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62)
이른 아침에 벌어진 소동은 산와족들을 깨웠다.
-무슨 소란이냐!
-사자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라임.
-광산 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지하도시에 버섯처럼 솟아오른 건물들. 그 고층의 창문에서 달팽이들이 기어나왔다. 수백. 수천. 수만. 잠이 제일 옅게 든 달팽이부터 제일 깊게 빠진 달팽이까지. 산와족의 점액질이 장벽을 뒤덮었다.
-소란인가? 반란인가?
-반란이다!
-나팔을 불어라!
-라임! 조상의 영혼을 깨우자!
달팽이들이 벽을 기어올랐다. 찰싹! 달팽이들은 머리에 달린 더듬이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것이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이었다.
부우우우-…
가장 먼저 장벽의 꼭대기에 오른 산와족이 나팔을 불었다. 뿔나팔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죽은 달팽이의 등껍질이었다. 산와족은 동족의 죽음이 남긴 껍데기를 관(管)으로 삼아, 길게, 불온한 나팔 소리를 흘렸다.
부우우우우-
최초의 나팔에 이어서 다른 산와족들도 장벽에 올랐다. 장벽에 오른 산와족은 동족의 껍데기를 들어서 입에 가져다 댔다. 지하도시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솟아나 있었고, 건물마다 고동이 쳤다.
오르간.
건물 하나하나가 파이프가 되어 대공동(大空洞)을 울렸다. 부우우. 부우우. 산와족들이 불어젖힌 오르간의 화음은 어두운 지하세계를 뒤흔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고블린들의 소리는 화음에 파묻혔다.
왈! 왈!
산와족이 기르는 개들이 짖었다. 신을 닮았다고 하여 산와족은 개들을 신성하게 여겼다. 동굴에서 자라난 개들은 코가 젖어 있었고 울음소리가 음침했다. 죽은 달팽이의 화음에 사나운 개소리가 짓이겨졌다.
“크르르.”
나는 철창을 부셨다. 서걱! 오러로 강화된 앞발에 쇠창살은 두부처럼 썰렸다. 사육사들이 뒤늦게 기어나와 나를 더듬이로 가리켰지만, 이미 나는 탈출하여 폴리스의 길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사자다!
-검투장 사자가 탈출했다!
벽길을 기어오르던 달팽이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허겁지겁 더 높은 곳으로 도망치는 달팽이도 있었다. 나는 뒷발로 길바닥을 쳐서 거대한 기둥에— 산와족의 역사가 조각된 바로 그 기둥에 뛰어올랐다.
“크르르!”
내 앞발이 기둥을 파고들었다. 발에선 붉은 오러가 넘실거렸다. 나는 암벽을 등반하는 산악가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기둥을 기어올랐다.
-라임!
-저, 저길 봐라!
나의 등정에 산와족들이 기겁했다. 다른 건물의 벽을 오르던 산와족들이 점액질을 흘리며 흩어졌다. 그중에는 균형을 잃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 산와족도 있었다.
나는 기둥 꼭대기에 올라서 도시를 내려보았다.
부우우우우…
지하세계에는 여전히 나팔이 넘쳐흘렀다. 죽은 시체에서 흐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따라 산와족들은 무장하고 집합했다. 도시 곳곳에서 산와족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저들이 고블린을 진압하리라.
‘내버려두지 않겠다.’
나는 가슴을 폈다. 어느 건물도 지금 내가 오른 기둥보다 높지는 못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공기를 폐에 들이마시고, 천천히 사자의 아가리를 벌렸다.
고오오오오-
나의 입에서 고고성이 터졌다.
마치 잔물결이 연못에 퍼지듯, 사자의 고성이 산와족의 나팔을 밀어냈다. 밀어내면서 점점 더 퍼졌다. 내 폐는 죽은 달팽이 시체의 빈 속보다 깊었으며, 내 목소리는 그들의 화음보다 사나웠다.
-고르!
마침내 고블린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고블린들은 돌망치를 쥔 채 광산 입구에 모여 있었다.
내가 그들을 보았다는 것은 달리 말해, 저 아이들 역시 나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블린들이 소리쳤다.
-케케륵케르!
그것이 나의 이름이었다.
지정족의 언어가 아직 짐승의 울음 사이에서 헤맬 적에, 고블린들은 나를 케케륵케르라고 불렀다.
‘케’는 물을 의미했다. 이 세상에서 투명하고 순결한 모든 것을 고블린은 ‘케’라고 불렀다.
