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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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백합 공작 영애는 한밤의 복도에 서 있다.
영애의 뒤편으로, 거대한 거울이 놓여 있다.
전신거울.
매끄럽고 깨끗한.
달빛이 미끄러지는 거울엔 영애의 올곧은 등이 비출 뿐이다. 거울이 비칠 것은 한 점의 달빛과 한 줄기의 머리카락이 전부여서, 은백합 공작 영애는 마치 어두운 바다에 외로이 선 섬 같았다.
“말이 없군.”
“…….”
“곤란하다는 얼굴이다. 그대는 표정이 선명해. 밤에도 잘 읽히지. 얼굴만 봐도 이번이 [1번째]임을 알겠다.”
1번째?
아까부터 내 가슴은 불안으로 요동쳤다. 지금도 그렇다. 왜 은백합 영애는 저다지도 친근한 어투를 쓰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냉혹하고 냉정한 검. 이반시아 가(家)의 달.
그녀가 금사매 아가씨의 집사인 내게 친절해질 이유는… 없다.
없을 것이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만 침묵했습니다. 제가 무례를 저질렀다면 부디 용서해주시길. 소공작님. 이건… 꿈입니까? 제가 꾸는 꿈에, 소공작께서도 나타나신 것입니까?”
그런 내 말에 은백합 영애가 보인 반응은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어쩐지 흉터와 같이 느껴졌다.
“재미있는 질문이군. 그래. 그대의 꿈은 내 삶을 집어삼켰다. 사랑이란 단지 자신의 삶을 누군가의 꿈에 바치는 것임을 나는 이제 알겠다.”
무슨 뜻일까.
“나는 그대의 꿈이 되고, 그대는 나의 삶이 되어, 서로 꿈과 삶을 교환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는구나.”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그렇게 나는 몰랐다.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밖에도 많았다.
그 모르는 것 중의 하나를 은백합 영애는 흉진 미소를 지은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리 낭만적인 뜻으로 질문한 것은 아닐 터. 진지하게 대답해주마. 하인들이 안보여서 의아스러워하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말도록. 내가 다 물린 것이다.”
“어째서……”
“그리고 경고하지. 다시는 그 입술로 나를 [소공작]이라 부르지 마라.”
은백합 영애는 미소를 지었다.
“네 심장을 도려내어 죽여버리겠다.”
“…….”
이해할 수가 없다.
방금, 은백합 공작 영애는 나에게 살기를 품었다. 죽여버리겠다는 말. 그건 절대로 허언이 아니었다. 허세도 아니었다. 한 번만 더 ‘소공작’이라 부르면 틀림없이 그녀의 레이피어는 내 심장을 꿰뚫는다.
그럴 것인데.
‘왜?’
왜 공작 영애가 내게 보낸 살기는 차갑지 않고, 이다지도 포근하기만 한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선언은 이토록 편안할 수 있었는가.
“이리로 다가오라.”
그녀의 목소리가 손짓처럼 나를 불렀다.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은백합 공작 영애에게 다가서자, 그녀는 내게 전신거울을 가리켰다. “무엇이 보이는가?”
“……영애께서 저와 나란히 서 계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복도가… 달빛이 겨우 비추어서. 영애와 저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전부 어둠에 파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공작 영애가 물었다. 기이했다. 그녀는 다른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에서 내가 봐야 할 것이 아직 남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거울에 무엇이 더 비추겠는가?
“그리고 또 무엇이 보이느냐.”
“…….”
“숨기지 말고 말하여라.”
나는 조금 더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미간을 좁히고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보이는 것은 대동소이했다.
‘역시 어둠밖에 안 보인다. 유난히 붉은 눈동자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찌잉! 두통이 엄습했다.
이해하지 못할 글자들이 눈앞에 스치었다.
+
■■■
■■■: ■■
■■ [■■], [■■■], [■■], [■■]
■■ ■■
■■ ■■■: [■승], [연■], [■■■ ■■], [■■■], [■■■], [■■■■], [■■], [■■■ ■■■ ■ ■■ ■], [■■■■ ■■■■ ■],
[■■ ■■■■■]+
“웁, 후읍……?!”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김■자 ■圖 제■ ■ ■■ ■려 !
[■■■■ 용 ■■■ ■■■■■ ■■■■다!]반사적으로 나는 손으로 내 목을 감쌌다. 그리 한 순간 목이 아팠는데 , 그 이유를 나 스스로는 몰랐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놔둘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다른 것을 생각했다.
