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
단, 죽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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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구라였다고. 블러핑. 몰라?”
염제가 피식 웃었다.
“나한테 거짓말을 탐지하는 스킬 같은 건 없어. 그냥 성녀를 떠보려는 블러핑이었지. 와아, 성녀도 그렇고 형씨도 그렇고. 진짜 순진하다. 내 말을 믿냐?”
“그··· 그럼.”
나는 입술이 떨렸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무런 확신도 없었는데 성녀를 죽인 겁니까?”
랭킹 9위의 영웅. 성녀. 눈앞의 싸이코패스와 달리 인성도 똑바로 서 있고, 자신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고아원에 기부한다는 헌터. 그래서 성녀라는 칭호가 붙은 사람을, 단순히 좀 의심스러워서 죽였다?
‘만일 그렇다면···.’
이놈은 역대급 헌터가 아니라 역대급 정신병자였다.
“야.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심한 말을 하냐. 당연히 확신이 있지. 성녀는 진짜로 날 죽이려 들었어. 나,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일 성녀한테 독살당한다고.”
염제가 길바닥에 침을 뱉었다.
“염병할! 다시 생각하니까 기분 개 같네.”
“그, 그걸 어떻게 알고···.”
“다 알아.”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난 그냥 알아. 다 아는 방법이 있지.”
“······.”
“그게 무슨 방법인지 형씨가 알 필요는 없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염제가 황당할 정도로 자신만만했기 때문··· 만은 아니었다. 어떤 확신이 염제의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정말로 이유가 있어서 성녀를 죽였다는 확신.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뭐. 거짓말 탐지를 들먹이는 걸 보니 댁은 진짜 결백한 거 같네.”
“아···.”
“하긴 나도 형씨 얼굴은 처음 봐. 이 근처에 잠복하고 있었던 쥐새끼들 면상은 내가 기억했거든. 전부 합쳐 18명. 누가 씨발놈들 아니랄까봐 대가리 숫자도 맞춰서··· 음. 아무튼, 맞아. 그중에 형씨 같은 순둥이는 없었어.”
염제가 내 머리를 만졌다. 쓰다듬.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믿어준 걸까?
“가, 감사합···!”
“하지만 형씨는 내가 염제라는 걸 알잖아. 성녀가 나한테 죽었다는 것도 봤고.”
쓰다듬.
“그럼 뒈져주셔야지.”
쓰다듬, 하고 염제의 손이 느려졌다.
“내 이름은 유수하다. 잘 가라.”
그 순간이었다. 머리가 뜨거웠다. 아니, 머릿속이 뜨거웠다. 아주 잠깐은 그냥 정수리가 프라이펜에 닿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뇌수가 확 타올랐다. 지글거렸다.
두개골이 기름통처럼 끓었다.
“···, 욱, ··· ···!?”
말이 안 나왔다. 비명도 안 나왔다. 정말로 고통스러우면 인간은 비명조차 못 지르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놈한테···.’
‘이딴 식으로 죽는구나. 내가.’
김공자(金孔子).
공자님처럼 위대해지라며 보육원장님이 지어준 이름은, 전혀 공자님답지 못한 삶을 살아서 전혀 공자님답지 못한 개죽음을 당했다.
슬펐다.
‘아.’
게임으로 비유하면 망겜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하면 망한 인생이었다.
망가진 채로 죽어버린 삶.
싫었다.
[죽음으로 인해 스킬 조건이 달성됩니다.]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아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가?
억울했다. 분했다. 그냥 모든 것이 억울했다. 나도 조금 더 잘 살 수 있었다. 조금 더 잘 살아도 괜찮았다. 그럴 자격이 있었다. 단지, 실수했다. 오늘 나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로 죽게 되었다. 실수하며 살아왔다. 실수로 태어났다.
나는 태어난 것부터 실수였을까.
아무것도 안 들렸다. 안 보였다.
다만, 뭔가 어렴풋한 빛무리가 어른거렸다. 반딧불이들이 눈앞에 알짱거리는 것 같았다. 어떤 반딧불은 동색. 어떤 반딧불은 은색. 그리고 또 어떤 반딧불은··· 황금색이었다.
빨랐다.
황금색 반딧불은 빠르게 날아다녔다. 너무 재빨라서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듯했다. 동색 반딧불은 무척 많았다. 쉽게 잡히겠지. 은색 반딧불도 조금 많았다. 역시 잡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태양의 색. 황금색으로 어른거리는 반딧불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황금의 불을 향해 손을 뻗었고.
[선택 완료.]잡았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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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을 발동합니다.
명칭, 너처럼 되고 싶다.
랭크, S+.
규칙 하나.
적에게 죽으면 자동으로 발동.
규칙 둘.
당신을 죽인 적의 스킬 중 1개를 복사하여, 당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규칙 셋.
이미 1번 복사한 상대를 다시 복사할 수는 없습니다.
규칙 넷.
어떤 스킬을 복사할지는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단,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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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가?
내가 대신 말해주겠다.
일단 지옥불은 없었다. 평범한 불도 없었다. 가스렌지가 하나 있긴 있었는데, 이것만 가지고 지옥불을 피워내기엔 화력이 딸렸다. 아. 의외로 지옥에는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좁은 침대도···. 중고품 텔레비전도.
“어.”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자취방이랑 똑같이 생겼다.
아니, 그냥 내가 사는 자취방이었다.
암만 둘러봐도 여긴 지옥이 아니었다. 월세가 담백하여 많이 매력적인 내 3.5평짜리 단칸방이 맞았다.
“어, 어어··· 어?”
한 손으로 머리를 더듬었다. 멀쩡했다. 혹시 몰라서 스마트폰 액정에 얼굴을 비추어 봤다. 아폴론 조각상을 만들다 말고 도중에 포기해버린 듯한 면상. 달리 말하면 적당하게 잘생겼고 적당하게 못생겼다.
