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29)
2.
세상에서 노을이 저물었다.
나는 자수정과 함께 석양의 거리로 나왔다.
바빌론은, 국적이 없는 실향자들이 세운 도시답게 온갖 향취가 섞였다.
인도의 향신료 냄새가 풍겼다. 중국의 향 냄새가 풍겼다.
우리 곁을 지나치는 사람마다 살색이 달랐고 체취가 달랐다.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자수정이 물었다.
“이제 소인은 언제든지 공자 씨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드릴 수 있어요. 보상도 챙기셨잖아요. 아직도 이 세계에서 하실 일이 남았나요?”
“따라와 보십쇼.”
“흐응.”
자수정은 내 곁을 따라 걸으며 살며시 웃었다.
“마음대로 안내하세요.”
길거리의 향이 점점 묽어졌다.
할렘가의 냄새를 아는가?
가난은 언제 어디서나 한가지 냄새를 풍긴다. 물 냄새. 습기의 냄새. 어디로 배수되지 못해 그늘 속에 고인 물이, 햇빛에 썩지 못한 채 길바닥에 있다.
흙탕물에 고개를 처박은 플라스틱 음료병.
이 가난한 연못의 수위를 측정하고 있다.
“…….”
우리는 걸었다.
발바닥에 밟히는 흙탕물이 많아질수록.
길거리에서 풍기던 향취들이 국적을 잃어, 한낱 물 냄새로 수속할수록.
세상의 노을이 점점 더 어두워질수록.
“……아.”
나는 익숙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자수정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공자 씨. 여긴—-.”
“쉿.”
내가 중얼거렸다.
“들립니다.”
자수정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멀리서부터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여, 염제님.”
익숙한 목소리.
“갑자기 저한테 왜……!”
“도움을 구하려 해도 소용없어.”
익숙한 비아냥.
“어차피 이 근처엔 아무도 없거든.”
탑 서열 1위의 헌터. 염제(炎帝).
밤에 잠긴 노을이 전부 그의 목구멍에 삼켜졌는지, 유수하의 목소리는 유독 붉었다.
“설마 마녀가 이런 이쁜이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야. 모르고 당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
“마, 마녀라니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카아. 이제 보니 연기 솜씨도 훌륭하시네.”
어두운 골목 안쪽에서.
유수하는 성녀를 몰아세운 채, 삐딱하게 머리를 기울였다.
“지 꼰대 할애비랑은 다르게 말이야.”
그 말이 나온 순간 성녀의 표정이 굳었다.
“예에……?”
“네 할아범. 검성인가 뭔가 하던 양반. 그 양반 복수하겠다며 입탑한 거잖아, 너.”
“…….”
“설마 내가 모를 줄알았냐?”
정확히 말하면 몰랐다.
하지만 유수하에겐 [회귀자의 태엽시계]가 있다.
하루를 죽임으로써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스킬이 있다.
그 덕분에, 유수하는 [성녀의 습격을 받는 미래]를 아는 것이다.
“어떻게. 그걸, 어떻게 당신이.”
물론 성녀는 유수하의 스킬을 알지 못했다.
내 세계에서도 몰랐던 것처럼. 똑같이.
“그야 내가 잘난 새끼여서 그렇지. 난 모르는 게 없어요.”
“읏……!”
성녀가 손을 움직였다.
아마 성녀의 오른손에서 잠깐 하얗게 반짝인 것이, 그녀의 오러였을 것이다.
“어이고. 우리 손녀 씨 과격하시네.”
하지만 하얀 오러는 채 발하기도 전에 끊겼다.
염제가 성녀의 목을 잡은 것이다.
“크읍!?”
“사람 몇 명 죽여본 솜씨셔. 할애비가 지금 손녀의 얼굴을 봤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응? 아마 살인마는 용서할 수 없다며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너까지……. 아, 너희는 우리쪽 고사성어가 잘 번역이 안 되지?”
성녀는 컥, 발버둥쳤다.
허공에 띄워진 신발이 디딤대를 찾아 허망하게 바둥거렸다.
“내가 말이야, 너 같은 새끼들을 존나게 좋아해.”
과거.
“아무리 죽여도 내 마음에 스크래치 하나 안 남거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인물들이 저곳에 있다.
“자꾸 착한 놈들이랑 붙어 살면 짜증이 나거든. 와, 씨발 세상에 설마 쓰레기가 아닌 인간이 있는 건가?”
