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8)
가을비는 핏물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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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우리의 것이 아닌 목소리만이 울렸다.
나한테만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겠지. 모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중에서도 성기사가 어렵게, 정말 어렵사리 말을 꺼내었다.
“···진정해라.”
그녀는 진정하라고 말한 다음에도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까. 그걸 신중하게 고민하는 안색이었다.
“당황하지 마라. 그래. 어쩌면 배신자에겐 거짓말을 숨기는 스킬이 있을지 모른다. 우스운 얘기지만 이중인격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저마다 비장의 한수는 갖고 있다, 안 그런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
“아니면.”
툭.
검성이 입을 열었다.
그는 차가운 눈매로 성기사를 보고 있었다.
“아니면, 그저 자네가 더러운 배신자일 수도 있다네.”
“······.”
알현실이 싸늘해졌다.
칼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들이 오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검성과 길드장들은 공방을 벌였다. 그 열기와 땀이 아직 식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다시 갈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그렇다네.”
검성이 선뜻 인정했다.
“설령 성기사 아가씨가 배신자가 아니라 해도,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네. 자네들. 소위 5대 길드라 불리는 집단의 좌장들은 예부터 친밀했지. 까마귀는 까마귀 속에 숨는 법. 자네들끼리 감싸고 도는 것 아닌가?”
“하, 정말 당신은···.”
“물론!”
성기사가 소리쳤다. 다급한 목소리. 검성도 마녀도 말싸움을 벌이던 걸 멈추고 성기사를 쳐다보았다. 성기사는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럴 수 있다. 그래. 내가 배신자일 수도 있어.”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괜찮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와 난관을 돌파했다. 안 그런가! 이번에도 서로 신뢰한다면 잘 헤쳐나갈 수···.”
“아하핫.”
웃음소리가 흘렀다.
“부단장은 순진하군요. 아니, 순수합니다.”
이단심문관이었다.
“신뢰라. 음. 신뢰.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서로 신뢰를 쌓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5대 길드로 불리며 서로 협력하는 데엔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거꾸로 말씀드리자면···.”
이단심문관은 신관 모자를 반듯이 고쳐 썼다.
그리고 자신의 복장을 탁탁 털었다.
“저는 5대 길드를 제외하면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고 지금 와서 또다시 10년의 세월을 들여 다른 헌터들과 신뢰를 쌓는 건 너무도 비효율적이군요. 예, 시간이 아깝습니다!”
“···기다려라.”
성기사는 이제 목소리만이 아니라 표정마저 다급해졌다. 1층에서 축제가 벌어졌을 때. 음대 나온 여자에겐 매력이 없느냐고 나한테 물어볼 때의 여유로움 따위는 전혀 안 느껴졌다.
“지금은 효율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 이단심문관. 제발···.”
“신성 술식.”
이단심문관이 가만히 손바닥을 모았다.
“육신(肉神).”
하얀빛이 그의 손을 감싸었다.
“독사. 당신은 10위를 처리하십시오.”
빛이 퍼졌다.
“제가 8위와 9위를 죽이겠습니다.”
“이단심문관! 안 된다!”
“신성 술식, 송신(送神).”
이단심문관과 독사가 사라졌다. 눈이 한번 깜빡였을 때, 어느덧 이단심문관은 한 헌터의 뒤를 잡고 있었다. 지난번 스테이지를 8위로 공략한 헌터. 그 헌터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
거대 길드장들의 존재감에 가려져 여태껏 조용히 있던 엑스트라. 아니, 엑스트라라고 무시하기에는 미안했다. 그래도 지난번 스테이지에서 활약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섰으니까. 예전의 나에 비하면 훨씬 더 미래가 전도유망한 헌터였다.
하지만 그 미래는 오지 않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이단심문관이 헤살하게 웃었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맨손. 그러나 긴 손가락에는 새하얀 오러가 실려 있었다.
촤아아악!
“어, 아···?”
피보라가 솟구쳤다.
헌터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거대 길드에 소속되어 권력을 쥔 것도 아니고, 검성처럼 홀로 고고하여 무력을 지닌 것도 아니며, 나처럼 다른 길드장들과 동맹하여 협력하는 것도 아닌, 단지 11층 스테이지를 조금 높은 성적으로 졸업했을 뿐인 어느 헌터는 그렇게 죽었다.
