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67)
1.
-바라야, 바라야!
“내 마음은 횃불이니!”
-아가 바라야!
“패륜을 이루리라!”
지정족들이 으싸으싸 혈화극의 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 앞에서 우부르카가 휘두르는 도끼를 간신히, 겨우,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하지만 심히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여섯 번째 일격을 피하면서 꽥 소리쳤다.
“야! 이런 곳에서 바라야 부르지 마, 미친놈들아!”
“부르지 못할 건 또 뭔가.”
“부르지 말라면 부르지 말라고!”
마교(魔敎)의 교리는 지정족에게 널리 퍼져 있다.
혈화극이라는 문화사업을 통해서. 또한 마천진법이라는 군사병법에 의해, 지정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마교의 교리에 따라 살았다. ‘아가바라야’는 지정족들에게 사기를 북돋우는 일종의 후렴구로, 그야 얼마나 부르든 그들 자유였지만….
“고작 나 한 놈 잡겠다는데 바라야 바라야 소리까지 부르냐! 어!? 기룡 잡을 때도 마천진법을 안 쓰고 가만히 운기조식만 했던 놈들이, 왜 날 사냥하면서 전력을 토해내려는 건데!?”
“우고르.”
내 말을 듣더니 우부르카는 피식 웃었다.
“정녕 모르겠는가. 애비여.”
휘웅!
우부르카는 도끼를 크게 휘저어서 반경 안에 들어오는 모든 걸 파괴했다. 오직 풍압만으로 야자수, 바위, 그 사이에 사는 온갖 생명들을 갈아버렸다. “젠장!” 나 역시, 얼른 뒤로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발꿈치 하나 정도는 아작 났을 것이다.
“우리에게 애비는 모든 것이다.”
“뭐?”
“모든 것이란 말이다.”
터벅.
우부르카는 안광에 붉은빛을 흘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보는 내 심장이 덜컥했을 정도다.
‘어?’
설마, 진기를 끌어올려 주화입마에 걸린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우부르카는 주화입마에 걸릴 만큼 경지가 낮은 아이도 아니거니와, 우리 마교에선 주화입마에 걸려 [자기 자신한테 패배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단지.
“애비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실감을 못 한다.”
내가 주화입마라 착각해버릴 정도로, 우부르카는 전신에서 오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당연히 나는 너희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
“내가 하는 소리가 그거다. 우고르. 애비는, 정말로 애비 자신을 모른다.”
우부르카가 끌끌 웃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했던 이야기는 농담이라는 양, 속내를 털어놓았다.
“애비가 말했다시피 애비는 우리에게 문자를 주었다. 애비가 우리 지정족을 살펴보며, 종족의 결에 따라 한땀한땀 글자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애용이라 하여도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우고르! 볼 만했다.
뒤에서 살이 붉어진 지정족, 아수라들이 맞장구를 쳤다. “우고르!” “우고르!” 그들이 후렴을 넣어 우부르카의 말에 기세를 더하자 마치 붉은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한테 시시각각 다가오는 듯했다.
“애비가 [우리]에게 처음으로 글자를 가르쳐준 날을 기억하는가. 소리 내는 법을 알려준 날을 기억하는가.”
“…….”
나는 칼자루를 꾹 쥐었다.
붉은 물결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가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50층에서 살천성(殺天星)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을 때의 감각. 나보다 거대하고, 나보다 강하며, 어쩌면 나보다 절실할지도 모르는 무언가. 그것이 내게로 칼을 향했을 때 느껴지는 섬뜻한 살의가, 지금, 저 아이들의 붉은 물결에서 농후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눈으로 간격을 재며 말했다.
“기억하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애비는 아직 지성이 덜 자란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그들이 사랑하는 것. 그들이 가지고 노는 것. 그늘이 기뻐하는 것들에만 먼저 문자를 만들어주었다.”
“…….”
“상냥하게 말이다.”
진흙은 ■.
하늘은 O.
태양은 ☆.
달은 ★.
물은 ~.
