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65)
4.
“미안합니다.”
천천히.
이단심문관이 무릎을 꿇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러분.”
멀리서 이단심문관을 바라보던 산와족들이 숨을 들이마셨다. ‘허,’ ‘흡!’ ‘허어!’ 아무리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하나 이단심문관은 그들이 수천 년 동안 모셔온 신이었다. 태초부터 보살핌을 내려준 초월자였고, 산와족의 영광과 영락을 모두 맛보여준 아버지였다.
그 신인(神人)이 자신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제가 결코 정상인이 아님을 주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사람들…… 특히 사왕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음.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했다시피 [싸이코]라는 말도 저한테 어울릴지 모릅니다!”
-왜.
산와족 전체를 대신하여 세임슬람이 입술을 열었다.
-왜 어쩌다 싸이코가…….
“그다지 희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3살쯤에 마피아한테 납치당했습니다. 저희 부모가 돈을 내지 못해서 빼앗긴 것인지, 아니면 고아원에서 쓸모있는 애를 골라다 가지고 온 것인지, 알 수 없군요.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인물들은 이미 다 죽였습니다.”
-…….
“저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 죽이지만 않고 살려두는 기술, 강철 같은 사람을 수백 개의 잔철로 잘라내어 허물린 다음 이쪽의 부하로 만드는 방법, 사람을 홀리는 방법을 교육받았습니다. 어깨 너머로는, 조직이 내부에서 붕괴되는 과정과 외부에서 파괴되는 과정을 엿보아서 터득했지요. 저는 이런 것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이단심문관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표정을 밝게 하고, 세임슬람을 쳐다보았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서인가?
“뭐. 제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제일 잘하는 것들이지만요. 그럼에도 여러분은 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탑에 잔뜩 늘어나면 오히려 곤란하니까요! 저는, 저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이단심문관이 방긋 웃었다.
“물론…. 그래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산와족 여러분. 세상은, 이 세상은 만만치 않은 곳이니까요. 실로 무서운 곳이랍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언젠가 당하고, 어쩌면 저처럼 납치당할지도 모릅니다.”
-…….
“저는 여러분을 강하게 키워야만 했습니다.”
이단심문관은.
자신이 아는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산와족의 문명을 키웠다.
“세상에 전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인물 같은건,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단 1명. 당신의 인생에서 단 한번 허락되는기적 같은 것으로, 오직 순전히 당신 인생의 운빨에 달렸습니다. 그러니 무시하십시오. 무시하고, 남이 당신을 배신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이 남들을 통제하십시오.”
나머지 종족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다.
그들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동굴에 가두었고, 동굴에도 수백 갈래의 구역을 나누어 격리시켰으며, 언제나 감시탑이 노예들을 지켜보도록 조치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
“제가 싸이코여서. 싸이코인 자가 아버지여서, 죄송합니다.”
밀림에 어두운 정적이 흘렀다.
세임슬람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이단심문관을 올려보았다.
-아버지 쿠크라여.
“네.”
-당신은 싸이코지만. 그래도 자기 머릿속에서 그나마 제일 온건한 것과 그나마 제일 상식적인 것, 그나마 제일 귀한 것만을 우리한테 가르쳐주려 했군.
“그렇습니다.”
-부족한 살림에 판자로 벽을 만들고 해먹으로 지붕을 삼아, 비록 비바람이 차게 들어오고 가볍게 붕괴되고 몰락해버릴 집이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우리에게 최선의 집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아닌가?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세임슬람은 촉수를 풀었다.
땅에 박아두었던 대검의 손자루를 쥐었다.
-당신은 당신의 최선을 우리한테 가르쳐주려고 노력했다. 당신이 가진 최악을 숨겼고, 우리에게 이해해달라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보다.』
『너희가 적어도 나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정말로 최선을 다하여 우리를 돌보았을 뿐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리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는 하나, 왜 우리를 낳았고 왜 우리를 길렀느냐면서 저주를 흘리기 싫군.
처억.
세임슬람은 땅에서 대검을 뽑아서 어깨에, 등껍질에 걸쳤다.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다행이다.
“…….”
-어쩌면.
세임슬람이 웃었다.
언제나 무표정하고, 웃어봤자 푸르브픕 비웃을 뿐인, 역사상 최초로 화하평의회의 의장직에 올라 수십 년을 군림한 산와족은, 입술을 들어 화사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조금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
-나에게, 우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정말로 고맙다. 아버지.
