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56)
3.
서른여덟 번째 스테이지.
회귀하기 전에는 유수하가 단독으로 깨트린 곳이다.
그때 당시 나는 [공략팀]이 아니었다. 공략팀은 커녕 랭킹에도 못 들어간 쩌리 헌터였으니까.
‘정확히 어떤 식으로 공략됐는가.’
나는 그걸 한참 뒤에,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38층? 존나 쉽지.
인터뷰에서 염제가 밝힌 공략법은 간단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돼.
무위(無爲).
-거기 나오는 보스는 깨라고 만들어 놓은 보스가 아니야. 어어, 왜, 게임 하면 튜토리얼에 나오는 무적 몬스터 있잖냐? 에닷이나 치트를 써도 안 잡히는 그런 새끼들. 그 왜, 13층의 마왕이나 21층에 등장하는 도서관장 같은 새끼 말야.
유수하에게 성좌란 [강제 패배용 보스 몬스터]와 같았으며, 그가 직접 이끌었던 엘프족 또한 [게임 속의 NPC들]과 다르지 않았다.
-38층 보스도 그런 새끼들이랑 똑같아.
그러므로 유수하의 결론은 단순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방관.
무시.
-거기 보스 몬스터… 바다에서 처자는 기룡(氣龍)인가 뭔가. 어쨌든 그 놈은 딱히 스테이지 클리어를 방해하는 새끼가 아니야. 38층에서 39층으로 넘어가는 애들을 걸러내는 거름망 같은 새끼지.
부동의 랭킹 1위를 달린 헌터 염제는 그렇게 행동했다.
염제를 말릴 수 있는 헌터는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꼭 염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독보적으로 악마적인 새끼여서 그렇게 사람 같지도 않은 발상을 했다고, 나는 이제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NPC들이 좀 많이 뒈졌긴 한데. 뭐 어쩌겠어?
탑의 주민들을 ‘NPC’로 여기고, 성좌를 ‘보스’로 여기는 것.
앞서 살아가던, 살아가는, 살아갈 이들의 모든 맥락을 부정하고, 모든 스테이지를 전술적인 공간으로 규정하는 것.
탑을 ‘던전’으로 여기는 것.
-우리가 탑을 올라가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것은 염제뿐 아니라 그 당시 탑을 오르던 모든 이들이 공유하던, 아니, 그때가 아니라, 회귀한 이후로도 내게 오래도록 남아 있던 하나의 기조였다.
‘그리고 그 기조는 바로 다음 스테이지… 39층에서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회상을 끝내고 현실로 시선을 돌리니, 아나스타샤의 잇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퀘스트는!?”
아나스타샤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별이라니!? 오러를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은 다짜고짜 죽이겠다니, 너무 허들이 높잖아!?”
“그러게 말이네. 적어도 헌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작 역시 난처함을 숨기지 못했다.
“흠! 이건 당해버렸군요.”
밤볼리나는 살짝 웃으면서 턱을 매만졌다.
“성기사는 조물주가 자기가 만든 세상을 멸망시킬 리 없다고 말했지만, 저택의 주인은 자신이 보기 좋게끔 정원을 꾸미고는 하지요. 그리고 인격을 가진 신이란 저택의 주인에 가까운 법입니다.”
성기사가 무거운 침묵을 흘렸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나는 쓰게 웃었다.
‘나쁘지 않아. 지금 상황.’
나는 만족했다.
‘내가 회귀하기 이전에 비하면…… 아니지. 솔직히 비교하는 게 송구스러워질 정도로 조건이 좋아졌다.’
아무도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클리어되는 퀘스트니까 개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두가 탑의 주민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어.’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되면 자연히 그에 걸맞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오러를 쓰지 못하는 애들은 버림패로 생각하자, 같은 태도는 더 이상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심 끝에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게임 플레이어]가 아니라 [지도자]의 입장에서 취하게 된다.’
그런 이상, 그들이 내리는 결정의 무게는 같을 수 없다.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김공자.”
아나스타샤가 잇소리를 냈다.
탑의 지도자로서,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거… 맞지?”
수많은 의미가 제각각의 무게를 지닌 채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이에요.”
나는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그곳엔 지정족을 비롯하여 일곱 종족들이 비추고 있었으며, 그들은 이미 화하평의회로 향하고 있었다. 산와족이 꾸물꾸물 벽을 탔고, 귀인족이 성큼성큼 대로를 활보했으며, 흡혈종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의회의 기둥에 매달렸다.
