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45)
그 전쟁은, 분명히 말하건대,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전쟁이었다.
-냐하하하! 공격해라! 다가오는 것들을 모두 찢어서 말먹이로 던져줘라!
-우오오! 검희 장군을 따르라!
새벽의 손길이 쓰다듬기도 전에, 귀인족들은 차갑게 식은 땅 위를 내달렸다.
귀인족에겐 기병이 필요 없었다. 그들의 덩치가 하나의 폭력이었다. 머리에 달린 뿔을 앞세워서 무작정 달리면, 그것이 곧 마상돌격이나 다름없었다.
-돌격 ! 돌격하라!
-저 잘난 돼지새끼들의 비계를 싹 다 잘라버려라!
먼지로 지평선을 가리면서 내달리는 귀인족.
그들은 하나하나가 철마가 되어, 우부르카가 내던진 산봉우리가 장식처럼 꽂혀있는 전장을 질주해왔다.
반면에.
-…….
지정족은 고요했다.
땅 속에 숨은 두더지처럼 그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
-…….
-…….
수천의 귀인족들이 달려오는 도중에도 지정족은 한없이 침착했다. 가끔 앳된 전사가 긴장을 했는지 손가락을 파르르 떨어대긴 했지만, 아무도 그의 미숙함을 나무라지 않았다.
-모두 준비가 되었느냐.
이 시대 화하평의회의 의장이 말했다.
수염 속에서 얼핏 드러난 어금니는 그 눈빛만큼이나 형형한 예기를 띄고 있었다.
-되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의장.
그들이 환담을 나누는 도중에도 시시각각, 수천 명의 귀인족들은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돌격해오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대륙 패권이 바뀌는 날이다!
-지정족! 춤추는 데 인생을 낭비하는 무식한 자들아! 이제 우리, 하늘의 숨을 마시고 대지의 율동을 느끼는 우리 귀인족에게 패권이 도래할 날이다!
-귀인족 만세!
물경 9천.
그야말로 능력치를 육신에 몰빵한 종족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그 기세는 실로 사납고 매서워, 성난 폭풍이 눈보라와 해일을 이끌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놈들의 수호자가 산을 뽑아 던졌던가!
그 선두에서, 귀인 7영웅이 하나의 창날로 화해 짓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산을 꿰뚫는다!
쌍검과 대낫, 창과 한 자루 검, 지팡이라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철봉이 오러를 머금고 쏘아졌다.
폭발했다.
쾅……!
전장 한복판에 놓인 산봉우리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에 철로가 생겼다. 귀인족들은 하나의 길쭉한 열차가 되어 달렸다. 그 머리를 이룬 것은 물론 7영웅이었다.
9천의 병력이 이룬 거대한 철차가, 지정족의 선봉을 후려쳤다.
2.
지정족의 방진은 거북의 등껍질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귀인족들의 돌파력은 그 이상이었다.
쾅……!
사람의 무리와 사람의 무리가 부딪히며 발생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굉음이 터졌다. 그 직후 벌어진 일은 병진의 와해보다는 지형의 붕괴에 가까웠다.
“아.”
“음.”
“우거.”
전장을 내려다보던 우리 가문원들은, 바로 그 순간 저마다 특색에 따라 곤혹을 내비쳤다.
“저들… 귀인족과 천무문주라 했던가요. 그 돌파력이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한때 마왕군을 이끌었던 에스델이 나의 자문사로서 말했다,
”우부르카 무사장이 내던졌던 산봉우리는 이미 전장을 이룬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어 있어서, 지정족들은 그 양변에 진을 쳤었지요. 그런데 산봉우리를 정면으로 깨부수고 중앙으로 달려오다니, 지정족들로서는 단단히 허를 찔린 셈입니다.”
그러했다. 단박에 심장을 꿰뚫린 짐승처럼, 지정족의 병진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누천 년에 걸쳐서 지정족 아이들에게 불을 가르쳤다. 글을 가르쳤다. 태우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것으로 노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혈화(穴火).
저 산와족의 음습한 동굴 아래에서도, 지정족은 결코 불을 놓치지 않았으며, 살아가는 자를 불로 축복했고 죽어가는 자를 불로 위령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춤을 가르쳤다.
