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55)
2.
[이제부터 38층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탑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우리가 지켜보던 홀로그램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앗, 저길 보십시오!”
이단심문관이 읏싸,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기에 이단심문관이 고개를 들이밀 곳이라곤 소파의 등받이 밖에 없었다. 이단심문관은 마치 아빠한테 어부바한 어린애처럼, 소파 등받이에 매달린 채 앞을 바라봤다.
“대륙의 오른쪽을 둘러싼 바다에서 뭔가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단심문관이 한 말대로였다.
홀로그램 영상에서는 거대한 무언가가, 심해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하핫!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군요!”
이단심문관은 꼭 괴수 영화를 보는 꼬맹이처럼 촐싹거렸다.
하지만 탈락자 대기실에 모여 있는 다른 동료들은, 들뜨지 못했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흑룡주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저건?”
[그것]은 목이 긴 거북이를 닮았다.놈이 몸을 다 일으키자 무릎에서 파도가 휩쓸렸다. 마천루처럼 기다란 목을 들어올려 괴물이 포효하자, 그 울부짖음만으로도 사방 팔방에 해일이 몰아쳤다.
“저 세계에 태초부터 잠들어 있던 용(龍)이야.”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말했다.
흑룡주는 멈칫했다.
“……용? 37층에서도 용이 나오더니, 이번 층에서도 또 용이 나오는 거야?”
“응. 그리고 사실 저 용이야말로 진정한 용… 너희들 식으로 말하자면 [성좌]라고 할 수 있지.”
공녀는 방긋 웃었다.
“37층의 적룡은 저 용이 부리던 사도(使徒)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구오오오오오오오-
바다 한복판에서 괴물이 용트림을 했다.
쿵!
푸른 등껍질. 푸른 껍질. 푸른 눈을 가진 괴물은, 거대한 앞발을 일으켜서 해안으로 향해갔다.
쿵!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지진이 일어났다. 쿠웅! 쿠웅! 몇 번 내딛지도 않았는데, 괴물은 이미 바다 한복판에서 벗어나 해변의 모래 사장을 짓밟고 있었다. 쿠웅! 마지막으로 괴물이 움직였을 때 그것은 울창한 밀림의 나무들을 수수깡처럼 짓뭉갰다.
구오오오오오오오-
괴물은 자기 머리에 묻은 바닷물을 털어냈다. 떨어진 물방울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연못을 만들었다. 끼욱! 바다에서 살던 물고기, 해변을 서성이던 게, 밀림에 숨어살던 짐승들이 뒤얽혀 도망쳤다. 끼우욱! 끽! 뭍과 물의 짐승들이 도망치며 내는 소리로 세상이 번잡해졌다.
[성좌 ‘심해에 거하는 기룡(氣龍)’이 포효합니다!]화면 너머로 구경할 뿐임에도.
“…….”
“……”
우리는 모두 말이 없어졌다.
거의 한반도만한 면적을 가진 괴물을 마주하게 되면 조용해지는 법이다.
“음! 어렵군요.”
정정하자.
밤볼리나만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제 스킬, 만신전(萬神典)으로 확인했습니다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야 저만한 크기니까 말이지.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각이 안 나오는군.”
백작이 어이없다는 듯 꺼낸 말을 밤볼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사이즈도 문제입니다만, 그저 사이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저 성좌의 성질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
성좌에도 종류가 있다 이 종류는 천차만별로, 단순히 강하다고 성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우부르카 역시 단순히 덤벨을 많이 들었기에 성좌로 등극한 것이 아니다. 우부르카는 자신을 극복하고 또 극복했기에 성좌에 다다른 것이다.
선천적인 백색증으로 인하여 태양과 원수를 질 수밖에 없었던 태생. 허나, 우부르카는 오러를 배워 온몸을 감쌈으로써 햇볕을 극복했다. 육체의 한계. 생명의 한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밀어닥칠 때마다, 우부르카는 살과 뼈를 오러로 재구성함으로써 극복해왔다.
극복하는 자.
자신을 낳아준 세계에, 세계를 키우는 태양에, 태양에 빚을 진 생명에, 모든 것에 반기를 들고 결국은 초월해버린 자. 성좌 [패륜을 꿈꾸는 근육돼지]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였고, 그로써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가 될 자격을 얻었다.
‘반면에.’
저 괴물 같은 성좌는, 종류가 달랐다.
“저 성좌는 분류하자면 태초(太初)에 속하는 존재입니다!”
태초.
자연(自然).
이 세계를 [구성]하는 성좌.