무른 진흙에 사자의 발톱으로 사각사각 파내어, 조그마한 고블린들에게 문자를 가르쳐주던 시절의 일상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찬연히 남아 있다.
따뜻한 기억으로.
“애비는 수많은 언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언어란 겨우 7가지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애비는 알았다. 그러니 애비는 탓할 수도 있었다.”
왜 세상을 그렇게 좁게 보느냐.
나무는 이런 것이고, 산은 이런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알렴.
“하지만 탓하지 않았다.”
“…….”
“탓하는 대신, 애비는 도리어 우리가 가진 이, 몇 푼 안 되는 세상을 제대로 펼쳐내기를 원하였다. 비가 내릴 때면 [조금 있으면 그칠 거니까 안심하렴]이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되려, 비가 분노해서 땅에 내리친다며 우리가 두려워하고 원시의 공포에 어깨를 떨 때, 애비는 앞장서서 울부짖었다.”
-케에에에에에!
비를 뜻하는 고블린의 말, [케]를 써서.
그걸 지금식의 언어로 풀이하자면…….
물이 온다.
-케르르르르! 케에에에에에!
대지에, 지상에 물이 온다.
움막 바깥에선 끊임없이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움막 안에 숨어든 꼬마 고블린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원시적인 지정족에게 장대비는 일종의 신령. 신령이 분노하여 비를 때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신령께 뭔가를 잘못했을지 몰라.’
아직 언어가 정교하게 구성되지 못한 부족 수준의 사회에서, 이만큼이나 뚜렷한 문장이 생각되기란 어려웠다. 실제로는 기껏 해봐야 [우리, 하늘, 잘못?] 같은 단어들이 토막토막 나서 흘러나왔다.
자기 자신의 두려움조차 토막 낸 단어로밖에 흘릴 줄 모르는 시대였다. 그런 종족이었다. 하늘의 색깔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해와 달이 순회하는 이유가 수수께끼인 시절이었으며,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바깥에서 무엇이 공격해오는지,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공포에 떨던 시기였다.
-케르르르르! 케에에에에에!
그리고 누군가가 울부짖었다.
-케르르! 케에! 케에에에에에에!
물이 온다.
땅에 물이 온다.
단지 그뿐인 울부짖음.
원시림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당장이라도 격류에 온 세상이 휩쓸릴 것 같은데, 하얀 갈기의 사자는 바위에 올라 끊임없이 목놓아 포효했다. 물이 온다. 물이 온다. 물이 온다…….
-케르….
-케르륵…….
그것은 주술(況術)이었다.
어느 요사스러운 점쟁이보다 명쾌한 주문이었다.
-케르르르…….
-케에에… 케에에에에!
몇 명의 고블린이 움막을 벗어나 백사자에게 다가갔다. 이미 장대비가 들이닥쳐 움막의 절반이 침수되었으므로, 고블린들의 다리엔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은 높은 바위를,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위를, 몇 번이나 헛손질 해가며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에도 울부짖었다.
-케에에에에…!
-케르르, 케에! 케르르, 케에에!
물이 온다.
땅에 물이 온다.
수십 명의 고블린들이 힘겨워하며 정상에 도착하자, 그곳엔 백사자가 턱을 꼿꼿하게 세운 채 어두운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키이….
고블린들이 숨을 몰아쉬며, 공포에 잠겼다.
두려웠다. 먹구름은 이글이글 끓으며 당장이라도 신령의 분노를 토해내려는 것 같았다. 번개, 벼락, 뇌우. 모르는 것이 많은 고블린들에게 그것들은 모두 신의 권능이었다.
이해할 수 없으며, 장악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오직 복종할 수밖에…… 신령들이 우리를 총애하여서, 어여삐 여겨서, 오늘은 무사히 보낼 수밖에…….
-케에에에에에에!
그럼에도 백사자는 도도히 포효하였다.
세상이 회색 거인에 휘감겨, 모든 것이 우중충하고, 편안한 습기조차 날쌘 바람에 휘말려 우왕좌왕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당장 세상이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순간에도, 백사자는 그저, 그저 고개를 치켜들어 울부짖었다.
