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76)
1.
어느 도시의 이야기를 하자.
슬라임폴리스.
여기는 광산업과 교역으로 먹고 살던 도시다.
제국 최고의 돌소금 광산지로 손꼽힌 슬라임폴리스는 위세를 자랑했다. ‘땅만 파서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라는 사람들을 ‘네, 둘 다 나오는데요?’ 하고 생깔 수 있는 곳.
-위대한 동굴.
-지모신(地母神)의 두개골.
-우리는 여신의 이빨을 수거한다.
그런 곳이었다.
광업으로 흥한 도시는 땅을 캐면서 영광도 캐낸다. 땅이 점점 파일수록 영광의 나날도 깊어지는데, 어느 순간 곡괭이를 휘두르면, 깡! 소리가 울린다.
밑바닥까지 파버린 것이다.
[슬라임폴리스의 채굴성이 악화됩니다!]아직 돌소금이 남긴 남았다. 하지만 너무 깊이 파고들어야 구할 수 있었다. 작업 시간은 길어졌고, 작업 난이도는 높아졌다.
[슬라임폴리스 소금 산업의 비용이 증가합니다!]노예들이 탈주했다. 산와족은 피부가 염분에 약하다. 광산 입구에서 잠깐 곡괭이를 휘두르거나 작업자들을 관리할 수만 있지, 깊은 갱도로 기어들긴 어렵다. 여섯 종족의 노예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노예들이 사라지자 암염도시의 경제는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산와족의 지배력이 약화됩니다!]새기족(能籍族)은 인어를 닮은 종족이다. 그 피부에 바닷물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이들은 대하라 불리우는 강 안에서만 노닐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떤 별종이 태어났다. 이 별종은 바닷물에 들어가도 ‘어, 좀 짠데?’하고 견딜 수 있었다. 별종과 피를 섞어 태어난 이들도 바다에서 견딜 수 있게 됐다.
[새기족이 진화합니다!]바다는 산와족이 드나들기 어려워하는 마경이었고, 그 마경에서 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새기족이 산와족과 더는 마주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기족 중 또 하나 별종이 있어 어쩌다가 갯벌의 흙을 할짝였다. ‘어라, 무지 짠데?’ 바닷물이 오가는 갯벌이니 당연히 흙도 짰다. ‘더 짜질 수 없을까?’
아직 슬라임폴리스에서 노예 생활하던 기억이 남아잇던 시절. [소금을 얻으려면 구덩이를 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새기족은 갯벌 한복판에 구멍을 팠고, 거기에 나무막대기를 꽂고 갈대로 두른 다음 진흙을 발랐다. 원시적인 항아리였다.
일주일 뒤, 새기족이 항아리를 확인했다. 항아리에 바닷물이 고여 있었다. 그 바닷물을 퍼날라서 가마에 구웠다. 맛을 보니, 매우 짰다. 자염(黨壁)이었다. 오래된 고정관념과 새로운 환경이 만났을 때 신기술은 탄생했다.
[신기술이 탄생합니다!] [산와족의 경쟁 세력이 성장합니다!]새기족은 타고난 뱃잡이기도 했다. 수륙양면으로 호흡이 가능한 인어들은 풍랑을 만나도 죽지 않았다. 무섭던 바다, 해신(海神)은 이제 그들의 수호신이었다. 소금을 실은 선박이 바닷길과 물길을 제 집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소금 산업의 생산, 유통이 새기족에게 넘어갔다.
[이데올로기 갈등이 발생합니다!]산와족은 승복할 수 없었다. 산와족의 신화에 따르면 소금은 여신의 ‘이빨’이다. 바닷물에서 나는 소금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산와족은 순순히 인정하기 어려웠다.
상대를 인정하기 어려울 때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여럿 있다.
-사술(邪術)이다.
산와족은 제일 쉬운 태도를 선택했다.
-악마가 뒤에 있다.
-자염은 악마의 입김이 서린, 저주받은 음식이다.
-새기족은 모두 악마를 모시는 마귀들이다!
