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그날의 동경 (2)
신유하, 심초연, 이시영, 최이안, 강나비, 류지하, 임로진…. 핫라인을 연결해 둔 협회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게임에서 내가 어떤 루트로 진행하든 항상 협회에 속해있었으며, 신여월 협회장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내던 사람들. 즉, 절대적인 아군들뿐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나를 믿고 움직여줄 사람들에게 차례로 연락을 돌리며 서로 다른 부탁을 해뒀다.
그간의 협회 생활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모두 흔쾌히 긍정을 표해준 덕분에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해도 괜찮은지 한참 고민했던 인물의 번호를 망설이다가 눌렀다.
-오, 이게 누구람. 바쁘다고 같은 소속인데도 방치하시던 김요한 부장님이시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어쩐 일로 먼저 통화를 다 주시고~?
“내 전화에 불만이 많나 본데.”
-아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어휴, 고작 신입 B급 감응자가 감히 부장님인 S급 감응자에게 그런 불순한 마음을 품을 리가 없잖아~
평상시보다도 훨씬 죽죽 늘어지는 어투와 잔뜩 밉살스러운 티를 내는 목소리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지금 네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자기 목소리가 고깝게 들린다면 그건 전부 듣고 있는 내 탓이라며 박호승의 깐족거리는 목소리가 서운함과 불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으나 나도 할 말이 몹시 많았다.
내가 차라리 A급이라고 밝히고 들어오던가 이진아처럼 전투 기술을 숨겨 감응자 등록은 하되 협회에 강제로 소속되지는 말자고 설득하려는 것도 무시하고서 기어이 진예신과 쑥덕거린 대로 B급 전투원으로 협회에 들어온 것이 첫 번째 불만이요, 신여월 협회장까지 끌어들여 작당모의 하더니 협회장 승인으로 보안부에 부서 발령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심지어 적당히 훈련은 끝났으니 안전하게 백색 균열을 공략하고 온다더니 실은 황색 이상에 들어갔다 온 건지 너덜너덜해져서는 내가 아닌 심초연 선생님께 치료를 받은 것이 세 번째 불만이다.
‘치료 안 받고 뻗대는 인간들에 비하면 낫기는 하다만, 애초에 안 다치겠다고 그냥 실전 연습이라고 한 주제에 몸을 갈아오면 안 되지?’
협회에 소속된 날, 부서 확정된 날, 그리고 응급실 앞에서 바보처럼 웃고 있는 걸 마주한 날까지 전부 뭐라고 쏟아내려다가 꾹 참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협회에 들어온 건 축하받을 일이고, 원하는 부서에 들어간 것도 축하를 해줄 만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재깍 치료받아서 멀쩡해졌다지만 방금 전에 다쳐서 들어온 사람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은가.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다 보니까 결국 불만이라고는 입 벙긋 해보지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이번에도 대거리를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일단 죄다 속으로 삭이고선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불만이 없다면 됐어. 내가 좀 바빠서 그런데 용건만 말할게. 너 지금 시간 비냐?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엥? 시간? 나야 오늘 뭐 크게 하는 건 없지? 이따가 협회원 측 자리에 앉아서 개회식 보는 것 정도?
“다행이네. 새벽은? 곁에 같이 있고?”
-네가 행사장에 출입하는 건 자유라고 했다면서? 지금은 옆에 없는데, 곧 올 거야. 같이 들어가기로 했거든.
그래, 새벽. 난 내가 박호승을 내 사정으로 협회 일에 끌어들이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걸 불가능하게 만든 게 새벽이라는 존재다.
아주 오래 산 영험한 호랑이는 존재 자체로도 변수인데, 하필 내가 신경 쓰는 사람과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 골칫거리는 이번 행사에 무려 사람 하나를 낚아채도 괜찮냐는 말을 해서 날 불안하게 했지….
타들어 가는 내 속과는 별개로 박호승과 새벽이 서로를 꽤 좋은 파트너로 여기는 것을 잘 알아서 나오려는 한숨을 꾹 삼키며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러면 오늘도 그렇지만 내일까지 새벽이랑 함께 움직여줬으면 좋겠는데.”
-같이 있으면 든든하니까 나야 좋지만, 새벽이랑 합의된 사항 맞지? 새벽은 좀 방랑벽이 있어서 훌쩍 어디 자주 가거든.
“그걸 내가 모르겠냐고. 왜 못 알아듣는 척을 하지?”
-아~ 너무하네~! 붙잡고 늘어지란 소리인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우리가 몇 년 지기인데, 여기선 내가 우리 친구한테서 이유를 듣고 싶어서 눈치 없이 굴었다는 걸 네가 알아줘야 하는 아니냐고~!
박호승의 투정 부리는 듯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헛숨을 코로 내쉬었다가 작게 웃었다. 그러게, 네 말대로 너랑 오랜 친구인데. 네 말에 숨은 감정 하나 못 알아챌 정도로 내가 조급해하고 있었네.
반대편 수화기로는 분명 잘 들리지도 않을 작은 웃음이었는데, 용케도 내 변화를 알아챈 박호승이 킥킥 악동처럼 웃더니 뻐기듯 말했다.
-후, 역시 나야. 말 한마디로 부장님을 정신 차리게 만든 신입이라니, 완전 업적이다, 그치? 그러니까 부장님, 저한테 뭐 포상이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포상? 못 해줄 것도 없지. 하지만 이번 부탁까지 무사히 완수해내면 그때 해줄게. 원하는 거 있어?”