-키에에에에!
물이 온다.
-키에에에에에에!
물이 온다.
-……키에에, 르르. 케르르….
-키에에에에…….
-케르르르….
작은 고블린들이 백사자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사자의 발에, 꼬리에, 몸통에, 갈기에 매달려서, 오돌오돌 겁에 질려 떨었다.
지금 백사자가 왜 포효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왜 그 울부짖음에 자신들이 이끌려 여기까지 왔는지 역시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 왜 백사자가 소리내어 토해내는 울음을 자신들 역시 따라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케에에에에에에!
-케에, 케에에에에!
-케르르! 케에에!
고블린들은 있는 힘껏 다하여 외쳤다.
물이 온다, 라고.
물이 온다.
물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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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욱.
하룻밤 내내 쏟아진 장마는 어느덧 약해졌다. 먼 바위에 올라 하늘을 올려보던 고블린들이 그걸 제일 먼저 알았다. 뚜욱, 매부리코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가벼워졌다. 뚜욱, 주름이 지글지글 잡힌 초록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이 부드러웠다.
-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케르르…?
어떤 기적이 펼쳐진 것인가.
-케에에에.
고블린들은 모두 백사자를 올려봤다. 밤새 내린 빗물에 젖어 갈기가 추욱 늘어졌으나, 백사자의 안광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해보다 더 밝았다.
물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 같았던 물이 가물어진 것이다.
-케륵케.
백사자는 그르릉, 기분 좋게 울었다.
거친 빗물이 다 물러나고 이제는 그저 상냥하게 초원을 적시는 빗방울들을 향하여, 하늘에서 대지로 낙하하는 물빛들을 가리켜서, 백사자는 말하였다.
-케륵케.
고블린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척 이상한 기분에 잠겨서, 아이들은 백사자의 말을 따라했다.
-케륵케?
-케륵케.
비.
-케륵케.
비.
-…….
비.
-케륵케.
그리고 그날, 지정족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백사자는 단순히 [비]라는 단어를 원시인들에게 가르쳐주려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백사자가 지정족에게 알려준 것은, 백사자가 지정족에게 남긴 영향은, 단지 [비]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케륵케!
지정족은 공포에 승리했다.
그들은 안전한 움막에 틀어박혀 덜덜 떨었을지도 모른다. 부디 신령이 우리에게 호의를 품어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면서, 기원하면서, 중얼중얼 기도문을 읊으면서. 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게 평소부터 제단을 만들어 제물을 바치면서, 비가 내리는 장마철마다 희생양을 준비하여 한 명의 고블린을 죽이면서, 그리하여 천 년의 시간을 허송세월했을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비]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땅에서 흐르는 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 신이 분노하여 내리는 물이다. 그리하여 [비]는 신령이 되어서, [비]의 이름은 [세상을 휩쓸어버리는 자] 혹은 [가을의 공포를 지배하는 자]와 같이, 훨씬 더 길고 훨씬 더 무서운 울림으로 작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부르카.
지정족의 산 증인이 도끼를 들쳐멨다.
“그러지 않았다.”
“…….”
“애비는 우리에게 글자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아니, 가르쳐주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애비는 우리에게 승리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공포에 대한 승리였다.
세계는 미지로 뒤덮여 있어, 거기서 피하려면 땅굴을 파고들어 자그마한 움집 아래에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다. 고대 시절. 모든 집은 안락한 거점이 아니라 다만 세계에서 도망치기 위한 피신처에 불과했다.
“애비로 하여금 우리는 물을 이겼다.”
-우고르! 우고르!
“애비로 하여금 우리는 불을 이겼다.”
-우고르! 우고르!
“애비로 하여금 우리는 뇌우를 이겼으며, 강물을 이겼고, 바다를 이겼다! 땅속까지 파고 들어간 어느 소금의 지옥도 이겼다!”
-우고르! 우고르!
“케케르으으으으으!”
