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Class Chaebol Hunter RAW novel - Chapter 239
SSS급 재벌 헌터 239화
나예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이중생활은 그만하라는 건가.’
하기야, 이렇게 되었으니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아쉬운 건 하나 있었다.
이현수의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면 사람들의 경외감 어린 표정은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어렵게 대했다.
드림 팀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양슬하와 강철수 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그들 역시도 나를 남들과 대등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혜미는 아니었다.
‘어쩔 수가 없나.’
“제가 추천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김혜미는 의아함을 드러냈지만, 굳이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곧 이세식 회장님의 은퇴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빨리 해치우자꾸나.”
“해치우다니요? 경건하게 거행해야지요.”
“은퇴식이 별거라고?”
“지금까지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건 필요 없다. 그저 네 엄마와 세계를 유람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럼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이다.”
돌아서던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오늘 저녁 비행기로 뉴질랜드로 가려 한다.”
“오늘 바로요?”
“그래. 1분이라도 낭비할 수 없다.”
역시 아버지는 깨인 분이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렇기에 잠시라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나도 아버지의 마인드에는 동의했다.
‘인생은 짧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사를 잘 부탁한다.”
“물론입니다.”
은퇴식이 시작되었다.
은퇴식이라고는 해도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걸어오신 길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이다.
대신그룹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을 하였는지 말이다.
아버지는 진지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이세식 회장님의 연설이 있겠습니다.”
“연설까지야.”
“단상으로 올라 주시죠.”
“알겠네.”
아버지는 단상에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퇴식에 참석을 해 주었다. 거래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친척들까지 모였다.
특히나 헌터 업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다.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으셨다.
“우선 이렇게 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군요. 지금까지 협력을 해 주신 여러분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군요. 제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물론 아들이 경합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인생을 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
아직 아버지는 은퇴를 할 나이는 아니었다.
이제 겨우 50대 초반.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결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생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라 하셨다.
“사람에게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죠. 과거에 제 가치관은 성공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놀랄 정도의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장례식들을 찾아가서 위로를 하면서 인생이 짧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면 큰 축복입니다. 저는 그 축복의 길을 가려 합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과감하게 은퇴를 결심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확고하게 뜻을 굳혔고 이 자리에 섰다.
‘대단하군.’
인간이 이렇게까지 내려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움켜쥐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 아니던가.
“이제 회장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2대 회장에는 제 아들이 오르겠지요. 비록 대한그룹에 대신그룹이 흡수되는 형식을 취하겠지만 제 의지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버지의 연설은 훌륭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으며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이제 대신그룹 2대 회장이 되시는 이현빈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라 따로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웅성웅성!
잠시 소란이 일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화제의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여기에 대신그룹까지 손에 넣게 되었으니 회사의 규모는 이전보다 더 커질 것이다.
어깨가 조금 무겁기는 하다.
“이현빈입니다. 대한연합국의 수상이며 대한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은퇴식에서 저는 한 가지 선언을 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무언가를 선언한다면 파격적인 일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선언을…….”
“저는 정식으로 대신그룹 2대 회장에 오를 것이며 대한그룹은 대신그룹으로 개칭합니다.”
***
“대신그룹으로 개칭한다니!”
“그렇다면 대신그룹에서 대한그룹을 흡수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덩치 차이가 있으니까요. 저는 아버지의 유지를 잇겠다는 겁니다. 가업을 이어 대신그룹으로 개칭을 한다는 겁니다.”
“정말 대단한 결심입니다! 회사의 이름을 바꾸다니!”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아버지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전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대한그룹이었다.
그런 그룹의 이름을 간단하게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짝짝짝짝!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가족들도 일어나 박수를 쳤다.
“와아아아!”
환호하는 사람들.
나는 처음 대한그룹을 만들 때부터 대신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걸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자리에서 내려와 대신그룹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회사를 잘 부탁드립니다.”
