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285)
8.
“……큰일이야. 쉬는 시간인데 사람이 안 줄어.”
그래요?
“저길 봐. 골목에 들어선 사람들 숫자가 더 늘고 있잖아! 맙소사. 원래 아무리 길어도 7시간은 넘기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단 말이야!”
회견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아나스타샤 입장에선 잘 된 거 아닙니까?
실패할까봐 되게 불안해했으면서.
“……성공해도 너무 성공할 거 같아서 큰일이란 얘기야. 지금 [광역통신사] 옆에 B급 헌터 13명이 달라붙어 있어. 배터리 역할로. 역장을 펼쳐서 외부 송신이랑 송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잘은 몰라도 입에서 시금치 냄새가 올라올 정도로 죽기 일보 직전이래.”
에이.
조금만 더 힘내달라고 해주세요.
“……조금이라면 언제까지?”
글쎄요.
저기 텐트 치는 사람도 있던데.
최소한 내일?
“미친 또라이 새끼…….”
그 소리 자주 들어요.
“주인님!”
왜요?
“100명한테 질문지를 돌려 한 번 다음에 나올 질문들을 빠르게 확인해보았습니다만, 지나치게 다양합니다! 저희 길드장들만 가지고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도 있더군요! 아하핫.”
음.
무슨 뜻?
“이반시아 공작이나 세임슬람 의장 등도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9.
“안녕하십니까. 질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바빌론 사거리에서 카페를 하는 사람입니다. 배달도 합니다.”
…….
아, 그 유수하가 맨날 시켜먹은…….
“네?”
아뇨. 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게 광고는 되도록 자제해주시고요. 계속 질문해주십시오.
“아, 예에…. 알겠습니다. 크흠. 사왕님께 질문입니다. 최근 들어 공략조가 성공가도를 달려서, 우리 탑의 영역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아이김 제국이 그랬고 이번에 새로 공략된 신대륙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스테이지들에 대한 출입은 5대 길드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
“그거, 독점 아닙니까?”
…….
“사실상 5대 길드에서 신대륙의 자원을 독점하여, 그걸 바탕으로 탑 안에서도 영향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려는…….”
“음. 이 질문은 내가 받도록 하지.”
라비엘.
“계속 말씀해보시게.”
“어……. 제 말씀은, 탑 안에는 군소길드도 많고, 정원이 3명 정도밖에 안 되는, 구멍가게 비슷한 길드도 있는데. 그런 길드에겐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거 아닌가, 하고….”
“어떤 혜택 말인가?”
“에에…. 그런 말씀입니다….”
라비엘.
라비엘은 너무 아름다워서 마주보면 스턴에 걸려요.
조금 더 질문자를 배려해주셔야 합니다.
“과연. 그런가.”
과연 그런 겁니다.
“나의 외견을 신경 쓰지 못해버리고 말았는가.”
예. 태양이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미안하네. 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본인은 마음속으로 그대들 한 명 한 명을 남작 정도의 지위를 가진 자로 일단 여기고 있다.”
“나, 남작이라뇨. 어. 저는 그냥…….”
“빵집 가게 주인이라는 말이겠지.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제국의 남작보다 그대가 더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겠나?”
“…….”
‘그대들과 우리는 다르다. 실로, 많은 부분에서 다를 것이다. 그대들이 탑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그대들 가운데 아국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 또한 있을 터. 아국의 이권을 탐하는 무리도 있을 테지. 세력과 세력이 살을 맞대면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여서, 본인은, 아울러 제국의 귀족들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다.”
“그 말씀은…….”
“12년. 앞으로 12년은 민간 분야의 교류를 극단적으로 제한할 것이다.”
“…….”
“제국에서는 유학생을 선발하여 이미 29층의 학원도시에 보내고 있다. 그들이 이른바 공교육이란 걸 배우고, 그대들의 문화에 익숙해지면, 제국으로 귀환하여 교섭을 담당할 것이다. 그 전까지는.”
…….
“기다려다오.”
…….
“제국의 대표로서 그대들 모두에게 부탁한다.”
…….
“만일,”
음.
