통해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진화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때로는 실패 또한 성장을 위한 발판인 법이지.’
멈칫.
그 말에 무심결에 반박하려던 악몽의 사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 또한 진화의 과정이라는 말입니까…….]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분노도, 저항도 없었다.
어느덧 차분해진 그의 눈빛이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사방에서 조여 오는 시르카의 혹한이 자신의 악몽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하여 죽어 가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난 연구들을 습관적으로 돌이켜 보고 있었다.
진화.
자신이 그토록 연구하던 진화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진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뭐, 때로는 개체의 진화보다 세계의 진화가 우선시 되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특히나 여기처럼 신을 잃고 죽어 가던 세계가 계속 생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피식.
‘혼자만 중얼거리지 말고 이해하기 쉽게 말해 주면 어때?’
[대충 제가 졌다고 말하는 겁니다.]어느덧 악몽의 사도의 얼굴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 표정은 어딘가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론 후련한 표정이었다.
[참나. 어쩌다 이런 일이. 나 스스로가 진화를 위한…… 거름으로 전락하는 날이 올 줄이야.]후우욱-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몸은 완벽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띠링.
[악몽의 사도를 처치했습니다.]그러자 기다린 듯이 수호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 [키에엑!]덥석!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베르의 손이 악몽의 사도의 흩어지는 잔해를 허공에서 움켜쥐었다.
그러곤 입맛을 다시며 킬킬 웃었다.
[놓치긴 아까운 힘이나이다.]베르는 이미 악몽의 사도, 아니 진화의 사도의 뇌를 먹고 그의 기억 일부를 포식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악몽의 힘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실체도 없는 허황된 스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니드호그를 상대로도 충분히 통하는 힘이긴 했으나, 결국엔 시간을 끄는 용도로만 쓸 수 있었던 근본 없는 힘이 아니던가.
그러나 다른 게 있었다.
여전히 악몽의 사도가 연구했던 모든 기록은 고스란히 베르의 안에 남아 있었으니.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연구들을 사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이다.
콰직!
갑자기 베르의 손에서 악몽의 사도의 마지막 잔재가 하나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의 깨달음, 연구, 실험의 흔적들이 하나로 뭉쳐져 갔다.
콰득! 콰직! 콰직!
점점 더 작고 단단하게.
베르는 자신의 포식 능력으로 그 모든 기운을 더더욱 고도로 압축시켰다.
이 악몽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남은 그의 잔재를 긁어모아.
슈우욱-
마침내 베르의 손바닥 위에 작은 결정체가 만들어졌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그것은 외신석보다 더욱 순수하고 농축된 형태의 물질이었다.
[소군주님.]베르가 수호에게 그것을 정중히 바쳤다.
[악몽의 사도의 모든 연구와 깨달음이 응축된 결정체를 바치나이다.]띠링.
[‘아이템 : 진화의 씨앗’을 획득했습니다.]‘씨앗?’
수호는 베르가 악몽의 사도에게서 추출한 특별한 씨앗을 건네받았다.
뜻밖의 보상이었다.
하지만 이게 무엇인지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때마침 계승식이 끝났으니까.
후왁!
그렇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며.
수호와 베르는 ‘시르카의 꿈’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마지막 순간, 수호는 혹한으로 덮여가는 세계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히죽.
그리고 웃었다.
‘저건 이용할 수 있겠는데?’
번쩍!
다시 눈을 떴을 때, 수호와 베르는 어느덧 눈 덮인 설원 위에 서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 땅 위에서 벌어지던 모든 전투는 종결되었다.
외신에게 홀려 있던 빌런들도.
그들의 피에서 뻗어 나온 악몽의 힘도.
하물며 설원 위에서 휘돌고 있던 혹한의 추위조차도.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그에 맞서던 헌터 협회의 헌터들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 뭐지?”
“갑자기 뭐야?”
“다 끝난 건가? 왜 갑자기?”
“다들 방심하지 마라……!”