“저는 오래 전에 저기에 씨앗을 심었고, 그것을 돌볼 농부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4.
화하평의회의 건물은 으리으리하지 않았다.
도리어 엉성했다.
원형으로 계단을 파내려가서 분지를 만들었고, 분지 한가운데서 의장이 맨바닥에 앉았다. 바닥은 계단과 똑같이 단단한 흙으로 되어 있었다. 혈화극에 쓰이는 소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을 뿐.
도저히 이곳이 [대륙에 군림하는 권력의 정점]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우리라.
-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군. 라임.
원형 분지의 한복판에 산와족이 누워 있었다.
-너희도 들었는지 모르겠다. 라이무.
629대 의장 세임슬람.
지난번 스테이지에서 용의 모가지를 날려버린 용사.
용사는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등껍질은 자글자글하니 주름이 졌고, 촉수의 탱글탱글함은 사라졌다. 잘려 나간 촉수들은 자라나지 않아서, 유일하게 남은 촉수만이 꼬물꼬물 움직였다.
-오러를 쓰는 자는 그냥 살리고, 못 쓰는 자는 죽이겠다는데…. 어떤 겁도 없는 놈이 나한테 전음으로 장난치는 건가 싶더라. 역추적을 걸었지만, 나보다 한참 경지가 높은 개새끼여서 불발 났고.
세임슬람의 하나밖에 안 남은 촉수가 등껍질을 사르륵사르륵 긁었다.
산와족의 등껍질에는 멋진 문양이 푸르게 덧발라져 있었다.
아마도 고블린들이 몸에 문신을 그려넣는 풍습…… 첫 스테이지에서 내가 전수한 [원시 패셔니스타]의 영향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 겠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문양이 복잡해졌지만, 시간에 의해 부식되지 않은 무언가가 거기에 있어서, 나는 조금 뭉클해졌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우거. 우리도 역추적 걸었지만 실패했다!
-우리보다 훨씬 거대한, 훨씬 훨씬 더 거대한 존재가 느껴졌다.
산와족 의장이 물은 말에 지정족 전사들이 곱게 대답했다. 현명한 자세였다. 촉수가 한 개밖에 안 남았다고 우습게 여겨 의장한테 덤볐다가, 의장과 똑같이 다리가 하나만 남게 된 전사들이 못해도 11명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떤 생명체라고 보기엔 너무도 막강했다.
-맞다. 차라리 자연의 의지, 세계의 폭력이라 봐야 맞다.
-아니, 당신들 무슨 소리입니까? 그럼 그 정체도 모르는 자라 새끼가 주절거린 헛소리대로 오러를 쓰지 못하는 애들은 다 죽게 냅두자는 겁니까? 예?
-이래서 요정족들이랑은 이야기가 안 통한다. 뭐든지 결론으로 이어붙인다. 내가 한 말은, 그냥 우리한테 전음을 보내온 새끼가 졸라 짱쎈 괴물이라는 것뿐이다.
-그게 곧 항복하자는 얘기 아닙니까!
-정반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얘기일 수도 있지.
-우리들, [머릿속 목소리 사건을 대처하는 모임]에서는 이번 사건에 음모가 얽혀 있을 가능성을 철저히 밝혀내고자 진상 조사단을 설립할 것을 요구….
화하평의회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세임슬람이 의장에 오르고 지난 수십 년. 지정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의회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다종족이 된 만큼 의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기 수월해졌지만, 또 그만큼 수십 가지 의견이 격돌하기도 쉬워졌다.
마지막 말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애들도 늘어났고 말이다.
바로 그러던 때였다.
-다들 조용히! 지금 막 막 정보가 들어왔소이다!
난리법석이 벌어지던 화하평의회.
그 한복판에 앉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던 흡혈종의 대표자가, 번쩍, 두 눈을 뜨면서 일갈하는 소리였다.
-다들 눈 감고 낮잠 한 시간 때리도록 하시오! 지금부터 [몽환고지(夢幻告知)]를 사용하여 영상을 보내도록 하겠소!
화하평의회 의원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하나 둘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에 빠져 들었다.
의회 안에서 의원이 잠을 자는 것은 많은 경우 직무태만이지만, 지금 이 경우에는 확실한 직무수행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꿈 속에서 흡혈종의 대표자는 [몽환고지]를 펼쳤다. 몽마족과 합쳐지며 얻은 권능이었다. 많은 제약이 가해진 결과 전성기의 몽마족처럼 꿈 속의 사람들을 유린할 수는 없었으나, 단편적인 영상은 보낼 수 있었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상에.
