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199)
2.
나는 개척 마을을 둘아다니며 주민들의 꿈에 들어갔다.
그리고 꿈속에 나타나는 몽마를 몽땅 패버렸다.
[‘꿈에 등장’을 구입합니다.] [100 종족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6012입니다.]과연 열 명째에 이르자 몽마족 사이에 내 소문이 퍼졌다.
열 번째 꿈에서, 원장님의 얼굴을 한 인큐버스가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른 것이다.
-히익! 미친 깡패!?
“드디어 소식이 좀 돌았구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람이 느껴졌다. [꿈에 등장] 아이템들 자그마치 10번이나 썼으니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지.
절대로 우부르카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얘네들한테 푸는 건 아니다.
-왜, 왜 하필이면 우리 먹잇감에 참견하는 건가!
“어쩌다 네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지. 운이 안 좋다고 생각해라. 그런데 넌 왜 우리 원장님 얼굴을 취하고 있느냐?”
-이 사람 얼굴을 하면 그나마 덜 맞는다고 들어서….
“젠장. 똑똑한 놈들이군.”
나는 몽마족둘 적당히 후드려 팼다.
-크아아악! 역시 때리잖냐!
“조금 덜 때린다고 했지 아예 안 때린다고 했니? 바다 너머 대륙의 아해야. 더 맞기 싫으면 내 말을 너희 종족에 널리 퍼트리렴. 오늘 이 마을 광장에서 홉고블린 한 명이 잠들 것이니, 되도록 동족을 많이 끌고 꿈에 오거라.”
-어째서….
“나는 지정족의 수호자다. 지정족은 휘하에 산와족과 요정족을 두고 있지. 그러니 나는 무려 세 종족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다. 너희가 우리 아이들을 영원한 잠에 빠트리려 하는데, 어찌 내가 가만히 두고 보겠느냐?”
-신이라고……?
인큐버스가 나를 위아래로 힐끔거렸다. 눈빛에 의심이 가득했다. 내가 활짝 웃으면서 주먹을 보여주자 몽마는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아, 알겠다. 동족들한테 당신의 말을 전달하겠다.
그날 밤.
우리는 계획한 대로 작전을 시행했다.
우부르카가 잠에 들고 그런 우부르카의 꿈속으로 흑룡주와 내가 돌입한다. 마찬가지로 꿈속에 들어온 몽마족들을 우리가 설득한다. 즉, 우부르카의 정신세계가 회담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성좌가 된 이후로 잠을 자는 건 오랜만이다.”
우부르카는 그렇게 말했지만 의외로 금방 잠에 들었다.
적요한 마을.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망망대해를 건너온 자들이 지어놓은 해촌(海寸)은, 정말로 꿈에 사로잡혀 침묵하고 있었다. 해안에선 파도가 흘렀고, 파도가 일렁이는 리듬에 맞춰 마을의 매미들이 울었다.
“저희도 슬슬 돌입할까요, 선배.”
“사왕.”
흑룡주가 내 이름을 불렀다.
파도의 검은 메아리와 매미의 하얀 울음, 한가운데에 스며든 목소리였다.
“네?”
“당신 아이를 나한테 붙여주려는 거면 포기하렴.”
나는 좀 당황했다.
“어. 눈치…… 채고 계셨어요?”
“내가 살면서 프러포즈를 몇 번이나 받아봤다고 생각하는 거니. 로맨스와 관련해선 나만큼 도사인 사람도 얼마 없어. 성좌나 고블린한테 관심을 받아볼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으. 죄송해요. 비밀로 놔두는 게 예의는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그렇다고 또 주절주절 나불거리자니 왠지 멋쩍어서….”
“나는 누군가와 사귈 생각이 없어.”
흑룡주가 옆머리를 가다듬었다.
여름밤의 바다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이란 한 명의 약점을 기꺼이 허락해주는 행위야. 나는 약해지고 싶지 않아.”
“서로 사랑하면 조금 더 강해지지 않나요?”
“응. 그렇겠지. 하지만 당신은 이반시아 공작이 없어진 삶을 살아갈 자신이 있니?”
“…….”
“당신은 건강해. 그렇지만 아슬아슬한 감이 없잖아 있단다. 이반시아 공작이 죽으면 당신은 허물어질 거야. 성기사가 죽어도, 내가 죽어도, 당신이란 건축물은 닳아버리겠지. 심지어 독사나 이단심문관이 죽게 되어도 그럴 테고.”
흑룡주가 허공에 손가락을 그었다.
문명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입한 걸까.
“나는 도저히 내 인생을 걸고 외줄의 묘기를 타기는 어렵구나.”
