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2)
너도 스킬이 있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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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오오오오!
오크가 포효하였다.
어쩌면 포효한 게 아니라, 단순히 잠깐 으르렁거린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겐 기나긴 아우성으로 들렸다. 무려 50초! 일분 남짓한 시간 동안 오크의 울부짖음은 계속 내 귓가에 울렸다.
“크, 윽···!”
머리가 찢어질 듯한 고통.
-야. 빡집중해라.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배후령이 일갈했다.
-오크 같은 잡몹한테 쫄지 마! 오크는 무식하게 힘이 셀 뿐이지 공격 패턴은 단조로워. 어디로 공격해올지 미리 알 수만 있으면, 쉽게 피할 수 있고 반격할 수도 있어. 존나 개껌이라고.
“그게··· 말이 쉽, 지···!”
-온다.
부웅!
오크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고 있었다. 천천히. 몽둥이는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내 머리통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20초도 안 지나서 내 머리부터 박살 나겠지.
“씨, 발!”
나는 온 힘을 다하여 옆으로 뛰었다. 그렇지만 생각대로 몸이 안 따라줬다.
‘느려터졌어!’
고작 한 걸음. 한 걸음만 뛰면 오크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 한 걸음이 너무도 느렸다. 속이 답답했다.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히 피할 수 있는데! 어디로 공격해올지 빤히 아는데도!
-피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배후령이 나직하게 말했다.
-오러를 발에 집중해. 각력을 강화시켜! 심장에 고인 흐름을 오른발에 흘려보낸다는 느낌으로, 어서!
젠장.
‘귀신이면서 입만 팔딱 살아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오러란 걸 느껴봤다. 그걸 무슨 수로 다리에 집중시키겠는가. 정말 말이 쉬웠다.
그렇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시도를 해봐야지. 아무리 내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해도, 오크의 몽둥이찜질에 머리가 터져나가긴 싫었다!
‘움직여라!’
심장의 흐름. 핏물보다 묽은 그것은 어쩐지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 났다. 맑게 갠 시냇물 같다고 할까? 그 시원한 감각에 집중하여, 오른 다리를 향해 내보내려 했다.
꿈틀.
조금은 애쓴 보람이 있어서 오러가 심장에서 꿈지럭거렸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어려웠다.
-아직 오러가 돌아다니는 통로가 몸속에 없어서 그래. 도로가 안 뚫린 거지! 지금 네 몸을 비유해보자면 깊은 산속 오솔길이야. 이걸 고속도로 수준까진 뚫어놔야 비로소 오러 좀 쓸 줄 안다는 말을 듣는단다.
“흐, 읍···!”
배후령이 주절거리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오른다리에 집중했다. 심장이 꽉 막힌 수도꼭지라면, 오른다리는 그 아래에 놓인 컵과 같았다. 한 방울. 한 방울.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오러가 찔끔거리며 떨어졌다.
-그나마 지금은 영약을 먹어서 오러가 느껴지기라도 하는 거야. 평상시라면 어림도 없어. 쯧. 그 아가씨가 위생은 참 더러운데 실력 하나는 확실하네.
휘익!
몽둥이가 풍압을 일으켰다. 아찔하게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후욱! 몽둥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작은 돌풍이 불었다. 바람이 내 살결에 부닥쳐서 산산이 흩어졌다. 아마도 1초. 아니, 0.5초만 더 늦었더라면 몽둥이질에 온몸이 바스러졌을 거다.
“어, 떻게···.”
오크의 일격을 피했다고 안심한 것도 잠시.
“됩니, 까···?”
오크가 푸르륵, 하고 코끝을 울렸다. 마음에 안 들었겠지. 나처럼 약해 보이는 먹잇감이 감히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오크 녀석은 곧바로 다시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크르르륵!
이번엔, 내 허리를 날려버리려는 수평 베기.
쉴 틈 따윈 없었다.
나는 오러를 상반신에 집중시켰다.
-응? 뭐가 어떻게 되냐니?
“오솔, 길을··· 고속도로처럼 뚫게, 되면···!”
역시 어려웠다. 심장의 수도꼭지는 여전히 꽉 막혔다. 물이 콸콸 흐를 기미 자체가 안 보였다. 당장 내 목은 타서 갈증이 말랐으나, 오러는 기껏해야 한 방울 찔끔 흘러나올 뿐.
‘분하지만 배후령이 한 말이 맞아.’
인적 하나 없어 잡초에 뒤덮인 오솔길.