그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껍질 하나 까보면 다쓰레긴데. 하지만 껍질을 까는 데엔 수고가 들잖아? 겁나 피곤하다고. 하다못해 귤껍질도 까면 손톱에 실밥뭉치가 끼는데.”
“욱, 크흡! 우흑, 읍……!”
“너 같은 애를 만나면 아주 편해요. 아, 피곤하지가 않아. 그냥 뇌 속이 세정제 처부은 것처럼 깔쌈해. 내가 너희 덕분에 산다, 진짜. 너희 덕분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황했고, 힘껏, 숨소리를 참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고맙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잘 가라. 성녀 이자벨.”
염제의 손아귀에서 불길이 타오르려는 순간.
내 오러가 염제의 손등을 노리고 치달았다.
“……!?”
탓!
염제는 반사적으로 성녀의 목을 풀고 뒷걸음질을 쳤다. 날렵한 발놀림이었다. 촤아아악! 염제가 손을 거두어들인 허공을 나의 오러가 갈랐다.
“흐욱……!”
성녀는 기도가 풀려 털썩 쓰러졌고.
“뭐,”
염제는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여기까지.
한 호흡.
“구원검(救援劍).”
나는 호흡을 넘겨주지 않은 채 단번에 달려나갔다.
내 부름에 의거하여, 이미 나와 일체가 된 어느 스킬이 답하였다.
[찢어진 여신의 구원(救援)이 응답합니다.]그것은 일찍이 살천성이란 남자가 보유한 기술.
아홉 개의 황금색 스킬이 탑주를 이루듯, 두 가지의 스킬이 살천성을 이루었다.
하나는 [인형술사의 퍼레이드].
이 덕분에 살천성은 예전의 몸이 파괴당해도 새로운 육체를 얻어 돌아왔다.
다른 하나는 [찢어진 여신의 구원(救援)] .
이 덕분에 살천성은 어제의 기억을 버려 오늘의 승리를 거두었다.
살천성에게 죽었을 때, 나는 두 가지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하였다.
“알바생!? 너, 지금 뭘—-.”
“우리 사무실에서 시켜먹는 카페 더럽게 맛없습니다. 길드장님. 배달 좀 바꾸십시오.”
나는 염제의 품 속으로 쇄도했다.
오러를 통해 말소리를 압축시켜, 전음으로 쏘아보냈다.
그러자 안 그래도 경악한 염제가 한층 더 눈을 치켜떴다.
“오늘 마신 커피의 맛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나는 발언했다.
“버리지요.”
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찢어진 여신의 구원이 발동합니다.]일격(一擊).
강화(强化).
“……!”
염제의 오러만큼이나 붉은 내 오러가,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큭! 염제의 입에서 잇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가한 충격을 무마시키지 못하고 염제는 골목벽을 향해 막대기처럼 날아갔다.
콰아아앙!
벽이 반파당했다.
“후욱, 으으으…… 아?”
여기까지.
두 호흡.
“어, 으, 당신은…… 유수하 길드의……?”
성녀가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예 상처를 안 입은 것은 아니었는지, 염제한테 잡힌 목 부위에 벌건 화상이 나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예전엔 성녀가 순수한 피해자라 생각했지만.
“미안하지만 좀 주무시고 계십쇼.”
지금은 똑같은 사람으로 여겨질 뿐.
나는 성녀의 이마를 짚어 오러를 역주행시켰다.
“아…….”
성녀가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기절한 것이다. 옛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력 행사였지만, 이제는 너무도 간단히 해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세 호흡.
“개, 씨발!”
무너진 담벼락에서 염제가 일어섰다.
우르르, 긴 포니테일에서 자잘한 자갈들이 미끄러져 흘렀다.
“이 새끼가 돌았나! 야! 너! 뭐하는 거야! 아니, 너 진짜 알바생 맞아!?”
“맞는데요.”
“씹, 너도 설마 마녀가 키운…… 아니,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저 새낀 테러가 벌어졌을 때…….”
염제는 지금 상황을 쫓아가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가 볼 때 나는 아직 허약한 F급 헌터 길드원에 불과하니까.
“궁금하시죠? 길드장님?”
성녀는 염제가 하루를 회귀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마찬가지로.
염제 역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도 모른다.
“알고 싶으면 절 이겨보십시오.”
“하…….”
“저는 제가 당신보다 강하다는 걸 알아야겠거든요.”
“뭔 기연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만.”
염제의 눈이 불타올랐다.