-그 피부가 바다를 견딜 수 있게 된 것도 악마 숭배의 증거다!
어쩌면 산와족은 조금 더 고생스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산와족의 신화를 고치고 조물거릴 수도 있었다. [여신은 사실 죽을 때 반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몸의 절반은 지상에 파묻혔으며 나머지 절반은 심해에 가라앉았다].
그런 식으로 해볼 수도 있었다.
제국의 강역이 넓어질수록 전통적인 신화는 위태로워진다. 뭍에서만 나는 줄 알았던 소금이 물에서도 난다. 세상이 넓어진다. 세상이 넓어질수록 신화는 개성이 사라지며, 신화의 주인공은 특색이 옅어진다.
언젠가 제국은 [개성 넘치는 지역 신화]를 버리고, [보편적이며 무색무취한 최고신]을 새로운 신앙으로 삼았을지 모른다. [슬라임폴리스]는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로마와 같이 제국의 이름 그 자체로 거듭났을지 모른다.
-마귀들이 만든 소금을 섭취하는 자.
-이유를 불문하고 신성모독죄로 다스린다!
산와족은 그러지 못했다.
-소금은 물에 빠지면 녹는다. 물은 소금을 녹인다. 그런데 어찌 물에서 소금이 나겠는가? 이는 악마의 속임수이며, 사람을 현혹하여서 그릇된 신앙으로 빠져들게 하려는 사악한 계략이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정당화했다.
-이제부터 모든 시민은 오직 제국에서 생산된 암염만을 먹어야 한다. 신전이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광산에서 소금을 캔 자, 물을 소금으로 연금한 자, 연금된 물소금을 제국으로 들여오는 자, 전원 처벌한다!
-물소금의 교역을 금한다. 모든 강물과 물길을 틀어막아라. 새기족의 선박, 물소금을 실은 배는 압수하여 가라앉혀라!
옛된 신화를 믿는 사제들이 옹호했다. 노예들과 전쟁을 벌인 전사들이 호응했다. 여섯 종족을 여전히 우습게 보는 시민들이 응원했다. 그들의 옹호와 호응과 응원을 귀족들은 권력의 밑천으로 삼았다.
사제, 전사, 시민, 귀족을 한꺼번에 막을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아핫.’
‘저는 이제부터 당신을 저의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신(神)은 이미 탈락하였다.
[산와족이 새기족의 거점 항구를 파괴합니다.] [산와족이 새기족의 교역선을 약탈합니다.] [산와족이 다른 종족들에게 암염 교역을 강제합니다.] [새기족이 산와족의 행보에 반기를 듭니다!]오래된 강자가 쇠퇴하고 새로운 강자가 일어설 때.
산업의 주도권이 뒤바뀔 때.
어느 한 쪽이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천금과 같은 개혁의 기회를 놓쳐버렸을 때, 마땅히 일어나는 일이 일어났다.
[패권 전쟁이 발발합니다!]그것이 지난 600년의 이야기.
-우고르.
여섯 번의 전쟁이 있었고.
제국은 몰락했다.
-이제부터 일곱 종족의 평화협정에 따라 성지를 파괴한다.
사제는 종교를 잃었다. 전사는 승리를 잃었다. 시민은 평화를 잃었다. 귀족은 권력을 잃었다.
남은 것은 600년 전의 영광과 돌소금이 다 파헤쳐진 광산이었다. 하지만 역사서의 문장 한 줄이 적도의 창칼을 막아주진 못했고, 텅 빈 동굴이 백성을 먹여살리진 못했다.
그 사실을 누구나 깨달은 시점엔 늦었다.
많이 늦었다.
-너희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우부르카 의장이 말했다.
-첫 번째. 그냥 내가 혼자서 다 파괴한다! 나는 그럴 수 있고. 그러고 싶다. [단신으로 도시를 파괴한 자]라는 칭호는 탐스러운 거다. 하지만 본인은 강대할 뿐만 아니라 관대하지. 내 탐욕은 잠시 뒤로 물려주마.
훗, 하고 우부르카가 보디빌딩 자세를 취했다.
