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0)
커피 한 잔의 여유. (3)
========================
2.
-공자님! 이놈 스트레이트입니다. 죽으십쇼.
“다이.”
-아. 공자님. 이 새끼 이거 원 페어로 블러핑을 치는뎁쇼? 아이고, 야. 같잖다. 같잖어. 콜 불러서 확 죽여버리시죠.
“콜.”
-야아. 우리 공자님이랑 패가 같네. 똑같이 투 페어네. 근데 이걸 어쩐다? 공자님 투 페어가 끗발이 더 높은데? 크으. 이거 꿀잼일세. 어디 한 쪽이 뒈질 때까지 가보죠, 공자님!
“레이즈.”
-와오. 이놈은 아예 풀하우스를 노려버려? 공자님.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방금 테이블 밑으로 코 박아서 살짝 카드들을 살펴봤습니다. 마지막까지 까도 풀하우스 절대 안 만들어집니다. 저 믿고 함 가보시죠!
“올인.”
포커 게임이 서른 판쯤 돌았다.
“······.”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부들부들 떨었다. 독사. 외눈박이의 헌터는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씨벌! 이건 사기야!”
독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쿠웅! 테이블이 요동쳤다. 다른 헌터들은 이런 사태를 빤히 예상했다는 듯 동시에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덕분에 커피가 테이블에 엎어지는 참사는 회피. 음. 멋진 타이밍이군.
“말이 안 되잖아! 벌써 30판 넘게 돌았는데 이놈은 한 번도 안 졌다고. 블러핑도 안 먹혀. 무조건 사기다! 패시브인지 뭔지 몰라도 개 같은 스킬을 쓰고 있는 거다! 사기야! 사기다!”
“증거 있어요?”
나는 핫초코를 홀짝였다. 이젠 다 식어서 밋밋한 초코라떼가 되어버렸다. 이건 이거대로 맛있다.
“어쩌면 제가 포커를 좀 치는 고수일지도 모르죠. 증거가 없는데도 막 몰아붙이시면 억울합니다. 좋게 좀 봐주시죠, 선배님.”
“야, 이 자식 진짜 F급으로 등록된 헌터 맞아!?”
독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이놈이 어딜 봐서 F급이냐! 관리국 자식들이 뒷돈 받고 구라쳐줬다면 차라리 믿겠다. 뺀질뺀질한 게 최소한 B급은 된다!”
“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저 F급 아닌 거.”
“그렇지! 내 이럴 줄 알았···.”
“사실 어제 막 E급으로 올라갔거든요. 어제부터 10층 공략하느라 바빠서 미처 관리국에 신고를 못 했네요.”
“······.”
내가 미소를 지었다.
“절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문주(門主)님. 칩 다 떨어졌는데요?”
“으···.”
독사는 등을 돌렸다. 그는 힘 빠진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외야석. 칩이 다 떨어진 탈락자들이 외야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천무문주!”
제일 먼저 탈락한 이단심문관이 환하게 웃었다.
“슬슬 천무문주가 탈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더 주문해뒀지요! 사양할 필요 없습니다. 맘껏 드십시오.”
“나 에스프레소 싫어한다···.”
“예! 알고 있습니다. 편식은 나쁘니 극복하십시오!”
“씨벌 종교쟁이···.”
독사가 울상을 지으며 탈락석에 앉았다.
게임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헌터는 세 명이었다. 나. 흑룡 길드의 마녀. 그리고 의외였지만 성기사도 생존하였다.
“으음.”
성기사가 카드 패를 내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자경단(自警團)의 부길드장. 정의롭고 공정하기로 유명한 헌터. 자경단은 탑 1층 도시, 바빌론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발족한 길드였다. 바깥세상으로 따지면 눈앞의 헌터는 경찰청장에 버금갔다.
사욕이 없어서 전 재산을 고아원에 쾌척했다던가.
“졌다.”
성기사가 한숨을 쉬며 카드를 내려놓았다.
“포커페이스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데. 김공자. 혹시 독심술 스킬을 지니고 있는가?”
“글쎄요. 독심술일 수도 있고 투시술일 수도 있죠. 맞춰 보십쇼.”
“···요즘 신인들은 정말 만만치가 않군.”
성기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탈락석으로 걸어갔다.
“야! 그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떡해, 짜식아!”
이미 외야에 앉아 있던 독사가 성을 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다가 좀 흘렸는지 입가가 더러웠다.
“되든 안 되든 사냥개처럼 근성 있게 들러붙어야지! 저 사기꾼을 그냥 내버려 둘 거냐!”
“사기꾼이라니. 새로운 영웅에게 말이 심하군.”
“딱 봐도 저놈이 대놓고 스킬을 쓰잖아!”
성기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어? 뭐?”
“반대로 모르는 편이 이상하지. 설마 신인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순전히 운만 가지고 포커 게임을 제안했겠는가? 게임으로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스킬을 들키지 않고 너희를 이길 자신이 있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우리는 그 도전을 받아준 거고.”