간단히 죽은 것이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수호의 여신이 안타까워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나직하게 비웃음을 흘립니다.]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살인이었다.
“히, 히익!?”
지난 스테이지를 10위로 공략한 어느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오래 동안 비명을 지를 필요가 없었다.
서걱!
이단심문관에 의해 전송된 독사가 검을 휘둘렀다. 일격. 헌터의 목은 한번에 갈라졌고, 머리통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용사 1인이 사망합니다.] [그는 마왕의 하수인이 아닙니다.]대리석에 핏물이 흘렀다.
[수호의 여신이 입을 다뭅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폭소합니다.]스르릉!
어디선가 칼이 뽑히는 소리가 울렸다. 검성이었다.
“네놈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노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역겨운 아해들이로고! 옛날과 달라진 바가 하나도 없다! 당장 멈추어라. 멈추지 않으면 내 몸소 너희들을-.”
“신성 술식, 송신(送神).”
번쩍이는 빛과 함께 이단심문관이 사라졌다.
지난 스테이지를 9위로 공략한 헌터. 그 헌터는, 8위와 10위가 죽은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도망쳤다. 비명을 지르지 않고 도망쳤다는 점에서 헌터의 신중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가 대문을 빠져가려는 순간, 이단심문관이 바로 코앞으로 전이되었다.
“아,”
헌터가 손을 뻗었다.
“자, 잠깐만-.”
“예!”
이단심문관이 활짝 웃었다.
“죄송합니다!”
헌터의 머리가 터졌다.
그는 잠깐, 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털썩. 머리통을 잃은 몸통은 가볍게 쓰러졌다. 머리가 터지면서 나온 핏물과 육편이 산산이 흩어졌다.
[용사 1인이 사망합니다.] [그는 마왕의 하수인이 아닙니다.]목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수호의 여신은 침묵합니다.] [가을비의 마왕은 손뼉을 치고 있습니다.]“음.”
이단심문관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죽은 자의 피가 시뻘겋게 묻은 얼굴. 그 얼굴을 이단심문관은 나긋한 손길로 닦았다. 두세 번 면상을 휘젓자, 손수건은 금세 피범벅이 되어버렸다.
“세 명 다 아니었군요!”
사방이 적막했다.
“이거 상황이 곤란해졌습니다. 저는 셋 중 한 명이 배신자일 거라 확신했으므로! 아하핫. 세 명이 아니라면 정말로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는 얘기인데요. 10년 가까이 쌓아 올린 5대 길드의 신뢰 관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이단심문관이 빨간 손수건을 바닥에 버렸다.
손수건은 피웅덩이에 떨어져 종이배처럼 떠 다녔다.
“기다리라고···.”
성기사는 어깨를 떨고 있었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분명히 말했다···. 부탁하지 않았는가! 제발 침착해지라고 부탁하였는데, 이단심문관, 그대는 또 예전처럼···!”
“이상한 말씀이군요. 부단장! 지금 저는 침착합니다.”
이단심문관이 싱긋 웃었다.
그는 아직 부족하다는 듯, 오른손으로 손수건을 꺼내 잡았다.
“침착하게 생각하여 세 명이 범인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틀린 판단이 되었습니다만! 제일 의심스러운 자들을 일단 제거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지요. 아. 만일 언론이 보고 있었다면 큰일입니다만, 다행히 아무도 동영상을 찍지 않아서-.”
그 순간이었다.
손수건이 허공에 날렸다.
아직 피를 닦지 않아 새하얀 손수건이 나풀거렸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먼저 조금 더 무거운 무언가가 추락했다.
오른팔.
이단심문관의 팔이었다.
“아.”
팔 한 짝으로 끝난 것이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검성이 날린 일격을 만약 독사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바닥에 떨어진 것은 팔이 아니라 머리였을 테니까.
“씨발···!”
독사는 욕지거리를 흘리며 검성과 공방을 나누었다.
“야, 종교쟁이! 좀, 누구를 죽이려면 미리 신호부터 주고 죽여!”
“아아.”
이단심문관은 미간을 좁힌 채 아래를 내려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 위로, 조금 뒤늦게, 손수건이 내려앉았다. 하얀 손수건은 피를 머금어서 금세 붉게 물들었다.
“이건 곤란한 걸 넘어서 심각해졌군요. 아핫. 양손이 없으면 신성 술식의 인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제 단독으로는 전력이 되어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냐···!”
