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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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야기에 홀린 자’들에겐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를 즐기는 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홀려버린 사람들. 미쳐버린 사람들. 푹 빠지고 또 빠지어서, 마침내 인생의 반절을 이야기에 바쳐버린 이들.
그들에게 현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세계]의 일에 불과하다. 극적인 반전이 없다. 충격적인 결말이 없다. 사람은 사람에 불과하지, 결코 [등장인물]로 거듭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실망.
인간에 대한 경멸.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에 대한 숭배.
실망과 경멸, 숭배야말로 ‘이야기에 홀린 자’들의 정체다. 바로 그러기에 현실에 이야기가 펼쳐질 때 그들은 열광하며, 인간이 등장인물로 거듭날 때 그들은 환호한다.
그들은 심장의 온도를 잃어버린 게 아니다.
다만 열광하고 환호할 순간을 기다릴 뿐.
“…….”
지금 내 눈앞에 모든 독자의 끝판왕이 서 있다.
“레, 레판타 아이김과…… 그대의 크로스오버라니.”
그 사람은 이야기를 사랑한 나머지 직접 도서관을 지었다.
“확실히, 그건, 매력적인 제안이오만.”
그 사람이 지은 도서관은 세계 하나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하고 장대하여서, 만물의 사상을 담았다 하여 만상(萬想)의 대도서관이라 불리었다.
”그렇소만, 본좌는 그대들에게 묵시록밖에 제공할 수 없고. 그것이 본좌가 내세운 철칙이라서. 모든 이야기는 자기 스스로 완결될 권리를 갖고 있으매, 본좌가 섣불리 개입해서는……”
그 사람은 지금 입술이 떨리고 있다.
‘흔들리고 있군.’
나는 확신했다. 도서관장은 결국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현실적인 논리를 들이대도 도서관장을 꼬득일 수 없겠지.
그러나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느냐]라는 말.
이 한마디라면 도서관장을 지옥까지 유혹해낼 수 있다.
“아. 보고 싶지 않으면 관두시고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인 것이다.
“전 그냥 댁한테 관대한 제안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등장인물들이 둘이서 함께 있는 장면을 만들어주겠다고요. 싫으면 마세요.”
“…….”
“하지만, 정말로 보고 싶지요?”
도서관장의 낯빛이 실시간으로 변했다.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뇌. 고민. 본래라면 읽는 것이 불가능한 크로스오버, 화려한 디저트에 대한 욕망.
“본좌는……”
결국, 도서관장이 입술을 열었다.
“탑과 계약을 맺었소.”
입술에서 흘러나온 숨은 뜨거웠다.
“모든 성좌가 탑과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오. 오직 계약을 체결한 성좌만이 입탑(入塔)할 수 있지. 일종의 세입자라오. 본좌는 탑에서 한 층을 빌리는 대신, 이런저런 [제약]을 짊어지게 되었다오.”
“무슨 제약인데요?”
“오직 ‘묵시록’만을 인간들한테 제공해줄 것….”
도서관장이 손을 휘저었다.
손짓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툭, 투욱, 관장의 주변을 맴돌던 책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묵시록이란, 다양한 의미를 갖소만은.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는 그 중 하나에 해당되지 않소이다.”
그 책들은 도서관장의 호위병이나 다름없었다. 일전에 헌터들이 작심하여 공격했을 때, 도서관장은 다름 아니라 책들의 힘을 빌려서 제압했던 것이다.
“계약은 계약… 본좌 마음대로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오. 탑이, 탑의 주인이 무척이나 본좌에게 화를 낼 것인데. 본좌는 탑주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구려. 음. 자고로 세입자란 건물주한테 약해지는 법 아니겠소…?”
즉.
도서관장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있었다.
“차, 참고로 말씀드리요만….”
수십 권에 이르는 책들이 전부 떨어졌다. 자신이 거느린 힘을 모조리 무력화시킨 채, 도서관장은 나를 바라보았다.
“본좌는 사실, 일신의 무력은 대단할 게 없소이다….”
“…….”
“본좌뿐만 아니라 많은 성좌가 그러하오. 특별한 힘을 가지고는 있으되, 의외로 싸움에는 영 서투른 경우가 곧잘 있소. 본좌도 책이 없으면 단순히 허약한 독자에 불과하지. 음. 그러니까….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소, 공자…?”
과연. 잘 알겠다.
“예. 계약을 어기면 안 되죠.”
나는 도서관장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도서관장은 양손 옷소매를 가지런히 맞물리게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요.”
나는 도서관장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가뿐했다. [방구석 도서관장]의 몸무게는 가벼웠다.
옷소매가 워낙에 길고 두껍긴 했어도, 일단 들어 올리자, 저항감이 없었다.
