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88)
1.
-매진! 또 전석 매진!
무용극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너무 실감이 나서 치안대까지 출동했다는 전설의 화검난무(火劍亂舞)! 그에 이어서 염상유택(炎上遊宅)! 마왕 에스델까지! 전좌석 매진의 신화는 계속됩니다!
-배우들의 표정과 윤무로 펼쳐지는 무용극!
-새로운 시대의 유행에 여러분도 탑승하십시오!
극단 개소리의 규모는 급속히 커졌다.
매표원을 따로 고용했고 배우들도 더 늘렸다.
그러고도 수요를 뒤쫓지 못해서, 우리는 기쁜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어서 오십시오!
[현재 이단침식율은 44%입니다.]-모든 손짓이 열광이 되고, 모든 팔짓이 유혹이 되는 무대로!
-모든 인생이 한 곡의 춤이 될 때까지!
[현재 이단침식율은 32%입니다.]-오러의 불을 보고 환호하십시오!
나는 더욱 가열차게 배우들을 훈련시켰다.
“턱을 똑바로 들고! 언제나 몸이 풀려 있어야 합니다! 화가 나면 주먹이 쥐어지지요. 뵈기 싫으면 눈쌀이 찌푸려집니다. 여러분의 감정에 따라 몸이 반응해줘야 해요. 감정과 몸이 일치할수록, 오러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발현됩니다! 자!”
짝!
내가 손뼉을 치자 극단 단원들이 일제히 동작을 취했다.
“좋아요! 다음!”
짝!
내가 고안한 안무에 따라 배우들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훅, 배우들의 뜨거운 숨소리가 무대 위에 흘렀다. 후욱,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다음!”
원시시대에 지정족이 곧잘 취했던 몸동작.
마천신공이 수많은 시간 동안 쌓아올린 초식.
두 갈래의 원류를 섞어서, 나는 단원들에게 안무를 가르쳤다.
“오케이! 다음!”
쿵!
가장 원초적인 리듬, 가장 치명적인 몸짓으로, 홉고블린들은 발을 굴렸다.
세 사람의 원년 멤버가 앞장섰고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이 뒤를 받쳤다. 총합, 스물네 명의 단원들이 완벽한 타이밍에 춤을 추었다.
[현재 이단침식율은 28%입니다.]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휴식.”
-우고르!
-죽는 줄 알았다!
-지쳤다…. 막내님 훈련은 너무 빡세다….
홉고블린들이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를 나왔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얼굴은 결코 흐리지 않았다.
기분 좋게 땀이 흐른다는 표정.
일상이 인생과 괴리되지 않은 자들만 지을 수 있는 웃음이 싱글거렸다.
‘음.’
이 정도면 슬슬 괜찮으려나.
‘난 이제 슬슬 은퇴해도 좋겠다.’
-예?
쏘니아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나에게 빙의당한 이후, 쏘니아는 정신체가 되어 주변을 멤돌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명배우로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하자 쏘니아는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케케륵케르 님? 으, 은퇴라뇨?
‘네 몸에서 은퇴해야겠다고. 내가 이 시대에 내려온 건 어떤 임무가 있어서란다. 이제 임무가 해결될 각이 보이니, 다시 너한테 몸을 돌려줘야지.’
-안돼! 아니, 안 됩니다!
쏘니아가 펄쩍 뛰었다.
-여기까지 성공하셨는데 은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지금 케케륵케르 님께선 구루 최고의 배우…! 지정족 역사상 역대급 명품 배우에다, 요정족 역사상 최초로 혈화극에서 대성공을 거두신 프리마돈나라고요! 은퇴 따윈 불가능! 불가능합니다!
‘잘 됐구나.’
나는 싱긋 웃었다.
‘배우로 성공하는 게 꿈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자아, 성공했다. 이제 성공한 삶을 마음껏 누리거라.’
-그, 그렇지만!
