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96)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95화(96/176)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95화
슈와아아악!
허공에 몽글몽글 뭉쳐진 수많은 혈석들이 외뿔 악마 수호의 뿔 속으로 스며든다.
그 광경은 그걸 보는 악마들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이건…… 말도 안 돼.”
“혈석은 악마 귀족들만 만들 수 있을 텐데?”
악마 간수들조차 경악의 시선으로 수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말대로 혈석은 악마 귀족들에게만 주어진 피의 권능이었으니까.
귀족들의 고상한 식사 방법?
그딴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혈석이야말로 귀족들이 자신들의 힘을 대대로 후계자에게 계승시키며 가문의 힘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혈석은 악마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활용하게 하는 권능이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자신들도 혈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걸 위해 광혈독이나 별가루 같은 것들도 개발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귀족들의 전유물인 혈석을 흉내 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 꽤 근접하게 혈석을 흉내 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외뿔이 악마가 만들어 낸 것이 진짜 혈석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군주 전쟁에서 악마 귀족들은 이미 전부 멸족했을 텐데?”
“그나마 살아 있던 라디르 가문조차 멸망했다고!”
“그럼 저놈은 대체 뭔데?!”
이러는 사이에도 수호는 상대 악마를 압도적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모든 스탯을 40퍼센트나 부풀려 주는 악마 학살자의 칭호.
그리고 악마의 영혼을 흠뻑 포식한 볼칸의 뿔.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에실의 능력으로 실시간으로 상대 악마의 힘까지 계속 빼앗으며 싸우고 있었으니, 그 모든 시너지는 상상 초월이었다.
[키하하! 정말 멋지십니다, 소군주님! 그야말로 악마의 천적이시나이다!] [마스터! 제가 마스터의 첫 번째 기사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그림자 속에서 열렬히 수호를 응원하는 베르와 퀘이.
사실 여기서 그림자 병사들을 꺼내면 더 빨리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전투의 승부가 아니었다.
수호의 목표는 폭군왕을 끌어내는 것.
그 겁쟁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악마답게’ 놈의 관심을 끌어야만 했다.
쾅!
[중급 광혈마를 처치했습니다.] [볼칸의 뿔이 악마의 영혼을 포식했습니다.]전투가 끝났지만, 아무도 그 승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 진짜 귀족인 거야?”
“그럼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관중석의 모든 악마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못한 채 수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나선 것은 처형식의 사회자였다.
“……외, 외뿔이 승리!”
동시에 악마 간수들은 이를 갈았다.
“그럴 리가 없다.”
“귀족은 다 죽었어.”
무엇보다 악마 간수들은 수호를 바로 옆에서 봤던 이들이었다.
악마 귀족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몰라볼 정도로 자신들은 감이 둔하지 않았다.
“그럼 저놈은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악마 간수들의 시선이 문득 뒤에 있는 간수장에게로 향했다.
간수장은 더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콜로세움 한가운데 서 있는 수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쯧. 저딴 놈이 귀족일 리가 있나.”
애초에 외뿔이가 악마 귀족이었다면 자신들에게 순순히 잡혀서 처형식에 나갈 이유도 없었다.
‘뭔가 있다.’
그게 뭘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불길한 놈은 치워 버려야지.”
간수장이 눈을 번뜩이며 간수들에게 호령했다.
“미노타우로스를 준비시켜라!”
“……!”
그 말에 악마 간수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외뿔이를 바로 죽이시려는 겁니까?”
“악마 귀족일지도 모르는데…….”
“귀족이면 또 어떻단 말이냐! 죽이면 그만이지!”
“……!”
간수장의 발언에 악마 간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감히 귀족에게 무기를 겨눈다는 건 평범한 악마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예전의 악마계가 아니다! 저 외뿔이가 귀족이면 뭐?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저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까?”
간수장의 눈에서 귀기가 터져 나왔다.