“넌 좀 뒤지게 맞자.”
내 손에서 핏빛의 오러가 넘실거렸다.
“저는 딱 뒤지지 않을 정도로만 당신을 팰 겁니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내가 가진 삶을 총동원하여서.
“지랄! 내가 이 탑의 서열 1위……!”
“나의 마천은 설원에 목 놓아 유언한다.”
마천신공魔天神功.
제일식第一式.
아사유검 飯死流劍.
나는 염제를 향해 주먹을 처넣었다. 한 번 당했지 두 번 당하냐, 하는 얼굴로 염제는 내 권격을 막으려 들었다. 그래. 나는 기본적으로 검사이며 권사가 아니었다. 염제와 달리 지금의 나는 베스트 포지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한 자루의 검도 없이 설산을 가르셨다.
그렇다면, 나 역시 검이 없다 한들 한 줄기의 불길은 꿰뚫으리라.
+
[마천신공(魔天神功)]랭크: A+
효과: 마교. 그들은 하늘의 이치를 증오합니다. 저주합니다. 이들은 증오하고 저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단을 만들었으며, 마침내 하나의 교리를 이루었습니다. 마천신공은 교리의 정수가 담긴 무공입니다.
마천신공을 깨우친 자는 능히 하늘을 찢어발기고 태산을 짓뭉갤 수 있습니다! 다만, 신공의 초식들에 담긴 증오와 저주를 깊이 이해해야만 합니다.
세상을 증오하고 저주할수록 하늘은 무색해질 것이니. 마천신공의 극의를 터득한 자. 그가 곧 하늘을 뒤엎을 이, 천마(天魔)입니다. ※단, 신공을 펼치면 자아를 유지하기 힘들어집니다.
+
일격.
내 생의 한 조각이 불길을 꿰뚫었다.
“—-읍, 어?”
“오늘.”
내 주먹에 턱을 맞고 유수하의 목이 돌아갔다. 천천히. 오러에 의해 한없이 길어진 시간감각 속에서, 염제는 나를 때리지 못했고, 나는 그보다 한 발자국 앞서 팔을 휘둘렀다.
“골목에 접어들어 밟은 흙웅덩이의 기억을 버린다.”
오러를 토해냈다.
+
[찢어진 여신의 구원(救援)]랭크: A+
효과: 어느 용사에게 헌신한 여신이 있습니다. 여신은 비록 용사에 의해 찢어졌으나, 여전히 용사의 곁에 서 있고자 했습니다. 여신은 타천(墮天)했으며, 스스로 스킬 카드에 봉인되었습니다.
여신은 기억을 능력으로 치환시킵니다. 당신은 여신에게 기억을 바침으로써, 능력과 무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치는 기억이 당신에게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강화 효과는 증폭됩니다.
※단, 강화 효과는 장기간 유지되지 않습니다.
+
광풍이 울부짖었다.
내 주먹은 다시금, 정통으로, 유수하의 배를 후려쳤다.
“——.”
염제의 숨이 비틀어졌다.
커억,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떨어졌다.
신음과 함께 위액이 몇 방울 흘렀고, 뒤이어, 유수하는 기우뚱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욱, ……큽, 씨! 후윽…….”
“길드장님.”
나는 조용히 염제를 내려보았다.
“저랑 매니저님 죽었다고 빡친 건 알겠는데. 아무튼 길드장님이 저분 할아버지를 쳐죽인 건 맞지 않습니까.”
“너, 우욱, 씨, 뭔…… ”
“그럼 일단 할아버지를 죽여서 미안하다 사과부터 하셔야지요.”
여기까지.
다섯 호흡이 걸렸다.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검성이 먼저 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이려 들었다고. 그럼에도 미안하다고, 성녀한테 말을 해야지요.”
여기까지.
많은 나날이 걸렸다.
“그러셔야 하잖아요.”
“왜 무작정 죽이려 드세요.”
골목의 냄새를 아는가.
가난에서는 언제나 물 냄새가 났다.
세상에 아무리 해가 강해도 그늘이 진 곳에는 빛이 쬐지 않는다. 그림자에서 고인 물웅덩이는, 미처 증발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다시 밤이 되고 비가 내리면 증발해버린 만큼 또 불어난다.
고여서 썩어문드러진다.
“왜.”
나의 썩은 흙탕물에 돌아오기까지 참 많은 태양이 필요로 했다.
“왜 모르는 사람을 죽여요.”