“만일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면 어쩝니까? 아. 저는 만신전 소속의 사제입니다. 소속부터 밝히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질문하여라.”
“예. 감사합니다. 공작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탑의 세력은 압도적입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하는 말씀이지만, 제국을 식민지로 삼아버리자는 목소리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
“제가 없는 얘기를 짓는 건 아니고요. 장난식으로나, 진심으로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의 논리가 냉엄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틀렸군.”
“예?”
“전제가 틀렸다. 그대들은 제국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다.”
“……음, 무슨 말씀이신지……? 굳이 과학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헌터들이 단결해서 공격하면…….”
“어째서 그대들이 단결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꾸욱.
“김공자가 나를 도울 것이다.”
“…….”
“김공자를 돕는 사람들 또한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대들이 5대 길드라고 부르는 세력이 된다. 김공자를 아비이자 친구로 여기는 아수라들이 도울 것이며, 아수라들과 함께 화하평의회를 구성하는 종족들이 도울 것이다. 보아라. 도대체 어딜 봐서 압도적인 전력차라는 얘기인가?”
“…….”
“그대가 말한 [탑의 세력]이란 단어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대는 차라리 [탑의 악인들]이라고 말해야 올바랐다. 그런 뜻으로 쓰인다면, 과연 그대가 언급한 세력은 강할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이 강한 만큼 우리 역시 강하다.”
라비엘.
“그대들 가운데 세상은 원래 이러하다며 냉소하는 자들도 있을 터다. 그들이 냉소로 하루의 시간을 물들이는 동안, 그들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내 부인은 피를 흘려가며 세력을 구축했다. 연합을 만들었다. 연맹을 일구었다. 종족을 불문하고, 국적을 가리지 아니하여, 세상의 경계조차 개의치 않은 채, 오직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작금의 가문을 일으킨 것이다.”
…….
“그러니 그대가 세상이 원래 그러하지 않느냐고 질문한들, 나로서는 대답에 어울려줄 이유가 없구나. 그것이 그대가 사는 세상의 논리인가? 안타깝구나. 나는 김공자가 있는 곳을 나의 세상으로 삼으련다. 내 심장이 숨을 쉬려거든 그의 목소리가 필요하구나.”
…….
예.
맞아요.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라비엘.
“무슨…….”
영원히.
“같은 탑 사람 아닙니까? 제 말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동안 탑 공략을 물신양면 돕지 않았습니까? 몸으로 가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그거야 랭킹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던 거고….”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야.”
아나스타샤.
“여기 와서 흑룡을 창설하고, 어찌저찌 탑에서 제일가는 길드가 되니까, 옛날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 같은 우크라이나 사람끼리 힘내자고.”
“…….”
“만일 [같은 곳 사람]이란 논리에 따랐다면, 흑룡의 간부들은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채워졌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안 그랬어.”
“그건.”
“그래. 이제 좀 살 만해졌지. 그러니까 이제 [탑국]이란 나라를 만들어보고, [탑인]이라는 국적을 만들어서, [우리 탑]을 세워볼까? 우리를 내쫓더니 꼴 좋다, 잘 봐라, 이젠 우리가 너희 바깥세상을. 아니, 모든 세상을 비웃어주마.”
“…….”
“그렇게 해버릴까?”
하고 싶었지만.
“안 해.”
할 수 있겠지만.
“꺼지라고 그러렴.”
“…….”
“아아, 미디어가 봉쇄되니까 좀 살 거 같네. 진즉에 [광역통신사]한테 부탁해서 이런 자리 좀 만들걸 그랬어. 정말. 시선에 살고 시선에 죽는 성격도 슬슬 없어져야 하는데….”
그것도 아나스타샤 매력이에요.
“시끄러워. 아무튼, 싫어. 질렸어. 신물이 나. 나는 흑룡주야. 서열 3위의 길드장이야. 내 길드의 사람들을 돌봐줄 거고, 내 주변 사람들을 챙겨줄 거고, 나를 사람으로 취급해주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줄 거야.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탑에서 언어의 장벽이 없다는 게. 나는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빌어먹을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준 어느 이름 모를 존재에게 기도한단다.”
“아하핫.”
밤볼리나.
