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84)
웅성웅성.
“…….”
웅성웅성.
“…….”
웅성, 웅성.
……저 사람이…… 아, 카메라를 못 쓰니까 어색하네. 이거 왜 규정에 카메라는 못 들고 온다며…… 자기들은 찍고 있을 거 아냐? 나중에 원소스로 배포하는 거만 인정하겠다는 건가? ……회담이 며칠씩 이어질 수도 있대. 그런데 이런저런 정보가 마구잡이로 넷에 돌아다니면 혼란스러워지니까, 아예 회담이 끝나기 전까지…… 며칠? 그게 가능해? 우리들 잠은? 집에서 잤다가 다시 오라는 거야 뭐야? ……상련 소속의 5성급 호텔들이 오늘 예약이 싹 비었대…… 헐. 진짜? …… 7성급 호텔도 비었다는데. 회견에 참여하면 평소 1/100의 가격으로 할인해준다는데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누가 좀 쉬는 시간에 나가서 확인해봐! ……대박…… 진짜 사왕이 거대 길드들한테 애지중지한 보물인가보다…….
웅성.
웅성.
“…….뭐하고 있어, 김공자.”
툭.
“당신이 먼저 단상에 가서 인사하고 자리 잡아야지. 왜 멍을 때려! 카메라 다 뺏어서 플래시도 안 터지는데. 혹시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바라보니까 정신이 나갔니?”
음.
뭐랄까.
이 사람들이 앞으로 내가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구나, 싶으니까.
감회가 새로워서요.
“……헛소리는 됐고. 얼른 단상에 올라가렴.”
예.
가야죠.
가야 하고 말고요.
“…….”
뚜벅.
“…….”
웅성웅성.
“…….”
뚜벅.
“…….”
웅성.
“……..”
뚜벅.
웅성…
“……..”
뚜벅.
웅…….
“…….”
…….
…….
아. 아.
사실 마이크테스트는 필요없습니다.
제가 지금 쥐고 있는 이것도 전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사람들 앞에 맨손으로 있으려면 왠지 어색하니까, 뭐라도 잡고 있어야겠다 싶어서 준비한 소도구에 불과합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육성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오러를 써서. 보통 전음(傳音)이라고 하지요? 사자후랑도 원리는 똑같고요. 제 성량을 강화하고, 제 목소리에 따라 오러를 펼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듣고 계신 목소리는 어느 기계의 거름망도 거치지 않은, 그저, 완전한 제 목소리입니다.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얼굴도 어떤 미디어를 위해서라도 치장하지 않은, 제 얼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께서는 저를 보고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개척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서열 제2위의 헌터, 마교 소교주, 이반시아 가문의 달, 사왕가의 가주. 이명, 사왕.
김공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아.
반응이 별로 없네요.
너무 갑자기 인사를 드려서 그런가요?
“…….”
오늘은 편히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동료들 중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꼭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업이 바쁘실 텐데도.
시간을 내어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먼저 제 동료들도 불러…….
“왜 촬영기구 반입을 허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빠른 질문, 감사합니다.
하지만 먼저 제 동료들을…….
“환문신문 기자, 이명 소유자, 전서구(傳書編)입니다. 저희 취재팀의 촬영기구는 물론이고 개인이 소유한 스마트폰, 촬영기, 녹음기까지 전부 천무문의 일반 길드원들에게 압수당했습니다. 회견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조치가 취해진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고, 심지어 염려하고 있습니다.”
음.
“거대 길드의 횡포는 오래 전부터 벌어진 일이지만, 이번 회담엔 특히나 눈여겨볼 만한 위험성이 있어 보입니다. 모든 주민과 소통한다. 행사의 의도만 거창하지, 실제로는 어떤 기록물도 남기지 않는 ‘깜깜이 회견’을 만드려는 거 아니냐.”
…….
“이런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왕님!”
…….
“사왕님! 언론의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사왕님!”
…….
“……사왕님? 듣고 계십니까?”
…….
“지금 질문에 대답을…….”
제가 그랬습니다.
“..예?”
촬영기구 말입니다. 제가 일체 반입을 금지해달라 부탁했습니다. 흑룡 길드에서 반대했지만, 제가 설득했고, 다른 길드도 설득해서 지금처럼 대규모 반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즉, 다른 길드들이 사왕님의 의향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 말로 해석해도 괜찮겠습니까?”
환문신문 소속 기자라고 하셨죠?
“…….”
이명도 있으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이름을 밝히실 필요가 없습니다. 소속은 밝혀도 좋지만, 그냥 여러분이 바빌론의 어느 구역 어느 길거리 어느 건물에 산다. 뭐 하면서 산다. 이 정도로만 밝혀도 충분합니다.
아예 아무것도 안 밝히셔도 충분하고요.
“…….”
제가 촬영기구과 녹화기계를 일체 금지한 이유는,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
“그게 무슨……?”
지금 탑 역사에서 이런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모여주셨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전음을 쓰고 있는데요, 지금 오러 소모량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만큼 수많은 분들이 여기 계신 거지요.
그런 순간입니다.
“…….”
그래요. 만일….
만일 촬영이나 녹화가 자유로이 허락된다고 해보겠습니다.
앞에 앉으신 분들이나 뒤에 서신 분들이나,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저를 보고 있는, 저기 계신 분들이나, 스마트폰 플레시를 터트리기 바쁠 겁니다.
방금 저한테 질문해주신 기자님도 한손에는 분명히 카메라를 들고 계시겠지요.
“…….”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
그러면, 저는 바깥세상을 신경 쓰게 됩니다.
