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6)
트라우마 페널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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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페널티 개시.] [몬스터 헬파이어 메이든의 트라우마를 생성합니다.]고아한 서양식 저택.
어느덧 나는 그곳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있었다’라고 표현하면 이상할지 몰랐다. 나는 그곳에 없었다. 다만 나의 의식만 유령처럼 떠다니면서, 눈앞에 흘러가는 풍경을 3인칭으로 바라볼 뿐.
‘뭐야?’
나는 당황했다.
‘지금 뭐가 벌어지는 거···?’
-사, 살려주세요.
그 때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 한 아이가 저택 1층 로비의 구석에 발이 묶여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향해서 살려달라 말한 건가 착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는 다른 누군가를 향해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배가 고파요··· 먹을 거··· 먹을 걸, 제발···.
-음.
귀족처럼 차려입은 자.
-너희 같은 고아들은 이 왕국의 전염병이란다.
-먹을 걸···.
-가만히 놔두면 사회를 좀먹지. 일하지도 않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면서 병을 퍼트리고. 나는 그런 너희들을 왕국에서 격리하는 교도관이고 경비병이다.
순식간에 여러 풍경이 내 의식으로 파고들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떠돌이가 많은 시대.
귀족은 고아들을 모아다가 저택에 가두었다. 겉으로는 고아원을 표방했다. 바깥세상에서 귀족은 자상한 부자였고, 위대한 사업가였으며, 양심 있는 지식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너희를 뿌리부터 썩은 종자로 취급하겠지. 나는 아니란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저택에서.
-나는 너희를 교육시킬 거다.
귀족은 단지 한 명의 폭군이었다.
-배고프다고 해서 무조건 눈앞의 음식을 탐하는 자는 짐승이다. 물론 너희는 짐승처럼 들판에서 태어난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짐승으로 자라서야 되겠느냐.
-배가 고파요··· 배가···.
-참아라. 배고파도 참거라. 참아서 인간이 되어라.
귀족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상한 미소. 갈비가 앙상하게 굳어버린 어린애를 내려다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자였다. 그 웃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계가 어딘가 있었고, 그런 시대가 언젠가 있었던 걸까.
-참회하여라!
미친놈은 또 다른 미친놈을 불러 모았다.
-아아아아악!
-오오, 마녀의 아이들아! 즈라쿠아의 독이고 우리 왕국의 병이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께서는 절대로 당신의 신자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저 또한 저의 어린 양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아파, 요··· 아파··· 아파요···.
어느 신의 사제는 망치를 높이 들었다.
-기도하십시오!
광기가 미덕으로 포장되던 시대.
저택에선 비명이 끊기지 않았다.
-배가, 고파···.
굶주림.
-싫어··· 용서해주세요··· 왜··· 용서해주세요···.
고문.
-아. 고마워요··· 착한 귀족님. 친절한 아저씨···. 아픈 걸 견뎌낸 보상. 약속. 고마워요. 고마워요, 친절한 아저씨···.
세뇌.
고아들은 시체처럼 저택에 끌려왔다가 시체가 되어 저택을 떠났다. 곧 죽을 목숨이 정말로 죽은 목숨이 된 것에 불과했으나, 두 간격에 그토록 끈질긴 고통이 있을 거라고, 어린아이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저택에 있었고.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의 죽음이 있었다.
‘······.’
나는 눈앞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광경에 넋이 빠졌다.
‘대체 이게···.’
-와. 씹. 이게 뭐야?
그나마 어떤 양반 덕택에 정신을 좀 차렸다.
‘댁도 보고 있었어요? 없는 줄 알았네.’
-처음부터 보고 있었지. 나야말로 네가 있는 줄 몰랐다. 안 보여서.
‘음.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의식만 날아다니는 거 같은데···.’
-그딴 건 알 바 아니고.
배후령이 말했다.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하? 인간으로 교육시켜? 무슨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들이 무슨 남을 인간으로 교육시킨대.
‘···아마 이게 10층 보스 스테이지의 원본이겠죠.’
여기로 의식이 날아오기 직전 목소리가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당신을 죽인 적의 트라우마를 재현합니다]라고.
이번에 나를 죽인 적이라면··· 지옥불 저택 어딘가에 숨어 있을 진짜 인형. 즉, 지금 우리에게 비추는 풍경은 그 인형이 간직한 트라우마였다.
‘전혀 몰랐어요.’
나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몬스터가 생전에는 사람이었다니···.’