왼쪽 가슴근육이 꿈틀거렸다.
-두 번째. 산와족이여, 너희 스스로 성지를 파괴한다! 너희는 그럴 수 있다. 허나 그러고 싶진 않겠지. [자신들의 성지를 파괴한 자] 라는 호칭은 치욕스러울 거다. 너희의 치욕을 이해하여 이 또한 물려주마!
우부르카 의장의 오른쪽 가슴근육이 요동쳤다.
-세 번째. 일곱 종족 모두가 망치를 들어라.
우부르카가 씩 웃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도시를 깨부숴라. 뭔가를 부서뜨리면 마음이 풀린다. 여기까지 원정 오느라 수고한 병사들도, 여태까지 농성하느라 고생한 백성들도, 그냥 다 때려부숴라! 너희는 그럴 수 있고. 그러고 싶을 거다.
마지막 남은 산와족의 제왕, 산왕(山王)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려운 전사여. 행여라도 그대들을 도시에 들였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어찌하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지정족이 경비를 봐주겠다. 너희가 쥔 망치는 사람 대가리가 아니라 건물을 부수는 용도로만 쓰일 거다.
-부수지 않고 보존해야만 하는 것도 있소. 우리는 역사를 돌기둥에 새긴다오.
-해체해서 실어날라라. 뭐가 어렵냐.
-되게 무겁소만….
-옮길 수 있는 것만 추려내라. 짊어질 수 없는 역사는 긍지가 아니라 아집이다. 버리면 가벼워질 것이고, 가벼워지면 자유로워질 것이며, 자유로워지면 강해질 것이다.
-슬라임폴리스는 우리의 마지막 도시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 속셈이오?
-여기보다 더 가볍고 더 자유로우며 더 강한 곳으로.
-…우리 시민 중에는 그대를 믿지 않는 자가 있소.
-잘 됐군!
우부르카가 양손을 모아 힘을 줬다.
이두박근이 울끈불끈거렸다 .
-한꺼번에 덤비라 해라!
산와족 시민 가운데 944명이 나섰다. 944명이 한번에 달려들 순 없어서, 제일 용맹한 달팽이 16명이 먼저 달려들었다. 몰락했다고는 하나 칼밥을 질리도록 먹은 병사들이었다.
-너희에겐 특별히 내 본모습을 배알할 영광을 안겨주마!
오러의 거인(巨人)이 강림했다.
-뭐?
-뭐?、
-미친.
병사들이 짤막한 외마디를 흘린 순간, 우부르카가 휘두른 권격에 산와족들이 날아갔다. 선두에 선 16명은 물론이고 뒷줄에서 대기타던 28명까지 깔끔히 홈런을 당했다.
-으하하하하!
거인이 파안대소했다.
-올 테면 오거라! 꼬마들아!
-…….
-내 가슴은 넓다! 900명이든 9000명이든 다 받아주마! 안타깝게도 젖은 안 나온다만, 너희 같은 애송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어줄 근육은 충분하다! 본인이 네놈들의 아빠가 되어주마!
지정족을 아빠로 모시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산와족들은 근육돼지한테 얻어터지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냥 선조의 건물을 쳐부수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하기로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빌어먹을.
-시벌!
아흐레 밤낮으로 슬라임폴리스가 부숴졌다.
일곱 종족이 나란히 시발을 외치는 동안 도시는 가루가 되었다.
마지막 마무리는, 우부르카가 담당했다.
-흡!
우부르카는 거인이 되어 슬라임폴리스를 두들겼다. 쿵! 쿠웅! 쿠웅! 그게 반나절 넘게 이어졌다. 도시가 자리잡은 동굴이 혼들렸고, 동굴을 품은 산이 무너졌다. 동굴 천장이 깨지면서 암석이 쏟아졌다.
-미친….
거대한 홉고블린이 혼자서 도시를 매장시키는 광경이 그곳에 있었다.
-훗.
우부르카 의장이 입꼬리를 들었다. 꼬맹이가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짓밟은 다음에 짓는, 특유의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적어도 [도시를 파괴한 자]라는 칭호는 얻었군.
