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3)
너도 스킬이 있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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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뭐라 떠들든 간에 상관없이 목소리는 알려주었다.
[스킬 카드를 선택해주십시오.]이것이 틀림없는 현실임을!
두 장의 황동색 카드가 빠르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휙. 휙. 카드들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재빨리 돌아다녔는데, 정작 정말로 내 정신줄을 쏙 빼놓는 것은 따로 있었다.
-에라이. 뭐 이딴 사기가 다 있어! 몬스터들이 가진 기술까지 베낄 수 있는 건 너무하잖아. 야. 이 탑 관리하는 놈 누구야! 왜 나처럼 개념이 충만한 헌터한테는 이런 스킬 안 줬으면서 이딴 허접한테 주는 건데!
‘아. 제발 조용히 좀 하자고요.’
-나와! 이건 무효야. 아, 내가 성질이 뻗쳐서 진짜!
배후령이 분개하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뭐라고 할까··· 그냥 추했다. 사탕을 안 줬다고 삐진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어른이 이렇게 추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추했다.
‘어휴. 카드에나 집중해야지.’
나는 허공에서 비행하는 두 장의 황동색 카드를 살폈다.
‘어느 쪽이든 똥색 카드이니 좋은 스킬은 아니겠지만···.’
그런데도 순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몬스터의 스킬이라니. 내가 몬스터와 같은 스킬을 공유할 수 있다니!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았고, 나쁜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궁금하다.’
나는 서서히 손을 뻗었다.
‘일단 아무거나 선택해보자!’
말 그대로 아무 카드나 잡으려던 때였다.
-어? 뭐야. 그거 고르게?
귀신놈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또 참견했다.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소년심이 빠르게 식어버렸다. 하여튼. 산통을 깨트리는 솜씨만은 기가 막혔다.
‘예. 어차피 뭘 고르든 상관없잖아요.’
-왜 상관이 없냐?
배후령은 카드 너머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꿀 빨게 생겼으니 기왕이면 그나마 좋은 스킬을 뽑아야지.
‘그러니까 어떤 카드가 더 좋은 스킬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둘 다 똥색인데. 이건 그냥 운에 맡기는 게임이라고요.’
-엉? 왜 어느 쪽이 더 좋은 스킬인지 알 수가 없어?
‘아, 거 참. 오늘따라 말귀가 안 통하시네.’
내가 답답해서 소리쳤다.
‘카드 색깔도 똑같고! 뒷면밖에 안 보이고! 두 개를 구별할 방법이 없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 스킬인지 무슨 수로 알아냅니까.’
그러자 배후령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난 보이는데?
‘네?’
-카드 앞면이 보인다고.
배후령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소리냐, 라고 반문하려다가 도중에 깨달았다.
위치!
내 위치에서는 카드의 뒷면밖에 안 보였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더라도 카드들 역시 똑같이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 마치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하듯, 나는 카드의 반대편에 뭐라 적혔는지 절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
배후령은 이 어두운 공간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그래.
카드의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위치로도, 당연히 날아갈 수 있었다!
‘맙소사···.’
내가 중얼거렸다.
‘거기선 보여요? 정말 카드 설명이 보입니까?’
배후령이 눈썹을 찡그렸다.
-당연히 보이지. 넌 내 눈깔을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나는 어릴 때부터 동체 시력이 좋기로 유명했어. 동네에 개똥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딱총을 날렸거든? 근데 5살 때 이미 나는 딱총을 피할 정도로 눈이 좋았다 이 말씀이야. 결국엔 천리안(千里眼)까지 익혔지. 크흐, 내가 이렇게나 잘났···.
‘유레카!’
-웜마, 씨벌! 얘가 갑자기 미쳤나! 왜 소리를 질러?
배후령이 깜짝 놀랐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유레카! 유레카! 유레카아아아!’
그저 내게 찾아온 행운에 기뻐할 뿐.
배후령은 그런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나직하게 혀를 찼다.
-얘가 좀비라고 불리더니 진짜 뇌까지 좀비처럼 상해버렸구먼. 쯔쯔쯧···.