“길드장님은 강하잖아요. 이 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까짓거, 목숨까지 한 번 던져줄 수도 있잖아요. 잃을 것도 적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입니까.”
나는 내 심장을 불태웠던 남자를 내려보았다.
너무나 강해서, 한 때는 이 사람을 이기기 위해선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무작정 과거로, 옛날로, 4000일 저편으로, 도망치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 도망쳤다.
이 사람을 설득할 말을 몰랐고, 이 사람을 수긍시킬 힘이 없었으며, 이 사람을 끌어들일 길을 몰랐고, 이 사람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서, 도망쳤고, 이 사람이 아직 이 사람이 되기 전에 죽여버렸다.
염제가 아닌 유수하를 죽였다.
“그렇게 살지 좀 말라고요.”
“…….”
“이 씨발 개새끼야.”
이제 나는 그보다 강하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조금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녀가 죽는 걸 지켜보면서 숨을 죽일 필요도, 도망치기 위해 달릴 필요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할 필요도, 다른 사람에게 나는 아무런 의미가 아닌 것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열심히 살았다.
“…….”
염제는 연거푸 위액을 뱉어냈다.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씨발, 중얼거렸다.
“개소리하네, 씨발새끼가…….”
“….”
“왜 좀 더 착하게 못사냐고? 왜 나한테 처묻고 지랄이냐, 씨발. 주위를 봐라 좀. 넌 진짜 어디서 자랐길래 그따위 개소리를….”
염제의 눈동자는 핏기에 물들어 있었다.
“수정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어, 아주 말이야. 인간이 아니라 들개야. 누가 주워와서 길러주니까 좋다며 헉헉거리는 강아지 새끼 같다고. 씨발. 어떻게 그렇게,”
그가 토하는 말 또한 피였다.
“어떻게 너희는 그렇게 사람이 좋냐?”
그 피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어떻게 너희는 그렇게—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냐?”
염제가 나를 노려보았다.
“호구 새끼들. 나가 뒤져라. 자수정도 너도 그냥 나가서 죽어. 그냥, 좀, 죽어. 죽으라고. 꺼져. 씨발, 개, 진짜, 무슨…….”
그래.
그렇다면 그것이 당신의 비명이다.
나는—마교의 소교주는, 이반시아공작가의 달은, 백귀의 군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당신 같은 개새끼만 있는 게 아닙니다.”
“…….”
“그리고 저는 당신도 개새끼가 아니게 만들 겁니다. 저는 그럴 수 있고, 그럴 거예요.”
나는 염제의 이마를 짚었다.
“제가 당신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오러를 역류시켰다.
염제는 마지막 저주를 남기면서 스르르 미끄러졌다.
“지, 랄…….”
털썩.
정신을 잃은 염제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골목에 정적이 가라앉았다.
작은 발소리가 내 등 뒤로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니, 자수정이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는 조용히 묻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귀환생(百鬼還生).”
밤하늘에 그늘 진 골목으로 나의 그림자가 퍼졌다. 그림자는 슬라임처럼 꾸물거렸고, 꾸물거린 그곳에서 한 사람의 형체가 만들어졌다.
+
[백귀환생]랭크: SSS
효과: 당신이 직접 죽인 자들을 소환합니다. 사자(死者)는 생전의 능력을 계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할 경우, 사자는 생전의 기억과 외형을 계승합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만 몬스터로 소환됩니다.
※단, 일주일에 1번만 소환할 수 있습니다.
+
“우왓. 뭐야, 씨발?”
그림자에서 솟아나온 형체는, 방금 바닥에 쓰러진 남자와 똑같이 생겼다.
“여긴 또 어디야? 얼마나 개족 같은 곳이어서 날 부른 건데?”
카페 플라네 타리움의 알바생 복장을 한 유수하가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이 세계에서는 내가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내 세계에선 그가 알바생이 되었다.
나는 기이한 인과를 느끼며 그에게 물었다.
“유수하.”
“엉? 워매, 씨발! 여기 쓰러진 놈 누구야?”
“신경 끄고. 유수하.”
“왜.”
“너 나한테 죽어서 개 같냐?”
유수하는 뭐 이런 병신을 다 보냐는 눈빛으로 날 보았다.
“약 처 먹었냐?”
“솔직하게 대답해봐.”
