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74)
“이 아들자식이?!”
나는 허겁지겁 성검을 쥐었다. 칼을 꺼내들 틈도 없어 검집째로 근육돼지의 주먹을 막았다. 콰아앙! 오러와 오러가 맹렬히 부딪혔다.
-호오?
일부러 기세를 받아내어 멀찍이 뒤로 밀려났다. 우부르카와 나 사이에 간격이 벌어졌다. 나는 공간의 격차를 시간의 여유로 삼았다. 칼자루를 잡았고, 태세를 취했다. 언제 근육돼지가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있게.
-좋다. 아주 좋다!
우부르카가 흐뭇하게 웃었다.
-근육은 여리여리한 주제에 꽤 묵직하군. 몸의 무게에 영혼의 무거움을 더했는가.
“난 원래 내장형 근육만 키워! 버르장머리없는 놈아!”
-우고르? 내장형 근육? 그게 뭔가?
“겉으로 보면 날씬하지만 속근육이 알차다! 몸매를 유지해주면서 근력은 한없이 올라가는 마법의 근육이지! 내장형 근육이야말로 고수의 품격으로써, 네놈처럼 근육이 밖으로 증식하는 스타일은 하수에 불과하다!”
-케케륵케르가 왈왈 짖는 소리를….
우부르카 의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순간이지만 호흡이 느려졌다.
한도 이상의 개소리에 직면하면 인간의 뇌는 경직되는 법.
나는 호흡의 어그러짐을 노리고, 타앗! 우부르카의 품으로 빠르게 쇄도했다.
-흠!
우부르카의 붉은색 눈이 커졌다. 그는 평범한 지정족보다 훨씬 거대했다. 때릴 곳도 훨씬 많았다. 나는 검집에 오러를 둘둘 휘감아서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미안하다, 얘야! 살살 때릴게!”
우부르카 의장이 씩 웃었다.
-우고르.
그는 품속에 파고든 나를 내려봤다. 내려보기만 했다. 몸을 비틀거나 팔로 가드하지 않은 채, 내 검집이 몸통을 후려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까아아앙-
상식적으로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울렸다. 퍽, 도 아니고 촤악, 도 아니라 까앙, 이라니. 마치 쇳덩어리를 후려친 것처럼 손바닥이 저릿했다.
“금강불괴냐?!”
-내 몸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부르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훗, 웃었다.
-본인은 선천적으로 백색증(白色症)을 타고 태어났다. 햇빛을 쬐면 따끔거렸고, 눈도 나빠서 불편했다.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진흙을 바를 수도 없었다. 나는 어째서 평범한 즐거움도 쉬이 누리기 어려운지 고뇌했지.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우부르카는 양팔을 벌렸다.
-온몸을 오러로 도배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미친.
-그 날부터 나는 오러 수련에 매진했다. 우선은 1초 동안만이라도 피부 전체에 오러를 덧바르는 걸 연습했지. 1초, 2초, 3초, 1분, 2분, 3분…. 1시간이 넘도록 유지하게 되었을 때 성인이 되었으며, 1일이 넘도록 유지하기에 이르렀을 때 본인은 의장에 등극했다. 나 우부르카에게 선천적인 결핍은 사소한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홉고블린이 보디빌더의 자세를 잡았다.
이두박근이 꿀렁꿀렁 요동쳤다.
“욱.”
만일 내가 느끼한 음식물을 먹은 상태였다면 위장 상태가 심히 거북해졌을지도 모르는, 참으로 요사스럽고도 요망한 박동이었다.
-나는 근육에 오러가 스며들도록 피 터지게 단련했다! 근육이 찢어지면 오러가 재생을 돕는다. 그리 재구성된 근육은 한결 더 오러가 잘 통하게 된다. 찢어지고, 자라나고, 찢어져서, 다시 자라남으로써, 본인은 궁극의 근육을 얻는 데 성공했다!
울퉁! 불퉁!
우부르카의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이 차례대로 울끈불끈거렸다.
