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49)
5.
부러움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
아니, 이건 단순히 ‘부러움’이라고 표현될 감정은 아니겠지.
질투. 그렇다. 질투가 그나마 저 부글부글 끓는 고독(塵毒)을 표현한다.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 처음은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헌터들. 1층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은 언제 스킬이 각성할까 오매불망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자들.
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이미 [사왕 김공자]는 질투의 대상이다.
‘그건 알고 있었어.’
나를 찬양하는 글이나 사인을 바라는 목소리, 길거리를 오갈 때 날 가리키며 소곤소곤거리는 그 모든 해일과도 같은 관심을, 나는 상당히 기쁘게 즐겼다.
‘하지만…….’
그래, 하지만.
‘당신까지.’
나는 천천히 독사를 바라보았다.
‘당신씩이나 되는 사람까지, 나를 질투하는구나.’
독사가 어떤 인물인가.
지금처럼 함부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농담으로 치고 박는 광경은, 과거의 내가 보았다면 기겁해서 까무라칠 정도로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내 마음속의 우상들.’
상위 헌터들을 팬심으로 덕질하던 내게 그들은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아이돌 그룹의 리더인 염제 유수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은퇴하고 다시 연습생 생활을 준비중이지만, 여전히 독사는 내 마음 속 우상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방으로 오러를 끓이며, 너를 질투한다며 절규하고 있었다.
“아,”
눈앞에서 그 마음을 직면해버린 나는.
“아하하하, 아하하하핫!”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크게 웃어버렸다.
“아하하하하하, 아, 아하하하하하핫!”
달빛이 드리운 평야.
초목은 모래사막에 스러져, 바람에 따라 고운 모래빛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넘실거렸다. 모래사막의 골짜기와 언덕에는 수천만 송이의 장미꽃이 굴러다녔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가을의 비.
사방에서 붉은 비가 흘렸다. 소나기였다. 모래사막은 물에 묻어, 골짜기가 지닌 선들이 윤기를 띄었다. 빗방울을 삼킨 장미꽃잎은 훨씬 더 싱그러워졌다.
그리하여 세상은, 모래사막은,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빗물이 흐르는 소리로 소생하였고, 황금의 꽃잎들이 수면을 수놓아, 그곳에 성스러운 무언가가 잠들어 있는 듯한 착각까지 만들었다.
사막 한복판에 만들어진 오아시스.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 오아시스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아하하하….하아, 하…… 아하하하.”
독사는 나를 노려보았다.
“웃었냐?”
나는 비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올해 웃어볼 건 여기서 다 웃어버린 기분이네요.”
“이 새끼가!”
챠아아아앙!
독사는 특기인 전광석화를 살려 단번에 내 모가지를 따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자세를 취하기 위해 즈려 밟은 곳에 김율의 모래알이 있었다. 그가 날아오기 위해 지나친 허공에는 실비아의 꽃잎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어떤 자체를 취하든, 그는 이미 에스델의 빗물에 젖어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천무문주님.”
나는 마치,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올 것인지 전부 예상했다는 것처럼 독사의 공격을 받아쳤다.
“제가 강하기 때문에 스승님을 온전히 봉양할 수 있었다? 제가 강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었다? 맞는 말이에요. 맞는 말이지만…… 천무문주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착각이라고……?”
“저는 처음부터 강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단창을 하나 쥐었다. 이어 오러를 뭉치고 압축시켜서, 붉게 달아오른 단창을 쏘아버렸다.
독사를 향해서.
“큭……!”
독사는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내 공격을 피했다. 파샤샤샤삭! 날카로운 단창이 꽃잎을 찢어발기며 사막의 모래에 깊이 파고들었다.
단창의 손잡이에 빗방울이 맺혀 뚝, 뚝, 떨어졌다.
독사가 피를 흘리며 일어섰다. 내가 쏘아댄 단창을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독사의 몸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씨, 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말 그대로, 처음부터 강했던 게 아니에요.”