지금의 나한테 참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만약 이 수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탈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흐.
배후령이 피식 웃었다.
-너. 마르쿠스 할아범한테 죽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목이 따였지?
그랬다.
나는 밤하늘의 초승달이 뉘이던 그 광경을 떠올렸다.
배후령의 말이 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그게 딱 깨끗한 가로수 길 수준이라고 보면 돼.
“······.”
가로수 길.
그만큼 아름다운 일격이, 겨우. 고작해야 가로수 길 수준이라니.
-마르쿠스 할아범도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은 셈이지. 넌 뭐 말할 필요도 없고. 좀비야. 내가 괜히 인성이 쓰레기여서 널 갈구는 게 아니라, 다 갈굴 만해서 갈구는 거란다. 낄낄.
까득.
내가 이빨을 물었다.
-으음?
오기가 생겼다.
“흡···!”
나는 상반신을 엎드렸다. 부우우웅! 오크의 몽둥이가 허리 위의 허공을 지나쳤다. 아슬아슬했다. 첫 번째 공격에 뒤이어서 두 번째 공격을 간신히 피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 공격까지 허락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쭈?
무릎에 힘을 모았고.
-이거 봐라.
그대로 발바닥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그저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되도록 용수철처럼 구부리려고 애썼다. 5초. 3초. 1초. 어설프지만 오러가 모였다 싶었을 때, 나는 전력으로 뛰어올랐다.
검을 세웠다.
목표는 오크의 목젖!
-그오?
몬스터가 어리둥절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눈동자에 내가 비추었고, 내가 내지른 칼끝이 비추었다. 눈동자에 비춘 내 칼은 점점 더 커졌다. 찰나의 간격. 내 칼이 목젖을 찔렀으며, 오크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크라아아아!
저녁 하늘 아래. 드넓은 사냥터에 비명이 퍼졌다.
됐다, 라고 내가 생각했을 때.
-끝까지 방심하지 마!
배후령이 외쳤다.
-오크의 살은 두껍다! 칼끝에 오러를 집중해! 아니, 그건 너무 어렵겠다. 아예 그냥 때려 박는단 느낌으로 쏟아부어!
그렇게 했다.
-크아아아아아!
오크의 비명이 격렬해졌다. 심장에서 흐르는 오러의 한 방울을, 끝까지 쥐어 짜내어, 모조리 다 칼에 때려 박았다. 칼끝에 한 방울의 오러가 스며들 때마다 몬스터가 내지르는 비명은 더욱 고통에 물들었다.
-크오, 그아··· 크르르···!
파앗!
피가 튀었다. 오크가 흘리는 피가 느릿느릿, 슬로우 모션처럼 내 얼굴을 덮쳤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방울의 오러라도 더 칼날에 싣기 위해 발악했다.
“죽어, 라···!”
아주 짧은 순간.
칼끝이 오크의 목을 정반대편까지 꿰뚫은 느낌이 손에 잡혔다.
-그르르르··· 르···.
오크가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는 시간마저 길었다. 오크는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털썩! 내가 끝내 칼자루를 놓치지 않았으므로, 몬스터가 쓰러질 때 나도 덩달아서 엎어졌다.
“허··· 억, 욱···! 후윽···!”
나는 오크의 시체를 내려보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힘겨운 것은 호흡뿐만이 아니었다.
욱씬. 한발짝 뒤늦게, 전신에 격통이 찾아왔다. 눈앞이 핑 돌았다. 과장 없이 진짜로 사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으윽···!?”
-아프냐? 아프지? 암. 존나 아플 거야.
배후령이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깐죽거렸다.
-아직 통로도 제대로 뚫어놓지 않은 주제에 함부로 오러를 썼으니. 네 허약한 몸이 버틸 리가 없지! 쌤통이다.
“이, 나···쁜···!”
-아. 그래도 맨 마지막에 오러를 용수철처럼 구부린 건 좋았다. 그건 잘했어. 칭찬해주마. 항상 오러는 창의력을 발휘해서 써야 되거든.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지만, 원래 머리가 좋은 놈일수록 싸움도 잘해.
그딴 것은 지금 궁금하지 않았다.
“히, 훅···! 크윽···!”
이 고통!
뼈가 으스러지고 혈관이 터지는 아픔. 이 격통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느냐만이 당장의 관심사였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무뎌지기 마련인데, 영약 때문에 시간이 한없이 늘어진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아팠다. 계속 아팠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죽을 것처럼 아프냐?
