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46)
지정족의 오러는 결코 귀인족들에게 적의를 풍기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연기인 양, 그저 흐르고 고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연기가 발목에 차오르면 차오를수록 누군가는 기침을 내뱉었다.
-쿨력! 쿨력!
-뭐야, 이거, 숨을 쉬기가….
그 순간.
광활한 동굴이 불타올랐다.
우, 우, 우, 우거! 우, 우, 우, 우거! 우, 우거!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지정족 전사들이 일거에 짓쳐들었다. 귀인족들은 지정족의 품에 파고들어 있었고, 그래서 지정족들은 양익에서 그들을 덮칠 수 있었다.
드리워진 그늘 속에서, 그들은 춤사위를 추면서 귀인족 전사를 참살했다.
그러나, 단순히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검은 마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며, 창은 불기둥이 되어서 환영의 동굴을 불태웠다. 귀인족 전사가 불에 베여서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뜨, 뜨거워! 뜨겁다!
-불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불이다! 화공(火攻)이다! 도망쳐!
-입구로 도망쳐라!
-으아아아아악!
-입구가 어디…….
-아직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잖냐! 거기! 도망치라고, 새끼야!
귀인족 전사들이 이룬 방진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오러를 터득한 자들은 이것이 불이 아님을, 한없이 불에 가깝도록 형성해낸 오러임을 알았지만— 그걸 부하들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맞으면 뜨겁다.
뜨거워지면 타오른다.
허면, 그것이 설령 오러로 만들어졌다 한들 불길과 다를 바 무엇인가?
마천진법魔天陳法.
제일법第一法.
염상유택炎上遊宅.
불타오르는 저택의 참극이 오늘 이 전쟁터에서 재현되었다.
-도망쳐라! 도망쳐! 도망쳐!
귀인족들이 죽을 힘을 다해 입구로 달려나갔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발을 헛디뎌 뒹굴어버리는 자, 뒹구는 자에게 휘말려 넘어져버린 자, 넘어진 자에게 부닥쳐 쓰러져버린 자. 전사들의 [후퇴]가 아니라 범인들의 [도망]이 이어졌다. 아수라장이었다.
-놓칠까 보냐.
어둠에 숨어든 불꽃들이 으르렁거렸다.
-타죽는 고통을 알아라.
-온몸이 타오르면서도 비명 밖에 지를 수 없는 순간을 보아라.
지정족들은 이미 깊이 [혈화극]에 침잠해 있었다. 그들은 전사였다. 그러나 이 순간엔 배우였다. 그들은 백사자의 신화를 이 지상에서 재현하는 사제들이었고, 그러므로 적들을 불태워야만 하는 업화(業火)였다.
그들은 스스로 불이 되어서, 불길에 매혹되어, 감히 자신들을 이 불타오르는 저택에—- 아니, 숨 쉬기도 어려운 소금광산의 [동굴]에 가두었던 옛 적들을 향해 분노를 불태웠다. 먼 옛날. 수백 년 동안이나 자신들이 틀어박혀 살아야만 했던 동굴의 공포를.
우, 우, 우, 우거! 우, 우, 우, 우거! 우, 우거!
타박, 타박, 타박, 툭, 타박, 타박, 타박, 툭!
신화가 하늘과 땅을 채색했고, 역사가 전장을 윤색했다. 지정족들은 백사자의 교인이 되어 세상을 해석했고, 슬라임 제국의 폭정 아래 억압받은 노예가 되어 분노했으며, 무엇보다, 심장에 오러를 품은 전사로서 칼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악!!
-사, 살려줘 !
-도망쳐라! 불이다! 신의 불이다! 도망쳐라!
-영웅이시여! 칠영웅이시여! 제발 우리를…….
아비규환.
귀인족과 지정족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환각에 빠져 들었다. 짙은 연기처럼 깔린 오러가 그 환각 증세를 증폭시켰다. 귀인족은 불길을 향해 칼을 휘두르거나 창을 찌른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고, 지정족은 그저 자신들이 불길인 양 적의 팔다리를 물어뜯었다.
그리고 한계까지 타오른 숯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귀인족의 군세가 무너졌다.
4.
그리하여 그 전쟁은, 정말이지 단언컨대 본 적이 없는 전쟁이었다.
“…….”
“…….”
그 광경에는 여태 전투를 관망한 내 가신들도 입을 다물었다.
가장 먼저 입술을 연 사람은, 우리 중에서 제일 참극에 익숙한 김율이었다.
“대단하군. 가주.”