독사가 멍하게 입을 벌렸다.
“그, 그런 거였냐?”
“천무문주···. 무예에 힘쓰는 건 좋다만 머리도 좀 굴려라.”
성기사는 참 안쓰럽다는 낯빛으로 독사를 내려봤다.
“애초부터 이 게임은 우리가 손해볼 게 없다. 물론 이기면 횡재이지. 하지만 패배한다 해도··· 저 신인이 말했잖나. 여기 있는 길드에 전부 가입하겠다고.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다.”
“하, 하지만. 우리가 쫀심이 있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을 어떻게 우리랑 동급으로···.”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독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에스프레소는 먹여줍니다! 자아, 천무문주. 마저 드십시오!”
“씨버럴···.”
결국 최후까지 남은 사람은 랭킹 2위의 헌터, 흑색 마녀.
그리고 나.
두 사람뿐이었다.
“······.”
마녀는 지그시 카드 패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야.”
“뭐가 말입니까?”
“당신이 그래도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서.”
마녀가 칩을 걸었다. 레이즈. 판돈을 올린 것이다. 나를 도발하는 걸까.
“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야. 좀 더 정확히는 우크라이나였던 곳의 출신이지.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다음부터 나는 쭉 타향살이를 했어. 당신도 알겠지만. 탑이든 바깥세상이든 여자가 혼자서 살기에는 별로지.”
“그렇죠, 뭐.”
나는 기껍게 도발을 받아주었다. 리레이즈. 판돈을 더 키웠다.
“······.”
마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테이블을 두 번 두들겼다. 툭. 툭. 승부를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였다. 게임에서 탈락한 이후 딜러 역할을 자처한 백작이 카드를 펼쳐놓았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요?”
나는 고민하는 척 턱을 쓰다듬었다.
“탑에 들어온 사람들. 특히 1세대는 사연이 없는 인간을 찾는 게 더 어렵잖아요. 저도 평범한 고아입니다.”
나의 카드 패는 원 페어(One Pair).
“···이 탑은 내게 고향이나 다름없어.”
상대방의 패는 플러쉬(Flush).
“탑에서는 출신을 묻지 않아. 아니, 묻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우리가 만들었어. 내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것. 천무문주가 중국 출신이라는 것. 당신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 우리의 탑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렇습니까?”
“그래. 탑의 가호 덕분에 우리는 서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이곳에서 우리는 평등한 도전자들이야··· 적어도 바깥세상보다는.”
이대로 붙으면 내가 진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판돈을 올렸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여길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던데.”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꽃은 피어나.”
마녀가 단호히 콜 사인을 보냈다.
“김공자. 하늘에 뜬 시계가 [00:00:00]을 가리킨 순간, 언론에서 일제히 당신에 대한 기사를 쏟아낼 거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하겠지. 당신이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랄게.”
“좋네요.”
테이블에 카드가 한 장 더 뒤집어졌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 관심받는 거 좋아하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칭찬하면 좋겠고, 우러러보면 좋겠고, 부러워하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에요. 사실 저는 그게 다입니다.”
이제 내 카드패는 투 페어(Two Pair)로 바뀌었다.
“···솔직하네. 검성이랑은 성격이 정반대인 거려나.”
마녀의 패는 여전히 플러쉬였다.
아직도 내 쪽이 한참 불리했지만.
“올인.”
“······.”
“저는 자신 있습니다.”
나는 카드 패에서 눈을 떼어 마녀를 바라보았다.
“이 참에 여러분한테 말해두죠. 제가 겨우 10층을 공략했다고 여러분한테 대접받길 원하는 게 아닙니다. 20층. 30층. 40층. 50층. 100층까지 공략할 겁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반드시 탑을 정복할 거예요.”
“······.”
“여러분이 탑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알겠습니다. 존중하죠. 저도 쓸데없이 여러분이랑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경쟁자로 생각할 겁니다.”
누가 최초로 탑을 오르는가.
누가 제일 영웅이라고 칭송받을 만한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질투 받고 질시당하기 위해. 만인이 우러러보는 금자탑을 쌓기 위해서.
“저는 탑 안의 세상보다 탑 너머의 세상이 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탑에 오를 것이다.
“전쟁 난민이라든가. 식량난이라든가. 저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솔직히. 만약 문제들 해결할 때 제 이름이 필요하면 쓰십쇼. 얼마든지 쓰세요. 단, 제가 탑에 오르는 걸 서포트해주십시오.”
오늘, 10층을 공략하고 느낀 기분. 정상에 올랐다는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이제 고작 한 번밖에 맛보지 못했지만······ 그 느낌에 나는 벌써 중독된 것 같았다.
그만큼 끝내줬으니까!
“···하아.”
한동안 침묵하던 마녀가 한숨을 흘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네. 당신은 검성과 성격이 정반대인 게 아니라, 아예 똑같아.”
마녀는 양손을 들어서 칩을 밀었다. 촤르륵! 산더미처럼 쌓인 칩이 무너지면서 테이블 한가운데에 모였다.