“보면, 모릅···니까···.”
-그럼 진짜 죽으면 괜찮아지겠네.
뭐?
-억지로 오러를 뚫으면 원래 사람이 반병신이 돼. 이건 포션을 먹어도 고칠 수가 없어. 영구적인 상처걸랑. 그러니까 넌 방금 오크 한 마리 잡겠다고 스스로 병신이 된 거지.
“무, 슨···.”
-말했잖니, 좀비야. 네가 회귀 스킬만 가지지 않았으면 나도 이런 수련법은 권하지 않았다니까? 마르쿠스 할아범도 영약은 먹지만 그냥 가부좌 좀 틀고 말지. 너처럼 무식하게 몬스터한테 덤비진 않아.
이 귀신 놈이?
-그치만 넌 죽으면 다시 돌아가잖아. 개꿀인 거지! 아무리 과격한 수련법을 써도 몸이 멀쩡하다니, 이야. 부럽다. 너무 부럽다. 나도 너같이 회귀 스킬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와.
어쩜 이렇게 얄미울 수 있지?
혹시 이 양반한테 패시브 스킬로 [깐죽거리기]나 [싸가지 없음]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안 그럼 인성이 저토록 쓰레기인 이유가 설명될 수 없었다.
-좀비야. 근데 너 자살하면 또 킬 카운트 올라가잖아.
“그래··· 서요···?”
-괜히 여기서 더 킬 카운트를 올릴 필요는 없지. 마르쿠스 할아범한테 눈에 띄면 위험하고.
쿠웅.
등 뒤로 불안한 소리가 장엄하게 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였고, 들어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소리였다. 뒤쪽을 돌아보니까 불안한 예감이 맞았다. 아까 쓰러트린 오크랑 똑같이 생긴 몬스터가 침을 질질 흘리며 서 있었다.
“젠··· 장···.”
몬스터는 똑같았건만 내 상태는 똑같지 못하였다. 배후령이 인증한 대로 내 몸은 현재 반병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전신이 고통스러웠다.
-괜찮아! 평생 가도 오러를 터득하지 못하는 헌터도 차고 넘치는데 넌 영약 빨고 한 번만에 어느 정도 감 잡았잖냐. 이 기세로 쭉 가면 아마 100번만 죽어도 충분할걸?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100데스도 1데스부터.
배후령이 씩 웃었다.
-우리 좀비 화이팅! 일단 1데스 가즈아!
그것과 동시에 오크의 몽둥이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정확히 내 정수리를 노리면서.
나는 코앞까지 들이닥친 몽둥이를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에··· 라이···, 씨··· 발···.”
퍼어억!
차례대로 코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박살 나며 뇌가 터지는 거, 느껴본 적 있는가?
없겠지. 없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뭐 같은 기분이거든.
그나마 위안이 된 부분이라면 뇌가 터지자마자 목소리가 들렸다는 걸까.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시간 감각이 되돌아왔다.
‘후우···.’
새까만 공간.
내가 죽고 난 다음 회귀하기 전까지 잠시간 머물다 가는 곳.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곳에··· 익숙해지기 싫은 누군가가 둥둥 떠 있었다.
-응?
배후령이었다.
-와. 이건 또 뭐냐?
‘···죽었을 때 잠깐 머무르는 곳이요. 염제랑 검성한테 죽었을 때는 여기서 스킬 카드를 골랐죠. 뭐, 저는 임시로 명계(冥界)라 부르려고요.’
-존나 신기하네.
배후령이 어두운 공간을 휙휙 둘러봤다.
-그런데 좀비야. 왜 나까지 여기 있냐?
‘저라고 알겠어요? 아마도 댁이 저한테 씌어서 그런 거겠죠.’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 좀만 기다리면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라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회귀해요. 아 참. 댁도 저랑 같이 회귀하게 되는 건지 아닌지는 저도 좀 궁금···.’
궁금하네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죽음으로 인해 스킬 조건이 달성됩니다.] [몬스터 오크의 스킬을 무작위로 카피합니다.]‘···어?’
-뭐?
나와 배후령이 동시에 멈칫했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 쳐다봤다. 배후령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마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스킬 카드를 형성합니다.]어둠 속에서 동색 카드가 두 장 떠올랐다.
나는 그걸 올려다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몬스터도 스킬을 갖고 있었어?’
그리고 배후령은 소리쳤다.
-이게 뭐야! 개사기잖아!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