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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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을 뜬 곳은, 어두운 나락.
사방을 둘러봐도 새까말 뿐.
내가 죽을 때마다 돌아오는 명계였다.
[죽음으로 인해 스킬 조건이 달성됩니다.] [살천성의 스킬을 무작위로 카피합니다.]나는 충격을 받아 멍했다.
살천성의 이야기가 과거에 벌어졌다는 건 당연히 알았다. 하지만 그 과거가 다른 한편으론 원장님의 어린 시절을 머금었다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살천성과 원장님이 동창생이었어.’
같은 학교를 다녔다. 같은 교실에 있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 한 사람은 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렸다. 한 사람은 시침이 평생토록 정지해버렸다.
한 명의 시계가 부서졌고.
다른 한 명의 시계는 망가졌다.
‘왜….’
분노가 심장을 짓눌렀다.
‘왜 부서지고 망가지는 건 항상 선인인가. 왜 상처를 준 사람은 멀쩡한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죽어야 하나. 왜 세상은, 죄책감을 느끼는 자에게만 지옥이 되는가.’
분노는 바닥을 알지 못하고 침전했다.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가라앉은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단지 밑바닥부터 쌓이는 것이었다.
내 마음의 수면이 조금 더 올라갔다.
언젠가 격류가 되어 범람할 수면으로.
– 크흐.
뜨거워진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배후령이었다.
-역시 좀비 새끼가 방심해서 뒈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꿀맛이야. 내가 귀신이 되어서 참 볼꼴 못 볼꼴 다 겪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김좀비의 패배를 지켜보는 거지. 껄껄껄!
“…….”
-어때? 50층이 만만하진 않지? 살천성이 쉬운 사냥감은 아니지? 그러게 왜 꼼수를 써서 50층에 올랐니. 다 네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다, 새꺄!
배후령이 실실거렸다.
마치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살천성과 싸운 것] 같은 말투.
나는 배후령의 어조를 듣고 짐작했다.
‘……이번 트라우마에 이 양반은 함께 들어오지 못했지.’
여태껏 우리는 트라우마의 여정을 함께했다. [불지옥 저택]부터 시작하여 아귀, 스승님, 라비엘. 배후령은 때때로 트라우마를 보며 불평했고 때로는 침묵했다. 그렇지만 항상 나와 함께했다.
이번엔 달랐다.
나 혼자서 한 달의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엿본 것이다.
“악몽을 꾸었어요.”
-엉?
배후령이 눈을 깜빡였다.
-악몽? 뭔 악몽?
“트라우마요. 이번 트라우마는 조금 이상했어요. 검제 양반. 댁이 나랑 같이 있지도 않았고, 살천성의 심상이 고스란히 재현되지도 않았거든요. 꼭 오류가 일어난 것처럼….”
나는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했다. 복기했다. 물론 검제가 아버지로 등장했다는 얘기는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그 얘기 꺼냈다가 모발이 백골 될 때까지 우려먹히게?
– 으으음.
배후령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거 이상하네? 왜 이상하냐면, 내가 네랑 같이 있지 못한 게 말이 안돼. 일단 나는 편의상 귀신이니 유령이니 불리고 있지만 진짜 정확히 말하자면 [스킬]이야.
배후령의 말이 맞았다.
+
[검의 성좌(星座)]랭크 : A+
효과: 이세계 출신. 이세계의 탑을 99층까지 클리어했으나 100층을 눈앞에 두고 좌절. 그 원망이 남아서 성불하지 못한 채 배후령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간섭할 순 없으나, 소유자의 정신에 참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놀라운 실력에 조언을 구하십시오!
※단, 소유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배후령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헌터 마르쿠스 칼렌베리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배후령의 정체는 어디까지나 스킬이다.
살아생전의 기억을 가졌으나, 결국은 스킬 카드에 수납되어 있다.
-요컨대 나는 너한테 얹혀 사는 사람이지. 정신적인 세입자라고 해야 되나? 네가 강제로 카드를 찢어버리지 않는 바에야, 내가 트라우마까지 따라가지 못할 이유는 하등 없걸랑.
하지만 이번 트라우마에 배후령은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게요. 뭐지? 뭔가 이상한데.”