우부르카는 양팔을 벌리고 크게 외쳤다.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다만 비다! 단지 비다! 우리가 승리하고, 우리가 공포를 떨쳐낸 무언가다! 우리에게 케케르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우리가 승리한 전쟁의 이름이요, 따라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약탈품이다!”
-케르으으으윽!
“하늘! 그것은 우리를 벌주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케륵에게서 신의 지위를 박탈하였다. 하늘! 단지 하늘일 뿐! 우리는 하늘이 새벽에 뱃어내는 보랏빛 비단에 감탄하며, 저녁에 게을리 붉어지는 홍조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은 이미 패배한 적에게 보내주는 동정의 눈물과 다를 바 없다! 하늘! 그것 또한 우리가 약탈한 것의 이름이다.”
-우고르! 우고르!
“글자를 쓰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두려운 것을 문자로 박아두는 것. 다른 종족들이 불이 무섭기에, 불을 피해야 해서, 불이 오지 않기를 바라여 화(火)의 문자를 개발했다면, 우리는 오직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불을 문자로 새겨두었다! 우리가 칼을 찔러넣어 잡아들이는 데 성공한 사냥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축축한 동굴에 불의 문자를 새겼으며, 이를 두고 웃었다!”
-고르!
“고르!”
-고르!
“고르!”
아직 서광이 들지 아니한 밀림에.
하늘이 아니라 저 낮은 지상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그것이 우리의 불이 지닌 이름이다!”
수만에 이르는 아수라들이 오러를 피워올렸다.
“그들이 불을 두려워할 때, 무서워할 때, 피하려 할 때, 제어하려 할 때, 우리는 다만 붉디붉은 고르를 향하여 소리친다.”
-우고르!
“좋군!”
불길이 더 거세졌다.
“불이여, 좋구나! 아름답구나!”
-우고르! 우고르! 우고르!
그들 전원이 화하평의회에 속한 아수라였다. 훈련생 시절 마천신공으로 무예의 첫걸음을 배웠으며, 어엿한 전사가 되어서 마천진법을 하나씩 익혔고, 마침내 경지에 이르러 화하평의회의 일석을 차지하게 된, 정예 중의 정예였다.
“애비여!”
그 맨 앞에서 우부르카가 양팔을 벌려 웃고 있었다.
-케케륵케르! 케케륵케르!
그 뒤로 아수라들이 흥분에 차서 창과 칼, 도끼, 주먹을 뒤흔들었다.
“애비는 우리에게 문자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세상을 가르쳐준 것 또한 아니다! 우리에게 승리하는 법만을 가르친 것도 아니고,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생명이 잉태하고 있는 공포를 마주하여 직면하고, 인정하고 함께하며, 함께하여 극복하는 방법만을 가르친 것 또한, 더더욱 아니다! 애비는 무엇을 주었는가? 우리에게 애비는 무엇인가? 애비는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 교사인가?”
-우거! 우거! 우거!
“아니다! 애비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는 신인가? 우리에게 대지를 내리고 하늘을 선사하여서, 비로소 우리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창조주인가? 우리에게 애비는 신에 불과한가?”
-우거! 우거! 우거!
“아닌 것이다!”
[패륜을 꿈꾸는 근육돼지가 울부짖습니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애비는 무엇인가!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나와 같이 축축한 물을 사랑하며, 내리는 비에 매혹되고, 하늘이 울먹일 적에 눈이 떨리며, 불길이 치솟을 때 심장이 맥동치는, 너희 동족들이여! 우리에게 애비는 무엇인가!”
-케케륵케르! 케케륵케르!
“그렇다!”
우부르카는 크게 웃었다.
“애비는, 우리의 세계다!”
아.
“애비는 우리의 모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우리는 승리해왔다! 나 우부르카로 인하여 죽음마저 패배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단어를 기쁨에 차서 노래 부를 수 있다. 모든 문장이 다만 공포를 이겨낸 흔적이요! 모든 대화가 오직 전쟁을 승리한 자축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우리는 용감하며,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우리와 싸운 세계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승리하였고 승리할 것이기에 웃는다!”