[퀘스트 진행.] [산와족의 투표가 시작합니다.] [1번. 당신에게 인도를 받아서 좋았다.] [2번. 당신에게 인도를 받아서 싫었다.]스르륵.
밀림에서 반딧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잘 보면, 반딧불이 아니었다.
야자수의 밑동에 몸 구부린 산와족. 나무기둥에 찰싹 달라붙은 산와족. 나무의 우듬지에 몸을 펼쳐 누운 산와족. 밀림의 응달진 곳에 산와족은 숨어 있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세임슬람과 이단심문관의 담화를 듣고 있었다.
[개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산와족들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더니, 똑, 떼어져서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멀리서는 그게 반딧불처럼 보인 것이다.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반딧불이 야자수들과 밀림을 휘감으며 하늘로, 어두운 밤하늘로 올라갔다. 수많은 반딧불이 반짝거려, 마치 밀림이 아니라 은하수 한복판에 떠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개표 완료.]은하수의 숲에 목소리가 울렸다.
작은 종소리처럼.
[2번 득표율: 22.5 퍼센트] [1번 득표율: 77.5 퍼센트] [1번 득표가 과반을 넘겼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단심문관은 망연히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어두운 하늘에서, 푸르게, 초록으로 소용돌이치는 은하수.
반딧불이 윤무를 추고 별빛이 떨어지는, 숨 막히는 윤무에 이단심문관은 그저 눈길을 빼앗겼다.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다행이다.』
어쩌면 방금 세임슬람이 남긴 말이 그의 모든 것을 빼앗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가 이단심문관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 언제든 알게 될 것이다.
[스테이지 클리어.] [40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5.
-맞아요. 돈이 최고죠.
요정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요정족들이 “그건 그렇지” “돈 없는 인생은 끔찍해” “우리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하고 열렬히 동의를 표시해주었다. 회귀하기 전 엘프들이 염제의 광신도였다면, 이 대륙에서 엘프들은 황금만능주의의 광신도요 사도요 전도사였다.
음.
엘프라는 종족 자체에 굉장한 의구심이 드는군….
-어머니의 말씀은 현묘하여 도저히 반박할 수 없어요. 솔직히 우리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무슨 생각…… 뭐 딴 생각으로 돈밖에 모르는 구두쇠들로 우리 요정족을 키웠냐고요.
“자네들의 호기심을 십분 해결해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군.”
백작이 키득거렸다.
“나와 대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만지 알면 저절로 효심이 생겨날 거라네. 이래 봬도 1분 1초가 귀한 상인이라서 말일세. 뭐, 자식을 키우는 기분으로 자네들을 지켜봤으니 이건 부모 할인 서비스로 퉁쳐줌세.”
-할인 서비스 좋죠. 감사히 받겠습니다.
요정족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서비스 받은 김에 궁금한 거 하나만 더 여쭙고 싶은데요.
“누구한테 배워 먹었는지 몰라도 알뜰살뜰하구먼. 뭐, 물어보게나.”
-왜 아직도 돈을 그리 악착같이 버세요?
“흐음.”
백작이 눈을 깜빡거렸다.
요정족들 또한,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무슨 뜻인가?”
-돈은 많은 걸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음악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게. 딴 거 하고 싶어도 딴 거 할 수 있게. 심지어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기분 좋게 고민할 수 있게. 저희도 완전 동의하는데요.
“그런데?”
-언제까지 벌려고요?
요정족이 머리를 기울였다.
-어머니, 재산 엄청 많으신 거 같은데. 이제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고민,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아요? 더 돈을 벌 필요도 없이 이미 충분히 아무 인생이나 골라잡을 수 있지 않나요?
“…….”
-왜 더 벌어요?
요정족들이 입을 열었다.
-뭘 하려고요?
-뭘 하고 싶어서요?
-뭘 고민하려고요?
-왜?
밀림은 어두웠다.
그래서 요정족들의 수군거림은 꼭 숲에서, 나뭇가지에서, 이파리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소리 같았다.
-뭐 하고 계시나요?
-하고 싶으신 게 정말 있나요?
-뭔가 고민하고 계신가요?
-지금?
“…….”
백작은 부채를 쥐었다.
꾸욱.