“오냐. 개 같다. 그럼 네가 나였으면 댕댕이 같지 않으시겠어? 어디서 개뼈다구 같은 새끼가 사냥터에서 혼자 뒤지나 싶었더니 남 뒤통수나 후려까고, 심지어 죽인 다음에도 심심할 때마다 쳐불러놓고 어, 춤을 추라고 명령하질 않나, 누구한테 욕을 가르치라고 명령질하지 않나, 씨발. 말하고 나니까 또 열 받네. 좀 죽어라. 씨발놈아. 미친 새끼야.”
“그래…….”
나는 한숨을 쉬 었다.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인 거겠지…….”
“뭐래?”
“그냥. 우리 아내님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고…….”
됐다.
슬슬 인정하자.
“미안하다.”
유수하가 멈칫했다.
“하아?’’
“죽여서 미안하다고, 씨발놈아.”
“…….”
유수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사과에 감동해서 침묵한 것이면 참 좋겠고, 그러면 좀 기특하겠는데, 당연하지만 유수하는 남 좋을 일은 절대로 안 하거니와 기특한 짓은 더욱더 안 한다. 개자식이므로. 다만 유수하는 나를 병신 보는 눈깔로 쳐다보았다.
“죽여서 미안해?”
“그래.”
“씨발, 내 귀가 망가졌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망가진 건 저 새끼 대가리네. 총 맞았냐? 아, 넌 맞아도 안 죽지? 그럼 더 맞아라. 와. 살다 살다 [죽여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다 받네. 씨이이발, 인류 역사상 이 따위 사과를 들어본 건 내가 최초겠다 이 씨발놈아, 넌 사람한테 사과를 해도 우주 역사에서 최초를 찍는 개새끼다 이 씨발놈아, 언제 나가서 뒤질 거냐 이 씨발놈아?”
아아.
개 같은 남자…….
이놈은 입을 열었을 때 욕을 안 하면 입술에서 여드름이 돋아나나.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하는데도.
“…….”
나는 자수정을 돌아보았다.
자수정 은 활짝 웃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즐거워요?”
“존나 흥미진진한데요. 공자씨. 소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만 백성이 동의해줄 정도로 꿀잼인데요. 공자씨. 삼라만상의 꿀벌들이 어맛 내가 쳐넣어둔 꿀 어떤 쌍놈이 훔쳐갔어? 어라 여기 있었네? 하고 윙윙거리면서 몰려올 정도로 꿀잼인데요. 공자 씨. 소인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유수하씨랑 계속 대화해주세요. 공자 씨. 그런데 할렘가에서도 팝콘을 파나요? 소인의 아가리는 현재 열렬히 팝콘을 요구하고 있어요. 공자 씨.”
아아.
개 같은 여자…….
왜 내 주변에는 진상 또라이들밖에 없단 말인가.
신도 악마도 인간도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또라이인 이 세상에서, 나는 한 차례 머리를 끌어안았고, 한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뭐?”
“지금 와서 미안함을 벌충할 수는 없겠지만…. 아니, 할 수 있어. 내가 너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그 미안함을 갚으마. 앞으로 계속 갚아주마. 그럼 되겠니?”
“이 씨발놈이 누가 개새끼 아니랄까봐 말도 개떡처럼 하고 앉았네. 뭐라는 거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씨부려.”
“내가 존나 강한 사람인 걸 다행으로 여겨라…….”
나는.
내 삶에서 제일 근래에 얻은 조각을 꺼내들었다.
“진짜, 내가 강한 걸 다행으로 여겨.”
탑주한테서 앗아온 조각을.
+
랭크: SSS+
효과: 살아있는 자의 기억을 보관합니다. 보관된 기억은 ‘상자’에 담깁니다. 이 상자는 오직 해당 스킬을 소유한 자에게만 파괴될 수 있습니다.
상자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당신은 똑같은 기억을 계승하는 인물의 육체를 몇 번이고 생산할 수 있습니다. 육체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기억을 쌓고, 이 경험을 다시 상자에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허락한다면 말입니다!
인물의 육체가 파괴되더라도 상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사의 특권을 베푸십시오.
※단, 파괴된 육체의 기억은 상자에 업데이트할 수 없습니다.
+
“자수정 씨.”
“예, 공자 씨.”
“저.”
나는 말했다.
“이 자식을 되살리겠습니다.”
지골룡의 두개골.
상대방의 [기억]을 보관하고 [육체]를 주는 스킬 내가 뽑은 최강의 카드를 두고, 나는 선언했다.
“이 개자식한테 몸을 돌려주겠습니다.”
한 명의 인간을 살리겠다고.
2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