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97)
3.
새로이 항로가 개척된 땅.
이른바 신대륙에선 당연히 원주민이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 종족이란 게 비범했다.
“몽마(夢魔)라고?”
좀 많이 비범했다.
-예, 사왕님… 그렇습니다….
나한테 정확히 59대를 쳐맞은 직후, 몽마는 다소곳이 양손을 들었다. 인큐버스. 서큐버스. 흔히 이름이 버스로 끝나는 몽마족이 바로 신대륙의 터줏대감이었다.
나는 주먹을 좌우로 꺾었다.
“어쭈. 내가 물어보고 있는데 말에 영 매가리가 없다? 막 나한테 질문을 받으면 힘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지고 그래? 내가 네 기운 챙겨주랴?”
-아닙니다, 사왕님! 저희 기운 무진장 넘칩니다!
“이제부터 내가 물어보는 말에만 곱게 대답해라. 네 말투가 곱지 않으면 네 면상이 대신 고와질 것이야.”
-예! 사왕님!
“좋아.”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후령이 감개무량하단 표정을 지었다.
-김좀비 이 녀석…. 사람 조지는 법을 제대로 배웠구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꼬라보는 법. 배후령한테 조련당하고 스승님한테 조교당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누군가를 두들겨패는 데 특화되었다.
“여기 배에 선원들이 몽땅 곯아 떨어졌던데. 이거 너희가 한 짓이냐?”
-예! 저희가 한 짓이 맞습니다!
“무슨 수로?”
-원래 저희 종족은 다른 짐승의 꿈에 기생해서 삽니다!
몽마가 털어놓았다.
-사실, 저희 입장에선 꿈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쪽이 반대로 꿈이고요. 저희는 여태 지성을 발달시킨 생명체가 저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여러분이 바다를 건너온 다음부터는 정말 충격에 충격의 연속이어서….
“헤에.”
꿈을 현생으로 삼은 종족이라.
“너희는 물질적인 몸이 없는 거냐?”
-여러분이 말하는 신체라면… 예, 없습니다. 저희와 여러분은 상식이 너무 달라서 원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힘듭니다.
“그런 거치고는 의사소통이 아주 잘 되는데.”
-아. 지금 저희가 이 짐승의 정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몽마가 말한 짐승이란 이 배의 산와족 선장이었다. 사람을 짐승이라고 부르는 습관에서 나는 몽마족의 외곬 된 습성을 짐작했다.
-저희는 다른 짐승의 꿈을 잡아먹고 나면 그 짐승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이 덕분에 저희는 여러분에 관해 아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4년 동안, 저희는 여러분과 만난 충격을 정리하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지요.
“계획?”
-여러분같이 기억이 넘쳐나는 짐승을 저희는 처음 봤거든요. 저희 입장에선 맛집이라고 할까. 만찬장이라고 할까…. 아무튼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흐음.
“우리 아이들은 너희에 대해 전혀 모르더만.”
-그야 저희는 철저히 꿈에서 기생하니…. 저희에겐 본 모습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적당해 보이는 인물을 고르지요. 여러분은 저희를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설령 보더라도 꿈이겠거니 넘깁니다.
참고로 현재 몽마는 염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내가 시켰다.
아무리 가짜라곤 해도 라비엘의 얼굴을 때릴 수는 없잖아. 나의 사랑이기 전에 라비엘은 미모만으로도 우주급 보물이거늘, 교양을 지닌 시민으로서 어떻게 그 보배를 함부로 대하겠나?
-저… 꿈이 잡아먹히고도 멀쩡하신 분은 사왕님이 처음입니다.
몽마가 나직이 고백했다.
-그래서 되게 신기하네요. 어떻게 딱 보고 꿈이란 걸 아셨습니까? 애초에 저희의 꿈에는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내 기억을 읽으면 저절로 알 거 아니냐.”
-그게, 이상하지만 사왕님의 기억은 잘 읽히지 않습니다. 단편적으로만 훑어진다고 해야 하나. 이걸. 여러모로 참 특이하네요.
몽마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자꾸 힐끔거렸다.
나는 대충 사태가 어찌 흘러간 건지 알았다.
‘[꿈에 등장] 아이템을 쓴 탓이겠네.’
지금 여긴 내 꿈속이 아니다. 산와족 선장의 의식 속이지.
나는 아이템을 사용해서 타인의 정신세계에 들어왔을 뿐.
그러니 몽마한테 내 의식은 단편적으로 읽히는 것이다.
‘오직 꿈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종족이라.’
신비하군.
“뭐, 내가 워낙에 정신력이 강해서 환상이 안 먹히나 보지.”