2.
배후령이 알려준 카드들의 정체는 이랬다.
+
[번식의 가호]
랭크: E
효과: 아, 자연은 우리에게 터전을 내어주지만 동시에 고난을 내리나니! 이 험난한 세상. 오크 종족은 번식력을 극대화하여 자연을 이겨냈습니다. 오크 1마리가 잡혀서 죽였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보지 못한 곳에 아직 9마리가 더 있습니다!
※단, 사시사철 발정기에 시달립니다.
효과: ‘우리는 말끝마다 취익을 붙인다취익. 왜 이러는지는 우리도 모른다췩! 하지만 너도 취익 한사발 마셔봐라췩.’ 오크가 엄지를 치켜듭니다. ‘그러면 췩췩거리는 재미에서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을 거다취익!’
※단, 취익췩.
+
‘와아···.’
과연 똥색 카드.
전부 정신 나간 똥스킬이었다. 감탄을 금하기 어려웠다.
-어때?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너 [취익, 췩] 고를 뻔했다. 공자야, 사내로 태어났는데 말이야. 한번쯤은 오크 같은 힘도 갖춰 봐야지. 어서 나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를 올려. 자아! 어서!
귀신이 지껄이는 헛소리도 감탄을 금하기 어려웠다. 즉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나갔다.
‘음.’
나는 배후령을 무시하고 가만히 고민했다.
‘굳이 이것들 중에서 고르라면 [취익, 췩]이 나아 보이는데요.’
-하아? 너 미쳤냐.
‘아뇨. 제 생각이 맞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번식력의 가호]보다는 [취익, 췩]이 훨씬 쓸데가 많습니다.’
-야, 야! 기다려! 조금만 더 생각해봐. 냉정하게 고민해서···!
피식.
배후령이 허둥지둥대는 걸 보면서 내가 비웃었다.
‘댁도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요.’
나는 배후령이 더 말리기 전에 얼른 똥색 카드를 낚아챘다. 카드들이 빠르게 날아다녔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여러 장이 동시에 돌아다닌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겨우 2장밖에 없었으니까.
[선택 완료. 스킬을 복사합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아, 안 돼!
‘돼!’
배후령과 나의 외침이 합창곡같이 울렸다.
[현재 당신의 헌터 랭크는 F급입니다.] [스킬로 인한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그것과 동시에 어두운 세상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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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내가 눈을 떴다.
“흠!”
머릿속이 상쾌했다.
“아, 좋다. 역시 사람은 잠자리가 편해야 피로가 확 풀리네요.”
이곳은 더 이상 2평짜리 쪽방이 아니었다. 상련에 부탁해서 따로 마련해둔 숙소. 넓진 않으나 한 사람이 지내기엔 충분히 넉넉한 호텔 방이었다. 1등 복권에 당첨된 이후로 나는 당분간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한편.
-젠장! 속아 넘을 줄 알았는데, 쓸데없이 잔머리만 굵어서는!
“흐흐.”
배후령은 둥실둥실 떠오른 채 허공을 발로 찼다. 날 골탕 먹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여간 분했나 보다. 음.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꼭 한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다웠다.
“자아, 영약도 다시 챙기고··· 능력창.”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사냥터로 향하면서 능력창을 확인했다.
+
이름: 김공자
랭크: F급
스킬(4/4)
1. 너처럼 되고 싶다(S+): 패시브
2. 회귀자의 태엽시계(EX): 패시브
3. 검의 성좌(A+): 패시브
4. 취익, 췩(F): 액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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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문제없군.”
스킬 슬롯이 꽉 찼다. 하지만 괜찮았다. 새로운 스킬을 얻을 때가 와도 [취익, 췩]이 있는 자리에다 덮어씌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다음 스킬을 얻을 때까진 마음껏 사용해주마.
-공자야. 내가 고민해봤는데··· 그냥 얌전히 가부좌 틀고 수련해도 괜찮은 거 같아. 괜히 몸 아프게 죽어가면서 훈련할 필요까진 없잖아? 가부좌. 정신 수양. 얼마나 멋지냐?
