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53)
시대는 빠르게 흘렀다.
화하평의회를 상징하는 깃발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 수록, 그 아래 모여든 종족은 많아졌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져서, 구경하는 우리들은 간간이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 잠깐만 속도를 줄여보렴!”
제일 흥분한 사람은 흑룡주. 나의 친구 아나스타샤였다.
“또 다른 종족이 화하평의회 의장한테 도전장을 던졌어!”
“이번엔 어떤 종족인데요?”
“산와족이야! 옷차림을 보면 광부네. 산와족 광부가 평의회 의장한테 결투를 건 거야!”
“진짜요?”
흑룡주는 손가락을 들어 홀로그램 한켠을 가리켰다.
“눈깔은 뒀다가 어디에 써먹니! 안력 강화해서 자세히 좀 살펴봐!”
아, 정말이었다.
7개의 촉수를 가진 달팽이 산와족이었다. 본디 8개의 촉수를 갖고 있었으나 삶의 풍파에 그 중 하나를 잃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촉수 하나의 손상은 그녀에게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못한 듯했다. 흉터를 훈장으로 삼는 군인처럼 한 팔을 잃은 광부는 몹시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땅바닥엔 레드카펫. 양옆으로는 지정족들이 도열해 있었다. 지정족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무지막지했으며, 무시무시한 오러를 풍기며 이 쬐만한 산와족을 내려봤다.
-라임.
산와족은 가래침을 탁, 뱉었다.
산와족의 가래침은 몰랑몰랑거렸다. 꼭 어릴 때 가지고 논 슬라임 장난감처럼.
그래서 그건 [이제부터 너희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시겠다]라는 선전포고로 보이기도 했다.
-먼저 산와족을 대신해서 너희 곰팡이 새끼들한테 경의를 표한다!
산와족이 소리쳤다.
-너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즉에 멸망했을 테고, 멸망을 피한 놈들은 노예가 되어, 껍질이 까부숴지고 피부가 녹아 흐를 때까지 일해야 했겠지. 라이무. 적당히 곡괭이질 하면서 적당히 살 수 있게 된 건, 모두 너희! 특히 전설의 우부르카 의장 덕분이었다!
말만 들어보면 호의적인데 얼굴은 여전히 우락부락했다.
-고맙다! 하지만 이젠 됐다. 이제는 우리도 제 앞가림 하면서 살 만큼은 됐다. 벌써 수백 년도 더 된 일로 우리를 죽이려 드는 새끼들도 없거니와, 너희들 보호만 받으면서 사는 것도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우고르.
당대의 화하평의회 의장이 나지막이 웃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훌륭하지. 용감해지기 때문이다. 너의 부끄러움은 잘 알겠다. 이제 너의 용기를 말해보아라.
-나는 산와족 가운데 가장 강하다!
촤르륵, 철컥, 촤르.
산와족이 일곱 개의 촉수를 들어올렸다. 그가 택한 무기는 칼도 창도 아니었다. 화려한 무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떨어진 도구가 그곳에 있었다.
곡팽이.
광부의 볼품없는 곡괭이가 촉수마다 꾹 쥐어졌다.
-우고르!
지정족 전사들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거대한 바위에 앉은 의장을 제외하고, 수십 명에 이르는 지정족 전사들은 일거에 낄낄거렸다.
-산와족 마을에서 대표자를 보내온다길래 뭐 어떤 기린아가 튀어나왔다 싶었더니!
-감히 곡괭이로 우리를 이기겠다고!
-광부라면 광부답게 막장으로 돌아가서 돌을 캐라! 소금을 캐라! 그리 살다가 은덩이나 금덩이를 만나면, 이것이 너희 인생의 복이로구나 하여 만족하며 가져라! 우거! 어디 신성한 결투장에 곡괭이를 들고 나오는가!
-우고르! 우고르!
산와족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려보지도 않았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하평의회의 의장을 올려보았다.
-음.
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비웃음을 입에 담은 놈들에게 차례대로 명한다. 저 산와족과 결투하라.
지정족 전사들이 술렁거렸다.
-의장, 그건…….
-우리가 아직 산와족의 거대한 동굴, 슬라임폴리스에 갇혀 살던 때, 우리에겐 어떠한 무기도 없었다. 창? 칼? 웃기지 마라. 우리한테 있는 건 물 양동이와 망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망치를 들고, 친애하는 백사자와 더불어, 우리는 산와족의 제국을 무너트린 것이다.
-…….