-희한하네. 그런 문제는 아닐 텐데…….
“너희가 신기한 종족이란 건 알겠다.”
나는 말을 돌렸다.
“그래서 왜 애꿎은 선원들을 잡아다가 잠재웠냐? 너희 때문에 지금 이 배가 유령선이 되어버렸다. 얘네 이러다 탈수해서 죽어.”
몽마가 조심조심 머뭇거렸다.
염제의 얼굴을 한 녀석이 그런 몸짓을 취하니 위액이 역류하여 가래침과 싱크로나이즈 할 것 같았다.
심지어, 괜히 인큐버스가 아닌지 본래 염제보다 근육이 상향패치 됐다. 어깨가 더 벌어지고 가슴이 더 단단해진 것이다. 기분 탓인지 얼굴에선 반짝반짝 후광까지 뿜어졌다.
재수 없어.
-흐억!?
“아.”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내 손바닥이 몽마의 뺨과 가볍게 접촉사고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왜 또 때리십니까!?
“그냥 좀 구타를 유발하는 얼굴이라서….”
-사왕님이 이 짐승의 얼굴을 취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미안하다. 아무튼 왜 멀쩡한 선박을 나포했냐?”
몽마는 화를 내다 말고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그… 저희가 이런 말씀을 올려도 되올지. 이 얘기, 아마도 저희 종족의 기밀 사항에 속하거든요.
“아마도?”
-예에. 저희는 여태껏 바다 너머에 짐승들이 살고 있다곤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이렇게나 맛나는 짐승들이 있을 줄은요. 그래서… 지난 24년 동안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회의를 고민한 끝에, 바로 얼마 전에야 결론이 나왔습니다.
몽마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여러분이 살고 있는 땅을 침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침공.
-현재 저희에게 꿈이 잡아먹힌 배는 이거 한 척만이 아닙니다. 바다를 건너가는 함선 33척 전부가 저희의 통제 아래 놓여 있습니다.
-저희의 영역에 제멋대로 침범한 짐승들도 모두 재워버렸습니다. 이미 선봉대는 열흘 전에 출항했지요. 저희는 후발대에 속합니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퀘스트창.’
눈앞에 홀로그램이 띄워졌다.
그곳엔 35층에서 해결해야 될 임무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중 아래 문단에 쓰인 부분에 주목했다.
+
…신대륙은 일곱 종족에게만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미 그 땅에는 다른 자들이 터전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모험자들과 원주민들 사이에서 불화가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어쩌면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침략인가. 공존인가. 그도 아니면 추방인가.
일곱 종족은 몰살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인도하십시오!
※단, 인도에 실패할 경우 1개 이상의 종족이 멸망할 수 있습니다.
+
‘그랬구나.’
나는 깨달았다.
‘신대륙에 사는 [원주민]들이 위기에 처한 게 아니야.’
퀘스트창엔 분명히 [일곱 종족은 몰살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살당할지도 모르는 건 우리 아이들이다!’
원주민들의 반격.
그것이 이번 시대의 위기였다.
4.
나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동료들에게 진상을 말해주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흑룡주와 우부르카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과연. 우리 세계의 역사와는 완전히 정반대네.”
흑룡주가 중얼거렸다.
“편견에 사로잡혔어. 침공을 당하는 쪽은 신대륙, 학살을 당하는 것도 원주민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게. 만약 원주민들이 더 강하다면 침략의 행로가 반대로 뒤바뀌겠구나.”
“강함의 문제가 아니다. 우거.”
우부르카는 인상을 찡그렸다.
“제아무리 강한 전사여도 항거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있다. 바로 [잠]이다. 어느 누구든 잠은 자야만 한다. 몽마족이라고 했는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족이로군….”
“사왕. 이미 침공이 시작됐다고 했지?”
“네, 선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 전에 출항한 배의 선원들한테 기생했대요.”
“꿈에서 자발적으로 깨어나는 방법은 없니?”
“그건 몽마족들이 결정한다고 합니다.”
나는 방금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일부러 제일 행복한 꿈을 안겨서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나. 반대로 악몽을 꾸게 해서 일찍 깨울 수도 있고요. 음. 저 같은 경우엔 몽마가 라비엘의 모습을 하고 등장했습니다.”
“……위험한걸.”
싸아아아, 파도가 일렁거렸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함선이 들썩였다.
깊은 망망대해 한복판.
수십 명의 선원 중 어느 누구도 눈을 뜨지 않았다.
“불행에 반항하는 사람도 행복에 저항하긴 어려워. 하물며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준 꿈에 빠져버린다면… 몸이 죽을 때까지 탈출하지 않으려 들 거야.”