김율은 무표정하게 수첩을 내려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무림과 강호가 존재하는 세계들을 여럿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진법을 주창한 문파를 만나보았지. 그러나 그들이 개발한 진법이란, 기껏해야 환각향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저해시키고, 미리 만들어 둔 미로에 사람들을 가두는 것이었다. 아니면 여러 사람이 함께 펼치는 합공(合攻), 합격(合擊)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
김율은 수첩을 탁, 닫고 마천진법이 펼쳐진 산아래를 내려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시전자 전원이 동일한 마천신공을 익히고 있으며, 시전자 전원이 똑같은 심상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들은 마음으로 공유하는 풍경을, 오러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이 세상에 그려놓은 것이다. 심지어 단순히 만들고 구경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그 자신도 한 명의 배우가 되어 뛰어들어 불타오른다. 가주는 마천의 진법을 완성시켰군.”
그제야 실비아 에바나일도 입을 열었다.
“뭐, 뭡니까. 저거어……. 그냥, 거의, 신성이적이나 다름없잖아요? 제 말은, 신성이 강림해서 주변에 결계를 치는 것과 똑같다고요. 단순한 인간들이…… 오러를 익혔을 뿐인 인간들이, 성좌의 권능을. 어떻게.”
우부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년에 걸친 아비의 숙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우고르.”
나는 불타오르는 대지를 내려보았다.
염상유택(炎上遊宅)에서 살아남아 겨우 몸을 뺀 귀인족은 한줌에 불과했다.
그중, 독사가 조종하던 귀인 7영웅의 모습은 없었다.
“천무문주의 참패군요.”
에스델이 평했다. 모든 가문원이 고개를 끄덕여 거기에 동조했다.
그러나,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후후….
멀찍이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정족 진영으로부터 승기를 잡은 자들에게 걸맞지 않은 소란이 터져 나왔다.
-뭐, 뭐냐!?
-시체들이다! 뿔쟁이 시체들이 일어서고 있다!
그 말처럼, 염상유택에 당해 쓰러졌던 귀인족들의 시신이 하나 둘 일어서고 있었다.
쓰러지기 전보다 오히려 더 강한 기세를 터뜨리면서.
“저 남자….”
에스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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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빙의 전생]랭크: SSS
효과: 당신이 선택한 인물들에게 빙의합니다. 해당 인물이 사망할 경우, 당신은 원래 정신체로 돌아갑니다.
비용: 비매품 (특수한 방법으로 얻은 특전입니다)
※ 단, 사망 후 1분 이내의 인물에게만 빙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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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귀인족들에게는 독사의 그림자가 비쳐 있었던 것이다!
-누가 귀인족의 영웅이 단지 일곱 명뿐이라고 했나?
-귀인족의 영웅은 무한히 존재한다!
그들이—독사 일동이 말했다.
-귀인 7영웅이 당한 모양이군.
-후후… 그 녀석들은 영웅들 중에서도 최약.
-지정족 따위에게 지다니 귀인족의 수치인 것이니라!
당혹하여 흩어지는 지정족들의 한가운데에서, 12명의 귀인족이 전투 태세를 취했다.
물론 전부 독사였다.
-우리는 『귀인 12익장』!
-우리들뿐만이 아니다! 우리 뒤에는 『귀인 72마왕』이 있다!
-그 너머에는 다시 『귀인 108나한』이 존재하는 것이다!
되살아난 귀인족들이—독사가 일제히 외쳤다.
-우리는! 귀인족은 불멸이다!
지정족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왜 죽은 놈들이 일어서고 난리냐! 우거!
-사악한 마술이다! 신도 자연도 모독하는 흑마법이다!
당황한 것은 지정족들뿐만이 아니었다.
염상유택에서 겨우 살아 도망쳤던 귀인족들도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가…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우부르카를 상대할 수 있다는 비책이란 게….’
에스델이 잇소리를 냈다.
“이건 명백한 반칙입니다!”
에스델은 분기탱천하여 말을 이었다.
“천무문주는 이 세계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신이나 다름없는 입장이면서 빙의체를 일곱이나 내려보내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것부터가 선을 넘는 일이었거늘, 전사자 모두에게 빙의하다니요! 이건 완전히 도를 지나친 것입니다!”
그런 에스델의 말이 들리기라도 한 것일까.
가장 선두에 서있는 독사 빙의체가 몸을 돌렸다.
독사는 고개를 돌려, 산등성이에서 전장을 바라보던 나를, 우리를 정확히 찾아내어 올려다보면서 소리쳤다.
