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cafe in front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202)
“…….”
뚝. 적당히 골라 틀어 두었던 카페 배경음악이 갑자기 끊겼다.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정적에 나는 불현듯 불안해졌다. 이 아늑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허전하게 느껴졌다.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다.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모습이 아주 예뻤다.
갑자기 웬 나비지? 나비를 손으로 잡으려 하니 스르륵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내 주위를 맴돌았다.
‘설마, 이건…… 환상인가?’
나비가 천천히 날아 내 손가락 끝에 앉았다.
바로 그 순간.
퍼엉!
큰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우수수 꽃가루가 떨어졌다.
“어? ……어?”
동시에 끊겼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아까보다 훨씬 경쾌한 음악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생긴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꽃가루에 거의 파묻힌 채로, 어찌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뒷문으로 살금살금 들어오던 큰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어? 큰아버지, 왜 거기 계세요?”
“이런, 들켰다. 그냥 시작하거라.”
“네? 뭐를 시작해요?”
펑! 퍼엉! 폭죽이 터졌다.
벌컥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제일 앞에는 기유현이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뒤에는 커다란 축하 플래카드를 든 사람도 있었다.
“언니, 카페 다시 연 거 축하드려요!”
주신희가 내 팔을 잡아끌더니 가운데에 놓인 의자에 앉혔다.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는 한마디씩 건넸다.
“축하한다는……. 별거 아니지만 선물이라는…….”
“조카야, 축하한다!”
“축하하네. 이건 새로 만든 커피 잔과 텀블러일세.”
“왜오오옭, 특별히 주는 것이니 고마워하거라!”
“뀨우웃! 뀨우!”
놀랍게도 미음이와 라임이도 내게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납작한 접시였다. 라임이가 몸으로 눌러서 흙을 납작하게 폈고, 미음이가 발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아스가 김덕이 할머니께 부탁해 구워서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비뚤비뚤한 모양의 접시를 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리을아, 많이 놀랐어?”
내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옆에서 권지운이 말을 걸었다.
“…….”
침묵이 계속되자 사람들이 술렁술렁 당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한껏 억누르는 목소리로, ‘어, 어떡해요.’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기유현이 내 앞에 커다란 케이크를 내려놓았다. 위에 <카페 리을> 건물 모양의 장식이 올려진 아주 예쁜 케이크였다. 가까이 다가온 기유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요. 청장님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자고 아이디어를 내셨는데, 좋을 것 같았거든요.”
청장님이 어쩌다가요? 예전에 표창장 수여식 때 뵙기는 했지만, 그게 다인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눈에 힘을 주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노력은 결국 실패했다.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접시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다들 말도 없이, 이렇게……. 흑, 감사합니다…….”
“리을 씨, 축하한다는…….”
주노을이 먼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어 최로나와 주신희도 내게 매달렸다. 나는 꽃가루와 사람들에게 파묻힌 채로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감사해요, 흑…….”
오서호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머리와 어깨 위로 눈처럼 쌓여 있던 꽃가루가 반짝거리는 나비로 변하더니 일제히 날아올랐다.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참이나 떠들썩하게 축하를 받은 뒤에야 간신히 눈물이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도 정신이 없었다.
눈물을 닦고 주위를 둘러보자 카페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은 나를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었지만, 재미있는 일이 있는 줄 알고 그냥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다소 혼잡하긴 한데, 창고에서 의자를 좀 더 가져오면 아슬아슬하게 전부 앉을 수 있겠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이 케이크 다 같이 나눠 먹어요.”
케이크를 먹으려면 함께 마실 커피가 있어야겠지. 테이블 위에 접시와 포크 따위를 내려놓은 뒤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을 향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아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금방 끝나니까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아스는 커피 잔을 꺼내며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도울게.”
“……왜?”
나는 슬쩍 아스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나는 나이대가 가까운 아이들 자리를 한 테이블로 모아 놓았다. 아스의 옆에는 최로나가 앉아 있었다.
헤에, 설마. 호오, 그러고 보니 전에 최로나가 우리 가게에 왔을 때도 둘이서 잘 놀았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아니야?”
“아니야.”
아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여전히 최로나의 옆자리에 가기 꺼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면? 로나가 불편해?”
“그건 아닌데, 자꾸 무슨 학교를 같이 가자고 해서…….”
“학교?”
