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8)
커피 한 잔의 여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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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웅성웅성.
“진짜 누가 10층을 공략한 거래?”
“계속 뉴스 보고 있는데 안 나와. 찌라시밖에 없고···.”
“막 흑룡에서 일부러 숨기는 거 아냐? 나중에 극적으로 밝히면···.”
“아. 검성이 확실하다니까 그러네!”
탑 1층의 도시. 바빌론은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드디어 난공불락의 10층이 공략됐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공략자가 누구일지, 야외 카페에 모여서 떠들었다.
과연 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으음.”
바로 옆 좌석에 앉은 내가 10층을 돌파한 장본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달콤하네요.”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빨면서 말했다. 야외 카페. 상련 본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바빌론에서 하나밖에 없는 스X벅스였다.
사람이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탑인데도, 기어코 이곳에다 체인점을 세운 도전정신에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각각 빨간코 광대랑 푸짐한 할아버지가 대표 마스코트인 프랜차이즈까지 있었다.
아. 인간의 욕망이란!
“어떻게 생각해요, 검제 씨? 승리란 건 정말 달콤하지 않아요? 사실 전 지금 에스프레소만 마셔도 단맛이 느껴질 거 같은데. 예?”
-······.
“으잉. 이거 이어폰이 고장 났나? 이상하네. 대답이 안 들리잖아.”
나는 귓가에 넣은 이어폰을 꺼내어 툭, 툭, 때렸다. 이어폰에선 물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단순한 눈속임.
아무것도 없이 그냥 혼잣말하면 미친놈처럼 보일 테니,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는 거다. 이게 꽤 잘 먹혔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날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검제 씨? 검제 양반? 저기요, 싸이코패스 씨. 저기요, 미친놈 씨?”
-···오냐.
“아이고. 이제야 들리네. 난 또 당신이 귀가 먹어버린 건가 걱정했잖아. 쯧쯧, 하늘 같은 공자님을 걱정하게 만들다니. 인간이 그러면 안 되죠.”
-······.
“아, 맞다. 댁은 인간이 아니라 귀신이었지. 내가 머리가 나빠서 깜빡했네. 참! 검제야. 이제 우리 말 놔도 되니? 네가 날 공자님이라 부르는데 내가 존댓말 쓰면 좀 이상하잖아. 그치?”
-씨··· 발···.
테이블 맞은편에 떠 있던 배후령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살아생전 이런 굴욕을 당해본 적이 없건만···. 제왕··· 검의 제왕이라 칭송받던 본좌가 어찌 죽어서 이런 대참사를···.
“어휴. 농담이죠, 농담. 아무렴 제가 공자님이라 불린다 해도 저보다 한참 선배이신 헌터한테 말을 놓겠습니까? 물론 놓을 수는 있죠. 있긴 한데. 그냥 내 인성의 품격을 위해서 계속 검제 씨로 불러드릴게. 어때? 만족이야?”
-그냥 나를 죽여!
배후령이 울었다.
-스킬 새로 얻어서 [검의 성좌] 슬롯에 덮어씌워! 그럼 되잖아, 개새끼야! 차라리 날 죽이라고!
“아니. 이거 이분이 큰일 날 소리를 하시네. 우리가 명색이 파트너 아닙니까, 파트너. 평생 친구. 절친!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절친을 죽여요. 우린 앞으로 쭈우욱 영원히 함께하는 겁니다.”
-으허허헝. 됐어···. 나 아무 말도 안 할란다. 마르쿠스 할아버엄. 나 할아범한테 돌아갈래···.
아, 달달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의 시계는 벌써 1시간 반이 지났음을 알려주었다.
지금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라고 내가 생각했을 무렵.
-냐옹.
“음?”
갈색털 고양이가 꼬물꼬물 기어왔다. 길고양이라고 보기엔 잘 다듬어진 아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목에 방울이 아니라 금화 2개를 대신 달아둔 것일까?
“······.”
꿀꺽.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잠시 고민했다.
‘금화 고양이.’
-응?
‘금화 고양이요. 엄청 유명한··· 아. 지금 사람들은 모르겠구나.’
이 고양이는 평범한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5년 정도 지나고 난 다음엔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어질 마스코트였다.
‘···설마 이런 거물이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일단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나.
나는 침착하게 고양이를 내려보았다. 표정을 관리하면서.
“길을 잃었니?”
-냐옹.
