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85)
1.
-나는 시시한 깡촌에서 났다.
외팔의 유마르가 말했다.
-시골엔 일이 없다 머리가 굵은 다음에도 할 게 없어서 그냥 또래 애새끼들이랑 놀았지 가끔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오지 않나 파수 보고, 동네를 지나치는 상인들한테 통행세 거두고…. 바싹 마른 나무껍질처럼 가난한 촌읍이었다.
유마르는 이마를 긁었다.
녹색 이맛살에 주름이 접혔다.
-누구를 죽여본 적 있나?
“있지요.”
-그래. 많나 보군.
외팔의 배우는 머리를 끄덕였다.
별로 놀란 눈치도 아니었다.
-제일 먼저 피를 본 곳은 어디였나? 전쟁터? 아니면….
“사냥터였어요. 기습해서 죽였습니다.”
-아, 전사다운 업적은 아니군.
유마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살인을 고백하는 사람은 얘기 도중에 한 번은 웃는다.
누구든.
살인에 대해 웃고 떠드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를 꺼낸 자기 자신, 고백이란 행위 자체를 비웃는 거다. 그들은 이 비웃음에 나도 동참 해주길 은근히 바란다.
“예, 맞아요. 전사가 아니었지요.”
그때가 제일 중요하다.
바로 그때 비웃음에 동조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표정을 안 바꾸고 침착하게 물었다.
“선배는 어땠는데요?”
-…….
유마르의 입가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몇 년 전이지? 벌써 13년은 됐나. 촌장이 자꾸 다른 동네를 왔다갔다 거렸어. 처음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가 싶었는데, 너무 자주 가더군. 7개월 뒤에 촌장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 마을을 위한 사업을 만들어왔다. 머저리들아.」
촌장이 옆동네에서 배워왔다는 사업이란 마약 제조였다.
-처음엔 마을 한량들을 모아서 시작했지. 여섯 명은 됐다. 깡촌엔 나처럼 껄렁거리는 청년이 남아돌거든. 음, [개다래꽃]이라고. 너희 요정족들이 먹으면 껌뻑 죽는 그거다. 그걸 원료로 해서 추출한 다음 알약처럼 굳히면….
“그냥 단순한 마약상이 아니라 조직의 두목이었네요. 선배님.”
-…….
외팔의 유마르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알았나?
“저도 조금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바로 알겠습니다. 선배님은 똑똑해요. 기억력이 비상해요. 13년 전 일이라면서 촌장이 옆동네를 7개월 동안 기웃거렸다는 걸 기억하잖아요? 숫자에 강하신 거죠.”
나는 탁자에 올려진 유마르의 잔에 차를 따랐다.
라비엘한테 직접 교습받은 덕분에, 내 다도(茶道)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이 극단엔 싸구려 찻잎밖에 없어서 좀 아쉽지만.
“심지어 마약제조법까지 알고 있습니다. 촌장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기억하는데, 아무렴 조직의 끄나풀 수준은 아니겠죠. 두목이거나 적어도 부두목. 조직의 핵심 간부였을 겁니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군.
유마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외팔로 찻잔을 들었다.
차를 한모금 홀짝이고 유마르는 살짝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시발. 왜 맛있고 지랄이냐?
“감사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땠나요?”
-…뭐, 맞다. 내가 마을 조직을 책임진 두목이었다. 우연찮게 애들을 모아다가 부리는 재주가 있었지. 재수도 좋았다.
단순히 재수가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천재였다.
유마르의 [사업]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장사운을 타고났다.
동네 청년들을 모아 민병대를 꾸렸고, 옆동네를 집어삼켜 조직을 불렸다. 보스인 유마르 본인이 철저히 마약 제조 과정을 감독하여 품질을 보증했다.
유마르의 마약은 상등품으로 인정받아, 엘프의 항구들을 따라 물길로 퍼졌다.
「성은의 즙.」
「만학자(換學者)의 가루.」
전부 유마르가 히트시킨 상품이었다.
오러에 별다른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마르는 백 명의 부하를 거느렸다. 부하들은 그를 [전사 중의 전사]라고 불렀다.
백 명이 순조로이 오백 명까지 늘어날 시점에, 그 순간, 유마르는 직감했다.
-이대로 가다간 엿 되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본능이었다.
-화하평의회는 너그럽다. 지정족 상대로 마약을 파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요정족들한테 약 좀 팔아먹는 잡배들까지 신경 쓰진 않아. 하지만 그 시정잡배가 100명, 500명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유마르의 조직은 잘 돼도 너무 잘 됐다.
-증거도 없었고, 심증도 없었지만, 딱 느낌이 왔어. 지금이다! 지금 손절을 치지 않으면 다 같이 뒈질 게 분명했다.