“아, 아니야. 나 이거 들고 갈게.”
아스가 미리 구워 둔 계란빵 쟁반을 들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왜 저런담.
아무튼.
나는 곧 커피 여러 잔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케이크를 인원수대로 잘랐다. 모두가 케이크와 커피를 맛있게 먹으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리을 씨, 지금 잠깐 괜찮아요?”
기유현이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불렀다.
“네.”
“그러면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결에 손을 마주 잡자, 그는 반대쪽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고는, 이동 스크롤을 한 장 꺼냈다.
“어, 어어……!”
누군가가 기유현의 행동을 보고 당혹스러워 하는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기유현은 나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공간을 뛰어넘었다.
* * *
공간을 뛰어 넘은 다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저녁노을이었다. 그리고 노을에 불그스름하게 물든 도시의 모습도.
나는 곧 여기가 어딘지 알아차렸다. 예전에 기유현과 함께 불꽃놀이를 본 그 전망대였다.
기유현이 나를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천천히 전망대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면 굳이 이동 스크롤을 쓸 게 아니라 차로 왔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가깝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요.”
나는 기유현을 돌아보았다. 바람에 부드럽게 흐트러지는 검은 머리카락,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뺨, 그리고 진지한 눈빛이 앞에 있었다.
“그러게요. 나도 같은 말을 하려 했어요. 더 기다릴 수가 없다고.”
“전에 하고 싶다고 했던 말, 이제 해도 될까요.”
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힘주어 대답했다.
“네.”
“…….”
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다음 말은 곧장 이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쥔 기유현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생긋 웃으며 기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스듬히 눈을 내리깔고 내 시선을 피했다. 거리가 가까워서 긴 속눈썹의 떨림마저도 선명하게 보였다.
아.
그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심장께를 아주 부드러운 깃털로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유현 씨, 좋아해요.”
내 말을 듣고 기유현이 흠칫 놀랐다. 기쁨과 놀라움, 내가 선수 친 데 대한 당황 따위가 복잡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저도 리을 씨 좋아합니다.”
“…….”
“정말로, 좋아해요.”
내 마음 따위는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고백 받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실제는 엄청나게 달라서,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노을 진 저녁이라서 다행이다. 붉은 노을이 달아오른 뺨을 조금이라도 감춰 줄 테니까.
기유현이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한발 늦어 버렸군요.”
“아니요. 아직 안 늦었어요.”
“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전에…… 키스했을 때요. 그때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으앗!”
기유현이 번쩍 나를 안아 들었다. 나는 당황에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몸이 기울어지고 고개가 가까워졌다.
“……하하.”
입술이 맞닿았다. 살짝만 닿았다가 떨어진 뒤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이어 더 깊게 키스를 나누었다.
우리는 전망대 옆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기유현의 어깨에 기댄 채 서서히 어두워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전망대에 유현 씨랑 같이 왔을 때부터 유현 씨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때 이미 리을 씨가 신경 쓰였어요. 아니, 좋아했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보다 지금 더 유현 씨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기유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 네.”
“나를 왜 좋아하는 건가요?”
“네? 사귀게 된 첫날에 그런 걸 물어보기에요?”
“사귀……. 그……. 그렇군요.”
연인 관계가 되었다는 실감이 이제서야 들었는지, 기유현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단 얼굴이 잘생겨서 좋고요.”
“네?”
생전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어 본다는 투였다. 입만 뻐끔거리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유현 씨가 가끔 저를 이상하게 보잖아요?”
“이상하게……요?”
“왜, 이런 특이한 사람 처음 본다는 듯이 놀라는 표정…… 아, 유현 씨 지금 표정이요, 아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그 표정이 귀여워서 좋아해요. 그리고 또…….”
…….
…….
그렇게 한참 둘만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카페에 남겨놓고 온 사람들 생각이 났다.
“헉, 다들 내버려 두고 와 버렸는데 어쩌죠? 돌아가야…….”
기유현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다정한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래, 아무리 훌륭한 S급 카페주인이라도 가끔은 땡땡이를 치는 법이다. 나는 냉큼 말을 바꾸었다.
“음, 냉장고에 먹을 거 많으니까 알아서들 찾아 먹겠죠?”
“네, 알아서들 잘 있을 겁니다.”
그의 손이 내 이마와 눈썹뼈 부근을 지나 뺨을 감쌌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곧 그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