-케케륵케르! 케케륵케르!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우부르카가 도끼를 들어 내게 겨누었다.
“애비여.”
“…….”
“케케륵케르여!”
“…….”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짐승.
지정족의 언어에서 뜻하기를.
그것은 악마도 아니고 신(神)도 아닌,
“우리의 세계여!”
세계.
“너의 세계에서 태어나, 너의 세계로 눈을 떠, 너의 세계에서 향을 맡아, 너의 세계로 발을 디뎌, 우리는 행복했다! 우고르! 진심을 담아 목 놓아 울건대, 케케륵케르여! 우리는 이 세계를 사랑한다!”
온 밀림이.
새벽의 빛이 닿지 못한 야자수의 그늘과 수풀 사이에서, 치솟았다. 이 대륙을 창조했다던 어느 거북이의 사토(死土)에 작금의 대륙을 지배한 아수라들이 봉화를 올렸다.
마천진법(魔天陳法).
수십만의 아수라가 일제히 피워올린 바라야.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승리하지 못한 것에 방점을 찍을 때다!”
-케케륵케르! 케케륵케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득하리만치 훨씬 더 저 아이들에게 큰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
나는 눈을 감았다.
온 세상의 불길이 나를 덮쳐오는 감각.
이상하게도, 그 불꽃들은 모조리 나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넘쳐, 뜨겁지 않았다. 다만 나를 이겨보겠다는 즐거움만이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심장을 달구는 데 이보다 더 부드러운 불길은 없겠지.
‘그런가.’
나는 스승님께서 설산을 베셨던 풍경을 떠올렸다.
그때 스승님의 마음이 일도한 것은, 그저 높게 솟아오른 산봉오리가 아니었다.
‘사람도, 누군가에겐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스승님께선 그때 분명히 계절을 베었다.
만생을 얼어붙게 만드는 시간을 베었다.
세계를 벤 것이다.
‘그래.’
나는 칼자루를 쥐었다.
“누군가에게 신이 되려는 자, 부모가 될 각오를 해야 하고.”
긴 쇳소리가 긁히면서, 한 자루의 검을 발도했다.
“누군가에게 부모 되려는 자. 마땅히 세계가 되려는 각오 또한 해야 할 거다.”
하얀.
나와 오래도록 함께한 성검이 눈부시게 빛을 품었다.
불에게 생명을 주고, 불에게 인생을 주고, 불에게 세상을 준 나의 책임감에 응답하여, 일찍이 어느 여신이었던 검이 하얗게 발한 것이다.
“너희는 불이니, 세계를 태우기에도 좋겠다.”
나는 품속에서 손장갑을 꺼내었다.
툭.
라비엘의 향이 묻은 흰색 장갑을, 고운 수풀을 향해 던졌다.
“결투를 행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밝히는 것이 강호의 법도지. 강호에서 발원한 우리 마교도 마땅히 선조들에 대한 예를 갖추어야지 않겠냐.”
언제든 사왕가의 군대를 불러들일 준비를 하면서.
“나는 등천도시(登天都市) 서열 제2위의 사냥꾼이며, 아이김 제국의 전인이요, 설원에 저문 모란의 직전제자, 마교 소교주(小敎主)이고, 이반시아 공작가의 유일무이한 달, 사왕가(死王家)의 가주, 그리고 너희의—.”
수천 년 동안 승리를 거듭해온 아이들을 향해.
그보다 더 짙은 시간 동안 승리를 거두어온 내 역사를 말했다.
“케케륵케르다.”
나는 검을 발했다.
그 순간.
[세계 명명.] [‘무명세계 -30-1316782번’에 정식 명칭이 등록됩니다.] [해당 세계의 이름은 ‘사자세계(獨子世界)’입니다.]툭.
무언가가 내 칼에 떨어졌다.
[사자세계에 행운이 함께하기를.]물방울.
나의 칼날에 한 점의 빗물이 튀었다.
2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