이질적인 느낌은 없었다.
나는 정식으로 대신그룹 2대 회장에 오르는 것이다. 이건 그저 인수합병이 아닌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기에 타 회사에 비하여 저항이 적을 것이다.
이걸로 대한그룹의 규모도 성장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에 타기 전에 가족들과 인사를 했다.
지금 해외로 떠나면 최소한 몇 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부모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제 가십니까.”
“그래. 꿈꿔 왔던 일을 하려 한다.”
“편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허허허! 회사를 잘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오냐. 걱정하지 않겠다.”
아버지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내 아들, 이 엄마는 걱정이 앞서는구나.”
“걱정 마세요. 지금까지도 잘했으니까요.”
“네가 어련히 잘하겠냐만은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니란다.”
“종종 전화할게요.”
“그래. 자주 연락하도록 해라.”
“네, 어머니.”
부모님은 차에 올라타셨다.
그 뒤로 경호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요즘 몬스터가 필드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능력자로 이루어진 경호원들을 부모님께 붙여 주었다. 세상이 흉흉하니 여행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했다.
차량은 빠르게 출발했다.
“여어!”
형들이었다.
형들 역시나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적대관계였지만, 이제는 모든 게임이 끝났다. 그렇기에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어졌다.
작은형이 손을 내밀었다.
“운영 잘해라.”
“당연히 그리될 거야.”
큰형도 한마디 했다.
“운영을 거지같이 하면 경영권은 회수할 거다.”
“과연?”
“그때는 정식으로 항의할 테니까.”
“그러든지.”
“그럼 우리는 간다!”
형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여기서 헤어지면 어디 가서 둘이 술을 마시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도 홀가분했다.
“드디어 끝났네.”
“경합에서 승리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축전들이 이어진다.
특히나 나예린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이었다.
“그 망나니 도련님이 이렇게 변하시다니.”
“자자, 이제 연회에 참석하도록 하죠.”
“그러시죠.”
본사 강당에는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 역시도 만찬에 참석하기로 했다.
정신없이 인사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에 김혜미가 찾아왔다.
“회장님.”
“혜미 씨, 어쩐 일이신가요?”
“질문이 하나 있어서요.”
“어떤 질문이요?”
“저를 승진시켜 주신 것이 회장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어째서……?”
“혜미 씨의 능력이 출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직접 보신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
“글쎄요.”
이걸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만약 밝히게 되면 사이가 멀어질 공산이 컸다. 그저 회장과 직원의 사이가 되지 않을까. 배신감에 마음을 닫아 버릴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도 밝혀야 하는 일이었다.
“잠시 따로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녀는 순순히 테라스로 따라왔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곡해 없이 들으셨으면 합니다.”
“네?”
김혜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내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니 긴장이 될 만도 할 것이다.
“4차 웨이브가 터지기 전에 저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 했습니다. 아시죠? 그 당시에 사람들이 불신을 했었거든요.”
“알고 있어요. 꽤 안타까운 상황이었죠.”
“그래서 직접 회사에 잠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죠. 조사 차원이었다고 해야 하나.”
“음…….”
“거기서 혜미 씨를 만났습니다.”
“……!”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났던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놀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동공은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함께 일을 하면서 혜미 씨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도움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도를 뜯어 고쳤을 뿐이지요.”
“허억! 혹시 잠입을 했을 당시에 성함이 이현수…….”
“맞습니다.”
“그럴 수가!”
그녀는 놀람을 드러냈다.
이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대로 두어도 언젠가는 김혜미가 알지 않았을까 싶다.
김혜미는 놀라서 주저앉으려 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었던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다. 꽤 함부로 하기도 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괜찮아요. 언젠가는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요. 그저 그렇게 끝날 인연이라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죠.”
“그 말씀은……?”
“아직도 혜미 씨와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감히 회장님과 친구로 지낼 수 있나요?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김혜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살짝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