“후우.”
3층 사냥터에 도착.
멀리서 오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르르··· 췩.
나는 오크들의 위치를 눈여겨보면서 영약을 꺼냈다. 뜨끈뜨끈한 보온병. 거기에 담아온 영약을 원샷했다.
-야. 공자야? 내 말 안 들리니? 우리 얌전하게 수련하자니까? 가부좌로 수련해도 반년 안에 오러 터득하게 해줄게. 수련법에 귀천이 어디 있겠니, 응? 나만 믿어 보래도.
“크흐! 맛 좋고.”
이걸 마셔보는 것은 두 번째였지만 벌써 입맛을 들일 것 같았다. 약제사가 영약을 만들어주면서 맛까지 신경 써준 게 분명했다.
나는 약효가 올라오길 기다리면서 말했다.
“검제 양반. 그거 알아요?”
-어? 뭐? 가부좌 틀려고?
“댁은 자기가 유리할 때는 날 좀비라 부르는데, 자기가 불리할 땐 공자라고 불러요. 그리고 아까부터 댁은 나를 좀비가 아니라 공자라 불렀죠.”
두근.
“습관 고치시라고 제가 친절하게 알려드리는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의 세상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함께 희미한 흐름이 다시 느껴졌다.
오러!
배후령이 고안한 수련법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지난번 회차와 달리 이번엔 곧바로 오러가 또렷하게 잡혔다.
“후, 우··· 후우우···.”
나는 숨소리를 가다듬으며 다가갔다. 움찔. 인기척을 느끼고 오크의 귀가 쭈뼛거렸다. 덩치가 거대한 이 초록색 괴물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륵?
오크의 눈이 커졌다. 저 녀석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만했다. 웬 먹잇감이 지 발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셈일 테니까.
-크르르르!
오크는 이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웃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취··· 익! 췩···!”
멈칫. 오크의 눈이 아까보다 더 커졌다. 허공을 가르던 몽둥이가 도중에 멈추었다.
-취륵··· 취익? 취···익?
오크가 머리통을 갸우뚱거렸다. 한낱 먹잇감이 동족의 언어를 터득했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물론 오크의 IQ 한계상 작금의 사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했으며, 나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릴 정도로 IQ가 부족하지 않았다.
“취익!”
내 입에서 완벽한 오크어가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원어민 수준을 방불케 하는 오크어 솜씨!
-크르? 취···륵?
눈앞의 몬스터는 더욱더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서 혼란스러운 게 훤히 보였다. 결국 내가 달려들 때조차 오크는 반항다운 반항을 못 했다.
촤악!
내 칼이 부드럽게 오크의 목젖을 갈랐다. 나는 너무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덜하지도 않게, 딱 한 방울의 오러를 칼끝에 흘렸다. 쿠웅! 피 분수가 터지면서 오크의 육중한 덩치가 쓰러졌다.
-취··· 륵···? 그르··· 췩···.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췩췩거리면서.
아마 인간의 말로 바꾸면 ‘브루투스, 너마저!’ 같은 단말마의 비명 아니었을까.
“취륵.”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오러를 억지로 끌어내어 몸이 아팠지만··· 저번 회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멀쩡했다. 괜찮았다. 딱 이 정도로만 오러를 소모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치사한 새끼! 이럴 줄 알았다!
배후령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딴 식으로 착한 오크를 속이면 기분 좋냐! 아앙!? 오크들이 어떤 기분이고 어떤 마음일지는 생각하지도 않지!? 너처럼 더러운 인간 때문에 이 세상의 순수한 오크들이 피해를 보는 거야!
나는 ‘수련법에 귀천은 없다면서요?’ 하고 반문하진 않았다.
대신, 그냥 한마디 비웃음을 돌려줬다.
“취익!”
-아아악! 화나! 짜증 나! 왜 이런 뺀질이한테 사기 스킬을 준 겁니까, 탑이여!?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5층 사냥터까지 돌파하였다.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