부채살이 말려들면서 백작의 표정이 드러났다. 서열 5위의 헌터는, 무표정하게, 낯 위로 드러내기에는 너무도 오래되고 지나치게 자주 곱씹어서, 이제는 올려보낼 찌꺼기조차 남지 않은 분노로, 고요히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쓰레기들….”
찌꺼기들밖에 남지 않은 분노는 우선 그렇게 악취를 풍겼고,
“세상을 바꿀 것이야.”
한 번 공기에 걸러진 다음에야 문장으로 정련되었다.
“세상에, 쓰레기가 너무 많네.”
-…….
한 차례 정련되고 난 이후에도 요정족들이 감당하기엔 적이 불온한 목소리였다. 백작의 어깨 너머로 오러가 넘실거렸다. 원래는 오러를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워했던 백작도, 이전의 스테이지들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이다.
그 익숙해진 오러로 백작은 자기 심장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들어보게나. 내가 쓰레기산에서 태어나, 쓰레기마을에서 자라, 쓰레기도시로 건너가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네. 정말로 유일한 깨달음으로, 이 깨달음 덕분에 나는 쓰레기통에서 태어난 걸 일종의 행운으로 여기지.”
-…뭔가요?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도, 하늘을 날다 떨어진 쓰레기도, 땅밑에 파묻힌 쓰레기도, 그 어디를 어떻게 구르다가 버려진 쓰레기도, [인간]보다는 덜 더러운 쓰레기라네.”
백작은 기이하게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그런데도 오직 인간만을 청소하는 전문업자는 어디에도 안 보이더군. 그래서 생각했지. 이 시장이 그리도 블루오션이라면, 내가 먼저 선점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돈으로 청소해버릴 것이네.”
백작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
“물론 모든 인간이 쓰레기라고 생각하진 않네. 전혀! 오히려 정반대지. 실로 많은 사람들이 별빛보다 아름답게 반짝거린다고 믿는다네.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무척 멀어서, 아름다운 사람들끼리 만나기란 그만큼 어렵지만…… 어려울 뿐. 멀리서 돌이켜보면, 저리도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지.”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백작은 기분 좋은 듯 입술 끝을 기울였다.
“그들을 위해 나 같은 청소부가 필요한 거야.”
-어떻게 말입니까?
어떤 요정이 물었다.
-돈으로 빛나는 이들을 구제해주나요?
-돈으로 나쁜 녀석들을 몰아내나요?
-어떻게?
요정들의 물음에 백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필요가 있나!”
그 웃음은 호탕한 것이었다.
“굳이 히어로가 될 필요도 없어. 박쥐 날개를 달고 위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날아다니고, 범죄와 범죄 사이에 거미줄을 쳐 가련한 희생자들을 구하고, 거대한 방패를 들어 그들을 막아줄 필요는, 전혀 없어.”
백작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저 돈을 쓰면 된다!”
그리고 단순했다.
“그저 돈을 벌게 해주면 된다!”
올바른 경제의 확립.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 좋은 조직과 나쁜 조직. 좋은 사업과 나쁜 사업.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 그래. 그들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어려워하는 자들이 많지. 도대체가 [사람의 본성]이란 것을 언제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자들이. 그런 호기심을 품은 자들 대부분이 그런 것은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그런 환경을 조성하지만, 말도 안 되는 넌센스지. 알겠나, 잘 듣게.”
그리고 왜곡되지 않는 순환에 대한 찬양.
“사람의 본성이란 것은 말일세.”
악화에 대한 양화의 구축.
“[아무 것도 없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을 가졌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라네.”
어쩌면.
누구보다도 사람을 믿고 있는 것은.
“나는 돈을 뿌린다, 선한 자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선한 본성을 드러내지만, 쓰레기들은 자신의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지. 그러고도 내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아! 돈을 준다. 돈을 벌게 해준다! 놈들의 살을 찌우고 육질을 향기롭게 길러준다. 그것들이 알아서 부패할 때까지, 그것들이 알아서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나는 내 돈으로 그것들에게 투자해줄 것이야.”
밀림 한복판의 바위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여인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어느 인간이나 회사가 썩어빠진 쓰레기로 판명된다면…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을 듬뿍 후원해준 히어로 나리들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그것을 위해 나는 끊임없이, 자네들의 말마따나 악착같이 돈을 벌고 있다네. 때로는, 뭐, 어쩔 수 없는 경우란 게 살다보면 생기는 법이네만. 약간의 탈법을 저지르면서 말일세.”