“윽…!”
도서관장이 숨을 흘렸다.
“얌전히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를 내놓으십시오.”
“아……”
도서관장의 입술에 걸린 떨림이 더 요동쳤다. 협박과 강요. 한세계의 주인인 성좌가 일개 헌터에게 협박당하고 있음에도, 도서관장은 아무런 저항도 안 했다.
“무례하구려…. 본좌가 지금껏 그대에게 한없는 호의를 보여주었건만. 그대를 믿었건만. 이런 식으로 본좌를 배신할 줄이야…! 아아. 원통하도다. 이래서 수많은 이야기에서 인간을 믿지 마라 경고한 것이구료….”
이 양반 연기 실력이 형편없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멱살을 좀 더 강하게 쥐었다. 힉, 하고 도서관장이 신음했다.
“내 놔라.”
“…….”
“안 그러면 죽여버린다. 변태 자식아.”
나를 올려보는 도서관장의 안색에 서서히 그늘이 끼었다. 우리는 한판 연기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장은 내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낀 것이다.
당연하다.
탑을 속일 정도의 협박이라면 어느정도 진실이어야 한다.
“벼, 변태라니. 공자여. 말씀이 너무 심하다오…?”
“사람 머리카락이랑 손톱을 수집하는 놈이 변태지 뭐냐. 당신, 레판타 아이김한테 살해당하는 게 일생의 꿈이라며. 소원이라면서.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등장인물한테 죽고 싶다는 게, 그럼 정상이냐?”
도서관장이 입을 다물었다.
“아. 참. 생각해보니까 나도 당신이 사랑하는 등장인물이지.”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기다리지 말고 지금 소원을 이루어줄까.”
“지금……?”
“여기서, 내 손에 죽을래?”
도서관장이 움찔, 어깨를 오므렸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경련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길에 선망과 욕망이 흘렀다. 도서관장은 떨리는 손으로 조금씩, 천천히, 자신의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이미 수백 번을 읽어 손때로 얼룩진, 낡디 낡은 한 권의 책. 무수한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관장이 제일 아끼어서 직접 품에 담고 다니는 서적.
“그대에게 드리겠소….”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그 귀물(責物)을 도서관장은 내게 바쳤다.
“잘했다.”
나는 여전히 멱살을 놓아주지 않고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를 한손으로 낚아챘다. “아”, 하고 도서관장이 입을 벌렸다. 도서관장의 얼굴은 이제 엉망진창이었다. 희열과 자기혐오가 뒤섞여서 흐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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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타 아이김 서사시]장르: 현재 등급으로는 열람이 불가합니다.
난이도: 현재 등급으로는 열람이 불가합니다.
제한 인원: 현재 등급으로는 열람이 불가합니다.
※현재 연재 중입니다.
소개: 현재 등급으로는 열람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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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도서관장이 허락한 책이 아니면 아예 읽을 수가 없는 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흥미를 느끼면서 도서관장을 내려봤다.
“안 보이는데? 안 읽히고.”
“그, 그야 묵시록은 본좌가 허락했으니 그대들한테 보이는 것이지…. 본디 이곳에 소장된 책들은 모조리 금서(禁書)라오. 인간들에게 함부로 읽혀서는 아니 되오….”
“그럼 네 입으로 설명해. 직접.”
“…….”
도서관장은 내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자기가 제일 사랑한다고 밝힌 인물. 레판타 아이김의 인생역정을 도서관장은 스스로 고백하게 되었다.
“레판타 아이김은… 살천성은 그대와 동향(同鄕)이라오.”
“뭐?”
“그대와 똑같은 세계, 똑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종족으로 태어난 인물이오. 심지어 동향일 뿐이 아니라 동성(同姓)이기도 하지.”
그리고 도서관장이 운을 뗀 말들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도서관장은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아이김이란 성씨는 살천성이 직접 지은 것이오. 간단하게 조립된 단어라오. 그대가 태어난 지역이 아니라 영국의 언어를 사용했소만.”
영국? 영어?
‘아이’와 ‘김’이라면.
“……설마 ‘나’는 ‘김 씨’다 라는 뜻이냐?”
“정확하오.”
세상에.
“말씀드리지 않았소? 한 번은 우연이라 할 수 있소. 두 번은 인연이지. 세 번에 이르면 필연이 된다오. 그대와 살천성은 이미 수많은 접점을 맺어버렸기에, 필연으로 이어진 사이라 할 수 있소.”
예상치 못한 살천성의 정체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동향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지낸 동향 사람은 포니테일이 더럽게 잘 어울리는 망나니밖에 없다. 거기에 살천성까지 내 동향이었다니.