“잊지 마라! 우리는 이미 폭군왕 님의 권속이다! 저놈은 고작 처형식의 죄수일 뿐이고! 놈이 계속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규율대로 더 강한 상대를 내보내면 그만이지! 당장 마수들을 준비시켜라!”
“아, 알겠습니다!”
간수장의 불호령에 간수들이 황급히 뛰어나갔다.
* * *
처형식이 잠시 중단되었다.
사회자가 다음 외뿔이의 상대로 노역장에서 쓰는 마수들을 끌고 오겠다고 하자, 관중석은 혼란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미노타우로스라고?”
“이렇게 빨리 처형식에서 마수들을 풀었던 전례가 있던가?”
“간수들 미친 거 아니야? 악마 귀족일지도 모르는 악마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냐고!”
평소에는 채찍을 휘두르는 무서운 간수들이라도, 지금 이렇게 노예들이 콜로세움에 앉아 있는 순간만큼은 간수들에게도 야유를 퍼부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수호가 악마 귀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엄청난 자극이었다.
악마 귀족의 처형식이라니!
이런 금단에 가까운 불경한 짓거리를 구경하게 되다니!
그리고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야말로 간수장이 원하던 바였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회포를 풀어 줘야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단 말이지. 역시 폭군왕의 통치 전략은 완벽하다.’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악마 간수들이라도, 지금 콜로세움에 모여 있는 노예들이 작정하고 한꺼번에 덮치면 이 굳건해 보이는 서열 관계가 뒤집히는 건 한순간이었다.
귀족의 권위가 없는 악마들끼리는 어차피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였으니까.
심지어 요즘 악마계에선 광혈독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니, 하위 악마가 갑자기 폭주해서 자신보다 강한 악마를 잡아먹고 강해지는 일은 빈번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처형식이지.’
외뿔이가 악마 귀족이든 뭐든, 노예 악마들의 이런 흥분을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노예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악마들을 최대한 잔혹하게 처형시킬수록, 노예들은 자신도 언제든 저런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잡아먹힐 테니까.
‘놈이 강하다면 더 강한 상대를 내보내면 그만이다!’
이미 수호의 전투 방식을 확인한 이상, 미노타우로스를 내보내는 것이 적격이라 판단한 간수장이었다.
“외뿔이는 민첩한 속도를 기반으로 전투한다. 이럴 때는 맷집이 두툼한 놈을 내보내야 오래오래 싸우지 않겠나.”
“역시 간수장님이십니다.”
“그래도 너무 형평성이 안 맞으면 재미없겠지. 외뿔이를 데리고 무기실에 다녀와라.”
“오오. 역시……!”
간수장의 명령에 악마 간수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가 준비되는 틈을 타서 악마 간수들이 수호를 무기실로 끌고 갔다.
“원하는 무기를 골라라.”
“…….”
수호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각양각색의 무기들을 말없이 쳐다봤다.
무기실 안에는 검, 도, 해머, 도끼, 건틀릿 등등 온갖 흉악한 무기들이 가득했다.
물론 수호가 무기가 필요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인벤토리에서 꺼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공짜로 준다는데 사양하면 실례지.’
수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무기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뭐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이렇게 좋은 무기들을 처음 봐서 고르기가 어려운 건가?”
수호의 늦장에 악마 간수들이 슬슬 답답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그를 재촉하거나 억지로 아무 무기나 쥐여 주지는 않았다.
“오냐, 그래. 그런 신중한 모습이 보기 좋구나.”
“정 선택하기 어려우면 여러 개를 골라도 된다. 너는 뿔도 하나인데 무기라도 많아야 공평하지. 흐흐.”
말없이 무기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수호의 등 뒤로 악마 간수들의 조롱이 이어졌다.
“그래도 기다리기 너무 지겹군. 우리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다 고르면 나오거라.”
악마 간수들이 킬킬거리면서 창고 밖으로 나간 뒤.