엄청나군. 내 안구의 성능과 심리적 방어기제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고 있다. 손도 안 대고 이쪽에 데미지를 입히다니, 저놈의 경지는 가히 초절정고수에 비할 법하다.
-바야흐로 본인은 가장 미세한 근육부터 제일 두꺼운 근육까지 의사대로 통제하게 되었다! 근육과 오러! 오러와 근육! 이것이 바로 내가 제창한 근육도(筋肉道)다!
거 개소리가 참 고급지네.
-왠지 몰라도 본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만. 불쌍한 것들! 전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조립한다는 일념으로 오러를 운용하면 간단하거늘.
“어? 야, 잠깐만…. 너 그거 설마 환골탈태(換骨奪胎)…….”
-우리의 애비일지도 모르는 자여!
어쩌면 지정족 역사상 최초로 [환골탈태한 근육돼지]란 타이틀을 얻었을 아이가 외쳤다.
-너는 생각보다 강하다! 매우 좋다! 오랜만에 손대중 없이 때려줄 상대를 만났다. 그러니 너도 칼자루 따윈 쓰지 말고 전력으로 덤벼라!
“와.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아니긴 한데, 우부르카야. 너 진짜 싸움밖에 모르는….”
-심즉신(心卽身)! 의즉근(意卽筋)! 지즉육(知卽肉)!
불끈! 안 그래도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던 근육이 갑자기 화산 폭발을 예고하듯 불어났다.
불어났다.
불어났다.
“어, 어라?”
계속 불어났다.
“아가야…?”
어느덧 우부르카는 거대해졌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언덕만큼 컸다.
내 몸 따위는 녀석의 그림자에 덮여서 가려졌을 정도다.
“너무 자란 거 아니야…?”
실제로 몸이 커진 것이 아니었다.
[오러]가 [우부르카의 거대해진 모습]으로 자라났을 뿐.마치 거대 로봇에 탑승한 파일럿처럼 우부르카의 본체는 저 거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을 거다.
달리 말해 언덕만큼 거대해진 저 형상이 모조리, 전부, 오러의 덩어리였다!
-후.
쿠웅, 하고 땅이 울렸다.
우부르카가 발자국을 옮겼을 뿐인데 대지는 리듬을 탔다.
나는 엄지공주가 된 기분으로 우부르카를 올려다보았다.
“사, 살의가 심상치 않구나. 다시 작아지면 안 되겠니? 이 아빠, 좀 무서워지는데….”
-이것이야말로 나의 본모습이다!
거인 모드 우부르카가 포효했다.
-손가락 마디부터 주먹의 일격까지 내 의지가 아닌 것이 없으니! 백사자를 자칭하는 몽인이여! 나의 권(奉)은 너의 심장을 꿰뚫는다!
“야! 야! 이거 패륜이라니까!”
-좋군. 승리의 이름이 패륜이라면 기꺼이 패륜아가 되리다!
우부르카는 즐거워하며 자신의 권법을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집채만한 주먹이 그늘을 드리우며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시발오러법•거인류巨人流.
무식無式.
깔아뭉개기 권奉.
고상함이라곤 올챙이 눈깔만큼도 없는 이름이었다!
“권법명이 너무하잖아?!”
-무술의 가치는 이름이 아니라 위력이 증명한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우부르카는 작명 센스를 갖다 버리는 대가로 심후한 파괴력을 얻었다.
일격.
땅이 쪼개어졌다.
이격에 지면이 갈리고 삼격에 지하가 파였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권격.
암반이 조각났다. 뜨겁게 가열된 오러가 땅을 순식간에 갈아버린 탓에, 흙알갱이는 상당수가 진흙탕처럼 녹여져서 내 얼굴에 튀었다. 졸지에 나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생쥐 꼴이 되었다.
“뜨거워!!”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우부르카의 파상공세를 피했다.
“무식한 놈! 무식이 천하에 진동할 놈! 아, 내가 너희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좀비야. 이거 네가 키운 애들이라고 봐주면 안 되겠다.
내가 탭댄스를 추듯 회피 기동을 하고 있자, 배후령이 말했다.