춤이란 몸으로 펼치는 불이다. 나는 불을 사랑하는 지정족의 마음을 춤을 사랑하는 지정족의 마음으로 쉽게 바꾸었다.
춤은 불이었고, 춤을 추는 지정족 모두가 하나의 불이었다.
-타박.
그리하여.
-툭.
지정족들의 방진은 무너졌고, 허물어졌으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으며, 표현하자면 붕괴(廟壞)보다는 개화(開花)에 가까웠다.
-타박.
-툭.
-타박.
-툭!
지정족들은 귀인족들의 돌진에 저항하지 않았다. 밀고 들어오면 물러났고 휘둘러 후려치면 찢어졌다.
다만, 그들은 그 과정에서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땅바닥을 찼다. 타박, 타박, 타박. 그 사람의 양옆에 도열한 전사들 역시 발을 굴러서 땅을 찼다. 타박, 타박, 타박! 불길이 타오를 때 펼쳐져 타오르듯, 툭, 발소리는 바로 옆 부대로, 바로 위쪽의 부대로, 멀리 비껴나간 부대까지, 순식간에 군영 전체로 퍼져나갔다.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전장은 어느새 수천의 군세가 짓밟는 발소리로 메워졌다. 지정족들은 오러를 휘감아 발을 내리찍었다. 따라서 그 발소리는, 산봉우리의 바위에 막히지 않았으며, 키 높은 단풍나무들에도 튕기지 않았고, 오직 하나의 불길이 되어 세상의 밑바닥에 흘렀다.
-뭐, 뭐야!
귀인족들이 당혹했다.
-제기랄! 뭐하는 수작이냐!
-왜 안 무너지지!?
마치 질긴 가죽 푸대처럼, 지정족들은 귀인족들의 기나긴 돌진을 모조리 받아들였으며, 그 충격을 진동으로 받아들여—소화(消化) 해낸 것이다.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묘한 기쁨에 사로잡혔다.
‘완성했구나…… 마천진법(魔天陳法)을.’
어느 날 나에게 기적처럼 찾아든 발상.
단 한 명이 마천신공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수백 명이, 수천 명이 한꺼번에 마천신공을 펼친다면—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예감.
그리하여 내가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냈던 스킬.
+
[마천진법(魔天陳法)]랭크: 미정(未定)
효과: 마천신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진법입니다. 이 진법은 시전자들이 공유하는 심상을 구현해냅니다. 진법에 참여하는 시전자가 많을수록, 시전자들이 마천신공에 능숙할수록, 시전자끼리 나누는 심상이 뚜렷할수록, 진법의 위력은 막강해집니다.
이 진법은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스킬은 당신이 최초로 창안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마천진법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료가 충분히 쌓일 때 본 스킬의 등급과 설명이 개정될 것입니다.
※현재 스킬 등급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
마천신공은 천하의 절학으로 강호를 재패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마천신공을 개량하여 집단기로 펼쳐낸다면… 펼쳐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그걸 위해 우부르카에게 마천신공을 가르쳤다.’
나는 상념에 잦아들었다.
잦아든 상념은 심장에 이르러 기쁨이 되어 가라앉았다.
‘우부르카가 당시의 무사들에게 마천신공을 퍼트렸다. 마천신공은 지정족 사회에서 유일한 정통검법이 되었지. 그리고 나는…… [오러를 써서 춤추는 연극]을 아이들에게 전파했다.’
지정족 전사에게 오러란 곧 마천신공이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들은 모두 마천신공의 어우러짐이 되었고, 3명, 6명, 18명, 배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무수한 마천신공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자연스럽게.’
화려한 혈화극(穴火劇)을 보며 관객들은 홀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들은 무대 안에선 얌전한 손님이었으나 무대 밖에선 모든 동포와 마찬가지로 강대한 전사였다. 전사인 지정족들은, 혈화극이 무대 위에 머물러 있을 때보다 세상에 나와 펼쳐질 때 더욱더 아름다워질 것이란 사실을 알아보았다.
‘계기는 내가 제공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지정족 전사들은 혈화극을 군대에 접목시켰다.