‘속이 비어 있어서 다행이야.’
구토를 일으키진 않았으니. 이반시아 공작가의 적녀 앞에서 구토라,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구역질을 삼켰다.
은백합 영애는 담담했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참 냉정한 사람.
혀끝에 쓴맛이 퍼졌다.
“글자가… 이상한 글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목소리… 이상한 목소리들이… 잘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라.”
은백합 영애는 그 말에 아주 살짝 웃었다. 이번의 미소는 조금 전의 미소보다 더 미소 같았다.
“사랑받고 있구나.”
“무슨 말씀을….”
“글자에 대해 말해보라.”
설명도 없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버리는 그녀를, 나는 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덧 미소를 마르게 만든 그녀는 다그치는 기색 하나 없이 다만 담담하게 반복했다.
“이상한 글자가 보인다 하지 않았느냐. 말해보아라.”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완전한 글자들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글자의… 파편…?”
“파편 하나라도 읊어보아라.”
“승… 연… 그것 이외에는, 도저히. 아무것도.”
“음.”
은백합 공작 영애가 턱을 짚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눈썹을 오므리고 있었다.
“과연. [승]은 [스승]이고 [연]은 [연인]이렷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긴 것이 퍽 그대답다. 하지만 연인보다 스승이 앞에 위치한 것인가? 이해는 된다만, 마음에 안 드는군.”
“영애님, 아까부터 이해하지 못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영애께선 이것이 꿈이 아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나는 그대를 원한다.”
“송구합니다.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
“무슨 꿈을 꾸었는가?”
은백합 공작 영애는 내 말을 간단히도 잘랐다.
‘아무리 이반시아 가문의 적녀라지만-.’
‘엄연히 금사매 아가씨의 하나뿐인 집사이며-.’
‘황태자 전하께서 아가씨를 총애하시거늘, 이런 대우는-.’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헝클어졌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나의 심장을 울리진 못했다. 리듬을 잃어버린 음악처럼 흔들릴 뿐. 곧 허물어질 뿐.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꿈속에서……”
결국 내 입에서 진동을 얻은 것은, 공작 영애의 질문에 순종하는 대답이었다.
“꿈속에서.”
“……영애께서 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다.
“저는 의자에… 아마도 의자에 온몸이 묶였습니다. 밧줄 같은 것으로. 왜 묶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화려한 방에서 오직 영애께서만 계시어, 저를 내려다보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분명히 나는 그런 광경을 보았다.
“심장이 아팠습니다. 가슴이… 영애께서 찌르신 칼날에 뚫려서. 그렇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그대는?”
“……영애께 무척이나 죄스러운 마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래.”
은백합 공작 영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울어버릴 것 같아,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적어도 죄송할 줄은 알아서 다행이군.”
“…….”
“그대가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아는가?”
“아니요. 모릅니다. 전혀….”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진 [트라우마]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아직 말한 적 없지. 내 어머니는 자살했다.”
뭐 ?
머리가 충격을 받아 하얘졌다.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라서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공작가의 부인. 이반시아의 달. 그만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삶을 끝내다니. 이유를 알 수 없으되, 어머니가 마지막 밤에 나를 불러서 속삭인 말들, 그리고 모두가 어머니의 죽음을 쉬쉬하며 조용히 화장(火葬)시킨 광경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건.
이건, 내가 알아서는 안 될 말이다. 들어서도 안 될 말이다. 이반시아 공작가에 그런 흉사가 숨겨져 있다니. 차마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기에도 버거운, 참담한 비밀.
“허나.”
은백합 공작 영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억조차 나의 트라우마는 아니게 되었다.”
“…….”
“태자 전하께서 오늘 금사매에게 푸른 산호의 반지를 건네주었다지.”
한 발자국.
은백합 영애가 내게 다가왔다.
“지난 삶에서는 그것에 절망했다. 혹은 분노했다. 시기했고 질투했다고 말해도 좋다. 모든 것이 내 심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세상을 저주하는 마음에서 칼을 들었고, 스스로 거울에 비친 심장을 찍어 눌렀다.”
발소리는 없었다.
그제야 그녀가 맨발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더 이상은 나의 트라우마가 아니다.”
꾸욱.