‘쫄았냐?’
-…….
쏘니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쫄 만하지. 아무리 성공하고 싶었다지만 지금 이건, 네 실력이 아니라 내가 혼자서 다 만들어버린 상황이니까. 인제 와서 내가 훌쩍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막막하지? 그치?’
-으윽… 그으윽….
‘너도 은퇴하면 돼.’
나는 제일 간단한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전설의 배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사라지기도 혜성처럼 사라지다! 은퇴를 발표하면서 [이제 정상에 올랐으므로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뭐, 파장이야 생기겠지만. 오히려 더 선망을 받게 될지도 몰라.’
-…….
‘멋지잖아?’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무대에만 오르지 않으면 네가 바뀌었단 사실도 모를걸. 돈도 벌었겠다. 명성도 어마어마하겠다. 화려한 은퇴 생활을 보내는 거야.’
-그… 러게요.
쏘니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렇지요…. 케케륵케르 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너무 생각이 많았나 봐요.
‘응. 그럼 다음 공연에 부모님 초대해도 상관없지?’
-네? …네?
‘너희 가족 말이다. 아무렴 집에서 쫓겨났는데 네가 가족의 도움 없이도 이만큼 성공했단 걸 보여줘야지. 자랑하고, 과시하고.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잘난 척이 가족한테 잘난 척하는 거라더라.’
-아….
‘왜? 부모한테 잘난 척하기 싫어?’
-아, 아뇨. 그런 건… 전혀 아니지만요….
‘그럼 초대한다.’
나는 초대장을 꺼내어 근처의 매표원한테 넘겼다. 매표원도 젊은 엘프였다. 요정족들은 사회초년생이 되면 돈벌이 되는 직업을 구해 사방팔방 뛰어 다녔다.
“이걸 낙엽언덕에 지어진 3층짜리 초록색 지붕 건물에 배달해주십쇼.”
-수석 안무가님.
사회초년생 매표원 엘프는 얼굴이 새침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극단의 매표원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볼일 없을지 모르지만 저는 저의 소속과 직업에 자부심을 가진 겁니다.
“멋지군요. 금화 한 닢으로 당신의 자부심을 살 수 있을까요?”
-낙엽언덕이라고 말씀하셨죠!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엘프가 초대장과 함께 금화를 든 채 쌔앵 뛰어갔다.
-아.
쏘니아는 아, 소리를 흘렸다.
그뿐.
쏘니아는 어색하게 팔을 거두었다. 왜 손을 뻗었는지 자기도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특별석으로 초대했다. 가격은 딱 네가 집나갈 때 끌고나온 달구지 값으로 책정할 거야.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가격이지. 어때?’
-…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쏘니아는 매표원이 뛰어간 방향을 힐끔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흑룡주가 퀘스트 달성에 성공합니다!]한동안 조용했던 동료들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 스테이지는 지난번과 달리, 각자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고 있었다.
‘흑룡주가 제일 먼저 깼구나.’
비록 나한테 서열이 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탑 제일의 길드에 군림하는 헌터였다.
‘관록이 있다니까.’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웬걸.
바로 다다음날에 말끔하게 생긴 노년의 흡혈귀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안녕.”
나는 평소처럼 단원들을 연습시키고 있었다.
연습 시간이어서 분명히 극장문을 닫아뒀을 텐데, 어째선지 흡혈귀 노인은 간단히 들어왔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사생팬인가?’
얼마 전부터 이런 부류도 슬금슬금 나타났다.
다만 흡혈귀의 옷차림이 좀 거창하긴 했다. 사생팬치곤 너무 눈에 띈다고 할까? 검은색 정장. 가죽 부츠. 지팡이 손잡이에 금박이 입혀졌고, 상의엔 은색 고리가 철렁거렸다.
“어, 손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공연 시간이 아닙니다. 배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거라면, 안내원한테 따로 예약을 하셔서….”