박자를 맞추고, 선율을 맞춘다. 그것만으로도 오러는 간단히 증폭되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사들 모두가 머릿속에서 [똑같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
우부르카가 전설처럼 전해준 [백사자 이야기]가 그 그림을 채웠다. 백사자. 우리의 신. 우리의 친구. 우리를 지켜봐주는 자. 그 자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본 광경들—-불타오르는 저택들과 멸망해가는 설원, 거울에 깨진 심장—-은 유년 시절부터 지정족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우.
따라서, 노래한다.
-우.
-우.
-우거.
발소리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오러에 실린 발소리가 평원을 가득 메웠으며, 그 위로 지정족의 날선 함성이 울려퍼졌다. 지정족들은 고개를 치켜들어 늑대처럼 울었다. 하여. 가장 아래로 울리는 발소리가 땅을 가로막았고, 가장 위로 터지는 고고성이 하늘을 가로막았다.
우, 우, 우, 우거! 우, 우, 우, 우거! 우, 우거!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전쟁터의 하늘이 막히고 땅이 막혔다.
하늘에서 새벽을 흘려주던 태양은, 오러의 거친 장막에 튕겨나가, 더 이상 서늘한 빛을 내려주지 못했다. 귀인족이 돌입해 들어온 평야는 순전한 암흑으로 휩싸였다.
너울거리는 그늘이 귀인족들을 덮쳤다.
3.
-냐아아아!?
제일 선두에 서있던 검희가, 그 이상징후를 제일 먼저 깨달았다.
-뭐냐, 이건! 마법……은 아니고 오러!?
-이 새끼들, 수천 명이 동시에 장막을 펼친 건가?
-뭐 이런 쓰잘데기없이 오러를 낭비하는 짓거리가…… 이런 걸로 우리가 당황할 거라 판단했다면 오산인 것이다!
7영웅이 부하들을 독려했다.
-허둥지둥대지 마라! 좀 눈앞이 어두워졌을 뿐이다!
-타격은 없는 것이다! 그냥 멋부리면서 우릴 겁주려는 것이다!
-이 돌진으로 2할은 죽였다! 이대로 공격을 이어가면 된다! 우리가 유리하다!
-놈들이 찢어지지 않겠다 발악한다면 속에서 할퀴어대라!
귀인족들은 영웅들의 목소리에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쿵! 쿵! 점점 커지는 발소리가, 넓어지는 그늘이 그들을 감쌌다.
-이건 마치…….
어느 귀인족 전사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평원이 아니라 동굴 안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줄어들던 돌격의 기세는 이윽고 멈추었다. 내지르던 함성도, 공격과 학살을 위해 지르는 포효라기보다, 어쩐지 모르게 불길한 감각에 대항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워졌다.
터벅.
그리고 전사는 문득, 땅을 밟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무?
조금 전까지 귀인족들은 맨땅을 밟고 있었다. 거칠었고, 돌멩이가 굴러다녔으며, 방심하면 넘어질 것이어서 거친 땅이었다.
그러나 이 어두운 공간에서 밟는 땅의 감촉은 전혀 달랐다.
-나무 같은데.
-잘 안 보여.
-아니야, 나무야. 나무 바닥. 그것도 아주 낡은 저택의 나무 바닥이야.
-그럼 저 돼지새끼들이 오러로 나무 같은 질감을 구현해내서 이 근방을 싹 둘러쳤다는 건가?
-도대체 왜 그딴 짓을……?
귀인족 전사들이 중얼거렸다.
우, 우, 우, 우거! 우, 우, 우, 우거! 우, 우거!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을 둘러싼 노래와 춤사위는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세상에 밝을 적에 그 노래는 단순히 전쟁에서 사기를 복돋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터는 어두워졌다. 어스름에 씌인 햇볕은, 어둠을 희석하기엔 너무도 미약했다.
우, 우, 우, 우거! 우, 우, 우, 우거! 우, 우거!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어둠 속에서 지정족들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부르는 소환과 같았으며, 무언가를 저주하는 의식과 같았다. 귀인족 전사들은 불길함을 뛰어넘어 목덜미에 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독 오러를 잘 수련한 귀인족은,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았다. 형체가 없고 적의가 없지만…… 뿌옇게, 발목을 감아오는 무언가.
“연기……?”
그것은 연기처럼 흘러드는 오러였다.
24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