-끄으응.
어둡기만 한 공간에서 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고민했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지만 해답은 안 나왔다. 결국 배후령이 제풀에 지쳐서 성을 냈다.
-아, 됐어! 생각하기 귀찮아! 아무튼 이상한 것만 기억해두면 언젠가 답이 나오겠지. 얼른 살천성 그놈의 스킬이나 뽑아라! 마공(魔功) 이후로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금사매인가 걔는 순 성좌 가호빨만 있었지 스킬은 개털이었잖냐.
배후령의 말에 반응한 걸까.
어둠 속에서 카드들이 떠올랐다.
[스킬 카드를 형성합니다.] [스킬 카드를 선택해주십시오.]모두 합해서 10장의 카드가 만들어졌다. 은빛과 금빛으로 이루어진 카드 행렬. 그것들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허공을 휙휙 날아다녔다.
-자아. 어디 살천성의 재산 목록을 뒤져보실까! 얼씨구, 이 새끼. 까리한 스킬들은 혼자서 다쳐먹고 있었네. 하여간 이래서 스킬 위주로 연마하는 헌터들은 재수가 없어요, 재수가. 어허? 요거 봐라?
배후령은 자기가 신나서 카드들의 뒷면을 훔쳐 읽었다.
그중에서 내 귀를 사로잡은 것은 두 장의 스킬이었다.
+
[인형술사의 퍼레이드]랭크: S
효과: 어느 세계에 늙은 인형술사가 살았습니다. 인형술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고독을 견딜 만큼 강하지도 못했지요.
‘또 다른 나를 만들자.’ 인형술사는 고안했습니다. ‘또 다른 내가 사랑받게 하자. 살게 하자.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과 더불어서. 그리고 만일 상처를 받게 된다면— 버려버리자.’ 인형술사는 속삭였습니다. ‘영원히 지워버리는 거야.’
무수한 인형이 살았습니다.
무수한 인형이 폐기 당했습니다.
이 스킬은 약자를 위한 사술(邪術). 가질 기억과 버릴 기억을 선택할 권리. 당신은, 당신과 정확히 똑같은 외형과 능력을 가진 인형을 13체 만들 수 있습니다. 인형이 죽으면 또 다른 인형이 깨어납니다. 부서진 인형은 다시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대에게 모방된 영생을. 조립된 영원을.
※단, 인형 간에 기억은 공유되지 않습니다.
+
그곳에 살천성의 비밀이 있었다.
‘인형은 전부 13체구나.’
살천성의 본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본체 역시 인형에 포함되는 건가. 아니면 본체는 따로 있어서, 이 삼라만상의 어느 구석엔가 잠들어 있을까.
나는 그다음 비밀을 엿들었다.
+
[찢어진 여신의 구원(救援)]랭크: A+
효과: 어느 용사에게 헌신한 여신이 있습니다. 여신은 비록 용사에 의해 찢어졌으나, 여전히 용사의 곁에 서 있고자 했습니다. 여신은 타천했으며, 스스로 스킬 카드에 봉인되었습니다.
여신은 기억을 능력으로 치환시킵니다. 당신은 여신에게 기억을 바침으로써, 능력과 무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치는 기억이 당신에게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강화 효과는 증폭됩니다.
※단, 강화 효과는 장기간 유지되지 않습니다.
+
여신이란 아마도 [수호의 여신]을 가리키겠지.
용사는 살천성일 테고.
틀림없다.
[수호의 여신]은 우상, 연민, 기원, 희생, 구원, 총 다섯 갈래로 쪼개어졌다. 나는 이중에서 네 갈래의 여신을 거두었다. 마지막 남은 구원(救援)은 스킬의 형태가 되어 살천성에게 있었다.-흠.
배후령이 코웃음을 울렸다.
-누가 살천성 아니랄까 봐 스킬들 꼬락서니가 하나같이 으스스하구만. 죄다 불길해. 능력이야 괜찮다만 기분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피폐한 인간한테 열광하는 성좌들이 좋아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했어요. 뭐로 선택할지.”
-음.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 큰데?
배후령은 반론했다.