“흐응.”
노인의 입에서 중저음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예약까지 하고 만나야 하는 사이였구나. 미처 몰랐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려나?”
어라.
목소리는 간지 나는 노년 보이스인데 어째 말투가… 낯익다?
“…….”
나는 눈치 채지 못하게 오러를 끌어올려 노인을 휘감았다. 하지만, 뚝! 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내 오러가 멈췄다.
오러를 운용하는 수준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노인의 지팡이에선 검은색 아우라가 살며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엑, 잠깐만요. 설마….”
“후후.”
낯선 얼굴을 한 노인이 익숙한 박자로 쿡쿡거렸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무심코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리켰다.
“흑룡주…!?”
“역시. 당신일 줄 알았다니까.”
흡혈귀는 꼭 비밀스러운 장난에 성공한 꼬마아이처럼 웃었다.
“아니, 왜. 어쩌다 그런 모습으로….”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사왕이 엘프에 빙의했다는 얘기 들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연습에 매진하던 단원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이거 위험하겠다 싶어, 나는 얼른 흡혈귀를 데리고 극장의 어두운 구석으로 갔다.
“어, 어떻게 저인 줄 알았어요? 그보다, 퀘스트 클리어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응. 퀘스트는 깼지만 아직 스테이지 클리어는 선언 안 했거든. 괜히 스테이지 나갔다가 운 안 좋으면 너희들이 깰 때까지 혼자서 쭉 기다려야 하잖니. 심심할 거 같아서, 딴 애들은 뭘 하고 있나 구경하려고.”
“우와….”
난 신기해서 흡혈귀, 아니 흑룡주의 모습을 둘러봤다.
왠지 옷차림이 화려하다 싶었더니 흑룡주 취향이었네.
“노년 간지 쩔어….”
“고마워.”
흑룡주가 싱긋 웃었다.
내가 배운 것과 똑같이 생긴 미소였다.
“당신도 사진으로 찍어다가 공작한테 보여주면 좋아할 거야.”
“안 그래도 저 요즘 라비엘 보고 싶어서 죽을 거 같아요….”
“누가 들으면 요즘만 그런 줄 알겠다. 아. 참고로 어떻게 당신이 사왕인 줄 알았냐면, 간단해. 지정족 도시 중에서 제일 큰 곳으로 전이한 다음 요즘 갑자기 이름이 뜬 사람이 없냐고 물었어.”
“그거만 갖고 저라고 추론하셨어요?”
“당신이 아니면 누구일까 싶더라. 사왕.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또라이짓은 독차지하려는 성격이잖아?”
“이분이 생사람 잡으시네.”
“아무튼 구경 왔어.”
흑룡주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서 무대 쪽을 바라봤다.
“헤에. 진짜로 극단을 끌고 있구나. 무용?”
“네. 뭐.”
“당신이 춤도 잘 추는진 몰랐는데.”
“말만 무용(舞踊)이지 실은 무용(武踊)이에요. 무예에 쓰는 동작들을 따와다가 안무를 짰거든요. 좀 어렵긴 한데, 저도 뭐 오러빨로 버티고 있습니다.”
“겸손은….”
흑룡주는 단원들이 연습하는 걸 지켜보다가 문득 말했다.
“보고 싶어.”
흡혈귀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혈화극이요?”
“응. 소문이 자자하더라. 얼마나 대단하길래 도시 전체가 열광하는지 궁금한걸. 다음 공연은 언제니?”
“아직 일정이 안 잡혀서….”
“에이.”
“쟁여놓은 레퍼토리는 꽤 있어요. 으음. 이거 좀 부끄러운데…. 잠깐 [염상유택]이라는 공연 초반부만 봐보실래요? 우리 탑 10층을 배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완전 고맙지.”
“오케이. 편한 곳에 앉으세요.”
나는 무대로 올라가 짝! 짝! 손뼉을 쳤다.