흑룡주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 삶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해. 버려야 할 때 버릴 수 있는 것들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남한테 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아니에요, 선배.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네 아이한테 첫사랑의 시련을 견뎌달라고 전해주렴.”
불쌍한 우리 아들.
고백도 해보기 전에 차였구나.
나는 딱한 눈빛으로 광장에서 잠든 우부르카를 내려봤다.
“진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럼,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볼까?”
“네.”
[‘꿈에 등장’을 구입합니다.] [100 종족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5912입니다.]우리 두 사람은 우부르카의 꿈속으로 돌입했다.
3.
눈을 뜨자, 울창한 밀림이 펼쳐졌다.
음.
물기에 젖은 흙냄새가 훅 풍겼다. 이따금 비 내린 밤에 길을 걸으면 풍기는 그 냄새. 이곳엔 아스팔트 길도 현란한 간판도 없었지만, 빌딩만큼이나 키 높은 나무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어서 와라, 애비여. 그리고 애비의 친우여.”
우부르카는 큰 바위에 앉아 있었다.
“여기가 어디냐?”
“내가 200년 전쯤에 수련한 장소다. 강력한 마물(魔物)이 많이 서식하여 신세 좀 졌다. 매우 위험하여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고 알려진 곳이다만, 수련이 혹독할 수록 성과는 달콤한 법이다.”
우부르카가 자기 자랑을 늘여놓았다.
은근슬쩍 가슴 근육을 부각시키며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태평양 뺨따구를 후려갈길 만큼 드넓은 근육이긴 한데….
“사왕의 아들은 마음가짐이 참 바르구나.”
흑룡주는 다정하게 엄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꼭 남동생처럼 느껴지는걸.”
“우고르. 남동생……?”
우부르카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폈다.
‘애비여. 가족처럼 느껴진다는 소리니까 이는 필시 좋은 뜻 아닌가? 가능성이 넘치는군.’
아니다.
넌 방금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차인 거야….
그냥 동생도 아니고 굳이 [남동생]이라고 못 박아둔 거에 제발 주목해다오.
흑룡주가 네 앞에서 자꾸 내 칭찬들 하는 것도 다 너보고 포기하라는 제스처다. 꼬마야. 눈치가 그리 없어서 이 험한 연애계를 어찌 살아가겠느냐.
-크르르…
숲속에서 짐승의 울음이 들렸다.
우리 세 명은 곧바로 잡담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
-…그르…….
짐승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늘져 어두운 밀림.
수백 쌍의 눈동자들이 나무 아래 핀 야생화처럼 푸르게 반짝거렸다. 어떤 짐승은 숫사슴을 닮은 양 자기 몸집보다 거대한 뿔을 머리에 달았으며, 어떤 짐승은 뱀의 아가리를 벌려 쉭쉭거렸다.
“마물이 많다더니….”
“아마도 전부 내가 과거에 쓰러트린 것들이다.”
짐승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잠시간, 그것들은 우리를 위협하려고 어슬렁거렸다. 거친 숨소리. 야만스러운 발소리. 수백 마리의 짐승이 동시에 날숨을 뱉어내자 밀림의 공기가 뜨겁게 들썩였다.
“너희, 몽마들 맞지?”
그러나 우부르카나 흑룡주는 겁대가리를 진즉에 상실한 이들이었다. 흑룡주는 동네 강아지 쳐다보듯 마물들을 대했다.
“우리는 바다 너머 대륙의 종족을 책임지는 자들이란다. 너희의 일방적인 침략 행위에 항의하러 왔어. 솔직히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은걸.”
-…….
“지금 당신들한테 꿈을 잡아먹힌 바람에 수많은 아이들이 탈수와 영양실조에 걸렸어. 생명이 촌각을 다투게 되었지. 이미 죽어버린 아이들도 많고, 점점 더 많아 질 거야. 당신들의 우두머리를 불러.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당장 들어야겠어.”
마물들이 고개를 돌려 서로 쳐다봤다.
머릿수로 우리를 위협해봤자 아무 소용없음을 깨달은 것인가.
-수호신이라고 들었다만…. 과연. 우리의 세계에서도 자아를 유지하는 걸 보니 평범한 자들은 아니군.
짐승들 사이에서 뿔사슴이 걸어나왔다.
사슴이 한 발짝 걸어오자, 영롱한 등가죽 위로 밀림의 나뭇잎이 수놓은 그늘이 물고기 비늘처럼 드리웠다.
나는 입술을 열었다.
“당신이 몽마족의 왕인가?”