독사는 멀리서 보기에도 힘겨웠다. 검성의 공격은 비단 칼뿐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오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공격들을 독사는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누가, 좀 씨발, 도와줘! 나 죽는다! 진짜 뒈진다!”
“김공자여!”
성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그대한테 전권을 맡기겠다! 내 생살여탈권을 가져도 좋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오직 그대만이 보상을 받지 않았다! 우리 중에서 누구든 범인일 가능성이 1%라도 있지만, 당신만은 예외다! 당신은 100% 확률로 배신자가 아니야!”
“······.”
“그러니, 제발 부탁한다! 검성을 말려다오!”
칼소리가 알현실에 요란히 울려퍼졌다. 어느새 마녀와 백작이 가세하여 검성과 싸우고 있었다. 성기사만이 무력하게 어깨를 내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바라보았다.
‘검제 양반.’
-응? 왜?
‘···저는 뭐 싸이코패스들한테 사랑받는 운명이라도 타고난 겁니까?’
아마도 난장판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안 그래도 사이가 나빠 보이던 헌터들이었다. 여기서 배신자가 나오기라도 하면, 망설임 없이 상대방을 향해서 칼을 들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아예 보상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판일 줄이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 그거 좋군요.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입니다!”
성기사와 나 사이에 이단심문관이 끼어들었다. 그는 자기 혼자서 포션을 꺼내어 팔을 지혈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일절 짓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결 따위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5대 길드 체제는 당분간 폐지하지요. 비효율적입니다! 절대로 배신자가 아닌 사람한테 권력을 집중시키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 얘기는···.”
“예!”
이단심문관이 잘려나간 자기 팔을 든 채 방긋 웃었다.
“저도 김공자 헌터한테 모든 판단을 위임하겠습니다!”
“······.”
“음. 세 명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일 거라 확신하였는데, 염치가 없군요. 하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배신자를 붙잡을 때까지 저는 제 판단을 스스로 신뢰하지 않겠습니다. 김공자 헌터. 당신이 하자는 대로 따르지요!”
배후령이 중얼거렸다.
-응. 그래. 너 싸이코패스한테 사랑받는 운명이 있나 보다. 이런 또라이는 흔치 않아. 내가 탑 오를 때도 한 명 정도밖에 없었어.
정말로 싫은 운명이었다.
‘졸지에 자경단 부길드장이랑 만신전 길드장한테 전권을 넘겨받게 되었는데요···.’
-출세했네. 축하한다. 원래 이렇게 될 거 알고 보상을 포기한 거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고 너한테 내심 되게 감탄하고 있었는데.
‘개판이 날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개판일 줄 알았나요. 저기 애꿎게 죽은 세 사람은 불쌍해서 어쩝니까? 어차피 나중에 한 번 회귀하긴 회귀해야겠네요···.’
나는 슬쩍 성기사를 돌아보았다.
성기사는 얼굴을 짚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맞다.”
내가 뭘 물어보려는지 이미 아는 걸까. 손가락 사이로 성기사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원래부터 저런 인간이다.”
저런 인간이란 당연히 이단심문관을 가리켰다.
“우리가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는 혼란이 굉장히 심했다. 특히 종교 문제가 심각했지. 서로 다른 종교를 믿은 사람끼리, 아니. 같은 종교를 믿더라도 교파가 다른 사람끼리, 나누어지고 갈라져서 다툼을 반복했다. 그 때 이단심문관이 나타나서···.”
“나타나서요?”
“···다 죽였다.”
성기사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종교를 이유로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은 국적과 출신을 불문하고, 그냥 다 죽였다. 당연하다는 듯 암살했지. 본래부터 저런 방법밖에 모르는 인간이야···.”
“와오.”
나는 단순히 갈등을 반복한 종교 단체끼리 어렵사리 손을 모아 만신전 길드를 창설한 줄로만 알았다. 언론에 그렇게 나왔으니까. 하지만, 뒤에서는 철저한 학살이 벌어진 건가···.
“나, 좀! 살려! 줘!”
멀리서 독사가 비명을 질렀다.
1분이 지날 때마다 1옥타브씩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뒈진다! 씨, 벌! 이건 진짜 뒈진다! 오늘 천무문주가 뒈지겠다, 이놈들아!”
“아하핫.”
이단심문관이 외팔로 모자를 고쳐썼다.