-쟤 말대로 전력으로 싸워. 원래 강호에서도 부모랑 자식이 갈라져서 맞장뜨는 경우가 가끔 가다 있어. 골육상쟁을 전통으로 삼는 개뼈다구 문파도 있지.
“제길!”
나는 칼을 빼들었다.
“이젠 나도 몰라!”
-난 한참 전부터 몰랐다!
“자랑이다, 이눔 자식아!”
오러를 끌어올렸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화염.
어느 저택의 지하 고문실.
‘쇠사슬에 묶인 채 뻗은 아이의 손은 화염으로 일렁이는 불길이다.’
앳되어서 절명한 원한.
‘불.’
순식간에 심장이 뜨거워진다.
가만히 버려두면 종적 없이 흐릿해질 감정(感情)을, 지하 저택의 풍경으로 구체화시킨다. 구체화된 감상(感象)을 오러로 펼쳐낸다.
‘내 그림자는 지하실의 그늘.’
정(情)에 파묻히지 않고.
‘내 불길은 아이의 손길.’
상(象)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불에 너와 나는 없다. 불은 하나다. 언제나 불은 겹쳐지면서 분명하게 세상을 태운다.
그리하여 내 칼끝은 누군가의 손끝이 되며, 내 칼날은 우리의 비명이 된다.
마천신공•개魔天神功•改.
제일식第一式.
염상유검炎上幼劍.
-……!
불타라.
-으하하하하! 과연!
내 오러가 그림자를 타고 뱀머리처럼 일렁거린다. 상대의 손목을 묶는다. 팔목이라 해봤자, 거인이 피워내서 불려놓은 형상. 그러나 나의 심상이 더 견고하다. 더 뜨겁다.
더 강하다.
손목을 자른다.
-확실히!
상대가 반항한다. 왼팔의 손목이 잘린 상대는, 오른팔을 휘저어서 나를 떨쳐내려 한다. 간격을 확보하려는 건가? 태세를 재정비하기 위함이군.
몰아세운다.
허리를 숙여 권격을 피한다. 주먹이 허공을 휘저은 순간, 그림자의 불길로 상대의 오른팔마저 붙잡는다. 한 가닥. 두 가닥. 세 가닥. 수십 갈래의 오러가 거인의 권을 봉쇄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군!
불태운다.
– 케케륵케르여!
거인이 양팔을 복구하려 든다. 아직 오러가 충분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상대방이 오러를 충원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지를 자르면 그만이다.
-육백 년 만에 다시 우리 종족에 강림한 것인가!
왼팔이 돋아나기 전에 왼발을.
왼발이 돋아나기 전에 오른발을.
오른발이 돋아나기 전에 다시, 왼팔을.
거인의 허상을 벤다.
-전승의 위엄에 모자람이 없다! 아니, 정정하마! 도리어 전승이 모자랐군!
난도질한다.
-굉장하다! 우고르! 굉장하다! 자신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강림]시키다니!
타오르는 지하에 거인을 파묻는다.
-오러란, 영혼의 불이란, 그런 식으로도 쓸 수 있었는가!
타오르는 종잇장처럼 거인이 불길에 좀먹힌다.
한뼘 한뼘 점점 더 줄어든다.
거인의 오러 역시 붉은색이었기에, 그건, 큰 화마에 작은 화염이 잡아먹히는 형국을 닮았다.
‘굳이 둘이 달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거인의 불길을 집어삼키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부르카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부풀렸다. 연장시켰다. 오러란 자신을 확장시키는 도구다. 반면, 나는 누군가의 비명을 옮겼다. 끌어들였다.’
붉디붉은 오러가 타올랐다.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 뇌리에서 불꽃이 타닥, 튀었다.
‘나는 스승님의 마천신공을 내 마천신공으로 옮겨놓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나 혼자서 비명을 지를 필요가 있을까? 나 혼자서 모든 업을 짊어질 수 있고, 나 혼자만 모든 한을 그려낼 수 있나. 그래야만 하는가?’
오러 운용의 원리가 내 머리를 메웠다.
‘아니다.’
그곳에서 해법이 떠올랐다.