유마르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사업을 접자.
마을에서 같이 통행세나 뜯어먹던 또래 친구들은, 어느덧 조직 간부가 되어 송곳니가 자라났다.
-이 돼지 자식들이 내 앞에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접었어요?”
-개뿔. 바로 그날 밤 단체로 들이닥쳐서 날 묶어버렸다. 마약제조법을 내놓으라며 협박하더군. 놈들이 들고 다니는 단검도 다 내가 사준 건데, 그거로 내 목을 겨눴어. 시발놈들.
유마르는 질질 짜면서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절대로 복수하지 않겠으며, 다시는 사업에 손 대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소꿉친구들은 그런 유마르의 맹세를 가상히 여겼다.
-오른팔 한 짝이 날아갔다.
대신 목숨을 부지했다.
조직의 보스는 ‘외팔의 유마르’가 되었다.
-딱히 연기 욕심이 있어서 극단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길거리를 전전했는데, 여기 극단주가 딱하다면서 거둬줬다. 10년이나 된 일이군. 다 옛날 일이야. 뭐, 연기도 하다보니 재밌어졌다.
“조직은 어떻게 됐습니까?”
-…….
“망했군요.”
외팔의 유마르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보았다.
-내가 쫓겨나고 1년도 안 되어서 토벌당했지. 평의회에서 100위권 서열 13명을 보냈다던가. 조직원 오백 명이 싹 다 죽었다.
“고향 친구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뒈졌다. 간부들이었으니.
유마르가 코를 씰룩였다.
“선배님은 그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군요.”
-…….
“선배님이 너무 뛰어나서, 조직을 너무 잘 키운 게 잘못이라고 여기시는 거예요. 적당히 사업이 굴러갔거나. 아니면 아예 망해버렸으면, 고향 사람들이 안 죽었을 테니까요. 그때 촌장을 막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습니다.”
-시발.
홉고블린은 남은 찻물을 입 안에 털었다.
-꼴 좋다. 등신 새끼들.
다음.
마지막으로 외귀의 배우가 들어왔다.
낡은 사자 인형을 품안에 안고 있었다.
-난 명문가 시종이었는데….
외귀 배우의 이름은 ‘사쿰’이었다.
-집주인이 외간 사람이랑 떡치는 걸 우연히 봤다. 아니, 보진 못했고. 벽 너머로 들었다. 별로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도 아니다. 들어서 꼴리지도 않았다. 근데 자기네 신음을 들어서 기분 나쁘다며 귀를 자르더라….
외귀의 사쿰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너무하지 않냐?
외눈의 아리카.
도박꾼의 아들.
외팔의 유마르.
전직 마약 보스.
외귀의 사쿰.
전직 명문가 시종.
“그래요.”
나는 배우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춤춰봅시다. 선배님들. 일주일 뒤.
연극 당일이 다가왔다.
자리는 만석(滿席)이었다.
2.
-여기가 극단 개소리 맞냐?
-이상하군. 예전에 여기 와본 적 있는데 그 땐 이런 이름이….
연극이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손님이 바글바글거렸다.
길거리 공연을 보고 찾아온 관객들, 소문을 듣고 온 관객들. 어쩌다 앞을 지나치다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나 싶어서 들어온 관객들. VIP석은 물론이고 입석까지 꽉꽉 들이찼다.
-수박 맥주가 없어? 수박 튀김은? 우거, 믿을 수 없다.
-이 극장은 돈 벌 생각이 있는 건가….
-정말이다. 여기서 일하는 요정족이 한 명 있는데 걔가 굉장하다. 어찌나 오러를 자유자재로 쓰는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소리를 냈다. 아니, 정말이다! 내가 왜 구라를….
-우거. 누가 내 엉덩이를 만졌는지 순순히 불지 않으면 너희가 구경하게 될 건 혈화가 아니라 혈겁이 될 거다.
-연극인데 대사를 한 마디도 안 친대.
-과장 광고겠지.
-환불도 해준다던데?
-사람이 너무 많다!
와글와글.
그야말로 시장판.
무대 뒤편에서 선배들이 관객석을 힐끔거렸다.
-시발.
선배들은 잔뜩 쫄아 있었다.
특히 외팔의 유마르가 긴장했다.
-나 봤다. 봤어! 특별석에 앉은 손님 중에 붉은색 문신한 사람, 저거 틀림없이 평의회 서열 21위의 모르칸이다. 시발.
“그게 누군데요?”
-전쟁터에서 적군 모가지를 딸 때마다 문신을 1cm씩 그렸다는 미친놈이야. 저 새끼 온몸에 그려진 문신을 봐라!