-우문(愚問). 우리에게 왕 따윈 없다.
사슴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왕이 없다면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나선 거냐.”
-너희의 상식으로 우리를 재단하지 마라. 너는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기겠지만, 아니다. 우리는 그저 너희의 꿈에 빙의하여 너희의 기억에 따라 얘기 할 따름이다.
흑룡주가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니?”
-우리는 형체가 없다. 모습이 없다. 필연, 개인이라는 것도 부재한다. 너희가 모르는 단어를 우리가 쓸 수는 없으며, 너희가 모르는 사람을 우리가 흉내낼 수도 없다.
나는 여태까지 두들겨팬 열 명의 몽마족을 떠올렸다.
“그런 거치고는 반응이 생생하던데. 말투도 경박했어.”
-네가 만난 동족은 전부 너의 심상을 반영했다. 우리의 말투가 경박하다면 오직 너의 말투가 경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맞는 걸 싫어한다면 네가 맞는 걸 싫어 하기 때문이지. 이방인이여. 우리는 거울에 불과하다.
“……그게 전부 나를 따라한 거라고?”
-그러하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돼! 내가 그렇게 경박할 리 없다! 나는 진중한 멋이 있기로 정평이 난 헌터란 말이다!”
“…….”
“…….”
“뭡니까? 왜 둘이 나란히 절 쳐다봐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사왕.”
“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애비여.”
“이거 봐라! 동료와 자식도 전부 내 말에 동의하고 있다!”
뿔사슴이 재밌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너의 평판에 관해 우리는 어떠한 관심도 없다. 이방인.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오직 하나, 너희 종족들의 무한에 가까운 꿈이다.
“꿈에 흥미가 있다니?”
-너희의 꿈은 특출나게 맛있다.
찌걱.
사슴이 앞발로 밀림의 지네를 밟아 으스러트렸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먹어온 것은 기껏해야 동물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희멀건 죽을 퍼먹는 느낌이지. 그에 비해 너희 종족들의 꿈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뿔사슴이 긴 혀를 낼름거렸다.
-너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참 미개했다. 하찮은 지성에 보잘것없는 기억력…. 우리는 우리의 현실 바깥에 또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며, 우리가 꿈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종족이란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너희의 꿈을 먹은 덕분에, 우리는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나는 몽마의 말을 이해했다.
“그럼 우리 아이들한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거 아니냐? 의도하진 않았지만 너희가 똑똑해지는 걸 도와준 셈이잖아.”
-이미 우리는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 너희에게 각자 제일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지 않았는가.
“아무리 꿈이 행복하면 뭐해. 저러다 다들 죽게 생겼는데.”
-행복한 꿈과 비루한 현실. 둘 중에 너는 후자를 우선하는 모양이군.
뿔사슴이 비웃었다.
짐승의 성대와 혀가 내는 웃음소리는 기묘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껏 만나온 너희 종족들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어떠한가, 이방인?
“말이야 그럴싸하지만. 결국은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싶다는 얘기로 들리는군.”
-우리의 세계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놀라우나, 그래봤자 바깥세상의 존재. 너희가 우리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우리를 막아세우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하지.
뿔사슴 마물은 사슴답게 모가지가 뻣뻣했다.
-걱정 마라. 우리라고 너희 종족들을 멸종시킬 생각은 없다. 바다를 건너간 뒤, 너희들이 대를 이어나갈 수 있들 정도로는 몽식(夢食)을 자제하마. 다만 너희들이 품고 있는 꿈이 워낙에 매력적이어서 조금 폭식해버릴지도 모르겠군.
좋아.
충분히 알아먹었다.
“요컨대 패배할 리가 없으니 너희 마음대로 활개치겠다 이 말이지.”
-해석의 한 측면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한테 한 방 먹일 수 있는 상대방한테만 겸손해진다.
세상의 이치는 꿈속에서 사는 몽마들한테도 다를 바 없나 보다.
“알기 쉬운 놈들이어서 다행이네.”
-마치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듯한 말투구나.
“오냐.”
나는 문명 상점을 열었다.
“너희가 모여 있는 꿈속 세계란 곳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만….”
아이템을 구매했다.
[‘인물 빙의’를 구입합니다.] [2000 종족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당신이 가진 종족 포인트는 4012입니다.]“내가 이래봬도 별에별 세계를 다 찍어본 몸이란다. 아해들아.”
과연 몽마가 되는 기분이란 어떨지 기대되는군.
나는 빙긋 웃으며, 뿔사슴을 향해서 읇조렸다.
“아이템 사용. 인물 빙의.”
그 순간.
무한한 꿈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2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