‘케륵’은 하늘을 의미했다. 이 세상에서 드높고 신성한 것을 고블린은 ‘케륵’이라고 불렀다.
‘케르’는 고기를 의미했다. 또한 짐승을 뜻했다.
그리하여 나의 이름은.
-케케륵케르!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짐승.
가로되 백사자(白獅子).
나는 지하세계 한복판에 우뚝 서서 포효했다.
“구루!”
기둥에 오른 나를 보고 산와족들은 멈칫했으며, 고블린들은 발을 굴렀다. 고블린들이 대열을 이루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들소를 잡으면서 가르쳐줬던 사냥 대형이었다.
고블린들은 이백 년 전에 나와 나누었던 시간을 지금까지 간직했다. 부모가 별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자식에겐 평생의 자국으로 남는 것처럼.
나는 고블린들이 이룬 대열을 보며 책임감을 느꼈다.
-구루!
좋다.
나의 가장 어린 타인들아.
너희가 바라는 고향으로 데려다주마.
“크르륵.”
나는 앞발에 힘을 주었다. 심장에서 용솟음친 오러가 사자의 팔뚝과 사자의 앞발, 사자의 발톱으로 흘러내렸다.
쩌저저적-.
발톱이 파고든 틈새로 금이 갔다. 붉은 오러가 거미줄을 타고 순식간에 기둥으로 스며들었다.
마천신공•개魔天神功•改.
제일식第一式.
염상유검炎上幼劍.
거대한 기둥이 유리창처럼 산산조각났다. 달팽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둥에 그려진 조각들. 산와족의 신화가 담긴 돌조각들이 부서진 것이다.
나는 부서져 내리는 기둥의 파편들을 밟으며 탓, 탓, 내려갔다. 이윽고 지상에 착지했을 때 기둥은 다 붕괴되어 있었다. 내 주변으로 먼지가 자욱히 피어올랐다.
‘이제 산와족의 예기(銳氣)는 확실히 무너졌을 거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신화속에서 살았다. 기둥이 무너졌다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 한 개가 쓰러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둥은 곧 산와족의 역사이고 종교였으며, 고로 기둥의 붕괴는 재앙을 의미했다.
신이 강림한 것이다.
‘반대로 고블린들은 기세가 등등해질 테고.’
하지만 지하세계를 거니는 신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내린 적 없는 신탁이 들려왔다.
[이단심문관이 당신의 신속한 계책에 감탄합니다.]그때, 먼지 구름을 헤치고 사냥개가 뛰어들었다.
“카아아!”
사냥개가 울부짖으면서 내 허리를 할퀴었다. 기습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휘둘렀다. 휘익! 그러나 내 발톱은 사냥개의 머리가 아니라 허공을 휘저었다. 바로 눈앞에 있던 사냥개가 돌연 사라져버린 것이다.
‘신성술식!’
나는 곧바로 사냥개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단심문관도 짐승에 빙의했나!’
내가 뭘 목적하고 있는지 이단심문관은 즉시 알아차렸다. 산와족의 종교를 상징하는 기둥을 무너트리는 것. 산와족을 패닉 상태에 빠트리는 것.
나는 신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여 빠르게 승리를 거머쥐려 했다. 산와족이 혼란에 빠지면 그만큼 지정족의 탈출이 용이해지니까. 그러자 이단심문관 역시 신수(神獸)에 빙의하여 맞섰다.
‘어디냐.’
허리가 지끈거렸다. 사냥개에게 찢겨진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사방을 경계했으나, 이단심문관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주위가 먼지구름에 뒤덮여서 시야가 방해됐다.
‘어디서 나타날 거냐. 이단심문관!’
코끝에 기름 냄새가 감겨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크르!”
나는 기름 냄새를 맡자마자 옆으로 굴렀다. 쿵! 사냥개가 공중에서 뛰어내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땅바닥을 찍어내렸다. 사냥개는 아쉽다는 듯 혀를 낼름 내밀었다.
사냥개는 황금털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부터 산와족 신관들이 저 짐승을 돌본 게 분명했다. 사냥개의 이빨에는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짧게 다듬어진 털가죽에는 파도 무늬가 소용돌이쳤다.
무엇보다 온몸에서 올리브 기름 비슷한 향유의 냄새가 풍겼다.
‘너도 신화로 맞서싸우기 위해 신수를 택한 거겠지만.’
나는 크르르, 짐승의 소리를 흘렸다.