하지만 주위를 경계해 봤자 뭐가 더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 한가운데서 오직 우진철 한 명만이 본능적으로 수호의 모습을 찾아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 수호와 베르는 어느덧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시르카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파사삭.
단단하던 얼음 기둥이 무너지며, 그 안에서 시르카가 당당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외향은 여전히 작고 연약한 아이스 엘프.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막대한 어둠은…….
‘맙소사…….’
우진철을 경악시키기 충분했다.
그건 일종의 생존 본능과도 같았다.
오래전에 군주들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던 우진철이기에, 본능적으로 저 작은 소녀가 군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태초의 어둠을 품고 돌아온 시르카는 방긋 웃으며 수호를 마주 보았다.
“다녀왔어.”
수호도 마주 웃었다.
“고생했다.”
툭.
“헷…….”
수호의 큰 손이 시르카의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 쓰다듬자, 시르카의 눈이 기분 좋게 반달처럼 휘어졌다.
아이스 엘프 특유의 기다란 귀가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이렇게만 끝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설인들의 왕이자, 악몽의 군주로 다시 태어난 시르카는 진심을 담아 수호에게 다시 인사했다.
더없이 정중하고 극진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군주님.”
띠링.
[설인들의 왕, 악몽의 군주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설인들의 왕, 악몽의 군주가 당신에게 ‘세계수의 악몽’을 바칩니다.] [가호 : 세계수의 악몽]설인들의 왕, 악몽의 군주의 가호.
악몽의 군주 시르카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사후의 바다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 혹한의 추위는 시간이 갈수록 사후의 바다 전체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효과 ‘세계수의 악몽’: 사후의 바다에서 발생하는 ‘디버프 : 죽음’의 효과가 약해집니다.
“오?”
뜻밖의 보상을 보자, 수호의 눈이 커졌다.
사후의 바다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HP가 줄어드는 ‘디버프 : 죽음’.
그동안 그것 때문에 걸려 있던 제약이 추위에 의해 약해진다는 말 아닌가!
“사후의 바다가 추워질수록 죽지 않는다니, 뭔가 아이러니한데?”
[그것이 바로 세계수에겐 악몽인 것이겠지요.]수호의 말에 베르가 냉큼 설명을 해 주었다.
베르는 악몽의 사도의 연구 덕분에 전보다 더 많은 지식들을 가지게 되었다.
전보다 훨씬 많은 설명을 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아무래도 ‘디버프 : 죽음’은 사후의 바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나이다.]“아무도 세계수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선가?”
[그렇겠지요. 그만큼 중요한 존재니까요.]“반대로 말하면, 이제는 세계수를 찾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말이군.”
[설마 직접 들어가 보실 생각이십니까? 아직은 위험하나이다. 나중에 혹한의 추위가 사후의 바다 전체를 뒤덮었을 때면 모를까…….]“아니지. 지금이니까 더 의미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직접 들어갈 생각도 없고.”
수호는 흡족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즉시 하르마칸을 불러내, 사후의 바다에서 떠돌고 있는 악마들 모두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그러자 그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사후의 바다 위를 탐험하던 가장 거대한 함선 위의 악마들의 왕 에실 라디르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간만에 좋은 소식이네.”
에실이 히죽 웃었다.
“어쩐지 조금 전부터 저쪽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더라니.”
무저갱 아래 숨어 있는 굶주린 영혼들의 공격 외에는 늘 고요하고 변화가 없던 사후의 바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갑자기 어딘가에서 미약한 바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추위’라고 느껴지기엔 너무나도 멀리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불과했으나, 그 바람에 실려 오는 ‘익숙한 냄새’가 중요했다.
킁.
그리고 에실은 그 냄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절로 입안에 군침이 도는 냄새…….
“드디어 방향을 찾았다.”
에실은 사후의 바다에 흩어져 있던 모든 악마들을 향해 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모두 뱃머리를 돌려라!”
마침내 세계수를 향해, 모든 악마들의 배가 거침없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