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46)
반장의 미소는 완벽했다.
입꼬리는 딱 적당한 정도로만 올라갔다. 입술이 곱게 접혔다. 눈꼬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과장됨이 없었다. 그러기에 입꼬리가 내려가고, 눈꼬리가 올라가서, 반장이 평소같이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을 때, 나는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반장이 연단에 올라섰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나를 버려둔 채, 반장은 마이크를 잡았다.
“신서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강당으로 반장의 목소리가 스몄다.
“지금 보시는 영상은 2학년 5반 황은서 학생이 같은 반 김율 학생을 집단적으로 폭력하는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건 연출된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 폭력 현장입니다.”
반장의 손에는 연설문이 들려 있지 않았다. 리허설 때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연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 울렸다.
“저는 익명의 제보자 덕분에 이와 같은 자료들을 입수했습니다. 예. 자료들입니다. 2학년 5반 황은서가 저지른 범죄 행각은, 103건의 녹음파일, 311개의 동영상, 30790장의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범죄행각?
동영상?
사진?
“방송부장. PPT를 넘겨주세요.”
“네, 네에….”
강당 벽에 프로젝터가 쏘였다. 사진들이 줄지어 전시되었다. 화질은 별로 좋지 못했지만, 모두 우리 학교 교복을 입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저희는 오늘 발표가 끝나고 정식으로 2학년 5반 황은서 학생을 신고할 것입니다. 물론 피해자인 2학년 5반 김율 학생 역시, 황은서를 고소할 것입니다.”
신고? 고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신서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 중 이 같은 폭력 사실을 인지하고 계셨던 분,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상습적인 범죄 행각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책임져야 할 교사 여러분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신서고등학교의 현실입니다.”
선생들의 반응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정신을 못 차렸다. 그나마 몇몇 선생이 주변 동료들한테 다급히 귓속말을 속삭였고, 학년부장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잠깐만! 야! 너 내려와! 지금 이게 뭐하는……!”
“교사 여러분도 신고에 신속히 동참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학교폭력의 사실을 알려드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일을 이런 식으로 하면…….”
“여러분. 지금 현재 저의 발표는 녹화물 및 영상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해당 자료들은 이미 오늘 오전, 일부 언론사에 발송되었습니다. 이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
학년부장이 일어서다 말고 교장을 쳐다봤다. 선생들 전원이 교장을 보고 있었다. 교장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십쇼.’ 교장이 그런 말을 했다. 전화를 걸었는지 받았는지, 그는 고개를 숙여서 누군가와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 태도로 인해 교사진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거, 거짓말이야!”
나는 내가 쥔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전부 조작된 사진이야! 가짜다!”
그러나 목소리는 스피커로 이어지지 않았다. 뒤늦게, 방송부장이 내 마이크 회선을 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 서 있는 황은서 학생의 모습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강당엔 오직 반장의 목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황은서 학생이 방금 전에 사과한다면서 말한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황은서 학생은 말했습니다. [학급 친구가 왕따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애들한테 끼어서 나 자신도 왕따에 참여했다]. 기억하십니까.”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그는 폭력에 ‘가담’한 것에 불과하다고 변명했습니다. 자신은 주범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폭력 단체를 조직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은서 학생은 마지막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척 여러분께 가식을 떨었지요.”
전교생이 나를 쳐다본다.
“황은서의 얼굴을 보십시오. 표정을 기억하십시오.”
그래.
반장 새끼였구나.
“황은서의 논리를 기억하십시오. 방법을 기억하십시오. 이 인간이 폭력을 주도한 방식, 도망치려 한 방식을 똑똑히 목격하십시오.”
이 새끼가 나를 사냥하려고 암약한 놈이었구나.
“…….”
반장이 마이크를 내렸다.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감싼 채, 반장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힘들었네.”
너무 목소리가 태연해서 나는 거의 현실이 인지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황은서 네 인생은 끝이야. 네가 저지른 죄목이 몇 가지인지 알게 되면 아마 놀랄걸. 그래봤자 미성년자라서 인생 전체를 감방에 보내버릴 순 없는데, 뭐. 괜찮아. 사회적으로 말살하면 되니까.”