-걍 패스해. [인형술사의 퍼레이드]도 [찢어진 여신의 구원]도 지금의 너한텐 필요가 없어.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네 스킬 목록은 꽤 완성도가 높거든. 그놈의 고블린 상류사회만 아니면 말이지만….
“고블린 상류사회는 언젠가 날아오를 스킬입니다.”
-날아오르는 건 니 대가리겠지. 아니, 이미 한차례 화려하게 날아올랐구나. 아무튼 여기서 어쭙잖은 스킬 추가해봤자 상성만 망가지지 않겠냐?
“예.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그치만 써먹을 데가 있어서요.”
나는 살천성을 이겨야 한다.
그러나 나의 승리는 살천성을 없애버리는 걸 뜻하지 않는다.
‘훨씬 더 잘해야지.’
살천성에게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게 한다.
단순히 나의 무력이 살천성의 무력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 [나의 방식]이 [살천성의 방식]을 쓰러트린다.
그것이 바로 승리다.
‘살천성.’
나는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판타 아이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사냥꾼을 생각하면서.
내가 아직 모르는, 그 자의 첫 번째 이름을 생각하면서.
[선택 완료.] [스킬을 복사합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우리의 오래된 악몽을 끝내자.
3.
하루를 되돌아왔을 때, 나는 아직 [동화] 세계를 클리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천성의 트라우마에서 한 달이나 보냈건만.
탑에서는 아직 하루조차 지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동화] 세계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불멸하는 행복 전도사]가 기습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에, 예전보다 더 쉽게 공략했다. 그렇지만 심력과 체력이 소모되긴 마찬가지였다.
‘다음부턴 최소한 하루씩 쉬어가면서 탑을 올라야겠어….’
세이브 포인트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했다.
“백작님.”
“음?”
동화 세계를 공략하고 대도서관에 귀환한 직후, 나는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뭔가? 우리 탑의 보배. 우리 상련(商聯)의 보물. 뭐든지 말해보게나! 들어주겠네.”
백작이 평소보다 화사하게 반겨주었다. 입모양은 알파벳 w를 그렸다. 생각보다 스테이지 클리어에 돈이 안 들어서 기분이 좋은 걸까.
순간이지만 트라우마에서 본 백작의 모습이 떠올랐다.
『걔, 그딴 문자를 보냈더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나는 멈칫했다.
“왜 그러나?”
눈앞에서 상련의 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안색이 좀 창백해졌는데.”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잠깐 멍해져서요.”
나는 머리를 흔들어서 얼른 상념을 털어냈다.
트라우마 속의 동급생은 단순히 백작의 외양을 흉내 냈을 뿐. 가짜다. 그런 가짜를 눈앞의 사람과 약간이라도 동일시하다니. 백작에게 큰 무례를 저지르는 거다.
“방금 묵시록에서 너무 힘을 쏟아부은 거 아닌가? 조심하게. 젊을 때 조심해야 나이 들어서도 훅 가지를 않는 것일세. 아무튼 부탁이 뭔가.”
“바깥세상에 편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나는 말했다.
“꼭 편지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지만, 되도록 빨리 연락해야 하는 분이 바깥세상에 있어서요. 백작님께선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지요. 편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호오? 물론 그건 쉬운 일이네만.”
백작이 부채를 지폈다.
“굳이 편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면 조금 더 간편한 방법을 써야지. 어느 나라로 편지를 보낼 건가? 정부가 무너진 나라에 편지를 보내는 건 좀 어렵다네.”
“괜찮아요. 제가 태어난 나라로 보낼 겁니다.”
“사왕 자네의 국가라면… 아아. 그럼 괜찮아. 대사(大使)가 상주하는 나라이니, 바로 연락할 수 있겠군. 어디 보자. 이 여자가 어디 갔나?”
백작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도서관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이명을 가진 헌터 전원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을 발견하여 백작이 부채 끝으로 가리켰다.
“통신사! 통신사 나리! 자네, 여기로 좀 와보게.”
“..또 뭔가?”
중년으로 보이는 헌터가 다가왔다.
랭킹 7위의 헌터. 광역통신사(廣域通信士)였다.
광역통신사는 인도 정통복인 사리를 어깨에 감고 있었다. 백작과 사이가 나쁜 건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내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소개하겠네. 이 친구는 광역통신사일세. 나와 출신지가 같지. 아하하, 출신계급은 하늘과 땅 차이로 나네만!”