-망치는 제국을 무너뜨린 무기다. 선조의 무기이며, 동포의 무기고, 우리의 무기다. 곡괭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무기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한 전사는 화하평의회에서 서열을 자랑할 자격이 없느니. 만일 저 산와족과 결투하여, 패배한다면, 모두 서열을 반납하고 구루로 돌아가라!
지정족들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그러나 불과 강을 지배하는 자, 화하평의회의 의장은 명령을 거두지 않았다.
-어서!
다섯 명의 지정족이 쭈뼛쭈뼛 결투장으로 나왔다.
-라임.
산와족은 여전히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녀가 촉수를 한 번 흔들자, 후우욱! 반경 3미터에 달하는 곳까지 곡괭이가 날카로이 훑고 지나쳤다.
-차례대로든 한꺼번이든 취향에 따라 덤벼라.
지정족 다섯 명은 쪽도 못 쓰고 발렸다.
진정한 결투는 그다음부터였다.
자기 자신의 비웃음 정도는 쉽게 자제하는 전사들이 나섰다. 그들은 패배했다.
종족에 대한 편견쯤은 진즉에 던져버린 전사들이 따라 나섰다. 그들도 패배했다.
사람의 외양을 보되 그 사람 안의 오러를 살피며, 그 사람이 내뱉는 말만큼이나 심장에서 요동치는 오러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사들이 나섰다. 그들 역시 패배했다.
천지만물에 깃든 오러를 아름답게 여기며, 그리하여 세계가 다만 불처럼 타오르는 것,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라고 생각하는 전사가 나섰다. 그 또한 패배했다. 하지만 산와족은 7개의 촉수 중에 다시 5개의 촉수가 잘렸으며, 1개의 촉수가 짓뭉개져, 최후에는 인간의 양 팔처럼 2개의 촉수밖에 남지 않았다.
-후욱…… 후, 하, 우욱…… 하.
피투성이.
-동굴 파는 것보다……쉽군, 라임.
달팽이껍질은 사고 난 자동차 범퍼처럼 찌그러졌다. 온몸에선 핏물과 점액질이 흘렀다.
그런 산와족을 내려다보며 화하평의회의 의장은, 이 시대에 제일 강한 무인만이 오를 수 있는 바위의자에 앉아, 크게 웃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세임슬람.
산와족이 점액질을 흘리며 신음했다.
-지금은 멸망한 협곡도시(缺谷都市)를 다스렸던 일곱 영주 중 하나, 레카무라임 가문의 마지막 후예이자, 나선류의 전승자다.
-훌륭하군.
지정족의 의장은 거대한 송곳니를 씩 드러냈다.
-이제부터 네놈이 화하평의회 서열 제2위의 부의장이다. 세임슬람.
시대는 빠르게 흘렀다.
지정족 역사에서 산와족이 부의장에 올랐다.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심지어 산와족이 과거 지정족을 지배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원수의 종족에게 요직을 맡긴 것이었다.
이것에 납득하지 못해 수많은 지정족 전사들이 결투를 걸었다. 그때마다 화하평의회의 부의장, 산와족, 세임슬람은 도전자를 격퇴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결투를 거절하지 않았다.
-긍지를 아는 자로군.
지정족들은 오랜 역사의 앙금을 허물기로 했다.
-강한 자다.
지정족들은 현실의 아름다움에 과거의 슬픔을 묻어주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산와족들은 화하평의회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적어도 의회에서 서열을 받을 정도의 강자라면, 어디 가서도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해선 안 되었다. 강자존(强者存). 이것은 백사자가 구루로 인도한 시절부터 유일무이하게 지켜진 계명이었다.
“……굉장해.”
다 같이 홀로그램을 지켜보다가 아나스타샤가 문득 중얼거렸다. 홀로그램 속에선 산와족 부의장인 세임슬람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전사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받고 있었다.
“우리보다 덜 발전되었고, 우리보다 훨씬 사회가 투박하고…… 우리처럼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우리보다 많은 걸 모르지만.”
흑룡주는 입술을 약간 벌렸다.
“우리만큼이나, 아니, 우리보다 더 강해.”
“…….”
“저 아이들은 긍지를 가지고 살아 있어. 소금광산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산와족도, 물길을 헤엄치는 새기족도, 금화를 만지며 이따금 혈화극 무대에 오르는 요정족도, 매번 전쟁을 대신해서 결투자들을 보내오는 귀인족도…… 모두. 정말로 강하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음속으로 한없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저 아이들은 저희만큼 강하고…… 저희보다 건강해요.”