-저게 무슨 괴물이냐?
그리하여 흡혈종의 첩보부대가 그 날개를 분주하게 퍼덕여 얻어낸 첨단 정보가 화하평의회 의원들에게 전해졌다.
심해에 거하는 기룡. 거대 거북이의 위치와 정체가 하루도 지나기 전에 드러난 것이다.
-완전 크다!
-시발, 저게 대륙이냐 거북이냐? 올라가서 살아도 되겠다 아주.
-아무리 칼침을 놔도 기스 하나 안 박히겠다!
-거기다가 두르고 있는 오러는 뭐냐? 아니, 몸 전체가 오러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 의원들은 다시금 난리법석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숙.
찰싹!
지금 시대의 최강자가 촉수로 바닥을 내려쳐 그 소란을 막았다.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소란이 하나 둘 사그라지었다.
세임슬람이 말했다.
-정체불명의 괴물, 저 거북이는 자기 자신을 [심해에 거하는 기룡]이라 일컬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모시던 신들과 같이 특별한 이름을 가진 존재일 테고, 따라서 신들과 직접 소통해본 자에게 자문을 구해야만 한다.
세임슬람의 말에 의회가 술렁거렸다.
-신들이라니.
-[위대한 강아지]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세임슬람 의장? 하지만 라이무, 그 신수의 핏줄은 끊기고 말았지 않나….
-빌어먹을! 성지를 잃었을 때에도 위대한 강아지의 후예들만은 모시고 도망쳤는데!
-신대륙에서 들어온 초콜렛이라는 것만 아니었어도, 라임…. 우리들, [위대한 강아지를 추모하는 모임]에서는 신수 독살 음모에 대한 진상 조사단을 창설할 것을 당 의회에 강력히 권고….
-정숙!
찰싹!
다시금 세임슬람이 바닥을 내려쳤다.
-[위대한 강아지], [백사자], [뱀신] 등, 신들이 우리와 함께하던 시절이 있었다. 라임. 그리고 그들과 직접 소통을 하던 고르케 같은 자들도 있었지.
세임슬람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 눈에는 자신이 속한 종족이 갖는 편견과 불신감 등을 넘어선 일종의 현기(街氣)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고르케를 이은 두 번째 선지자는 아직 멀쩡히 살아, 이 대륙에서 제일 험준한 설산에 홀로 앉아 눈을 맡으며 자신의 가주(家主)가 부를 날을 다시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
독사가 스테이지에 남아서 모든 시간을 인내하기로 결정했듯, 우부르카 역시 자신의 고향에 남아 있다.
‘애비까지 가는 데 나마저 사라지면 여차할 때 곤란해진다.’
’게다가 애비는 애비여서 자식의 독립을 지켜봐야만 하지만, 나는 애비의 장남이니, 따지자면 지정족들의 맏형이다. 형님인 거다. 형님은 원래 동생이 독립했든 말든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참견한다. 우고르.’
‘그러니까 다녀와라, 애비.’
‘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다리고 있겠다.’
다만, 그때보다는 조금 더 빨리 재회하길 빈다.
그것이 우부르카와 내가 헤어질 무렵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믿음직스러운 짜식.’
정말 아들을 잘 뒀다 생각하고 있자니, 그새 화하평의회에선 우부르카를 정식으로 초대하기로 결정됐다. 선조의 간섭을 받기 싫다며 항의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의지만 앞설 뿐 거기 걸맞는 실천 계획은 제시하지 못했다.
증명하지 못하는 의지는 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세임슬람은 그들의 치기를 하나 남은 촉수로 모두 부러뜨린 다음 소리쳤다.
-화하평의회 212대 의장, 우부르카를 불러오거라!
소환 의식이 거행되었다.
우부르카는, 만일 자기가 필요할 때가 온다면, 특별한 의식을 행하라고 후손들한테 알려준 모양이었다.
오러의 양이 특별히 많은 전사가 열두 명 모였고, 열두 명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오러를 쏘아올렸다.
부우우우우우웅!
푸르며, 노랗고, 살구색인, 열 두 가지의 색깔이 뒤섞인 광선이 구름을 꿰뚫었다. 오러가 뚫어낸 광선은 선명하여 대륙의 반대편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어떠한 살상력도 없이, 오직 빛의 봉화로만 쏘여진 오러는, 겨우 6초 남짓 버티다가 서서히 흐릿해졌다.