영애의 발이 내 구두를 밟았다.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몸무게가 나의 한쪽 발을 옭아맸다. 물러서려면 얼마든지 물러설 테고, 벗어나려면 언제든지 벗어날 텐데, 그녀의 반쪽짜리 몸무게에 나는 전신이 붙잡혔다.
“영원처럼 반복했던 열흘도.”
영애의 손이 가까워졌다.
“내 세상이 핏물에 물들어 멸망하는 모습도. 나의 혓바닥과 입술을 흉내 내어 비웃음을 퍼트린 악마의 형상들도. 한때 나의 심장을 흉지게 한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내 트라우마가 아니다.”
얇은 손아귀.
“아니게 되었다.”
목.
“이제부터 나의 심장을 다치게 할 자격은 오직 그대만이 독점한다.”
그녀의 양손이 내 목을 가볍게 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혀를 가진 자가 이틀 동안 저주를 퍼붓는다 해도, 그대가 내게 무심결에 던진 한숨보다는 못하다.”
소지에서 검지에 이르기까지. 가장 얇은 손가락부터 가장 굵은 손가락까지, 그녀가 내게 가하는 압력 하나하나가 전부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악의를 품은 자가 매질하고 채찍질하여도, 그대가 내게 흘리는 비웃음 한점보다 못하다. 이 세상에 내 몸을 죽일 수 있는 자가 무수하여 헤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을 상처입히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 하나뿐이다.
숨이 막혔다.
“그러니 나의 트라우마는 이미 하나로 정해져 있다.”
목이 조였다.
“영, 애……”
“멍청한 것. 나는 그대에게 똑똑히 경고했다.”
『내 심장에 흉터를 내면 죽여버리겠다.』
“그대. 나에게 흉터를 냈구나.”
따뜻한 살의.
붉은 눈동자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 살 이후로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죽어라.”
“……, …….”
“죽어서 다시 나를 사랑해라.”
나는.
어째서인지 저항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죽었습니다.]그리고.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합니다.] [패널티 심도는 중(中).] [아귀도입니다.]꿈 속의 꿈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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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지 않다.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면서 라비엘 이반시아는 생각했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독점욕이 강한 인간인지, 라비엘 이반시아는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공녀. 생각해보세요. 공녀라면 제가 떠올린 것과 정확히 똑같은 걸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공녀도 저와 같은 회귀자니까요.
위험한 남자.
라비엘은 그가 무엇을 꾀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그는 ‘집사’라는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길 자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집사의 시점’에서 하루 회귀하게 되면, 아직 자신이 거울에 심장을 바치기 이전의 시간대로 돌아간다.
게임판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군.’
그야말로 탑의 허점을 찌른 계책이 되리라.
‘얼굴은 순하면서 어느 머리로 이런 계략을 꺼내는 것인지.’
자신이 사랑하게 된 남자가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그래.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비엘 이반시아는 반대하였다.
-공자여. 위험하다.
이유는 명료했다.
-내가 그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 라비엘 이반시아가 김공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설령 그대가 하루 전으로 돌아가서, 거울에 칼을 박으려는 자신의 행동을 말려주고, 그리하여 영원한 열흘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와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한 나날.
처음으로 내게 허락해준, 보름의 휴일.
그 모든 기억이 지금의 자신을 이룬다. 그것이 없어지면 더 이상 라비엘 이반시아가 될 수 없다.
알고 있는 것인가, 눈앞의 남자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열흘의 미로에서 탈출해봤자 전혀 고맙지 않다는 사실을.
-괜찮아요.
아마도 알고 있었나 보다.
-어떻게든 반드시 해결할게요.
저다지도 얄밉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저를 믿어주세요.
-…….
라비엘 이반시아는 침묵했다.
그 말의 지독함에 잠시 마비되었다. 믿어달라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믿으라니. 뒤늦게, 뒤늦게나마, 당신을 믿겠노라고 약속한 며칠 전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마비와 후회에 잠겨 있기엔, 라비엘 이반시아는 너무도 다급했다.
‘믿는다.’
사랑하는 남자를 믿는다. 이 남자의 유능함을 믿는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다. 자신의 사람이다. 분명히 그는, [어떻게든] 탑을 설득하여 하루 전으로 회귀하는 데 성공하리라.
진정한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90% 너머까지 올라간 몰입도를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그가 하루 전으로 회귀하는 데 성공하면, 우선 틀림없이 자신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한다. 설령 기억하더라도 어렴풋한 느낌에 불과하겠지. 자신과 함께 보낸 나날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란 불가능하다.