올인.
“칭찬입니까?”
“아니, 욕이야. 욕심 많은 사람들 같으니.”
마지막 카드가 뒤집혔다.
상대방의 패는 변함 없이 플러쉬.
나의 패는······ 풀하우스(Full House).
“역시 칭찬이 맞네요.”
내가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나의 승리였다.
“그럼 약속한 대로 여러분과 동등한 대우를 받길 기대하죠.”
“권리를 누리는 만큼 의무도 짊어지길 기대해도 될까?”
“예? 헌터의 의무는 탑에 오르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시죠. 저는 계속해서 사냥꾼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신인이 뺀질거리긴···.”
마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음. 김좀비 얘가 뺀질거리긴 하지. 사실 뺀질거림이라는 이름의 스킬이 있으면 얘는 S급을 찍었을 거야.
‘···진짜 게임 끝나자마자 다시 좀비라고 부르는 겁니까?’
-당연하지, 좀비련아! 공자님은 무슨 얼어죽을 공자님!
배후령은 신나서 허공을 휙휙 날아다녔다.
-좀비! 좀비! 좀비 새끼! 캬아, 좀비를 좀비라 부르지 못한 게 이토록 서글픈 일이었을 줄이야! 다시는 저 뺀질이와 내기를 하지 않으리라!
‘추하다···.’
검의 제왕이라는 양반이 어쩜 이리 추할까.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차며 일어섰다.
“벌써 가려고?”
“예. 조금 있으면 11층 열리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뒤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11층이 어떤 지역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준비하려고?”
음.
‘여기서 살짝 힌트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왕 같은 대접을 받게 된 거, 조금이라도 빚을 만들어두면 향후 행보가 더 편해질 테니.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역할극]입니다.”
“응?”
“11층부터 20층까지의 테마는 [역할극]이에요.”
마녀를 비롯해서 헌터 전원이 나를 쳐다보았다. 모두 눈빛이 뜨거웠다. 당연했다. 아주 작은 힌트라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건네주는 정보는 천금의 값어치를 가졌다.
“10층을 클리어했더니 보상으로 힌트를 주더라구요.”
물론 거짓말.
나는 아직 10층을 공략한 보수를 받지 않았다. 하늘의 시계가 00:00:00이 되는 순간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 건지 알았다.
미래에 대한 지식. 이걸 이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거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응. 정보를 공유해줘서 고마워.”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이 빚은 꼭 갚을게.”
앞으로가 기대되는 말이었다.
3.
나는 숙소에서 잠을 푹 자고 광장으로 나왔다.
도시는 이미 축제 분위기. 수년 만에 10층이 공략되었다는 사실에 헌터들은 기뻐했다. 공짜로 맥주를 나눠주는 술집도 있었고, 노래 좀 한다는 사람은 광장에서 재주껏 한 곡조를 뽑아냈다.
“그런데 진짜 누가 10층을 깬 거지?”
사람들이 찜찜하게 여기는 건 단 하나의 의문뿐.
“아직도 공식 발표가 없어···.”
“길드장들이 한곳에 모이는 걸 봤다는 사람은 있더라.”
“검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동영상 봤냐? 진짜 인상 팍 찡그리고 말하던데. 자기는 절대 아니라고.”
“그럼 대체 누구야?”
웅성웅성-.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대화가 옆에서 빤히 들려왔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바로 옆에 있수다.’
나는 축제의 현장 바로 한복판에 사람들과 섞여 있었다.
[00:02:09]어느덧 10층이 공략되고 하루가 지나서, 하늘의 시계에선 느릿하긴 해도 차근차근 숫자가 줄어들었다.
어느 헌터는 공짜로 얻은 맥주잔을 들고, 또 어느 헌터는 정체불명의 공략자에 대해 수군거리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마치 새해를 맞이하게 된 바깥세상 사람들처럼 말이다.
“십!”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하늘의 시계가 10초까지 줄어들자, 헌터들은 입을 모아서 숫자를 외쳤다.
[00:00:09]“구!”
[00:00:08]“팔!”
수많은 헌터가 동시에 외치는 소리에 광장이 울렸다. 칠, 육, 오···. 새해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두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00:00:04]“사!”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어서 언론을 확인했다.
아직 엠바고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인지, 나에 대한 기사가 안 보였다.
“삼!”
그때였다.
바빌론에서 운영하는 언론 사이트에서 몇 초 차이를 두고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언론사보다 1초라도 더 빨리 특종을 올리겠다는 욕심일까.
“이!”
나는 기사들을 확인했다.
-[속보] 10층을 클리어한 헌터는 무명의 E급 신인!
-[속보] 실명은 김공자. 한국 출신의···.
-[속보] 10층을 클리어한 헌터, 거대 길드에 동시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속보] 흑룡 길드 공식 입장 표명. 새로운 영웅을 환영···.
나는 미소를 지었다.
[00:00:01]“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다.
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