그때 심장 한가운데서 묘한 감정이 웅크렸다.
투명하지만, 결코 질척거리지 않는 무언가가, 심장의 중심에서 언저리로 조금씩 퍼졌다.
살짝 옆을 돌아보니 흑룡주나 성기사도 표정이 비슷했다.
‘그래.’
나는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게 자랑스럽다는 거구나.’
그것이 부모로서 자식에게 느끼는 자랑스러움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인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보고도 자랑스러울 수 있었다.
그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37층 스테이지가 시작합니다.]홀로그램에는 설원이 비추었다.
얼어붙은 북방. 만년동토에 잠들어 있던 적룡(赤龍)이 깨어났다. 그 적룡은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일어난 적 있었으며, 그때 하나의 화산을 터트리며 날아갔다.
그 화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얼마나 뜨거운 용암을 게워냈는지, 여기 모인 헌터들 전원이 알고 있었다.
“……31층 원시림에서 화산이 터진 게 저 드래곤 때문이었구나.”
퀘스트 설명문을 읽고 아나스타샤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제 우리는 스테이지에 관여하지 못했지만,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배려해준 덕택에 퀘스트 설명문 정도는 짤막짤막 읽을 수 있었다.
“음. 척 봐도 성좌급으로 강하군요!”
이단심문관이 홀로그램을 힐끗 보며 턱을 매만졌다.
“여차하면 저곳엔 우부르카 씨가 머무르고 있으니 간섭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니에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화하평의회는 혼자서 해결하려 들 겁니다. 보십쇼.”
화하평의회가 군대를 집결시켰다.
지정족의 작은 의회에서 출발한 집단은, 어느덧, 지정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새기족. 요정족. 산와족. 흡혈종. 수많은 전사들이 깃발 아래 모여 있었다.
아직은 전사의 반절 이상을 지정족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자들은 모두 정정당당한 결투를 통해서 서열을 얻어냈다. 지정족이 많다는 것에 불만을 터트리는 산와족 따윈 없었으며, 요정족이 있다는 것에 불평을 말하는 흡혈종 또한 없었다.
그들은 전사(戰士)였다.
-모였나.
화하평의회의 의장이 물었다.
수만 명의 전사가 일제히 땅을 쿵, 쿵, 쿵, 두들겼다.
의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였구나. 가자.
얼음이 서린 북방으로.
북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군대와 맞닥뜨렸다. 외뿔이 달린 거인들. 귀인족(鬼人族)의 군대였다.
-우거.
-크르.
독사가 강림하여 귀인족들과 함께 전쟁을 벌인 지, 아직 100년이 다 지나지 않았다. 지정족과 귀인족들 사이에는 여전히 묘한 호승심과 경쟁심이 남아 있었다.
툰드라 평원을 사이에 두고 양군대는 대치했다. 지정족들에선 화하평의회의 의장이 홀로 사자를 타고 다가갔으며, 귀인족들에선 뱀신을 모시는 대사제가 지팡이로 툭툭 땅을 치면서 다가왔다.
지정족 의장이 물었다.
-싸우려는가?
귀인족 대사제가 답했다.
-싸워야지. 쌍. 그러나 네놈들이랑 싸우러 나온 건 아니다.
-적룡?
-가만히 놔두면 신화 속의 대재앙이 터질 거라더군. 모든 산이 분노하여 용암을 터트릴 것이고, 모든 강물이 붉게 타올라,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는 불모지가 되어버린단다.
-한 번쯤 보고 싶은 풍경이긴 한데. 우고르.
-거기엔 동감한다만 어린 놈들 생각은 좀 달라서 말이다.
의장과 대사제가 낄낄 웃었다.
-너희가 모시는 뱀신은 뭐라 하시던가? 강림하길 원하시던가?
-우리의 신께서는 고민하셨으나…….
귀인족 대사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엔 개입불가를 밝히셨다.
천무문주.
어느 누구보다 앞장서서 귀인족을 보살피고 싶었을 독사는, 그러나 이번에 단념했다.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자신들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한 발자국 물러서주었다.
그것이 아직 저 세계에 머무르고 있을 천무문주의 선택이었다.
-일전에 붉은 용이 날개를 펼쳤을 때에는 신들께서 우리를 보우하셨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지. 신께서는 우리를 믿는다 말씀하셨다. 우리는 강하다.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고.
-우리보단 약하지만. 우고르.
-씨발 곰팡이 잡놈들 같으니.