“예. 역사상 제일 조용한 학살이 벌어지겠죠.”
흑룡주가 혀를 찼다.
“안 되겠어. 서둘러 움직이자.”
“이 선원들은 어쩔까요?”
“못 본 척할 순 없잖아…. 구해줘야지 어쩌겠니.”
우리는 자그마치 32명에 이르는 선원들을 밧줄로 줄줄이 묶었다. 멀리서 보면 마른굴비를 엮어놓은 것 같았다.
밧줄의 마지막에 우부르카가 자리했고, 흑룡주는 우부르카의 손을 꾹 쥐었다.
“…….”
우부르카는 빤히 흑룡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응? 뭐니, 후배 아들?”
“아무것도 아니다. 우고르.”
우부르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 녀석, 혹시.
“싱겁기는. 전이!”
흑룡주가 스킬을 발동하자 총합 35명이 동시에 전이되었다.
원래라면 우리는 정신체라서,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스킬을 적용시킬 수 없다.
하지만 이 세계의 성좌인 우부르카가 가교 역할을 해주었다. 흑룡주가 우부르카와 접촉하고 우부르카는 선원들에게 접촉함으로써, 우리 전원이 스킬의 효과를 본 것.
“좋아!”
순간전이가 성공하자 흑룡주는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바다 바람이 훅 불어서, 그녀의 짙은 흑발을 흩날렸다.
“이대로 신대륙까지 이동할게. 다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으렴!”
“…….”
그런 흑룡주의 얼굴을 우부르카는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흑룡주 본인은 순간전이를 쓰는 데 바빠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아마 흑룡주는 홉고블린의 안색을 읽지도 못하겠지. 자신과 다른 종족의 감정을 안면만 보고 넘겨 짚기란 어려우니까.
‘어어?’
하지만 내 눈엔 아주 훤히 보인다.
느껴진다.
라비엘과 세기의 로맨스를 나누면서 발달된 나의 촉각이 살금살금 흔들린다.
‘얘가 설마 진짜로…?’
내 로맨틱 안테나가 열심히 전파를 잡아내는 동안, 우리는 금세 해안가에 도착했다. 해안가에는 항구가 지어져 있었다.
개척 마을.
신대륙을 꿈꾸며 대양을 건너온 탐험가, 상인, 군인, 모두가 한 번쯤 거치는 곳.
우리는 마을 광장에 사뿐히 내려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용하네요.”
지나치게 적막했다.
“생기가 하나도 안 느껴져요.”
꽤 규모가 큰 마을인데도 사람의 소리가 안 들렸다.
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그림자조차 안 보였다.
싸늘한 정적이 공기를 짓눌렀다.
꼭, 유령 도시 같았다.
“벌써 몽마들한테 당한 걸까?”
흑룡주의 얼굴에 초조함이 감돌았다.
“아마도요. 일단 탐색해봅시다.”
나는 근처의 건물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침실에서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주민들이 거의 다 잠든 방 사이에 침략을 당했나 봐요.”
다른 건물들도 상황이 비슷했다.
최소한 오백 명이 넘는 주민 전원이 쓰러졌다.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 있고, 몇 명만 술집이나 거리에 뒹굴고 있습니다. 인간이 제일 약해지는 시간을 노렸겠지요.”
“다른 개척 마을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몽마는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미 영양실조로 죽어버린 사람도 꽤 되어요.”
“몽마들이 배의 선원들을 타고 우리 대륙으로 넘어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이.
대륙의 아이들은 하룻밤 사이 영문도 모른 채 영원한 잠에 빠져들 것이다.
“……어찌면 몽마한테 당하지 않은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라. 잠깐만, 다른 마을들도 둘러보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흑룡주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순간전이를 써 사라졌다.
그녀의 묵색 오러가 잔향처럼 남아 빈 자리에 맴돌았다.
우부르카와 나, 단 둘이 광장에 남았다. 그리고 우부르카는 방금 전까지 흑룡주가 서 있던 장소를 멍하게 쳐다봤다.
‘음.’
아무리 봐도 맞는 거 같지?
“야. 우부르카.”
“우고르. 뭐냐, 애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너 혹시 흑룡주한테 반했냐?”
우부르카가 입을 다물었다.
홉고블린 역사상 최강의 전사, 마침내 성좌가 되어버린 아이는, 눈썹을 찌푸리고 입가를 씰룩거렸으며-.
“애비여…….”
마침내 홍조를 띄웠다.
“아무래도 나, 첫사랑에 빠진 것 같다.”
19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