“저 거대한 괴물조차도 사실은 본체가 아닙니다. 일종의 단말, 말하자면 의식을 연결해 조종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좌의 본체를 거대한 말미잘로 비유하면, 저 괴물은 그저 거기 돋아난 촉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이상, 싸워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짜낸다면, 흐음. 저 인형을 부수는 게 아니라 봉인하여 그 안에 성좌의 의식을 가두고, 지속되는 고통을 주어 의식을 바스라지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반짝이가 몸서리를 쳤다. 나 역시도.
밤볼리나가 말한 방법이란 것은, 스승님이 살던 세계의 성좌가 살천성에게 당했던 것과 거의 같은 것이었으므로.
그런 사정은 알지 못하는 흑룡주가 턱을 매만졌다.
“과연. 일종의 저주구나.”
“예! 애초에 매개체가 인형인 것입니다. 카운터도 그런 식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래, 상대할 방법은 있다 이거지. …그런데 그 방법을 저기 있는 아이들이 쓸 수 있으려나?”
“발상 자체는 대단히 쉽습니다. 매개체가 인형이란 말은 원시 주술에 그 근원을 둔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흑룡주와 이단심문관의 이야기가 이어지던 차, 누군가가 팔짱을 끼었다.
성기사였다.
“다만 그런 방법을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군.”
“응? 무슨 소리인가?”
“이단심문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성좌는 저 세계를 탄생시킨 조물주나 다름없는 것 같다. 즉 저 세계의 주민들이 태어나 살아가는 것조차 저 성좌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셈인데, [성좌는 절대 죽인다] 같은 신념을 가진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존재와 적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몸서리를 쳤다. 반짝이도.
아무튼 내 가신 중에 그런 이력을 가진 인물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야 어쨌든, 성기사의 지적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역시 성기사.’
내가 회귀하기 전.
염제 유수하는 딱 40층까지 클리어했다.
그리고 종족 개별 퀘스트가 아니라 월드 퀘스트인 만큼, 나는 이 층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치만 그 조물주가 지금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잖니?”
“같은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흑룡주. 저 성좌가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세계를 멸망시킬 이유가 없어. 저 세계의 주민들이 세계 전체에 대고 난장판을 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역시나 맞는 말이다.
‘사실 난장판을 쳐놨어도 멸망은 안 시키지만.’
염제.
유수하가 탑을 오르던 과거엔, 지금이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륙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염제를 신으로 모시는 광신자 엘프들. 그런 엘프들에게 살육과 정복을 명령하는 유수하. 종족과 신이 아주 쌍으로 미쳐 돌아서, 모든 종족을 멸망시키거나 아예 노예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지정족만 빼고.’
하지만 그 아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중에 얘기토록 하고, 아무튼 지금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저 성좌는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아.’
단지…….
조금 더 고약한 짓거리를 벌일 뿐.
[성좌 ‘심해에 거하는 기룡(氣龍)’이 포효합니다!]밀림과 해변, 바다가 흔들렸다.
기룡이 토해낸 포효는 웅장하여, 반대편 해안까지도 똑똑이 울려 퍼질 정도였다.
-나의 피부 위에서 살아가는 것들이여!
-나의 폐에서 흘러 나온 종족들이여!
-나는 위대한 흐름이다! 이 하늘, 땅, 바다에 노니는 흐름 가운데 나로부터 기하지 아니한 흐름이 없노라.
-내가 곧 흐름이요, 흐름이 곧 나이니,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자, 나를 느끼는 사제요, 흐름을 쓸 줄 아는 자, 나를 쓰는 전사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지정족이 코를 찡그렸고, 산와족이 더듬이를 떨었으며, 요정족이 귀를 쭈뼛거렸고, 새기족이 아가미를 벌렸으며, 흡혈종이 날개를 퍼덕였고, 순인종은 눈을 돌렸으며, 귀인족은 외뿔을 돌렸다.
한순간. 찰나에.
그들의 코, 더듬이, 귀, 아가미, 날개, 눈, 외뿔은 어느 한 곳으로 향했으며, 그것들이 향한 곳 저 편의 저 너머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괴수가 엎드리고 있었다. 해일이 치는 모래사장에 뒷발을 딛고, 해일에 쓸리는 밀림에 앞발을 디딘 채.
-……말도 안 되는구만.
배후령이 팔짱을 낀 채 신음을 흘렸다.
-저 거북이 새끼, 저거. 방금 이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종족’들에게 ‘오러’로 ‘전음’을 보냈잖아?
배후령의 말대로였다.