상련주는 싱긋 웃었다.
“이것이 내가 돈을 버는 이유다.”
어느새.
요정족들은 멍하게 백작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백작을 신으로 알고 모실 때보다 조금 더 몽롱했다. 원래부터 요정족들은 신앙에 별로 열심이지 않았다. 돈을 벌라는 신의 명령에 충실했지, 신 그 자체에 충실하지는 않았다.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 요정들은 제일 신앙에 널널한 부류에 속했다.
“그리고.”
하지만.
“내가 자네들을 기른 이유이기도 하네.”
오늘은 달랐다.
지금 백작을 올려다보는 요정족의 눈동자엔, 틀림없이, 신앙과 같은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었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자에 대한 동경. 자신보다 먼저 걸어나간 자에 대한 존중. 자신보다 먼 곳을 가리키는 자에 대한 존경.
“자네들은 내 탑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상인보다 훨씬 유능해. 당연하지. 녀석들은 인생을 살다가 돈을 벌 뿐이지만, 자네들은 돈을 벌면서 인생 또한 살 뿐이니. 알겠는가. 자네들은 태생부터가 상인이야.”
-…….
“자네들 같은 이들이 내 탑에 도래하기를, 본인은 손꼽아서. 진심으로. 손꼽아 기다려왔다네.”
백작이 일어섰다.
요정들이 움찔거렸다.
그에 개의치 않고, 백작은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을 둘러싼 요정들에게로 걸어갔다.
“돈을 벌 줄 아는 자.”
한 명.
“자금과 물자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자.”
한 명.
백작은 요정족 앞을 거닐 때마다 부채를 들어, 부채 끝으로 엘프의 턱끝을 부드럽게 받쳤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요정과 눈을 마주쳤다. 요정족은 백작의 눈동자에 현혹된 듯, 그녀의 시선을 결코 피하지 못했다.
“돈을 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또 다른 즐거움도 찾는 자. 이 돈은 무엇을 위해 버는 것인지 고민하는 자. 고민하는 걸 즐거움으로 여기는 자. 요컨대…….”
백작은 그렇게 한 명 한 명, 수십 명의 턱을 올리고 수백 명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으며, 수만 명의 귀를 향해 말하였다.
“나 같은 이들아.”
밀림은 어두웠다.
그래서 백작의 속삭임은 꼭 숲에서, 나뭇가지에서, 이파리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소리 같았다.
“내 아이들아.”
백작이 말하였다.
“나를 따라오거라.”
요정족들의 호흡이 느려졌다.
“이 대륙은 좁다. 우주에서 방구석 하나를 차지한 것에 불과하지. 자네들이 방구석의 물류에 정통하고 방구석의 사물을 독점한다 해도 거기에 뭔 의미가 있겠나? 나를 따라오게. 따라와서, 탑을 올라, 삼라만상에 도도히 흐르는 돈줄기들을 전부 쥐어잡아, 우주에 쌓인 재화들을 찢어발기고 짓밟아서, 세상에 돌아다니는 금닢 한 푼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철사 한 줌까지, 막힘없이 흐르게 하게나.”
“너희가 필요하다.”
이미, 요정족들의 시선은 몽롱했다.
“너희를 사랑하게 될 것이야.”
요정족들의 숨결은 체온보다 붉었다.
“본인은 모든 상인의 장. 상련(商聯)의 주인이니. 너희는 내 자식들이 되어서 나와 함께 모든 세상의 쓰레기가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게 하라.”
요정족들은 망연히, 한때 자신의 신이었던 여인을.
그리고 이제는 어미가 된 여인을 바라보았다.
“따라오겠는가.”
요정족의 입술이 떨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
어두운 밀림.
야자수의 숲과 나뭇가지, 길고 넓은 이파리들이, 동시에 수군거렸다.
-예. 어머니.
[퀘스트 진행.] [요정족의 투표가 시작합니다.] [개표 완료.]백작이 달처럼 흰 미소를 지었다.
차르륵.
부채를 펼쳐 하관을 가리자, 미소에 품어진 달은 반으로 쪼개어졌다.
“모두 고맙네.”
백작은 입술에 기울어진 반달을 품었다.
“나와 같이, 세상의 변기물을 내리도록 하세나.”
그리고.
[스테이지 클리어.] [41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26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