갈색 고양이는 내 다리에 머리를 부볐다. 내심 기가 막혔다. 정체를 모르고 봤다면 영락없이 사람한테 친근하게 구는 진짜 고양이였다.
“네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잠깐 형이랑 같이 있을까?”
-냐아아.
“읏쌰.”
나는 고양이를 들어서 무릎에 올렸다. 갈빛 고양이는 마치 처음부터 여길 노렸다는 듯 내 무릎에서 태평하게 똬리를 틀었다. 심지어 냐옹- 울면서 하품까지 하는 것 아닌가.
‘고양이에 미친 사람이라더니. 엄청난 연기 실력이군.’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냐오옹.
한동안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카페로 한 무리의 헌터들이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먼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귀하의 성함이 김공자 님 맞습니까?”
“음.”
힐끗 살펴만 봐도 장비가 으리으리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길드장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간부. 그런 인물들이 야외 카페에 몰려왔다.
나는 한 손으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시간이 얼마 걸릴까 궁금했는데. 딱 1시간 30분 걸리네요.”
“······!”
내 신분증을 본 헌터들의 눈이 흔들렸다. 동요가 퍼졌다. 헌터들은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예. 찾았습니다!”
“은행 바로 맞은편 카페에···.”
“아닙니다. 다른 길드들도 다 모여서···. 네. 네! 알겠습니다, 대령.”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다른 길드한테 뺏기지 않겠습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나는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흐뭇하게 구경했다.
‘완전 VIP가 된 기분인걸요?’
-뭐. 웬만한 길드들은 전부 너 영입하려고 눈에 불을 킬 거다. 아무도 못 깬 10층을 혼자서 클리어했잖아. 그럼 진짜 VIP가 맞지.
‘음. 하긴. 99층까지 클리어한 분한테도 공자님이라며 존대 받는데 VIP가 아니라면 좀 이상하긴 하죠.’
-씨발! 씨발! 씨바알!
헌터들이 한둘씩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어느 길드에서 제일 먼저 나설까 기다리자, 덩치 큰 금발의 헌터가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는 자경단 길드의 인사팀장입니다. 김공자 헌터님. 아시다시피 자경단은 바빌론에서 가장 명예로운 길드입니다. 만일 저희 길드에 들어와 주신다면···!”
“잠깐만 기다려주시죠.”
내가 손을 들었다. 자경단 인사팀장이 멈칫했다.
“말 끊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만 확실하게 짚고 나서 대화합시다.”
“······.”
“첫 번째. 언론에는 아직 흘리지 마십쇼.”
내가 헌터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 중에서 나보다 랭크가 낮은 헌터는 장담하는데 단 한 명도 없을 거다. 회귀하기 전 옛날이었으면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했을 헌터들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꿀리지 않았다.
실적!
나한테는 인류 최초로 탑 10층을 공략했다는 업적이 있으니까.
이거는 랭크가 높든 말든 상관없이 아무도 훼손하지 못할 금자탑과 같았다.
유능한 헌터일수록 실적을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저들이 정말 유능하다면 날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
“어떤 길드든 언론에 제 이름을 흘리면 그 길드랑은 절대로 계약 안 합니다. 상종도 안 할 겁니다. 명심해주십쇼.”
“그···. 어, 언제까지 말입니까?”
다른 헌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지금 환문신문 기자들이 온갖 길드를 다 들쑤시고 다녀서···. 김공자 님. 저희가 숨긴다고 해도 이걸 얼마나 숨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해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뭐, 저도 오래 숨겨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하늘을 가리켰다.
헌터들도 덩달아서 위쪽을 올려보았다.
“딱 오늘까지. 저 시계가 00:00:00을 가리킬 때까지만 엠바고 지켜주시죠.”
“아! 네. 거기까지라면 어떻게든···. 알겠습니다.”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괜히 기자들한테 치일 순 없지. 11층 열리자마자 얼른 달려가야 하는 판국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첫 번째 조건이고요. 그럼 두 번째로-.”
“······.”
헌터들이 굳은 표정으로 내 쪽을 지켜봤다. 이번에는 얼마나 어려운 조건을 내세울지 긴장하는 낯빛이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 주위를 가리켰다.
“-여기 공공장소인데 다른 손님들도 배려 좀 해줍시다.”
“예?”
“손님들이 여기 쳐다보는 거 안 느껴지세요? 여러분이 갑자기 몰려오니까 다 당황하잖아요.”
내 말이 맞았다.