-당연한 걸 묻는 걸 보니까 수면 시간이 부족하시군요, 김요한 부장님~! 제가 원하는 거라고 해봤자 당연히 부장님의 시간 뿐이죵?
“으, 징그러워.”
애교부리는 듯한 어투에 반사적으로 질색했더니 박호승이 서운하다며 찡찡거렸다. 물론 난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마저 할 말을 했다.
“오냐, 원하는 날짜 빼놓을 테니까 오늘하고 내일, 제대로 새벽 네가 잡아둬. 그리고 되도록 이틀간은 무슨 일이 생겨도 협회 안에서만큼은 마석 쓰지 마. 알겠지?”
-부탁이라고 했으면서 이건 그냥 명령이지 않나요, 부장님~!
“너한테 하는 말로 이 정도면 온화한 부탁이지, 뭘. 아무튼, 제대로 알아들었지? 네가 B급으로 협회에 들어온 이상, 그보다 높은 힘을 써서는 안 돼. 특히 새벽이 네가 사용하는 아이온을 분담해준 덕분에 협회장님도 네가 A급이란 걸 못 느끼셨어. 절대, 들키고 싶지 않다면, 절대로 B급 이상의 파워를 내면 안 돼. 알겠어?”
-나도 그 정도 요령과 눈치는 있네요~! 애초에 들킬까 싶어서 최대출력을 내본 적도 없어. 아, 그래도 목숨이 간당간당해진다 싶으면 쓸 수도 있는데, 그건 봐줄 거지?
“그럴 때의 뒷일은 부협회장님이 수습할 거니까 당연히 오케이. 여하간 새벽 잘 붙들고 있어. 무슨 일이 생겨도 어디로 튀어 나가지 않게, 아주 꽉.”
-걱정 붙들어 매. 내가 착 달라붙어 있어 줄게.
내가 얼마나 끈질긴지 잘 알지 않느냐며 능청스럽게 대답한 박호승이 잠깐 음, 하고 말을 고르더니 넌지시 물어왔다.
-그런데 오늘 뭐 테러 예고 같은 거라도 있었어? 너 되게 음….
“겁먹은 거 같다고?”
-에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쪼오금? 날이 선 느낌이라 그렇지.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난 겁쟁이잖냐. 이것저것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겁먹어서 그래.”
너무 겁쟁이라서 사소한 하나가 틀어지기만 해도 안달복달하고, 누구 하나 다칠까 무서워서 안절부절못한다.
내 선선한 수긍에 박호승이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어댔으나 귀담아듣진 않았다. 아무런 대꾸를 안 하면 박호승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거든.
아니나 다를까 반응 없는 내 모습에 박호승은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며 잠잠해졌다. 그 틈을 타서 전화도 끊을 겸 마지막으로 신신당부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로 새벽의 힘까지 사용해서 마석을 꺼내선 안 돼. 그리고 이건 혹시나 해서 전해두는 건데, 오늘 하늘에 보라색 균열이 열리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협회 밖으로 나가. 알았지? 균열 쪽은 쳐다도 보지 말고 나가야 해.”
-내가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실력도 안 되는데 처음 보는 균열에 맞서진 않는다고.
“그래, 믿을게. 그럼 행사 끝나고 보자. 저녁 살게.”
-오, 좋지~! 오랜만에 우리 자주 가던 떡볶이집에 가서 먹자~!
“그래그래, 이따 보자.”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끝내자마자 이진아가 팔을 번쩍 들었다. 할 말이 있다는 표시에 가까이 다가가자 이진아가 화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저기에 혜아 언니가 방금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뭐?”
“어, 어떡해요? 제가 계속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당황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이진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진정시켰다. 숨을 쌕쌕 내쉬는 이진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손에 쥐여주며 일단 의자에 앉혔다. 이진아는 물을 한 모금 홀짝거리곤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비로소 제대로 된 설명을 했다.
“언니가 내려와서 안경 같은 거 쓰고 낙서 있는 곳 계속 보고 있었는데요. 제가 잠깐 다른 데 쭉 보다가 돌아와서 다시 요기 보니까 언니가 안경 벗고 막대기? 빗자루? 그런 뭔가 긴 걸로 낙서를 건드렸거든요.”
“그래, 내가 지울 수 있을 것 같으면 지워달라고 그랬거든.”
“헉, 그렇구나. 전 그냥 가까이서 보기만 하라고 한 줄 알았어요….”
잠시 딴 길로 말이 샌 이진아가 고개를 몇 번 좌우로 흔들더니 또박또박하게 하던 말을 이었다.
“암튼 그 언니가 낙서 된 걸 건드니까 갑자기 색이 하나 사라졌어요.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색이랑 똑같은 끈 같은 게 나오더니 언니를 끌고 사라져버렸어요! 막, 균열에 들어간 것처럼 엄청 빠르게 낙서 안으로 들어간 거 같은데 어떡하죠? 언니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윤 선배님은 강하시잖아. 그래도 조치는 해야지.”
이곳은 협회 내부의 모든 보안시설을 조종할 수 있는 최고 기밀의 보안실이며 위급 시 신여월 협회장보다도 내가 권한이 더 높은 상황실이다.
그러니까 협회 공간 안으로 너희가 수작을 부렸다면, 그건 모두 내가 손에 쥐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는 거야, 풍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