대사제가 툴툴거렸고, 의장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친애하는 부모들과 친구들이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주도록 하지.
-크르. 공투(共關)하마.
우리 헌터들은 말없이 37층 스테이지를 지켜보았다.
-크오오오오오!
눈 날리는 설원 한복판에서, 거대한 적룡이 울부짖었다.
사방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쳤으되 적룡의 새빨간 피부를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늘에서 함박한 눈이 쏟아졌지만 적룡의 뜨거운 열기를 파묻기엔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수천 년 동안 얼어붙은 대지는, 적룡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발톱에 찢어져 쨍그랑쨍그랑 비명을 질렀다.
-가자.
첫 번째 싸움에서 귀인족의 대사제가 절명했다.
적룡이 내뿜은 브레스에 휘말려, 오래된 지팡이 한 자루 남기지 못한 채, 그저 동토의 눈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가자.
두 번째 싸움에서 지정족의 화하평의회 의장이 죽었다.
전사들이 마천진법을 완성시키는 동안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주어야만 했다. 1분. 아니, 30초만이라도 전사들이 집중하여 오러를 교환하고, 심상을 공유하여, 이 세계에 그들의 풍경을 도래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당대의 화하평의회 의장은 1분 23초를 버텼다. 그가 휘두른 도끼에 적룡의 껍질이 패였으며, 그가 후려친 주먹에 적룡의 왼쪽 눈알이 파열되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을 터트리는 신화 속 괴물을 향하여, 외딴 전사는 도끼를 휘둘렀으며, 도끼를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적통의 이빨에 씹혀 죽었다.
-가자.
세 번째 싸움에서 바야흐로, 적룡의 목이 떨어졌다.
적룡의 피부는 두꺼웠다. 살은 더 두꺼웠다. 뼈는 더욱더 두꺼웠다.
한 번의 곡괭이질에 피부가 긁혔고, 두 번의 곡괭이질에 피부가 파였으며, 세 번의 곡괭이질에 비로소 살이 베였다. 네 번의 곡괭이질에 살이 끊어졌고, 다섯 번의 곡괭이질에 살이 찢어졌으며, 여섯 번의 곡괭이질에 뼈가 긁혔다.
일곱 번의 곡괭이질에 뼈가 잘렸다.
-라임.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촉수에 곡괭이를 휘어감은 채.
한 명의 산와족이 적룡의 목에 올라타 있었다.
-동굴 파는 것보다, 쉽군.
그리고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언덕만큼 거대한 적룡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가리에 남은 비명을 토해내면서, 끝없이, 끝없이 지하로 떨어졌다. 빙벽의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물소리가 나면서 비명이 천천히 멀어졌다.
차가운 빙해(水海)의 수면으로 적룡의 머리가 가라앉은 것이다.
-라임.
절벽 위에서 산와족이 고개를 저었다. 점액질이 흩날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북방에 올 때보다 아주 조금 적어진 머릿수의 전사가 보였다. 한 명. 두 명. 세 명. 전부 합쳐서 일흔네 명의 전사가 죽었다.
그 중에는 귀인족의 대제사장과 지정족의 의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훌륭하군.
어제 이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강한 전사였으며, 오늘에 이르러 첫 번째로 강한 전사가 된 산와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라임.
세임슬람.
화하평의회(火河評議會) 629대 의장.
역사상 처음으로 산와족이 의장에 등극한 순간이었으며.
[스테이지 클리어!] [37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어떠한 헌터들의 도움도 받지 않은 성공.
그것은—소위 ‘플레이어’들이 일절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클리어가 이루어진, 최초의 순간이었다.
-공자야.
‘음? 뭡니까, 검제 양반?’
-너 말인데, 어떤 영감탱이랑 걔가 돌보는 종족을 잊고 있지 않냐…?
음.
정정하자.
그것은—소위 ‘플레이어’들이 일절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클리어가 이루어진, 최초의 순간일 가능성이 있었다.
‘뭔가 영 와닿지 않는 문장인데….’
아무튼 뭐, 무슨 상관인가.
바로 내 옆에서 흑룡주가 “아자아아아아아!!” 하고 외치며 좋아라하고, 내 팔짱까지 껴가며 깡총깡총 신을 내고 있는데. 천무문주의 일도 검성의 일도 분명히 잘 해결되겠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지금은 다만 홀로그램에 비치는 자들을 축복해주기로 했다.
‘독립 축하한다. 애들아.’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이들을.
2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