어디에도 화상 자국 따위는 없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염제가 치료해주고 데려다 놓은 건가?’
웃기는 개소리였다.
하지만··· 그거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안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염제는 착했다든지. 미친놈이지만 미친 싸이코패스까진 아니어서, 날 죽이는 척하다가 사실은 살려준 걸지도 몰랐다.
-뉴스 속보입니다.
그럼 저 텔레비전도 염제가 틀어놓고 나간 것일까?
-탑 40층 공략에 나선 흑룡 길드.
-이번에야말로 최상급 길드의 전력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지요?
-안타깝지만 또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염제는 3.5평짜리 단칸방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잠깐 어디로 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헌터 랭킹 1위!
-염제가 이번에도 보스를 단독으로 토벌했습니다!
그 대신, 염제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2.
-안녕하십니까, 염제님!
-아.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신기록을 세우셨는데요. 보스 몬스터를 단독으로 토벌한 사람은 아직까지 검성과 염제님밖에 없습니다. 검성이 실종된 지금은 염제님이 유일하다고 말해도 좋은데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방송 화면의 모퉁이에 영어단어가 대문자로 적혀 있었다.
LIVE.
나는 멍하게 낡은 텔레비전을 올려보았다.
-일단 그 개 같은 호칭 좀 바꿔주시면 좋겠는데요.
-네?
-염제요. 왜 멀쩡한 이름을 두고 씨발스러운 별명으로 부릅니까.
유수하.
세계 랭킹 1위의 헌터. 이 시대의 주인공. 내가 질투했던 영웅이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단순히 ‘있었다’라고 말하기엔 부적절할지 모르겠다.
그는 나를 죽였으며, 나는 그에게 죽었으니까.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라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내 손은 이미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날짜를 봤다. 어제의 날짜였다.
손이 떨렸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들어갔다.
-야, 염제가 또 염병 떤다!
여기도.
-전 세계인들 보는 앞인데 말 좀 가려 하면 안 되냐?
저기도.
-염병 여친 떴다! 성녀랑 사귄댄다!
이 사이트도. 저 커뮤니티도. SNS도.
다 똑같았다. 똑같이 어제 본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어제 본 글들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처음 본 것처럼 반응했다.
“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나도 염제처럼 되고 싶다.
바로 내가 쓴 댓글이 없었다.
당연했다. 원래 어제 이맘쯤이라면 나는 열심히 댓글을 쓰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넋을 놓고 있었으니까.
나는 정말 어제로 돌아온 것이다.
“···스킬 카드. 오픈.”
화아악!
눈앞에서 황금색 카드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어제부터 벌써 몇 번이나 확인해서 다 외어버리게 된 스킬. S급이지만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능력. 스킬을 쓰는 대가가 바로 나의 죽음이라는, 희대의 쓰레기 기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맙소사.”
둘.
내 앞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두 개였다.
두 장의 황금색 카드가 떠 있었다.
‘어떻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회귀자의 태엽시계.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어제 확인했을 때도 없었고, 염제에게 죽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나한테는 쓰지도 못할 쓰레기 스킬이 있었을 뿐 저런 이름을 가진 스킬은··· 그것도 황금색 스킬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모른다.
어떻게 저 스킬이 내 것이 되었는가. 어쩌다 내 것이 되었는가. 나는 알지 못했다.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단.
‘내 것이다.’
이 카드가 내 것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내 것.’
그리고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꿔줄지도 모를 카드라는 사실도.
손을 뻗어서 카드를 쥐었다.
뒤집었다.
+
[회귀자의 태엽시계]
랭크: EX
효과: 죽으면 자동으로 발동. 죽은 순간에서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회귀해도 기억과 능력치는 보존됩니다.
※단, 헌터 랭크가 높아질수록 강한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헌터 유수하로부터 복사한 스킬입니다.
+
회귀.
죽으면 24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아···.”
머리가 벼락에 맞은 듯 파르르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깨달은 것이다.
“이게, 염제의 비결···.”
염제가 무슨 수로 세계 랭킹 1위가 되었는지.
난공불락이었던 탑 10층의 보스를 어떻게 단독으로 격파했는지.
마지막으로 왜 염제는 ‘성녀가 자신을 죽인다’라고 그토록 확신했는지.
드디어 깨달았다.
-성녀는 진짜로 날 죽이려 들었어.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일 성녀한테 독살당한다고.
염제는 말했었다.
-다 알아.
-난 그냥 다 알아.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게 무슨 방법인지 형씨가 알 필요는 없고.
그는 실제로 성녀한테 죽은 것이다.
스스로 말했다시피 독살을 당해 죽었다. 죽었기 때문에 24시간 전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이빨을 갈면서 성녀에게 되갚아주었다.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나까지 죽였다.’
주먹을 꾹 쥐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나를! 단지 거슬린다는 이유로!’
내 발을 잘랐다. 내 머리를 태워버렸다. 나를 죽였다. 벌레처럼 가지고 놀았다.
싸구려 텔레비전에선 여전히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아.
기자의 질문에 염제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제 나는 그 모습에서 영웅을 보았다. 지금 나는 한 명의 싸이코패스를 보고 있었다. 그가 세계 랭킹 1위라 해도 상관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칭송받는 헌터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내 적이었다.
염제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어차피 될 놈은 된다.
나 또한 그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중에 성공해도 나한테 개기진 마라.
나는 황금색 카드를 꾹 쥐었다. 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카드. 내가 염제로부터 복사하게 된 스킬. 염제는 랭킹 1위였고 나는 랭킹에도 들지 못하는 말단이었지만, 지금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은 스타트 라인에 서 있었다.
-죽는다.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였다.
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