“너, 너…….”
“나도 친구 연기하느라 힘들었단다.”
반장이 한숨을 쉬었다.
“진짜.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 감정적이야. 너랑 대화하다 보니 수시로 구역질이 올라오지 뭐니. 허리가 안 아파서 좋긴 한데 아직 세상을 너무 순하게……. 하긴, 그러니까 대학도 그렇게 들어갔지.”
반장이 투덜거렸다.
“알고 있니? 사회에 봉사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무슨 일을 조금만 하려 해도 돈이야, 돈. 나무를 심으려 해도 돈. 피해지역에 가려 해도 돈. 선생들 챙겨주는 데도 돈. 하아. 내가 이걸 학창시절에 알았으면 좀 더…….”
“씨발 새끼야! 무슨 개소리야!!”
나는 열이 뻗쳐서 소리쳤다. 직후, 목소리가 생각보다 너무 크게 강당에 퍼졌다는 걸 알았다. 나는 멈칫했다. 조곤조곤 속삭인 반장과 달리 나의 외침은 쩌렁쩌렁 퍼진 것이다.
“응.”
반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소리치라고 일부러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중얼거린 거란다. 꼬마야. 정말로 잘 걸려드는구나.”
놈이 미소 짓는 걸 보자, 다시 한 번 머리가 멍해졌다.
“아마 지금 너는 네가 줄을 대었다고 생각하는 인맥들…… 풋.”
반장이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풋, 하고 웃었다.
“아. 미안. 웃겨서.”
이 새끼.
“아무튼 인맥들이 너를 도와줄 거라고 믿을 텐데. 아니란다. 네 여자친구라고 했니? 그 아이가 등장하는 동영상은 지워주는 대가로 이것저것 협상을 했거든. 네 ‘고객’들 전부가 그런 협상을 하고 있어. 기억하렴. 사실 잘 나가는 집안 자식님들은, 네게 아무 관심이 없단다. 자신들이 [사건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만 유일한 관심사야.”
그 와중에도 방송부장은 PPT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사진들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웅성거리는 걸 넘어서 술렁거렸고, 강당 곳곳에서 ‘씨발’ ‘미친 거 아냐?’ 같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김율 씨한테는 죄송하지만…. 지금 내 신분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여서. 어쩔 수 없지. 내가 어릴 때부터 누누이 말하지 않았니, 공자야?”
반장은 입술에 예의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단다.”
그 미소에 내 정신줄이 뚝 끊겼다.
“아. 이 자식을 내버려두면 세상이 더러워지겠구나. 그런 인간을 만날 때가 올 거란다. 그런 인간이 있거든.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그때 얼른 없애버리렴. 조질 수 있을 때 조져야지 후회가 없어.”
나는 고함을 지르면서 반장에게 달려들었다. 반장은 반항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피식거렸다.
“하여간. 이래서 아이를 잘 키워야 노후가 편안하단 말을…….”
주먹을 휘둘렀다. 반장을 쓰러트리고 깔아뭉갰다. 등 뒤로 비명이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개자식. 개새끼! 너 때문에! 너 같은 새끼가 감히 나를! 내 인생!
“야, 황은서! 진정해! 선생님들! 얘 좀 말려야 합니다!”
“방송부장! 멈춰! 그거 당장 촬영 멈추지 못해?!”
“저, 저한테 소리치셔도……. 저도 이걸 해야 해서….”
내 인생을!
[클리어 요건 달성.] [해당 스테이지의 특이점을 감안하여 판단을 요청합니다.]난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최선의 삶을 살진 않았어도, 진짜 최선을 다했다! 나보다 노력한 애가 여기 어디 있는데! 나처럼 진지하게 인생을 살려고 한 학생이 어디 있냐!
[판단 완료.] [만생의 주인이 ‘스테이지 클리어’를 인정합니다.]아니다!
[단, ‘등천도시-외전’은 정사(正史)에 편입되지 않습니다.]아니야!