‘그게 패착이다. 이단심문관. 너의 몸에서는 향유 냄새가 진해. 한 번은 기습에 당해줬지만, [그런 냄새]를 풍기면서 두 번째 기습까지 통할 거라 생각하진 마라!’
이 몸으로는 사자의 울음밖에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은 꼭 내 울음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전법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기습을 관두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카르르.“
“그르…”
사냥개와 사자의 소리가 먼지 속에서 섞였다.
나는 사냥개의 뒤를 잡기 위해 천천히 맴돌았다.
‘집단전이라면 모를까 일대일 싸움에서 당신이 날 이길 수는 없다. 당신의 신성술식은 가공할 만한 힘을 지녔지만 어디까지나 서포트 스킬에 가깝지. 같이 싸워줄 동료가 없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해.’
황금의 사냥개는 카르르, 울었다.
내게는 그것이 이단심문관의 웃음소리로 들렸다.
[이단심문관은 당신과 싸우게 되서 기쁘다고 말합니다.]‘기쁘다고?’
[이단심문관은 당신이 자신보다 더 유능하다는 걸 증명해주길 원합니다.]나는 메세지의 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사냥개는 내 표정을 읽은 듯 더 느릿하게 앞발을 움직였다.
[이단심문관은 말합니다.] [자신은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움직일 뿐이라고.]서서히 먼지 구름이 가라앉았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능한 자의 최선이 무능한 자의 최선보다 옳습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보다 유능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이단심문관은 기꺼이 당신에게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가라앉은 먼지 너머로 지정족과 산와족의 모습이 보였다.
두 종족이 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자신은 200년에 걸쳐서 당신에게 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단심문관은 이제 당신의 최선을 묻습니다.]사냥개가 달려들었다.
나 또한 사자후를 터트리며 발톱을 세웠다.
우리 두 사람이 충돌한 것과 동시에, 시민들은 노예를 향해, 노예들은 시민을 향해 돌격했다.
-라임!
-케케륵케르!
산와족은 가죽 갑옷을 입은 채 촉수로 날붙이를 휘둘렀다. 고블린들은 제대로 된 옷이 없어, 맨몸으로 돌망치를 내리찍었다. 무장의 수준에선 시민이 압도했다. 하지만 달팽이들은 기둥이 무너진 광경에 동요했으며, 사기의 측면에서 노예들한테 밀렸다.
“그르륵!”
내 발톱이 이단심문관의 뒷다리를 찢었다. 카아아! 사냥개가 목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나의 공격은 치명타에 이르지는 못했다.
결정타를 날리려는 순간마다 이단심문관은 능숙하게 신성술식을 써서 피했다. 신성술식은 기습에 쓸모가 없어졌을 뿐, 회피에는 여전히 유효했다.
이단심문관의 전술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시간을 끄는 건가.’
사냥개가 나직이 울었다. 나는 사냥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단심문관의 뜻은 용이하게 상상되었다.
이단심문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장은 산와족들이 혼란에 빠졌지만 점차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리고 더 많은 병력이 이곳에 집중되겠지요. 시간을 끌기만 해도 제가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연전.
그것이 이단심문관의 전법이었다.
“크르르.”
나는 허리에서 피를 흘리며 사냥개를 노려봤다. 사냥개가 뒷발을 절뚝거리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 둘 다 상처를 입은 짐승이 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은 전법이지만.’
나는 으르렁거렸다.
‘그건 나 혼자를 감당하려 할 때나 유효하지. 지금 상황에선 우책이야.’
시간은 결코 이단심문관의 편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해, 산와족의 편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달팽이들이 지배해온 시간이 이제는 역으로 그들의 목을 졸랐다.
[슬라임폴리스에서 반란이 발생합니다!]팟, 하고 공중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검은색의 백조.
흑조(黑鳥)가 날개를 펼치고 길게 울부짖었다.
[흡혈종이 산와족에 대항하여 봉기합니다!]흑룡주의 신수가 공간전이를 써서 나타난 것이다.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던 박쥐들이 퍼드득 날개를 움직였다. 소금 광산으로 향해 움직이던 달팽이들 위로 박쥐들이 강하했다. 산와족이 비명을 지르며 촉수를 휘둘렀지만, 흡혈종은 더욱더 사납게 이빨을 드러냈다.
‘시간을 끈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나다. 이단심문관.’
지하세계에 울려퍼진 짐승의 포효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강물이 접대어진 부두에서, 소금 포대가 쌓인 항구에서, 동굴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네 갈래의 포효가 터졌다.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16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