그 어마어마한 신기는 대륙 전체에 즉각 반향을 일으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순인종이 두려움에 떱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새기족이 비늘을 떨어뜨립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지정족이 경계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요정족이 깜짝 놀랍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귀인족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흡혈종이 급히 잠에 빠져듭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산와족이 놀라고, 일을 마저 합니다.]그야말로 대륙 전체에 혼란…….
“혼란이 터졌다고 말하기엔 반응들이 영 다채로운데요….”
뭐지.
왜 다들 기겁해서 도망치거나 땅바닥에 엎드리거나 엉엉 울거나 하지 않는 거지?
‘염제가 탑 오르던 시절엔 그랬는데….’
특히 흡혈종이랑 산와족. 흡혈종은 왜 갑자기 잠에 빠져들고, 산와족 쟤네는 왜 또 하던 일이나 마저 하고 있어?
“…….”
나는 양옆에 있는 흑룡주와 이단심문관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 다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되게 당당했다.
“말했잖니? 흡혈종은 몽마족이랑 방 합쳤다고. 지금 막 종족 차원에서의 작전 회의에 들어간 거란다. 행동하기 전에 의사를 통합하는 건 아주아주아주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야.”
아나스타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꼭 진리를 읊듯 말했다.
“당장 죽을 거 같지는 않다면 일을 계속하라고 교육했습니다! 망치질 한 번 더 휘두르는 편이 인생에 더 이득이니까요!”
밤볼리나는 존나 환하게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나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내 절친이고 부하인가…….”
내가 내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울렸다.
-진짜 끼리끼리들 논다. 끼리끼리. 아주 천생연분들이야.
배후령이 귓구멍을 파며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그래서 저 거북이가 말하는 흐름이란 게 뭐냐?
아.
그거.
‘오러예요.’
-응?
‘성좌 이름에서 드러나잖아요. 기룡(氣龍)이라고. 저 성좌가 내쉬는 숨을 통해 세상에 오러가 흘러요.’
-호오.
아마존 열대우림이 지구의 허파라면, 저 성좌는 오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다.
배후령이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과연. 과연. 그래서 저 세계에 사는 꼬마들이 유독 오러를 잘 배웠구먼? 다른 세계들에 비해 대기에 떠도는 오러의 양이 한참 많아서?
‘그렇죠.’
-거 참.
배후령은 이제 모든 걸 이해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렴 네가 오러에 한해서 존나 똑똑하다 해도 고블린들 배우는 속도가 좀 심상찮게 빠르더라. 이제 보니 세계빨 먹은 자식들이었네, 저놈들이. 응? 은수저 금수저는 알아도 오러수저도 있을 줄이야.
‘……글쎄요. 그게 별로 좋은 수저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엉? 왜? 오러 배우기 쉬우면 무조건 땡큐지?
‘…….’
나는 배후령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본인은 너희가 이룬 성취에 축복을 보내노라!
홀로그램에 비친 기룡이 또다시 포효를 터트렸기에.
-너희는 실로 나의 사제이고 전사다!
그것은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구나! 여전히 나의 사제도 전사도 아닌 것들이 내 몸 위를 걸어다니는구나!
동시에 부정하는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긴 시간이 주어졌거늘, 아직까지도 ‘무가치한 자’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무가치한자.
‘오러를 쓰지 못하는 자들.’
세상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들을, 이 세계의 자연을 이룬 성좌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크라이나에서 피난해온 그녀에게 저런 [단어 사용]은 지나치게 익숙했으니까.
-내 숨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무가치한 자들이, 가치있는 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쓰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
대기실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가운데, 푸른 기룡은 외쳤다.
-[선별]을 시작하겠다!
그때.
우리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38층 퀘스트가 표시됩니다.]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배려해준 것일까.
이미 탈락하여 퀘스트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우리들에게도 38층의 퀘스트 내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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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별]난이도: EX
임무 목표: 이 세계를 태초부터 구성해온 성좌가 깨어났습니다. ‘심해에 거하는 기룡’은 오러로 이루어진 존재로서, 그런 까닭에 이 세계는 다른 세계보다 오러가 풍부했습니다.
이제 기룡은 풍요로운 시절의 대가를 받으려 합니다.
자신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는 자. 오러를 쓸 수 없으며 감지할 수 없는 자. 기룡은 이들을 ‘무가치한 자’로 취급하며, 이 세상에서 쓸어버리고자 합니다.
대륙 본토에서 발원한 종족들 중, 오러 사용자는 생존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모두 사망할 것입니다.
당신이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생명을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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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25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