“쓸데없는 말을 늘여놓으러 부른 거라면 다시 가겠다.”
“워, 워. 진정하시게. 브라만 나리. 내가 지금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성역(聖域)을 지정할 테니, 잠깐만 통신을 연결시켜주게나. 대사가 있는 나라니까 별로 번거롭지도 않을 걸세.”
“내가 왜…….”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사왕의 부탁일세.”
광역통신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양손을 가운데로 모은 뒤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
광역통신사도 손을 모아 인사했다. 중년의 헌터는 나와 백작의 얼굴을 차례대로 둘러보더니, 뭔가를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천박한 녀석의 부탁이라면 일언지하에 거절하겠지만. 사왕. 자네가 탑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나 역시 멀리서 지켜보았다. 헌신에는 보답이 따라야지. 도와줌세.”
“야아아. 역시 고귀하신 분과는 얘기가 잘 통하는구먼. 선재로세, 선재야.”
“다시 한 번만 더 혓바닥을 놀리면 그냥 돌아가마.”
“아이고, 그래야 쓰나. 사람 인심도 야박하지. 알겠네, 알겠어. 어허. 알겠다니까. 얼른 끝내세!”
백작이 웃으면서 주머니를 꺼내었다. 작은 주머니였다. 백작은 주머니에서 자주빛으로 반짝거리는 가루를 한 웅큼 꺼내더니, 도서관 바닥에 원을 그리듯 흩뿌렸다.
“위대한 어머니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염원은 비원이라, 비원이 비명으로 찢어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곁에 제가, 제가 당신의 곁에 있게 허락하소서. 여기 이곳에 백묘(伯植)가 작은 성역을 청하나이다.”
화아아아!
자주색 가루에서 보라빛이 나왔다. 딱 공중전화 부스만한 크기의 구역이 보라빛으로 물든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광역통신사가 내게 말했다.
“스마트폰을 주어라.”
“아. 네.”
나는 광역통신사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광역통신사는 손가락을 굽혀 톡, 톡, 톡, 세 번 두들겼다. 아마도 손끝으로 삼각형을 그린 것 같았다.
“통하여라. 이어져라. 소음은 누군가에게 이어질 때 소리가 되나니, 이곳에 사람이 있고 그곳에 사람이 있을 적, 삼라(森羅)는 노래하고 만상(萬象)은 합창한다.”
스마트폰이 푸른빛에 감싸였다.
광역통신사는 한 차례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라.”
넘겨받았다.
백작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성역에 들어가시게. 사왕.”
광역통신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통화를 하면 받을 것이다. 메일을 보내면 답장할 것이다.”
“통화요금은 별도로 측정되네만 그 정도는 본인이 내어주지!”
“다만 바깥세상과 협약한 바에 따라, 모든 통신은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은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네.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행여라도 범죄에 대한 이야기는 연락에 담지 마라.”
“뭐, 반드시 비밀에 부쳐야 하는 통신이다 싶으면 따로 말하게나. 언제나 샛길은 있으니.”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나 자그마치 랭킹 5위의 헌터와 랭킹 7위의 헌터가 협력한 것이다.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한줌에 불과하리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성역에 들어갔다.
“…….”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억한 전화번호]를 꾹, 꾹, 눌렀다. 수 년 만에 눌러보는 번호였다. 사람의 기억이란 기묘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최초의 번호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뚜우우우… 뚜우우우….
한동안 연결음이 이어졌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번호를 바꾸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 하지만 그분은 말씀했다. 자기가 번호를 바꿀 일은 평생 없을 테니 언제든 똑같은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
그 음색은 트라우마의 옥상에서 울부짖은 목소리보다 조금 더 늙었다. 조금 더 지쳤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변하지 않은 목소리에 왜 이제야 연락을 드렸나 후회했다.
당연히 조금 더 빨리 연락을 드려야 했는데.
아무리 내가 바깥세상을 버리고 입탑했다 해도, 사람마저 버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원장님. 저, 공자입니다. 김공자.”
전하기 너머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원장 선생님.
내 기억에서 가장 오래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1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