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199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지금의 이별은 그간 느껴왔던 이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난 얼굴이 눈물, 눈불범벅이 된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정령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이제 모든 정령의 어른은 너희야. 지금 태어나는 정령들은 모두 너희보다 어리고 약해. 지켜 줄 수 있지?”
-호……. 호야. 부탁이면……. 니아이스는 다 들어줘.
내 물음에 가장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니아이스가 눈물을 닦아 내며 답했다.
그러자 곧이어 플레임과 노움 역시 눈불과 눈물을 닦아 내고 내 말에 답하기 시작했다.
-인간……. 걱정하지 마……. 그 대신……. 꼭 돌아와야 해.
-그……. 그럴게요…….
실피아는 저 멀리서 눈물을 훔치며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난 그런 실피아에게 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한 뒤 모두를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 이별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꼭 돌아올게. 그때까지 이 차원에 태어나는 정령들을 잘 부탁해.”
난 이 말을 전한 뒤 주머니를 뒤져 정령들의 품에 쏙 안길만한 크기의 헝겊 인형을 꺼냈다.
그리고 그 헝겊 인형을 정령들에게 전해 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서로 잊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거야.”
…….
“모두 몸 건강히 지내.”
이것이 내가 정령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이 말을 끝으로 난 카이메로와 함께 이 차원을 떠났다.
후회와 미련도 남았지만,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진정한 정령왕이 우는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 제199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
촤아아아아-
바스러진 흙과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흩뿌려지는 푸른빛의 물.
그 물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뿌리로 스며들었고 이내 나뭇잎 하나 보이지 않던 나무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파릇- 파릇-
푸른빛의 물을 빨아들인 나무는 단숨에 가지에서 작은 새싹을 피워냈다.
바스러진 흙 역시 점점 생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위에 털썩 주저앉은 채 숨을 골랐다.
“이걸로 일흔여덟 번째인가.”
생각보다 멸망한 차원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엘림 시절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지금.
난 치유수에서 한 단계 진화한 생명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생명수를 차원을 돌아다니며 골고루 흩뿌려주면 이내 자연스럽게 차원 전체에 생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 번째 차원을 되살릴 때까지만 해도 ‘금방 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멸망한 차원은 많았다.
그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았다.
“키리엘……. 그 녀석도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네.”
아무리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더 쉽다고 해도 이 수많은 차원을 하나도 빠짐없이 멸망시킨 키리엘이 얼마나 미친 녀석인지 알게 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잡생각에 빠져 휴식을 취하는 사이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난 몸을 일으킨 뒤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차원을 되살리기 위해 원래 세계를 벗어나자 내게 남아 있던 시간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더 이상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난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시간을 계산했다.
참고로 지금은 내가 지구를 떠난 지 171시간 39분 23초째다.
이 시간을 계산할 수 있던 건 정령왕의 힘이 아닌 강호의 천재적인 두뇌, 그리고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카이메로.”
자리에서 일어난 난 곧바로 카이메로를 불렀다.
어느새 나와 친밀함이 상당히 많이 쌓인 카이메로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저 멀리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나를 향해 날아왔다.
쿠구우웅-
카이메로는 내 앞에 거대한 굉음과 함께 착지했고 이내 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래. 잘했어.”
난 마치 반려동물을 대하듯 카이메로의 이마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리고 카이메로의 등에 올라타려던 그때.
푸르르르-
카이메로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왜 그래?”
난 흠칫 놀라며 카이메로의 등에서 내려와 카이메로의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카이메로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카이메로…….”
난 카이메로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다른 종족. 다른 언어.
난 카이메로와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카이메로의 말을 이해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진정한 정령왕의 힘을 얻은 지금 역시 카이메로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감정.
난 눈을 지그시 감고 카이메로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움……. 인가.”
카이메로의 머릿속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지금 내 머릿속에도 그리움이 피어나고 있었기에 난 그런 카이메로의 감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카이메로는 나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난 살며시 눈을 뜬 뒤 카이메로의 이마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집 정도는 찾아갈 수 있지? 가도 돼.”
푸르르르-
카이메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콧바람을 내쉬었다.
“가도 돼. 수고 많았어. 또 보자.”
푸르르르-
나는 카이메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카이메로는 아닌 모양이었다.
카이메로는 지금 내 말뜻을 전부 이해했고 그랬기에 지금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떠나면 내가 혼자 남을 걸 알기에 말이다.
“너랑 다니면서 차원 이동하는 방법 다 배웠어. 걱정하지 말고 가.”
크르으으-
카이메로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흙먼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카이메로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날아오르는 순간까지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난 그런 카이메로를 애써 보지 않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크워어어어-
그러자 카이메로는 거친 포효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상공을 향해 솟구쳐 올라갔고 이내 점이 되어 차원 밖으로 사라졌다.
카이메로가 떠나자 차원에 남은 건 흙먼지 바람과 살아나고 있는 생명, 그리고 나뿐이었다.
“다 묻었네.”
난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지구를 떠난 지 171시간 45분 05초.
난 78번째 차원을 되살렸고 정말 혼자가 되었다.
* * *
새는 알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본 존재를 부모로 인식한다.
그러면 갓 태어난 정령들은 과연 누구를 부모로 인식할까.
그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니아이스, 플레임, 노움, 실피아.