“제가 잘못 판단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만, 김공자 헌터! 저에게 전권을 받는 조건으로 검성을 말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아. 당신은··· 아니, 됐습니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합시다. 진득하게요. 지금은 진짜 독사님이 죽을 거 같으니까 이거부터 해결하죠.”
“예! 부탁드립니다!”
나는 성기사와 이단심문관을 뒤로 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뭐. 잠시만이라도 자경단과 만신전을 조종하게 된다면 이득이긴 이득이지. 둘 다 거대 길드이고···.’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면서 말이다.
알현실 한쪽에서는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열하고 현란했다. 솔직히 지금 내 수준으로는 눈으로 쫓아가기에도 버거울 정도. 이런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
하지만 나는 검성을 멈춰 세울 마법의 한마디를 알고 있었다.
“검성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검성님! 오늘 저한테 고개 숙이시지 않았습니까! 이왕 숙인 김에 제 말씀 좀 들어주십시오! 그만 싸우시고 우리끼리 일단 대화합시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어쩔 수 없군.
나는 심호흡을 삼켰다. 목청을 오러로 키운 다음, 소리쳤다.
“손녀분한테 교제를 청하겠습니다!”
멈칫.
“만약 손녀분이 탑에 들어오면, 예. 까짓거 미팅 한번 하죠. 사귀게 될지 안 사귀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아무렴 검성님의 가족인데 매력적이겠죠. 그러니 혹시라도 사위가 될지 모를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는데, 싸움 좀 그만해주십쇼!”
검성이 말없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한동안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놈들을 결코 용서한 게 아닐세.”
“예.”
“절대로 젊은이의 얘기를 들어서 싸움을 멈추는 게 아니라네. 다만 검을 나누면서 든 생각이, 이놈들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을 것 같더군. 그렇다면 먼저 배신자를 찾은 다음에 이놈들을 싸그리 죽여버려도 괜찮을 것일세. 안 그런가?”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대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 정말로 옳은 말씀이네요. 죽여도 좀 나중에 죽이시죠.”
“음.”
검성이 천천히 칼을 거두었다.
맞은편에서는 독사가 숨을 헉헉거렸다.
“어···? 뭐야? 사, 살았냐? 끝난 거야···?”
아무것도 안 끝났다.
단지 당장의 싸움만 봉합했을 뿐.
“여러분. 일단 제발 침착해집시다.”
나는 헌터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누가 배신자인지 전 몰라요. 어쩌면 배신자를 찾아내지 못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건 둘째 문제입니다. 굳이 배신자를 찾아내지 않아도 이번 위기는 넘길 수 있어요.”
“···어떻게 말인가?”
성기사가 말했다.
“배신자가 마왕의 보상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의 목숨을 노린다는 걸 뜻한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몰라.”
“이걸 보세요.”
나는 대리석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시체가 3구 흩어져 있었고, 핏물과 육편이 즐비했지만, 무엇보다 이단심문관이 새겨놓은 글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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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의 여신]
설명: 아이김 제국을 수호하는 여신이 당신의 헌신에 감동했습니다! 여신은 당신에게 제국의 중요 직책을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은 제국의 재상이 될 수도 있고, 대장군이 될 수도 있으며, 기사단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직책을 선택하면 그 직책의 능력과 명성도 함께 계승됩니다!
여신의 용사여! 동료 용사들과 힘을 합치십시오.
그리고 20층에 위치한 마왕의 코어를 파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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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코어가 20층에 위치한다잖아요.”
나는 헌터들 한명한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배신자를 찾아내서 죽일 거냐에 집중하지 마세요. 함정입니다. 속지 마시라고요. 배신자는 지금 겁에 질려서 마음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시스템이 강제로 배신자를 선정했을지 몰라요. 누가 압니까?”
“·····.”
“다 같이 마왕부터 조집시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마왕을 없애면 마왕의 보상도 없어집니다. 간단한 문제예요. 탑에서 아무리 지랄 같은 시험을 내려도, 아무리 우리끼리 내분을 일으키려고 해도, 언제나 해결 방법은 단순할 겁니다.”
내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의 여신이 눈을 빛냅니다.] [가을비의 마왕이 혀를 찹니다.]내가 힘 주어 말했다.
“탑을 오릅시다.”
이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20층에 있다는 마왕의 코어를 깨부시죠.”
헌터들에게 던지는 대답일 뿐만 아니라, 탑을 향해서 보여준 대답.
그런 내 대답에 화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