‘누구나 불이 될 수 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우부르카야. 떠올려라.”
-우고르?
지하 저택의 모습을 말할까.
아니다.
“슬라임폴리스의 어두운 지하를 떠올려라.”
더 가까운 광경.
“거기서 너희는 땅구멍을 파서 살았다. 구덩이마다 열셋 남짓하는 지정족이 엉겨서 지냈지. 그 중에 어린 지정족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온전히 태양을 본 적 없고, 온몸으로 빗물을 맞아본 적 없으며, 마음껏 진흙을 발라본 적도 없다.”
-…….
“아이들을 떠올려봐라.”
나는 지정족 역사상 최강의 전사를 몰아붙였다.
“아침 저녁으로 구덩이엔 물고기 몇 마리 배급된다. 그게 먹을 것의 전부야. 살점도 얼마 없는 송사리를, 어미들은 주의 깊게 굽는다. 떠올렸냐?”
-…떠올렸다.
“좁은 구덩이가 매캐한 연기로 자욱해진다. 어미가 케륵거리고 아이가 기침하지. 그렇다고 바깥으로 나올 수도 없다. 산와족 감시관들이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있거든. 비좁은 구멍의 연기, 여린 부모와 어린 자식의 기침을 떠올릴 수 있겠냐.”
-있다.
“어린 지정족이 아직 다 익지도 않은 물고기에 손을 뻗는다.”
나는 칼날로 거인의 권격을 쳐냈다.
“어미가 어린 자식의 손목을 친다. 팔목을 잡는다. 때릴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이 어린 자식들은, 틈만 나면 자꾸만 설익은 물고기에 손을 뻗는 거야. 배가 고파서. 어미가 자길 막으면 땡강을 부리면서 울음까지 터트리지.”
-음.
“그러면 결국에 부모는 생선이 좀 익자마자 애들한테 줄 수밖에 없다. 애는 또 금방 먹어치워. 먹어치우고, 다음에 구워진 생선을 쳐다보지. 달라고.”
나는 칼자루로 거인의 손목을 비껴 쳤다. 틈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검을 휘둘러, 거인의 몸집을 조금 더 줄였다.
“아이의 눈길, 아이를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 아이의 손길, 아이의 손길을 막아서 붙잡는 어미의 손길을 떠올려라. 땅구덩이의 연기 속에 난 길들을 한번에 그려내라.”
-…….
“너라면 그릴 수 있어.”
-우고르.
“담아.”
거인이 주먹을 휘둘렀다.
“흉내를 내.”
피하고, 꺾었다. 권격의 방향이 달라졌다.
“울어라.”
거인의 자세를 비틀었다.
“너희는 불로 슬픔을 노래할 줄 아는 종족이다. 불꽃은 단순한 불에 지나지 않지만, 너희는 불꽃이 휘감긴 각도, 치솟는 속도, 내려앉는 진폭을 보며 거기서 감정을 읽는다. 오러도 다를 바 없어.”
-…….
“하나의 글자가 하늘을 담는다. 하나의 리듬이 슬픔을 노래한다. 왜 오러로는 하늘을 담지 못하겠냐? 왜 오러로 슬픔을 그리지 못하겠냐. 심상을 박고,”
거인의 자세가 무너졌다.
정강이를 쳐서, 균형을 맞췄다.
일으켜세웠다.
허공을 휘젓는 거인의 주먹이 앞으로 향하는 공격으로 변했다.
“질러.”
그 순간, 거인의 주먹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은 다섯 갈래의 혓바닥으로 나뉘었다.
다섯 갈래는 다시 다섯 갈래로 나뉘어서, 스물다섯의 손길이 되어 이글거렸다.
-…….
우부르카가 멍하게 주먹을 내려봤다.
어떤 불길은 여렸고 어떤 불길은 억셌다.
그 중 어느 것도 우부르카의 손짓을 닮진 않았다.
“음.”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긴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마천신공을 닮은 일격이었다.
“나쁘지 않네. 역시 역대급 재능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하는 거란다. 얘야.”
우부르카 의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가… 너무 강하군.
1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