-헉, 허어억…….
-이런 짓, 우거, 두 번 다신 못한다….
전사들이 기력을 다 소모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그런데 진짜 이런 거로 선조님이 오는 거냐?
-모른다. 우거. 아마 우리가 처음 써보는 걸 거다.
-온다 해도 금방 올 것 같지는 않군…….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1분, 2분, 3분…… 정확히 200초가 넘어가려던 때였다.
-우거?
때마침 하늘을 올려보고 있던 지정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유성 같은 것이…….
그 순간.
무언가가 굉음을 일으키며 화하평의회 한복판에 내리 꽂혔다.
콰아아앙!
화하평의회가 뒤집어졌다.
-으갹!
-라임!
먼지가 파도처럼 사방을 덮쳤다. 더듬이 있는 자들은 더듬이를, 뿔이 있는 자는 뿔을, 날개 있는 자는 날개를, 아가미 있는 자는 아가미를 떨면서 풍압에 맞섰다.
이윽고 먼지가 가라앉자, 충격으로 생겨난 구덩이 안에는 거대한 인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패륜을 꿈꾸는 근육돼지가 강림합니다.]우부르카.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 나타난 것이다.
-우거, 슬슬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우부르카는 의원들이 왜 자신을 부른 것인지 묻지 않았다.
하긴 누가 보아도 지금 이 세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자명한 것이었다.
-우부르카여!
세임슬람이 외쳤다.
-선대 의장인 그대에게 우리는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저 거북이 새끼의 겁박에 대해 우리에게 줄 조언이 있는가!?
-흠.
우부르카는 빙긋 웃었다.
-거북이 새끼라고 부르는 걸 보니 괴물의 정체를 알아낸 모양이다. 우거. 니들 진짜 일처리 빠르다.
-칭찬은 감사히 받겠다만, 관계가 있나?
-당연히 있지. 내가 해줄 조언도 무척이나 간단하다.
우부르카는 팔짱을 끼었다.
-정체를 알아냈다면 너희도 알겠지만 저 기룡이란 건, 거대한 오러 덩어리다. 순수한 오러의 결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우부르카, 하늘에 이른 무인은 가부좌를 튼 채 숨을 들이마셨다.
기초적인 오러 연공법이었다.
-그리고, 우거. 그러면 말이다.
새하얀 기류가 그 코로 빨려 들어가 온몸을 훑고서 빠져나갔다.
-그냥 확 이렇게, 츄르르르릅 빨아들이면 그만 아니냐?
화하평의회의 의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아들여……?
-무슨 말이오?
우부르카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뭐?
-멍청이들아! 저 산덩어리만한 거북이는 몸이 죄다 [순수한 오러]로 이루어져 있단 말이다. 네놈들이 그토록 쌓아올리길 바라는 오러. 우고르, 저 거대한 몸이 천년산삼은 꺼지라 할 정도의 [영약]이나 다를 바 없다!
그제야 의원들이 멈칫했다.
우부르카의 말뜻을 알아들은 의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더듬이를 쭈뼛거렸으며, 이윽고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우부르카가 결정타를 날렸다.
-사람을 모아라. 오러를 쓸 수 있는 녀석들은 물론이요, 오러에 발을 딛지 않은 녀석들까지 전부 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십, 수백만의 사람을 모아라. 우고르. 이건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회다! 여태까지 하수의 경지에서 빌빌대던 놈들도 단숨에 일류까지 오러가 상승할,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오지 않을 개꿀 같은 기회 말이다!
-……!
집단적인 오러 연공.
아니, 차라리 흡성대법이라 이름 지어야 올바른 일을 우부르카는 제안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거북이 등짝에 올라가 가부좌 틀고 연공을 하게 시키는 거다!
의원들이 입을 떡 벌렸고.
아이들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지켜보던 동료들도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아들을 잘 뒀어.’
유수하는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38층 스테이지를 공략했다.
염제와 다른 길을 걷겠노라고 천명했던 나의 공략법도, 어찌 보면 그것과 비슷하다.
‘이젠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들 꿀을 빠는구나. 장하다!’
무위(無爲).
하지만 유수하가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수백수천 만의 아이들이 죽게 놔두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상당히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홀로그램 너머로, 바로 그 [다른 결과]를 내 아들이 부르짖고 있었다.
만면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 거북이 새끼를 국밥처럼 호로록 빨아먹고, 다들 초일류 고수 되자!
2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