‘…….’
아니다.
‘잠깐만.’
방법이 있다.
그렇게 떠올린 방법에 라비엘은 신음하며, 또 한 차례 신음했다. 제국의 모든 독은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나온다는 평가가 그녀의 머리를 스쳐갔다. 오래는 아니었다. 오래 그럴 수가 없었다.
라비엘 이반시아는 자신이 그 방법을 결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리하여 라비엘 이반시아는 자신이 떠올린, 자신이 결행할 방법을 스스로의 심장에 되새겼다.
‘내가 이 남자를 죽이면 된다.’
트라우마.
그는 자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 고백했다. 알려주었다. 그가 가진 능력에는, 자신을 죽여버린 상대방의 기억을 엿보는 부작용이 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트라우마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는 자신을 죽인 순간에 [지금]을 엿볼 것이다.
자신의 과거 따위가 아니라,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을.
-…….
그렇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건네주고 싶은 기억, 모든 것을 다시 알려줄 수 있다.
-그는 나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그래.
라비엘은 성공을 확신했다.
-내가 그대의 첫 번째 개새끼가 되었으니, 그대는 나의 마지막 개새끼가 되겠지.
공자여.
-정말로, 나쁜 남자를 연인으로 두게 되었어.
듣고 있는가.
나는 그대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대와 함께 보낸 시간을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대는 말했다. ‘오늘부터 일기를 쓰겠습니다’라고. 내게 그대의 하루를 모두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 말한것이다. 그 말, 거짓말이었는가?
그대는 말했다. ‘음악을 배우겠습니다’라고. 내가 그대의 음악을 들으며 조용한 저녁을 맞이하길 바라서다. 그 소원은 정녕 거짓이었는가?
나는 그대의 하루를 보고 싶다. 그대와 함께 저녁을 송별하고 싶다. 그대의 하루는 분명히 내게 미소를 짓게 할 것이며, 그대와 함께 하는 저녁은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나의 미소와 그대의 행복이 겹치길 원한다.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괜찮은가?
-예…… 아직은, 괜찮아요…… 더.
-더 키스해달라는 말인가. 참으로 응석꾸러기다, 나의 연인은.
나를 보아라.
나와 함께 한 그대를 보아라.
그대는 얼빵한 사람이다. 순진하기까지 하다. 그런 순진함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의문이다만, 곧 의문이 풀리기도 하는 것이, 그러니까 수천 번이나 죽어버린 것이리라.
순진함을 버려야 할 이유는 많고도 많다. 순진함을 지켜야 할 이유는 적다. 이유가 많아도 버리지 않고, 이유가 적어도 지키는 그대를 나는 순수하다 말한다.
나는 그대의 순수를 애정한다.
-아직 괜찮은가?
-라비엘…….
자신을 잃을 것 같아서 두려운가. 무서운가.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라비엘 …….
-알고 있다.
괜찮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내가 이곳에 있다.
내가 그대를 믿듯이, 그대도 나를 믿어라.
내게 의지하여라.
-그러니까, 제가 절대로 당신을 잊지 못하게. 제가 죽어도 당신을 잊지 못하게……
-알고 있어.
그대 한 사람으로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
나 한 사람으로는 세계를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와 나, 두 사람이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나 역시 두렵다. 그대를 죽이는 것이 무섭다.
내게 상처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대에게 다가서는 것이, 지독하게도 두렵다.
하지만 나의 두려움은 그대와 함께하는 데 어떠한 방해물도 되지 않는다.
보아라.
-……맙소사.
이윽고 집사의 배역에 침몰해버린 그대가 내게 말한다.
-소공작님.
욱씬.
가슴이 저리다. 아프다.
나를 [공녀]가 아니라 [소공작]이라 부르는 그대가 한스럽다.
-설마 지금 저를 납치하신 것입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의심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프다. 나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과합니다. 제아무리 이반시아 공작가의 권력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라 하더라도 이건 과합니다. 금사매 아가씨가 그리도 미우셔서 시종인 저를 겁박하시렵니까.
들어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남긴 상처다.
-공자여.
잊지 마라.
-……누구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절대로. 죽어서도 잊지 마라.
-나의 연인.
나에게 심장을 바친 남자.
-내가 심장을 바칠 남자다.
너는 이곳에.
나의 심장에 거한다.
-다녀오거라.
-…….
-나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마.
듣고 있는가.
들리는가.
공자여.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
1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