-시끄럽다!
산 위에 선 우리를 향해, 산 아래 있는 독사가 외쳤다.
-꼴사나워도 상관없다! 억지를 부린다고 욕해도 상관없어! 반칙이니 뭐니 마음대로 지껄이라지!
천무문주는, 아랫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사내는 토혈하듯 소리쳤다.
-이 녀석들을 이기게 해주기 위해서라면—쪽 따위는 얼마든지 팔아주마!
그 모습은 말 그대로 꼴사납고, 유치하고, 한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다웠다.
“음.”
천무문주, 독사가 전력을 다해 드러낸 진심에 나는 표정을 고쳤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명했다.
“무사장.”
“우고르, 가주.”
우부르카가 부복했다. 그 또한 표정을 가라앉힌 상태였다.
우부르카의 목소리와 눈빛, 태도는 오직 가문의 주인을 섬기는 장군이나 다름없었다.
“자문사.”
“예, 가주님.”
에스델은 기다렸다는 듯 왼쪽 무릎을 꿇어 부복했다.
그 옆에는 아까 전 불려 나온 우부르카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
내 딸아이와 아들이 나란히 부복한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문주는 자신이 돌보는 이들을 위해 체면도, 명예도 신경쓰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렇다면 그런 천무문주를 위해서라도, 우리 또한 전력을 다해 맞서주는 것이 예의겠지.”
“둘에게 내가 가진 종족 포인트를 모조리 맡기겠다. 원하는대로 사용해서, 원하는만큼의 병력을 만들어내도록.”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다음에는 무사장에게 선봉장을 맡겨라. 그리고 자문사는 총군을 지휘하여, 천무문주 일동을 친다.”
“격멸하오리까?”
“자문사가 이끌게 될 병력은 하나하나가 무림의 고수요, 마교천하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정예다. 수천의 천무문주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에스델이 머리를 숙인 뒤, 일어섰다.
그녀의 등에는 거대한 대검이 메여 있었다.
[마왕의 붉은 대검]. 언젠가 이름을 붙여주어도 좋을 만큼 대단한 명검이었다.“허면 말씀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지정족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벗’의 도움을 거절하진 못하겠지요.”
하나의 대륙을 절멸시켜버린 대검을 등에 지고, 에스델은 뒤를 돌았다.
“죽은 자들을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겠습니다. 그런 우리의 행사를 천무문주는 비난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요. 한 주먹거리조차 못 되는 자기 자신을 저주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옆에 있던 우부르카가 살짝 당황했다.
“우거…… 누나? 누님? 보기와 다르게 꽤 터프하시오?”
“가세요, 무사장. 선봉대는 당신 혼자입니다.”
“…….”
“가주님의 종족 포인트를 통해 무사들에게 몸을 마련해주는 동안, 그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혼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부르카가 히죽 웃었다.
“그야 껌값이지.”
“허면, 저 자에게 보여주십시오.”
에스델이 대검을 풀었다.
쿠웅, 하고 대검이 땅바닥에 꽂혔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장사가 대여섯 명 들러붙어야 할 것 같은 그 대검을— 에스델은 너무도 당연히, 마치 목도를 휘두르듯 가볍게 들어올렸다.
“우리 사왕가(死王家)가 어떤 존재인지, 똑똑하게 보여주십시오.”
“우고르. 우고르.”
우부르카는 주먹을 꺾으며 입꼬리를 쭉 밀었다.
“왜 내가 장남이 아니고 누님이 장녀여서, 후계자 다툼에서 밀려났는가 아주 조금 불만이었다만……. 우고르. 전쟁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멋진 덕목이다. 전쟁을 잘 한다는 것은 더 황홀한 덕목이지. 어디, 누님의 솜씨를 한 번 동생으로서 구경해볼까!”
우부르카는 목을 치켜세우더니, 우, 우, 우, 하고 세 번에 거쳐 공기를 빨아들이고— 하늘을 향하여.
소리를 토해냈다.
[성좌 ‘패륜을 꿈꾸는 근육돼지’가 포효합니다!]-구루우우우우우우우-
전쟁터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당황하던 지정족도, 살아남은 귀인족도, 그리고 수천의 독사일동도, 종족과 병종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온천하에 울려퍼진 사자후(獅子吼)에 일순 얼어버렸다.
“자.”
얼어붙은 전쟁터를 향하여 에스델은 칼끝을 겨누었다.
“갑니다.”
우리 가문의 첫 번째 전투가 막을 올렸다.
24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