새로 태어난 정령들에게는 이 네 정령이 정령왕이었다.
-정령왕님! 정령왕님! 놀아 주세요!
갓 태어난 정령들이 니아이스에게 와락 안겨들자 니아이스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다른 정령들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니아이스 어떡해……? 얘들아아.
하지만 다른 정령들 역시 니아이스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간 온갖 수라장을 겪어 왔지만, 아직 이 네 정령은 하급 정령에 불과했으니까.
-그……. 그래! 이 플레임 님이 다 놀아 줄 테니까 기……. 기다리라고!
플레임은 갓 태어난 정령들을 향해 약간 허세를 섞어 달래고 있었다.
-좋아요!
-꺄아악! 신난다!
그러자 갓 태어난 정령들은 마치 벌떼처럼 플레임을 향해 달려갔고 플레임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망했다…….
그렇게 플레임이 갓 태어난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노움은 갓 태어난 정령들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놀아 주세요!
-어……. 네?
-놀아 주세요!
-히익! 네……. 알겠어요……!
겁이 많은 노움은 갓 태어난 정령들에게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니아이스, 플레임, 노움.
이 셋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대로 갓 태어난 정령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실피아는 달랐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기면 나 역시 실피아를 가장 걱정했을 만큼 실피아의 성격은 과거의 나와 비슷, 아니 그 이상이었다.
-정령왕님~! 뭐해요?
얼굴에 악의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갓 태어난 어린 정령이 실피아를 향해 활짝 웃으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어린 정령이 실피아에게 와락 안기려던 바로 그 순간.
실피아는 한 손으로 어린 정령을 툭 밀어냈다.
그리고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맘대로 정령왕이래. 이렇게 어린 정령왕 봤어?
-어……. 어……. 으아아아앙!
실피아의 매서운 목소리에 결국, 어린 정령은 울음을 터트렸고 놀란 니아이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니아이스는 펑펑 눈물을 흘리는 어린 정령을 꼭 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고 이내 실피아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야! 너 진짜 왜 그래!
-내가 뭘.
-호야가 말한 거 잊었어? 너 그렇게 할 거면 가!
-안 그래도 갈 거거든?
니아이스와 실피아의 실랑이 끝에 실피아는 결국, 등을 돌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멍청하긴. 누구보고 정령왕이라는 거야. 그리고 강호가 말했으면 뭐. 내가 무조건 들어 줘야 해?
실피아는 홀로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계속해서 혼잣말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던 실피아는 도시 속 외딴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곳에 존재하는 건 흙탕물과 쓰레기 더미뿐이었기에 실피아는 발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 그때.
부스럭-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실피아는 걸음을 멈춘 채 다시 발길을 돌려 골목길을 향해 걸었다.
부스럭- 부스럭-
쓰레기 더미에서 들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고 이내 실피아가 그 앞에 멈춰 서자 그 소리가 잦아들었다.
실피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슈욱-
쓰레기 더미에서 무언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쓰레기 더미에서 고개를 내민 건 다름 아닌 갓 태어난 정령이었다.
하지만 산뜻한 얼굴에 맑은 미소를 품고 있는 다른 정령들과는 달리 실피아에게 인사를 건넨 정령에게서는 조금의 산뜻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각 원소 계열을 나타내는 정령 특유의 색 역시 흙탕물에 젖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실피아는 잠시 멍하니 그 정령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 어린 정령은 실피아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부들거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만약 이곳에 정령왕이 있었다면 갓 태어난 정령이 이렇게 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차원에는 더 이상 정령왕이 없다.
그랬기에 이 가여운 정령이 이렇게 된 것일 터.
실피아는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는 정령을 뻔히 쳐다봤다.
-가……가볼게요.
어린 정령은 실피아에게 사과를 건넨 뒤 다시 쓰레기 더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덥석-
실피아가 그 정령의 손을 잡아챘다.
어린 정령은 화들짝 놀라며 실피아를 바라봤고 실피아는 이내 정령의 손을 이끌고 쓰레기 더미 밖으로 끌어냈다.
-어……. 왜……. 왜요? 죄……. 죄송해요.
쓰레기 더미 밖으로 나온 어린 정령은 부들부들 떨며 실피아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실피아는 그런 정령을 잠시 바라본 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정령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품에 안았다.
-내……. 냄새날 거예요……. 저 엄청 더러운데…….
이런 쓰레기 더미에서 꽤 오래 있었던 것인지 어린 정령의 말대로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보통 어린 정령들 역시 오염 물질을 정화할 수 있지만, 이 정령의 상태는 꽤 심각했다.
하지만 실피아는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고 그 정령을 품에 안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냄새날 텐데……. 죄송해요…….
실피아의 품에 안긴 어린 정령은 계속해서 실피아에게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실피아는 그런 어린 정령에게 버럭 화를 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어린 정령을 향해 읊조리듯 말할 뿐이었다.
-나도 안 씻으면 냄새나. 신경 꺼.
실피아의 말은 여전히 부드럽지 않았지만, 그 주위를 감싸던 가시는 이미 다 사라져 있었다.
-강호. 네 뜻을 따르는 건 아니야. 너랑 내 뜻이 우연히 겹친 것뿐이지.
실피아는 마음속으로 과거 내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