-몬스터라고 다 그런 건 아니야. 주로 보스만 그러지. 원래 보스 몬스터들은 이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토대로 만들어지거든.
배후령이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세계에 서식하는 생물이라거나, 이세계에서 활약했던 영웅이라거나. 그런 것들이야. 탑 11층 넘어가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지고.
‘네? 그걸 왜 여태까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안 물어봤잖아.
‘······.’
너무 뻔뻔해서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네. 씁.
‘뭐를요?’
-네가 말한 원본 말이야. 지금 보이는 장면들. 보스 몬스터들이 이세계에서 따왔다는 것까진 알아도, 걔들이 뭘 겪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 독심술 스킬을 가진 것도 아니고···.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기분이 진짜 엿 같네.
동감이었다.
‘···그러게요.’
세상 어딘가에선 항상 저런 일이 벌어질 테고, 저것보다 더 심한 일도 무수할 테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그냥 달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부, 불이야!
[트라우마]는 얼마 안 가서 끝났다.어느 하인이 실수로 촛불을 엎었다. 엎어트린 것을 모르고 하인은 지나쳤다. 어두운 밤. 사람들이 잠자리에 든 사이 불길은 조용히 번졌다. 누군가가 화제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쿨럭, 크흡. 쿨럭!
-어서 피해야···.
불길이 타올랐다.
지하실의 밧줄이 타올랐다. 쇠사슬이 타올랐다. 고아들을 매달아둔 족쇄가 타올랐으며, 족쇄에 매달린 고아들이 타올랐다. 세뇌된 아이, 고문당한 아이, 굶주린 아이가 타올랐다. 불길은 모든 세뇌와 상처 그리고 굶주림을 불태울 것 같았다.
-아···.
아이들이 입을 벌렸다.
뻘겋게 달아오른 쇠사슬이 아이들의 손목과 발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겨우 비명을 지를 뿐.
그렇지만, 내게는 들렸다.
-죽기 싫어.
원망.
-배가 고파.
-살고 싶어···.
-친절한 아저씨.
의식에 직접 흘러들어오는 원한과 원성.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가족이 없었어. 그래도 괜찮았는데. 조금 더 놀고 싶었어. 그래도···.
-우리 잘못이 아니야. 억울해.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배가 고파.
저택이 타올랐다.
샹들리에가 달린 1층 로비가 태워졌다. 저택의 주인이 머무르던 침실이 태워졌다. 화려한 침대도. 고풍스러운 커튼도.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깊은 지하실도 모두 태워졌다.
-죽고 싶지 않아.
타닥.
타닥-.
불꽃이 허공에 튀었다.
이제 보이는 건, 멀리서 훨훨 타오르는 저택 한 채.
[트라우마 재현 완료.] [페널티를 종료합니다.]그리고 나는 하루 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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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배후령과 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둘 다 침대에 앉아서 침묵했다.
충격을 받았다기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음···.
한참이 지나서 배후령이 뒷머리를 긁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지만. 잘 봤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지 않겠니?
“와. 처음으로 꺼내는 말이 그거예요? 댁 진짜···.”
-오냐. 그래. 내 인성 개차반이다.
배후령이 인상을 구겼다. 고릴라가 화내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그것과 유전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원래 진실은 개 같은 거야! 저 10층 보스는 단순히 몬스터에 불과하고, 원본이 된 아이들은 이미 어느 이세계에선가 죽어버렸어. 한참 옛날에 벌어진 사건이라 이 말씀이지. 좀비야. 네놈이 뭘 할 수 있냐!
“······.”
-하다못해 이 탑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4000번이든 5000번이든 죽고 죽어 또 죽어서 과거로 회귀할 수라도 있지. 저건, 그냥 딴 세상 딴 시대에서 일어난 거야. 내가 살아 있어도 이건 해결하지 못해! 검제가 아니라 검신(劍神)이어도 안 되는 일은 안돼.
맞는 말이었다.
-진짜 인형을 찾아내서 사냥해. 죽여.
배후령이 말했다.
-그리고 11층으로 올라가. 20층, 30층, 40층, 50층, 전부 그렇게 클리어하는 수밖에 없다. 최정상에 군림하는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이딴 일은 스스로 해결해라!
역시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염제도 그렇게 생각했겠죠.”
-음?