나는 오러창을 3자루 생성했다. 꽃잎 몇 점, 모래 몇 알, 비 몇 방울이 모여들어, 순식간에 붉디붉은 창의 형태로 집속되었다. 세 자루의 창은 허공을 맴돌며 내 명령만을 기다렸다.
“당장 이런 묘기를 부리게 된 것도.”
나는 가볍게 손짓하여, 독사에게 창들을 날렸다.
“크흐으으으윽!?”
피가 튀었다.
“정말, 의외로 정말 최근이에요 에스델과 실비아, 김율, 제 가신들이 서포트해주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오러를 낭비할 수도 없고요.”
독사는 세 자루 중에 두 자루는 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노림수였다.
마지막 한 자루, 오러창은 독사의 어깨에 명중하여 살을 파고들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제가 처음부터 강해서 가을비의 마왕을 물리친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강해서 스승님을 안심시켜드리고, 위로해드릴 수 있었던 것도, 결코. 절대로 아닙니다.”
독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스승님과 처음 만났던 시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웃어버렸다.
그때, 나는 빌다시피 사정사정해서 스승님께 외가(外家) 제자로 인정받았다.
스승님은 [너에게 직속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자꾸나]라며 날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거기엔 무공 좀비가 득실거리는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이른바 배고픔을 단련하는 마천신공. 아사유검을 깨닫기 위한 훈련 코스였다.
-뭘 망설이느냐? 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비명을 지르며 좀비 무공한테 쳐발리는 내게, 스승님은 말했다.
-네가 제일 오래 동안 굶어본 기억을 떠올려라.
-제일 오래 굶어본 건 3일에서 4일인데요…….
-뭐라? 사흘에서 나흘?
내 대답을 듣고 스승님이 보인 반응은, 어이 없어하는 것이었다.
-어허. 허어. 쯔쯔쯧. 이야기가 안 통하는구나.
-되었다. 본좌의 잘못이다! 잠시라도 기대했건만,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놈이었구나.
그리고 스승님은…… 나를 버리고 떠났다.
구덩이 속에서 발광하고 발악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훌쩍 떠나버리신 것이다.
-천마님! 천마님!? 잠깐 기다려주십쇼! 아니 세상에, 굶주린 게 벼슬도 아니고요! 그거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예!? 이런 씨…….
씨에서 발로 이어지는 순간 나는 무공 좀비한테 잡아 먹혔다.
“아하하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서, 참지 못하고 웃어 젖혔던 것이다.
나의 스승님, 냉정하고 고고하신 분.
당신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기 그리 어려웠건만.
이제는 제가 당신께 웃음을 안겨드린 것에 질투하여, 시기하여, 어떻게든 저를 이겨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 생겼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으리오까.
살아생전 스승님께서도 수많은 질투와 시기를 받으셨을 텐데, 그때 당신께서는 어찌 행하셨을지. 지금 스승님께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보지 못하고, 스승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천무문주… 저는 처음부터 강해서 모든 일을 해냈던 게 아니에요.”
“…….”
“그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허락받았을 뿐이지요.”
독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올려보았다.
당연하지만,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아아, 나는 독사의 마음을 이해했다.
한 톨의 거짓도, 오해도 없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때 내가 다른 이를 부러워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들렸으니까.’
조금 전, 독사가 내게 직접 검을 휘두르며 절규할 때부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시절의 독사와 아직 나와 만나지 못한 이단심문관의 모습이, 드문드문, 꼭 신기루처럼 잠깐씩 뇌리에 비추었다.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목소리마저.
-당신이 저를 고치려 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왜냐.
-당신은 저를 책임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독사를 바라보았다.
독사는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게 드글거리는 눈동자 아래, 선 굵은 입술은 꾹 다물려 있었다.
하지만.