[스테이지 클리어.]나는 인정하지 못해! 인정할 수 없어! 이건 사기야! 사기다. 정당하지 못해! 옳지 못하다! 그렇다, 올바르지 못하다! 인권이다! 인권(人權)! 모든 사람은 정당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나도 사람이다! 이런 건 잘못됐다!
[금일, 29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나는 억울하다.
나를 동정해라……. 어서. 동정해라, 어서.
[만생의 주인이 탑을 대신하여 알립니다.]나는,
[고생하셨어요. 여러분.]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소인이 다소 여러분을 편애하게 되었지만, 이 정도는 다른 아이들도 눈 감아주겠지요. 소인은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우니까요.]아무 잘못도.
[여러분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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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의 첫 패배였다.
“……!”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흡!”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인물에게 완전히 몰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심장이 아픈 것엔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도서관의 한 구석.
“음….”
“으으윽…….”
살천성과 원장님도 차례대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한동안 우리 세 사람은 숨을 가다듬었다. 다른 일을 할 기력이 없었다. 머리가 뒤죽박죽 뒤섞인 것이다.
“공자야….”
10분이 넘게 흐르고 나서야 원장님이 작게 웅얼거리듯 말씀했다.
“네?”
“이리 좀 오렴….”
원장님께서 힘없이 손가락을 까닥이셨다.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시절, 애들끼리 싸움을 벌였을 때 간혹 엿본 원장님의 사나운 눈빛이 거기 있었다. 나는 얌전히 원장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저어. 왔는데요….”
“옛날 춘추시대에 오자서(任子骨)라고 불린 사람이 살았단다.”
더욱더 불안해졌다.
원장님은 애들을 혼낼 때 바로 혼내는 법이 없다. 항상 뜸을 들이신다. 질문을 받으면 1일 동안 생각한 다음 대답하시고, 화가 나면 찬찬히 딴 이야기를 푸시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오자서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서 S급 경고로 취급되었다.
“네….”
“많이 얘기해줬으니 기억할 거다.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놈의 시체를 파내다가, 뼈가 가루가 되도록 채찍을 휘두른 사람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렴.”
“네에….”
“오자서가 복수를 하려고 굴을 파내려 하는데, 어라. 누군가가 와서 미리 도굴하기 쉽게 길을 파놓은 거란다. 관짝까지 꺼내놓고 말이야. 그럼 오자서가 미리 굴을 파줘서 정말 고맙소 하고 기뻐할 거 같니? 아니면 내가 복수하려고 침 발라놓은 놈 무덤을 왜 네가 건드렸냐며 화낼 거 같니?”
“어….”
“굴묘편시(振墓鞭屍)에서 졸지에 굴묘가 빠지겠구나. 안 그렇겠니?”
나는 말을 더듬었다. 혼란스러웠다.
“서, 선생님.”
“그래. 말하려므나.”
“제가 너무 무리해서 화나신 거 아니에요? 너무 나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든지. 어. 왜 네 몸은 돌보지 않느냐며 타이르시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요…?”
“공자야. 너도 이제 성인이란다. 네 몸은 네가 알아서 관리하는 거지, 왜 내가 참견하니? 너 키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내가 이젠 너 키운 다음까지 걱정해야 겠니?”
원장님께선 싸하게 말씀하셨다. 굉장했다. 무엇이 굉장하냐면 아무렇지도 않게 저리 말씀하시는 원장님이 굉장했고, 원장님이 원래 저런 분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내 기억력이 굉장했다.
“난 너희를 키울 때 되도록 강하게 자라도록 키웠어. 동정심 같은 것은 가끔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선물 같은 거지, 시도 때도 안 가리고 받아버리면 사람이 힘이 빠져서 시들해져. 공자야. 난 네 인생이 하나도 안 불쌍하단다.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렴.”
-과연…
옆에서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무언가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거다.
-좀비 새끼 성깔이 어디서 나왔나 싶었는데. 떡잎부터 참교육을 받았구만….
난 갑자기 같은 보육원 동기들의 현황이 궁금해졌다. 한비자는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했지? 인터넷에 쳐보면 개 동영상도 나오려나?