안무를 연습하던 홉고블린 단원들이 날 봤다.
“자. 오늘 마지막 연습 들어갑시다. 염상유택 시작 부분에 나오는 단체 안무로. 까먹으신 분 없죠? 좋습니다. 제가 음악을 연주하면 시작하세요.”
나는 천천히 오러로 배경음악을 튕겼다.
단원들은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안무를 시연했다.
염상유택, 즉 [불지옥 저택]에서 뛰노는 아이들.
때로는 현란하게.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시의 지정족이 간직했던 동작을 따라서.
아이들이 노예상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로 도망치는 안무를 끝으로, 혈화극의 초반부는 끝났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해산! 극장에 남아서 혼자 연습해도 좋습니다. 연습할 단원은 저한테 알려주고요. 예에, 수고하셨습니다. 예. 내일 봅시다!”
나는 단원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객석으로 향했다.
관객석 한가운데에 노인의 모습을 한 흑룡주가 앉아 있었다.
“어때요?”
“…….”
흑룡주는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걸까.
말없이 턱을 짚은 채, 이젠 텅 비어버린 무대를 쳐다보았다.
“……대박이잖아. 왜 아무도 이걸 생각하지 못했지?”
“네?”
“내일 다시 올게.”
흑룡주가 벌떡 일어섰다.
“흑룡주?”
“기다려. 사왕. 만약 클리어를 해도 절대 선언하진 마! 절대로! 아, 되도록 오늘밤은 여기서 자렴. 괜히 길 엇갈리면 귀찮아지니까…. 전이!”
흑룡주가 사라졌다. 오러의 기척이 위에서 느껴졌다. 지붕에 뚫린 구멍을 올려보니, 흑룡주의 신형이 공중에 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
졸지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대체 뭐야…?”
뭐가 뭔지는 다음날에 밝혀졌다.
[성기사가 퀘스트 달성에 성공합니다!]탑의 목소리가 들리고 30분 뒤.
파앗-
흑룡주의 전매특허, 순간전이술이 발동됐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매우 초현실적이었다.
“너는! 왜 이리 급하게 움직이는 건가!”
찰랑!
흙과 돌, 나무밖에 없는 극장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였다. 찰랑, 하고 물소리가 울려퍼지는 그곳에는…… [욕조]가 있었다.
목욕할 때 몸 담는 그 욕조가 맞다.
“새기족은 물이 없으면 기운이 약해진다!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다짜고짜 어항에 처박은 다음 전이하면…!”
욕조에는 아가미가 새겨진 인어가 파닥, 파닥, 꼬리로 물장구치며 분개했다. 흑룡주는 별로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응, 미안해, 미안” 하고 욕조 속의 인어를 다독거렸다.
새기족이라면.
혹시.
“성기사 님……?”
멈칫.
인어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어. 성기사 님, 맞으시죠?”
“…….”
파닥거리던 인어의 꼬리가 서서히 물에 잠겼다.
그래봤자 욕조 물이라서 훤히 다 보였다.
힘 없이 살랑거리는 인어 꼬리는… 그래. 마치, 횟집 수족관에서 꼬르르 헤엄치는 광어의 자태를 닮았다.
입을 건 다 입고 있었다.
다만 어항 속에 빠진 채 광어의 꼬리를 파닥거릴 뿐.
“미안.”
매우 무거운 침묵이 극장을 짓누르는 가운데, 흑룡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지금 모습을 남한테 보여주기 싫다는 건 알아. 하지만 정말로 보여줘야 하는 게 있어. 아마 당신도 보면 왜 진즉부터 이런 걸 고안하지 못했냐며 놀랄걸? 음대 나왔잖아, 성기사. 우리 중에선 그래도 당신이 제일 전문가니….”
“흑룡주.”
“응?”
“죽어라.”
철퍽!
흑룡주가 욕조물을 뒤집어쓰는 순간이었다.
1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