-말하자면, 저희 둘은 친구이고 동료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내게는, 독사의 심장에 뭉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새로운 스킬을 각성한 것은 아니었다. 내 스킬 목록은 여전히 나의 삶을 증명하는 발자국들로만 채워져 있으니. 내게 갑자기 영감이 내려와 사람의 속내를 읽는 것도 아니어서, 이건, 그저 단순히.
‘탑주(塔主)가 남긴 흔적.’
탑주에게 살해당하여, 그 트라우마를 엿보고 온 후유증이다.
자수정, 이 탑의 주인은 만생의 모든 불행과 불운을 껴안는다. 그들이 불행해지는 순간을 신님은 전부 목격하고 기억한다. 수천만, 수 억, 아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들이 지닌 [트라우마]들이 탑주에게로 이식된다.
그들이 괴로워하는 만큼 탑주도 괴로워한다.
그들이 절규할 때 탑주도 따라서 절규한다.
그리하여, 만인의 트라우마는 탑주의 트라우마인 것이다.
‘탑주의 트라우마를 보게 된 순간…… 나는 이 탑에 거하는 만인의 트라우마도, 동시에 보게 되었던 건가.’
한 인간이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막대한 기억량.
따라서 평소에는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 못하며,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처럼 독사가 과거의 한을 끌고 소리칠 때라면…….’
나한테도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날 죽인 자들의 트라우마를 볼 때처럼.’
탑주가 목격했던 장면들, 자신의 심장에 이식한 상처들.
그것이 정말로 이 세상의 [과거]에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자수정이 개입하여 따로 만들어낸 세계에서 벌어진 일인지, 혹은, 어딘가의 [미래]에 생겨날 일인지, 모르겠지만.
반신안(半神眼).
나는 그것에 눈을 뜬 것이다.
“……하.”
나는 다시금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탑주가 바라보는 세계.
단지 사람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따금, 그의 절규와 비명이 들려오는 것이 일상이라면, 나는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일상인가 생각하여 슬퍼졌다.
“아까부터 뭘 처웃어대는 거냐고!”
나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이어 눈앞에 놓인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천무문주… 저를 이기고 싶으신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독사가 멈칫했다.
나는 아랑곳 않고 계속 물었다.
“가능하면 정정당당하게. 천무문주랑 저랑 일대일로,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없이 일대일로 떠서, 저를 쳐바르고 싶은 거지요?”
독사는 잇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독사의 입에서 벌컥, 피가 솟구쳤다.
“그렇다면 어쩔 거냐……!”
그 토혈을, 나는 피하지 않았다.
독사는 쓰러져 있었고 나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독사의 아가리에서 터진 핏점 몇 방울이 내 뺨에 튀었다.
“기회를 드리지요.”
쏟아진 비를 닦아내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그 피 역시 닦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어요. 시간.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어울린 아이들, 거둬들인 아이들이 저의 가문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꽂힌 오러창을 잡아 빼내었다. 커헉! 다시 한 번 독사의 몸이 꿈틀거리면서 핏물이 터졌다.
“그리고 천무문주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을 벌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서서히 입술을 열었다.
“200년 하고도 6개월 21일.”
“……?”
“이단심문관이 혼자서 31층을 견뎌낸 시간이지요.”
정적.
아마도 아주 잠시 동안, 독사는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천천히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뚜욱.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내 머리카락에 흘러 독사의 몸으로 떨어졌다. 뚝, 빗방울이 몇 점 떨어지고 나서야 독사는 입을 열었다.
“네 말은, 설마…… 그러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 년이 되든 삼백 년이 되든, 이단심문관처럼 한 번 이 스테이지에서 혼자 시간을 버텨보세요. 수백 년에 걸쳐서 단련하고 수련해 보세요. 사람을 끌어들여보세요.”
“…….”
“그리고 다시 저에게 도전하십시오. 천무문주.”
수백 년.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갇히는 폐관수련(閉關修鍊).
그것이 내가 독사에게 말한 방법이었다.
2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