야외카페에 앉은 다른 손님들은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수군수군. 대부분의 손님이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의심쩍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몰래 스마트폰을 켜서 촬영하려는 듯한 손님마저 있었다.
“민폐잖아요.”
“······.”
“저 찾느라 다들 정신없으셨다는 건 짐작하겠는데 천천히 삽시다. 제가 어디로 도망갈 것도 아니고.”
“시, 실례했습니다.”
뒤늦게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죄송합니다. 사정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자리를 비켜주시면···.”
“주인장. 여기 카페를 1시간 동안 대절하고 싶은데 얼마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천무문에 찾아오시면 따로 감사의 말씀을···.”
과연 거대 길드들의 간부는 달랐다.
손님들한테 고개를 숙이고 주인장한테 가게를 빌리는 데까지 5분. 고작 5분도 안 지나서 카페는 깔끔하게 휑해졌다.
“자아.”
야외에서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재개했다.
“그럼 협상을 시작하죠. 조건들 말씀해보세요.”
재밌게도 헌터들은 손에 하나씩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민폐가 아니냐는 내 말에 다들 커피를 주문한 거다. 귀엽기는.
“···저희 자경단에선 계약금 1만 골드를 제시합니다.”
그게 시발점이 되었다.
“1만 골드? 어이구. 이런 자리에서 가난한 티를 내네. 김공자 헌터님! 모험맹에 가입해주십시오. 계약금으로 2만 골드, 거기에 간부직을 약속드립니다.”
“천무문(天武門)으로 오십시오. 헌터님. 저희 길드는 바빌론에서 가장 올곧게 전투 전문 헌터를 양성하는 전문 길드입니다. 당장 사범으로 모시고 계약금 2만 5천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사범 같은 지위는 귀찮을 뿐이죠. 잘 생각하시길. 김공자 헌터님! 저희 만신전에 들어오시면 명예직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만신전을 대내외로 홍보하는 역할을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계약금 3만 골드에 건당은 또 따로···!”
“관리국! 관리국 홍보대사로 와주시지요!”
야단법석.
인사팀장들은 필사적으로 구애했다. 저들의 입장도 이해됐다. 지금까지 상위 길드들은 모두 ‘검성’이라는 이름에 알게 모르게 짓눌렸을 거다.
어떤 길드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유아독존 하는 랭킹 1위!
그런 존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길드에 가입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결국 헌터는 솔로 플레이가 정답 아니겠느냐고···.
‘어디까지나 검성이 특별할 뿐이지만.’
길드들의 이미지에는 확실히 타격이 간다.
‘이런 상황에서 검성만큼 화제를 일으킬 영웅이 새로 탄생했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입해야지.’
적어도 다른 길드에 빼앗기는 사태만은 반드시 막을 것!
아마 인사팀장들에겐 그런 명령이 내려졌을 거다. 뻔했다.
“자, 자경단은··· 계약금으로 3만 6천 골드를 드릴 수 있습니다···.”
“거 참. 가난한 길드는 좀 뒤로 물러섭시다. 예?”
“지금 천 골드 단위로 경쟁해보자는 거야 뭐야? 분위기 파악 못 해?”
“우리 연금성에서는···!”
그 때였다.
“상련(商聯).”
어디선가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50만 골드.”
“······.”
헌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니라 내 무릎. 정확하게는 무릎 위에 똬리를 튼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냐옹, 하고 운 다음에 뛰어올랐다. 내 무릎을 박찰 때만 해도 고양이의 뒷발은 푹신한 짐승의 발이었다. 그러나 카페 바닥에 착지할 적에는 아니었다. 고양이의 뒷발은 어느새 인간의 신발이 되어, 가뿐하게 바닥을 밟았다.
“계약금으로만 50만 골드.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건네주도록 하지.”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짤랑. 목걸이에 매달린 2개의 금화가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상련의 부길드장 자리를 내어주겠네.”
헌터 랭킹 3위.
상인연합의 길드장. 백작(伯爵).
“50만 골드에 부길드장. 어떠한가.”
[변신술] 스킬을 가진 여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40살이 넘었을 텐데도 겉모습은 20대였다. 최고급 불로의 영약을 구해서 매일같이 마시고 있겠지.탑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헌터다웠다.
“음.”
예전의 나였다면 만나지도 못할 거물.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협상이 좀 협상다워졌네요.”
몸값 협상의 제 1단계가 끝났다.
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