“바깥세상, 말입니까?”
네.
우리를 지켜보는 저 탑 바깥의 사람들이요.
촬영을 허락하면 바로 실시간으로 바깥세상까지 흐르니까요.
“어째서….”
기자님께선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아니.
여기 모여주신 분들 모두 알고 계십니다.
바깥세상이 우리를 지켜보면 일단 우리는 잘 보이려 듭니다.
“…….”
가족을 두고 온 분은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바깥세상의 본사에서 쫓겨났다시피 전근을 온 분은, 너희만큼 여기서 잘 살고 있다며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피난민, 소수민족 등등, 바깥세상에서 사실 때 사정이 여의치 않으셨던 분들은 일부러 보라는 듯이 잘 차려입고 나오시지요.
우리가 그럽니다.
“…….”
저는 그러기 싫습니다.
여러분한테 그러기 싫습니다.
여러분과 얘기를 하려 나온 자리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정작 머릿속에선 다른 누군가를.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며 평생 만나지도 않을 누군가를, 신경 쓰기 싫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우리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 게 마지막으로 대체 언제였습니까?
신문 방송으로, 개인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커뮤니티로, 탑에서 벌어지는 일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관심을 끌어모으고 또 그걸로 싸우고, 열을 내고. 여기가 바깥세상과 영원히 단절된 곳이라면서 사실은 언제 어느 때보다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스트레스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탑에서 살 것입니다.
한 번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이곳에서요.
“…….”
그러니 단 한 순간이라도 바깥세상에 관심을 꺼두도록 해요.
여러분께서 듣고 계신 목소리는 제 목소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얼굴도 제 얼굴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닌 다른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 얼굴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는 여러분만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를 위해 이야기합시다.
“…….”
“옳소!”
“수거된 스마트폰만 십만 대가 넘을 텐데 그거 제대로 돌려받으려나….”
“천무문한테 항의하면 되겠지.”
“머리 스타일 이상하지 않아…?”
“사왕님! 사왕님!”
“저기요, 조용히 좀….”
저에게 무언가 말을 해주시거나 질문을 해주시려는 분께선 손을 들어주세요. 아, 지금은 잠깐만요. 아직 차례가 남아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오러로 목소리뿐만 아니라 시야도 강화했습니다. 저의 시간 감각은, 오러를 쓰지 못하는 인간에 비해 통상 6배에서 12배 느리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혀가 꼬이거나 말을 씹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죠.
아하하.
오러에 능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 좋아요.
어느 분이 먼저 1등으로 손을 들었는데 행여라도 제가 놓친다거나, 억울하게 차례를 빼앗긴다거나,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일체의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여러분의 신원이 노출될 일 역시 없습니다.
편안히.
질문 시간이 되면 느긋하게 손 들어주세요.
“…….”
그럼 저희 동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차례대로, 흑룡 길드의 흑룡주, 만신전의 이단심문관—-.
7.
“질문입니다. 5대 길드의 후원을 받아 오래도록 비밀리에 육성된 루키. 만들어진 스타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사실입니까?”
음.
제 예전 자취방 보시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복권 긁으면서 인생이 폈지요.
아주 그냥, 아메리카노 한 잔 살 때도 에이 뭘 저런 걸 사, 저런 거 살 돈이 있으면 스틱 믹스커피 봉다리로 사다가 국밥을 말아먹겠다 싶었던 제가, 별 괴상망칙한 걸 다 때려넣어서 더 이상 커피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그 무엇인가를 이렇게 쭉쭉 들이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지요.
여러분도 일주일에 한 장 정도 복권 사는 건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상인연합에서 발행하는 복권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광고입니까?”
전 그럴 속셈이 아닌데 옆에서 백작이 웃는 거 보니까 그런가 보네요.
죄송합니다.
“서열 3위 위로 올랐을 때부터 사사로이 권력을 운영하여, 바깥세상에서 자신의 지인을 데려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과정에 고향의 국회의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단 이야기도 있고요. 혹시 바깥세상의 권력자들과 관계를 맺고 계신지요?”
어, 제 공식 연락처는요. 흑룡주가 관리합니다.
흑룡주한테 질문해주시는 편이…. 흑룡주? 어때요?
“현재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답니다.”
“…….”
“그 이상은 여러 바깥 나라들의 기밀과 연관이 되어서 제 입으로는 말씀드릴 수 없네요. 다만 한 가지, 사왕한테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참고로 사왕이 입탑시킨 사람은 고아원 원장 선생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왕을 보살펴준, 말하자면 부모와 같은 분이지요. 탑에 자리를 잡아 부모를 모시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예, 원장 선생님은 제……..
…….
저의 절반을 주신 분입니다.
“…….”
오늘 제 머리를 깎아주신 분도 원장 선생님이지요.
하기 싫다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억지로 밀어붙였습니다.
앞으로도 억지로 많은 걸 밀어불일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왕님!”
예.
“사왕님과 흑룡주가 사귀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오늘이 여러분을 공적으로 뵙는 자리라서 다행이네요.
저는 아직 공적인 살인을 저질러도 죄를 받지 않을 만큼 권력을 갖진 못했거든요.
저에게 그만한 권력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감사히 여겨주십시오.
무엇보다 저의 유일무이한 사랑이 지금 이 자리에 없음을 천운으로 여겨주세요.
다음.
“사왕님!”
아. 네.
“만신전주가 사왕님을 주인님이라 부르는 걸 목격했다는 제보가 현실상에,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습니다!”
음.
“두 분이서 사귀고 계십니까?”
여기 이 사람 끌어낼 수 없어요?
28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