‘이래서야 내 동향 사람 중에 제 정신인 건 나밖에 없다는 소리잖아?’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내 동향에 대한 회의감이 치밀던 때였다.
“살천성은, 어린 시절 이세계에 소환을 당했소.”
도서관장이 말했다.
“그 때 살천성은 고등학생에 불과했다오. 당연히 이세계로 소환된 살천성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소. 하지만 이세계로 소환되면서 이능력을 각성하여, 험한 세상을 잘도 헤쳐나갈 수 있었다오.”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플롯 아니던가.
“이세계로 소환된 고등학생이라니. 그거 완전….”
“그렇소.”
도서관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의 장르는 [이세계로 건너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치는 것]. 줄여서 약칭으로 부르길, 이른바 [이고깽]이라오. 살천성이 더 이상 고등학생으로 불릴 나이가 아니긴 하외만….”
나는 입이 벌어졌다. 이고깽이라니.
‘그건 내가 어릴 적에 이미 공룡이랑 같이 멸종한 단어라고 들었는데.’
그런가.
살천성, 레판타 아이김은 공룡과 같은 존재였던 것인가.
“물론, 단순히 [깽판]을 치는 인물이라 말하면 살천성이 억울할 것이오. 아이김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기까지 살천성은 실로 무수한 역경과 고난을 겪었다오….”
그렇게 도서관장이 레판타 아이김에 대한 이야기를 읊을 때마다, 목소리는 빛이 되어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스며든 빛은 읽을 수 있는 문자로 화하여 서사시 안에 자리잡았다.
-아주 오래 전.
-태고의 용제(龍帝)가 죽어 남긴 시체 위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살천성은… 그대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20층에 발을 딛었소.”
-그들은 영웅을 바랬다.
-그들 중에 영웅이 없었으므로.
“바로 거기서부터 세계를 꿰뚫는 여정을 시작했지.”
-신에게 그들은 바랐다.
-신은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것은 나라를 세우는 여정이었소….”
그리하여 다른 묵시록들처럼 차즘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그 책을, 도서관장은 차라리 두려워하는 것처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살천성은 50층에 자리잡고 있소.”
50층.
배후령이 말했던 살천성의 위치와 같은 장소.
“여기에… 문제가 있소. 그대들은 아직 50층까지 공략하지 못했소. 아직 [초보자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오. 그리고 더 윗층이면 모를까, [50층]은 정말이지 특별한 곳이어서… 초보자들을 50층으로 전송시키는 것은 엄격히, 정말로 엄중하게 금지되어 있다오.”
그 말에는 숨죽이고 듣고 있던 다른 이들마저 놀랐다.
“50층 이하가 초보자 영역이라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나는 놀라지 않았다.
10층까진 튜토리얼로 취급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았다. 50층부터는 이세계 헌터들과 경쟁하게 된다는 사실도 배후령으로부터 들었다.
‘거꾸로 말해 50층 전까지 이세계 헌터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건 초보자 보호를 위한 조치겠군.’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나는 말했다.
“금지되어 있다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50층으로 올려보내줄 수 없다는 거야?”
도서관장의 얼굴이 다시금 허물어졌다.
“그건… 아니오. 올려보내는 자가… 관리자가 대가를 치르면 가능해지는 일이오.”
“그럼 상관없어. 당신은 대가를 치를 것 아냐?”
“하, 하다못해……”
도서관장이 울먹였다.
“하다못해 인원을 김공자, 그대 한 명으로 한정시켜주시오….”
“……좋아.”
도서관장이 이 정도로 절절하게 호소하지 않아도, 레판타 아이김과는 나 혼자 대면할 생각이었다.
“날 50층으로 전송해.”
도서관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후회하지 마시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가는 거야.”
내 단호한 대답을 듣고 도서관장은 단념했다. 떨리는 손으로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 ]의 표지를 매만졌다. 그리고 힘 빠진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사왕. 그대를 [레판타 아이김 서사시]의 등장인물로 지정하오….”
그 순간.
[경고!] [비정상적인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방구석 도서관장’에게 페널티가 주어집니다.]사나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도서관장이 움찔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도서관장에게도 목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장은 어깨를 떨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본좌의 권능을 발휘하오.”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방구석 도서관장’에게 페널티가 주어집니다.]도서관장이 숨을 쉬었다.
“상관없소. 가시오, 사왕. ……그리고 살천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좌에게 보여주시구려.”
파아아앗!
하얀 빛이 내 시야를 감쌌다.
[비정상적인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눈앞이 하얘지는 와중에도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다음 순간.
[이름을 수여받지 못한 ‘탑’의 거주자가 50층에 입장합니다.]나는 우리 세계에서 아직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경지.
탑의 ‘50층’에 최초로 발을 디뎠다.
1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