“염제. 염병. 유수하요. 제가 처음으로 사냥한 인간이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침낭을 배낭 머리에 묶었다. 배낭을 등에 걸쳤다. 허리춤에 검을 찼다. 달리 말해서, 나는 탑에 오를 준비를 끝마쳤다. 숙소에서 나갈 적에 나는 어설프긴 해도 한 명의 사냥꾼으로서 장비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유수하는 100퍼센트 진짜 인형을 찾아내서 머리를 터트렸을 겁니다. 트라우마를 봤든 안 봤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게 어때서?
“나는 염제 새끼처럼 되기 싫습니다.”
탑을 올랐다.
저번 회차와 똑같이 관리인을 속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저택의 대문에 섰다.
트라우마에서 봤던 곳과 똑같이 생긴 서양식 귀족 저택.
-야! 네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놈처럼 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보스를 안 깰 거야? 뭘 어쩔 건데.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려면 보스를 없애야 하잖아, 좀비 자식아!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요?”
-뭐?
나는 대문에 양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젠장. 멍청하게 굴었어.”
-지금 뭐라는 거야?
“제가 멍청하게 굴었다고요! 댁도 똑같이 멍청했고. 염병할. 낫 놓고 기역도 모른다는 게 딱 지금 우리 꼬라지죠.”
배후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얘가 돌았나. 좀비 네가 멍청한 거야 고금의 진리지만 왜 나까지 멍청한데? 난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거든?
“스킬 카드.”
내가 신경질 내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고르지 않은 S급짜리 스킬 카드요. 기억나요? 불지옥 결계. 댁이 무조건 이거 골라야 한다면서 난리 쳤잖아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한번 말해봐요.”
-허 참. 이 좀비놈이 누굴 뭐로 보고···. 좋아. 들어봐라.
배후령이 인상을 찡그린 채 줄줄 읊었다. 어릴 때 신동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배후령은 카드 스킬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말했다.
+
[불지옥 결계]
랭크: S-
효과: 원한(怨恨). 원성(怨聲). 원망(怨望). 당신의 풀리지 못한 한, 당신의 닿지 못한 목소리, 당신의 이뤄지지 못한 소망. 그것들을 모두 불태우십시오. ‘뜨거워.’ 뜨겁습니까? 세상을 불더미로 만드십시오. ‘죽을 것 같아.’ 죽이십시오.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반경 2km 공간에 오러의 불지옥이 강림할 것입니다.
누구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단, 당신도 반드시 결계 안에 있어야 합니다.
+
나는 가만히 스킬 내용을 듣고 반문했다.
“검제 씨. 뭐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와, 답답하네. 그러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마지막 부분이요.”
내가 말했다.
“보스 몬스터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불지옥 결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잖아요. 어느 누구라도. 그런데 어떻게, 대체 무슨 수로, 지금까지 10층에 도전한 헌터들은 살아서 탈출한 거랍니까.”
-어?
배후령이 눈을 깜빡였다.
-···어엉? 씨발, 그러게?
흑룡(黑龍)이라는 길드가 있다.
이 세상에 탑이 열린 날부터 줄곧 정상에 군림해온 길드.
흑룡을 지휘하는 랭킹 2위의 헌터. 흑색마녀는 수십 번이나 10층에 도전했다. 도전할 때마다 실패했다. 랭킹 2위의 헌터는 패배했지만 그래도 공략에 참여한 헌터들을 모두 살려서 돌아왔다.
모두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말이 안 되잖아요.”
나는 양팔에 힘을 주었다.
대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보스가 허락하지 않으면 탈출 자체가 불가능한데. 애당초 그런 스킬인데··· 보스를 죽이지도 않고서 멀쩡히 탈출했다니. 그것도 전원이. 말이 안 되죠.”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염병. 결론은 당연히 하나밖에 없잖아요!”
끼이이익.
대문이 양팔을 벌리듯 완전히 열렸다.
“보스가 허락해준 겁니다! 도망치라고!”
십층의 보스.
아직 인류의 누구도 공략하지 못한 스테이지.
불타오르는 지옥의 저택이 드러났다.
“도망치려면 얼마든지 도망치게 내버려 두는 거 보면 모릅니까. 보스는, 얘네는, 처음부터 헌터들을 적대하지 않았어요.”
-······.
“그냥, 찾아온 사람들이랑 놀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촛불.
저택 이곳저곳에서 촛불이 엎어졌다. 엎어진 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까르르르!
불길 사이로 인형들이 있었다. 마치 어디엔가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인형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머리만 간신히 돌려서 내 쪽을 쳐다보았다.
-놀아줄 거야?
인형들이 입을 벌렸다.
-우리랑 놀아줄 거야?