무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수호는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여기 있는 이 무기들, 내가 갇혀 있던 그 쇠창살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제대로 봤어. 이것들 전부 지옥철을 제련해서 만든 무기들이야.]수호의 눈썰미에 에실이 작게 감탄했다.
그 말대로 이곳의 무기들 대부분은 노역장에서 채굴한 광석들로 만든 무기들이었다.
[지옥철은 단단할 뿐만 아니라,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효과도 있어서 원래 무기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돼.]그에 수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무기들은 죄다 형편없어 보이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좋은 무기 같은 건 없나이다.]베르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곳의 무기들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죄다 날이 제대로 서 있지 않고 녹슨 것들뿐이었다.
[애초에 단단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겠지.]에실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기들만 봐도 놈들의 목적이 뭔지 뻔히 보였다.
[놈들은 네가 최대한 오랫동안 발버둥 치다가 죽어 주기를 바라는 거야.]그저 단단하기만 할 뿐, 날이 전부 빠진 무기를 들고 허둥대며 싸우는 우스꽝스러운 광대를 보며 낄낄대는 관중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그래도 공짜인 게 어디냐.”
수호는 피식 웃으며 무기들을 바라봤다.
공격력이 형편없는 잡템들.
하지만 그 숫자만큼은 대단히 많아서, 하나하나 살펴보기엔 확실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단은 다 챙기고 보자.
“그레이, 잠깐 나와 봐.”
슈와아악.
수호의 그림자에서 작은 새끼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꾸르렁!”
그레이는 등장과 동시에 흉흉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요새 레벨업 좀 했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런데.
“뭐해? 보이는 거 전부 주워 담아.”
“헥?”
그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주인이 좀도둑처럼 무기들을 손에 잡히는 족족 전부 인벤토리에 쑤셔 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인벤토리도 거치지 않고 곧장 상점창에 팔아 치우는 중이었다.
짤그락! 짤그락!
“이건 130골드? 이건 100골드?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지.”
“꾸아앙?”
그레이는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수호를 따라서 작은 입을 벌려 무기들을 덥석덥석 깨물었다.
띠링! 띠링!
[‘아이템 : 지옥철 장검’을 발견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아이템 : 지옥철 도끼’를 발견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그래, 잘한다. 전부 수락. 전부 판매.”
펫 시스템은 그레이를 통해서도 아이템을 원거리에서도 획득하게 해 준다.
거기에 베르와 퀘이까지 나서준 덕분에, 수호는 무기들로 가득하던 무기실을 그야말로 탈탈 털어 버리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골드 벌이 제대로 했네.”
[자, 잠깐. 너 이러다 걸리면 진짜 어쩌려고 그래?]수호의 막 나가는 행동을 보며 에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도 다 생각이 있었다.
“그때는 그때지. 어차피 내가 지금 안 챙기면, 나중에 악마들 손에 들려져서 내 앞에 나타날 거 아냐?”
[하긴.]어차피 앞으로도 악마들과 사이좋게 지낼 일은 없었으니, 적의 전력을 줄일 수 있을 때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이곳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될 악마 간수들은 이미 광혈독에 중독됐으니, 나중에 알고 화를 내 봤자 명만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완벽하게 처리한(?) 수호가 드디어 무기실 밖으로 나오자, 악마 간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고작 그걸로 되겠어?”
“신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건틀릿과 검 두 자루? 왜 이렇게 조촐해?”
“어이구야. 이래서는 금방 죽겠군. 내기는 내가 졌네.”
“이제 와서 무르면 반칙인 거 알지?”
악마 간수들은 서로를 보며 킬킬거렸다.
그런 반응에도 수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성큼성큼 투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뭐가 그리 급해? 그렇게 빨리 죽고 싶은 거냐?”
수호의 뒤에서 킬킬거리는 악마 간수들의 말에 에실이 중얼거렸다.
[야. 너 지금 들킬까 봐 이러지?]“…….”
수호는 말없이 빨리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