-…….
-이로써 평화협정이 완수되었음을 선언한다. 지정족은 짐싸라. 산와족, 너희도 그 멋대가리 없는 돌기둥 쪼가리들을 끌고 따라와라.
전무후무(前無後無).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지정족 역사상 최강의 전사가 말했다.
-우리는 구루로 돌아간다.
[패권 전쟁이 종결됩니다.] [다종족 연합군이 불완전한 승리를 거둡니다.] [산와족이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납니다.]그것이 이번 스테이지의 결말.
[지정족이 패자(顯者)의 권위를 얻습니다!] [지정족의 위신이 상승합니다.] [지정족의 권력이 상승합니다.] [지정족이 새로운 특성을 개화할 가능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종족 포인트를 9000 획득했습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9800입니다.]동료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어이, 저거 진짜 괴물이잖아….”
“설마 저런 덩치가 지정족에서 계속 태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지는데.”
“아마도 아닐 거다.”
성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야말로 고금을 통틀어서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불세출의 전사일 테지. 지금은 우연히도 지정족에서 저런 인재가 태어난 것이고, 아마 다른 시대엔 다른 종족의 영웅이 나타날 거다. 우리는 우리의 황금기가 올 때까지 존버하면 된다.”
탑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당신은 스테이지 클리어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스테이지 클리어를 선언하겠습니까?]“헤에?”
흑룡주가 옆머리를 넘겼다.
“꼭 한 종족이 탈락해야만 하는 건 아니었구나. 탈락의 위기를 넘기기만 해도 상관없는 걸까?”
“혹시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종족이 탈락해버릴 위험에 놓였을 수도 있지.”
우리는 각 종족의 군세가 흩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원시림이 불타오른 지 어언 800년.
아직 성좌처럼 군림하고 있는 우리였지만, 저 아이들은 서서히 밤하늘에 뜬 별자리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음.”
내가 말문을 열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고생이랄 게 있었니? 네 종족의 아이가 혼자서 다 해결했는 걸. 이번만큼 편안했던 스테이지는 처음이야.”
흑룡주가 기분 좋게 웃었다.
“난 열흘 정도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경한 다음 클리어를 선언하려고. 사왕은?”
“그럼 저도 열흘만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마침, 우부르카한테 가르쳐줄 것도 있어서요.”
“저 괴물한테 또 뭘 가르치려는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거예요. 좋은 거.”
우리는 열흘 뒤에 스테이지 클리어를 선언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렇다.
나는 아직 우부르카한테, 지정족한테 전수할 것이 남았다.
[‘꿈에 등장’을 구입합니다.] [100 종족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9700입니다.]진흙 연못 위에 둥둥 떠 있던 우부르카가 내 쪽을 바라봤다.
-우고르. 또 왔냐, 애비.
“오냐. 아빠 왔다.”
-애비가 조언해준 바에 따라 산와족을 인도했다. 어서 잘했다고 칭찬해라.
“아이구, 우리 아가. 종족이 멸망할 뻔한 걸 구하셨어요? 우쭈주.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 우리 아가 장하다! 우리 아가 키운 보람이 있네! 지정족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우리 아가가 지정족에서 제일 멋져! 이 애비보다 훨씬 잘났네!”
-우고르. 우고르.
우부르카가 실실 웃었다.
10분 정도 칭찬의 세례를 쏟아준 뒤, 나는 말을 꺼냈다.
“우부르카야. 네가 배워줬으면 하는 게 있다.”
-우고르?
“정확히는 네가 이걸 배운 다음에 너의 동족들에게 널리 알려주었으면 한다. 그리 해서 네가 죽어도, 네가 죽은 다음 100년이 지나도, 다시 100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가르침이 세워지면 좋겠구나.”
-무슨 가르침이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안에서 붉은 오러를 피워올렸다.
“너에게 세상의 불을 알려주마.”
새로운 마천신공魔天神功.
나만의 절기를 지정족에 전수시킬 것이다.
1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