-얼음땡?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얼음은 녹았어. 꽃은 다 찢어졌어. 숨바꼭질로 하자!
-그러자! 우리랑 놀아줘! 숨바꼭질로 놀아줘!
-꺄르르르르!
불길이 타올랐다.
샹들리에가 달린 1층 로비가 태워졌다. 저택의 주인이 머무르던 침실이 태워졌다. 화려한 침대도. 고풍스러운 커튼도.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깊은 지하실도 모두 태워졌다.
그 속에서 아이들만은 인형이 된 채 아직 타오르지 않았다.
“······.”
나는 잠시간 이빨을 깨물었다.
“그래. 놀아주마.”
[스킬을 발동합니다.]지난번 죽음에서 얻은 스킬. 화염 면역 스킬을 나 자신한테 걸었다. 스킬이 발동된 순간, 온몸에서 느껴지던 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숨이 편안해졌다. 화마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풍경도 조금 더 또렷하게 보였다.
인형들의 얼굴이 보였다.
-어?
-아저씨, 타지 않아.
인형들은 얼굴이 저마다 달랐다. 표정이 없었는데도 알 수 있었다.
-뜨겁지 않아?
-이상한 아저씨.
-놀 수 있어?
-우리랑 놀아줄 거야?
나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숨바꼭질이지. 조심해라. 이 아저씨가 어릴 때 숨바꼭질에서 져본 적이 없거든.”
-까르르르! 이상한 아저씨다!
-숨어! 다들 숨어!
인형들이 웃었다. 숨으라고 말했으나 그중에서 움직이는 인형은 없었다. 다들 제자리에 박혀서 꼼짝하지 못했다.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의 아이들이 웃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잡았다.”
나는 저택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면서 인형을 하나씩 잡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인형은 끼기기익,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때마다 인형은 입을 벌려서 말했다.
-땡! 내가 아니야!
인형들이 웃으면서 사라졌다.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저택의 어디로 발걸음을 돌려도 인형이 있었다. 많았다. 나는 걸어가면서 한 명 한 명의 인형을 잡아주었다.
-······.
한 명.
-야, 이건···.
다시 한 명.
-이건··· 위령이잖아.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위령慰靈.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것.
나는 묵묵히 저택을 순회했다. 나는 고아들을 매달아두었던 족쇄를 보았고, 아이들을 옭아맸던 쇠사슬을 보았다. 족쇄가 달리고 쇠사슬이 놓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인형이 있었다.
불길이 타올랐다.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내가··· 아니야··· 내가···.
-내가··· 아니야···.
시간이 흘렀다.
터벅.
어느새 내 발걸음은 지하실에서 멈추었다. 길고 긴 돌계단을 내려온 발길이었다. 돌계단에도 인형들이 있었다. 인형들은 계단에 쓰러져 있었다. 마치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기어오르다가 돌연 멈춰버린 것처럼.
“······.”
계단에 쓰러진 아이들을 모두 잡아준 다음, 마침내 마지막 인형 앞에 섰다.
지하실.
-우리랑 놀아줄 거야?
저택의 심처에 인형은 기대어 있었다.
인형의 주변에는 망치와 송곳, 실톱이 널려 있었다.
-······.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없는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잡았다.”
불지옥을 만들어낸 아이의 머리는 작았다. 한손 안에 머리가 둘러싸일 만큼.
“···이제는 네가 술래다. 꼬마야.”
침묵이 있었다.
인형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인형처럼 이 아이도 무표정했다. 표정을 잃어버린 얼굴로 인형은 입을 열었다.
-친절한 아저씨.
인형의 입에서 흐른 것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입술. 피부. 눈동자. 인형의 몸이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불길은 한순간에 인형을 집어삼켰으며, 삼켜지는 도중에도 인형은 망가진 레코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고마워.
그리고 녹아내렸다.
-고마워.
인형이 타올랐다. 쇠사슬이 녹아서 흘러내렸다. 족쇄, 망치, 송곳, 실톱, 모든 것이 다 타올랐다. 굶주림도. 굶주림의 흔적마저. 생명을 다한 불이 촛농으로 흘러내리듯 전부 사라졌다.
죽음은 흔적이 없었다.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 저택의 폐허 한가운데 나는 서 있었다.
“······.”
수년.
[축하드립니다.]지난 수년 동안 인류의 누구도 깨지 못한 곳.
[노멀 스테이지 클리어.] [히든 스테이지 클리어.] [보스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습니다.]이날. 탑의 열 번째 층이 클리어 되었다.
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