“공자야.”
“네, 네에.”
“네가 녹음파일이나 동영상 같은 걸 안 줘도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황은서를 조져…… 미안. 아니, 미안할 필요가 없구나. 너도 이제 성인이지. 그래.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황은서를 조졌을 거란다. 왜 너 마음대로 굴묘(振墓)를 하니? 혼날래?”
안 된다. 이 나이가 되어서 혼날 순 없었다! 심지어 배후령이랑 반짝이가 보는 앞에서 혼날 수는 없다!
“아니. 하지만 저도 뭐라도 해야 하니까요…. 전 원장님보다 1년이나 일찍 스테이지에 입장했거든요. 그, 그것도 몰입도가 95%인 상태로요. 그럼 사람이 좀 조급해지고 다급해지지 않을까요?”
“…….”
멈칫.
1년과 95%라는 말을 듣자 원장님이 살짝 주저했다. 아싸! 역시 원장님! 아닌 척하시지만 사실은 상대방을 엄청나게 배려한다는 거 이젠 나도 안다. 나도 어른이 됐다!
“그래요. 원장님. 원장님께서 저희한테, 저에게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스테이지에 떨어졌을 때 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예요. 원장님의 교훈을 따른 거죠.”
-과연….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무언가를 다시 한 번 납득했다는 면상이었다.
-이 새끼 혓바닥이 어디서 단련되었나 싶었더니. 떡잎부터 뻔뻔해지는 방법만 존나게 훈련했군….
그때.
“음.”
살천성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악몽을 꾸면서 눈물을 흘린 사람처럼, 살천성은 눈가에 물기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사왕. 그대가 바란 대로 나는 [김율]을 이해하게 되었다. 느끼게 되었다. 기억하게 되었지.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나, 한 가지,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살천성은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대는 내가 앞으로 어쩌기를 바라는가?”
“…….”
나는 입을 열었다.
“김율은 피해자입니다. 죽임을 당했어요. 김율이 죽으면서 최후에 남긴 유언이 있습니다.”
+
나는 네가 살인한 거야.
잊지 마.
네가 나를 죽였어.
+
세 문장으로 조립된 원념(怨念).
그건 자기 목숨을 버려서까지 살인자들에게, 짐승들에게,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망각하지 못하도록 비명을 남긴 것이다. 잊지 못한 채 괴로워하도록. 영원히.
“그런데.”
나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꾹 쥐었다.
“당신은 잊었어요.”
살천성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말인가?”
“당신이 성좌들을 죽임으로써 희생되어버린 목숨들. 수많은 세계의 인간들.”
“잊었다고요.”
편법으로 올라간 50층.
그곳에서 살천성은 말했다.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이방인.』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내 잘못은 모두 두 가지다. 첫째는 성좌가 사라진 세계에서 또 다시 새로운 성좌가 탄생할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죽은 성좌가 세계에 저주를 걸 수 있다는 사실을 경시 여겼다는 것이다.』
『차후 같은 오류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조언에 감사를 표하고자 나는 보상을 입에 담은 것이다.』
나는 재차 손수건을 쥐었다.
“몰라서 저지른 짓이다. 의도해서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채 살아가면 그만입니까. [김율]은 짐승들이 자길 잊어도 된다고 여겼습니까?”
“…….”
“김율을 물어뜯은 것들은 최악의 개새끼들입니다. 살천성. 하지만, 당신이 저질러버린 죄업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짐승 새끼들과 똑같은 변명을 일삼지 마십시오.”
당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형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놈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잘못을 저지른 목숨들을 보십시오. 똑바로 직시해주세요.”
“…….”
“여기서 결정해주십시오. 만일 싫다면, 당신을 두 번 다시 백귀환생으로 불러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당신의 인형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없애겠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살천성이 나를 보았다.
눈동자의 푸른 수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에 직시하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신서고등학교 2학년 5반을 다녔던 어느 누군가가 남긴 흔적일지, 살천성 본인이 느끼게 된 감정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서 물었다.
“김율이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살천성이 입술을 벌렸다.
“나는…….”
14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