외귀의 사쿰도 초조한 듯 중얼거렸다.
-극단 [불길]이랑 [하마]에서도 배우들이 구경 왔더라.
-우겍. 어디냐?
-저기… 특별석에서 가면 쓰고 있는 두 사람. 얼굴은 가렸지만 자주 봐서 안다. 한 명은 [불길]의 에이스인 소르마쿤다, 옆에 앉은 애는 요즘 [화마]에서 제일 인기 좋은 쟈마한….
-걔들이 왜 우릴 보러 와!?
-그야 우릴 보러 온 게 아니니까.
외눈의 아리카가 말했다.
아리카는 자꾸 거울을 보면서 자기 분장에 어색한 점이 있나 없나 체크하고 있었다.
-쟤네는 쏘니아를 보러 온 거다.
분장이라 해도 특별한 건 없었다.
맨몸. 허리품에 헝겊을 두른 다음, 전신에 검은색 문신을 했다. 그뿐이었다.
-맞아. 대단하다. 사실 막내님은 발탁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인 배우 아니냐? 이번 공연이 데뷔고. 첫 무대부터 만석을 채웠으니 요정족 출신 배우 중엔 역대급 데뷔일 거다.
-우리 종족까지 합쳐도 역대급일 거 같은데….
“슬슬 시작하지요.”
내가 입을 열었다.
조잘조잘 잡담하며 긴장감을 잡으려던 선배들은 얘기를 뚝 멈췄다.
“일주일 동안 죽을 만큼 연습했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몸이 안 움직이거나 팔다리가 안 따라줘도 괜찮습니다. 그냥 힘을 전부 빼세요.”
-망하는 거 아니냐…?
“제가 오러로 선배님들 몸뚱어리를 조종하겠습니다. 괜히 억지로 거부하지만 마세요.”
-말도 안 된다. 그게 가능… 아니, 가능하겠군. 시발.
우리 네 사람은 손을 한곳으로 모았다.
나는 가볍게 오러를 실어보냈다.
“긴장 푸세요.”
붉은빛 오러가 선배들의 팔을 타고 흘러갔다.
움찔, 선배들이 어깨를 움직였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의 특훈을 거치며 이미 내 오러에 익숙해진 걸까? 곧 선배들은 심호흡을 하며 차분히 오러를 받아들였다. 나는 전신을 마사지하듯 배우들의 근육을 풀어줬다.
-으홈.
-우고르….
선배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까보단 확실히 긴장이 덜어진 분위기.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선배님들도 알다시피, 선배님들의 혈화를 기대하는 사람은 저기 아무도 없습니다. 기대치가 바닥이에요. 저희가 연습한 대로만 해도 손님들 입장에선 대박입니다. 오케이?”
선배들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시작합니다.”
나는 발을 굴렀다.
쿠웅!
내 발놀림이 오러를 타고 공기를 진동시켰다.
-뭐냐?
-무슨 일이냐?
무대 저편에서 관객들이 놀랐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홉고블린들은 떠드는 걸 멈추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발을 놀렸다.
쿠웅, 쿵! 쿵!
단순히 리듬만을 간직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발소리마다 음정을 실었다.
-오러?
관객들도 소리에 특정한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표했다. 그 중에서 제일 놀란 건 맨 앞줄에 앉은 VIP들이었다.
-세상에. 목소리가 아니라 오러만 쓴 파공음이야?
-맞다. 오러다. 내가 말했잖나, 길거리 공연에서도….
그때, 외눈의 아리카가 뛰어나갔다.
어두컴컴한 무대.
아리카는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최대한 다리를 벌려, 넓게, 넓게, 걸음에 거리를 실어 뛰었다. 자연히 관객들의 시선이 쏠렸다.
두둥-
관객들의 이목에 집중된 이유는 비단 한 인물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었다.
두우웅-
아리카의 발이 무대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허공을 수놓았다.
단선으로 이어지던 선율이 복선으로 불어났다.
관객들의 당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외팔의 유마르가, 외귀의 사쿰이, 차례대로 무대로 뛰쳐나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한 명의 배우가 땅을 디딜 때마다 극장 전체에 리듬이 흘렀다.
세 명의 선율. 세 갈래의 자락이 겹쳐서 마침내 음악이 시작되었다.
-맙소사.
어느새 객석은 조용해졌다.
입을 연 손님도 적지 않았으나, 의도해서가 아니라, 의도치 않게 중얼거림이 흘러나오느라 입가가 벌어진 것이었다.
-설마 지금 저걸 전부….
-오러를 운용해서 내는 거냐?
그렇다.
대사가 아니라 음악.
연극이 아니라 무용극.
나는 오러를 통해, 일인 오케스트라를 펼치고 있었다.
18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