“저는 불가리아 출신입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 등록되지 않았고, 여권도 받은 적 없습니다! 사실상 제 출신을 증명할 수단은 전무하군요. 그래서 어쩌면 세르비아나 루마니아 출신일지도 모릅니다!”
“…….”
“저는 다만 만신전주일 뿐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신을 믿으시되, 마음으로 섬기시고, 부디 이단의 길에 빠져들지 말도록 주의합시다! 세상이 여러분께 시련을 안긴다고 느끼신다면 언제든 만신전의 문을 두들기십시오!”
“그리고 에스프레소 커피나 대접하겠지….”
라오판.
“난 중국 사람이다. 글쎄, 우리 천무문에 동향이 좀 있긴 하지. 그래도 쎈 놈이 제일이야. 약한 놈은 대륙에서 왔든 섬에서 왔든 정글에서 왔든 길드 건물이나 청소시키지.”
“…….”
“그런데 사왕이 나보다 강하더라고? 어쩌겠냐. 약자가 강자의 말을 들어야지. 누가 한 말처럼 말이야. 세상이 냉엄하거든-.”
“…….”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났다.”
파트리시아.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고향의 풍경이 선하다. 내가 사는 마을은, 오솔길이 아름다웠다. 흙길에 유리가 없었다. 밟으면, 아, 땅을 밟는구나 싶었지. 도시로 유학을 갔을 적엔 밤거리의 술집에 자주 들렸다. 오래된 재즈, 낡은 피아노…. 모든 것이 그립군.”
“…….”
“하지만 그것이 내 심장의 전부는 아니다.”
파트리시아?
왜 갑자기 일어나서….
“바빌론 11구역의 맛집거리는 최고다. 그곳에서 가끔 해주는 빠에야는, 비록 샤프란이 들어가진 않았다고는 하나 절묘한 맛을 뽐내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번 공략에 참여한 수십 일 동안 3번이나 그 가게가 떠올랐다. 주인장. 훌륭하다.”
“…….”
“6구역에 재즈바를 차린 도합 열일곱 명의 용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챔버 오케스트라 1곳, 사중주 악단 11곳에 내 투구를 벗어주겠다. 바깥세상에서도 망한 주제에 어째서 탑 안에서는 장사가 될 거라고 자신했는지 모르겠군! 훌륭하다!”
“브라보!”
“리틀 베네치아여, 영원하라!”
“누구냐. 지금 망한 가게 이름을 들먹인 놈은. 걸리면 자경단에서 압수수색 들어갈 줄 알아라.”
“다시 피아노 쳐주세요!”
“여신님!”
“음반 발매 해주십시오! 10장 사겠습니다! 아니, 10번 다운받겠습니다!”
“7구역의 산책길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가히 경이롭다! 내가 보고받기로는 서열 200위 권의 헌터 한 명이 새벽 4시마다 몰래 길을 파내고 정원을 만들었다는데, 차마 이명을 밝힐 수 없어서 그렇지 정말로 할 일 없는 놈이다. 훌륭하군. 덕분에 나는 30일 중에 하루를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접니다!”
“나는 고향을 사랑한다!”
…….
“그러나 내가 고향을 사랑한다면,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만일 내가 탑을 사랑한다면, 오직 탑에서 음악이 끊기지 않기 때문이다!”
…….
“언제나 재즈처럼 사랑할 순 없다. 노래도 쉴 때가 있다. 하지만……, 젠장. 그래. 좋다. 이번에 나는 흑룡주와 사왕을 끌어들여서 [흑기사]라는 길드를 따로 창설하기로 했다!”
“뭐?”
“길드?”
“예?”
“음악 길드다. 재즈 길드다. 혈화극이라고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빌어먹을. 옛날의 나를 알던 사람이라면 절대 공연을 보러 오지 마라. 죽여버리겠다. 감옥에 처넣어주지.”
“신이시여!”
“리틀 베네치아의 귀환입니까!”
“드디어 투구랑 갑옷을 벗는 건가요!?”
“사랑해요, 여신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
공녀님.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투표.
시작해주세요.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는 당신에게 정말 괜찮겠느나고 질문합니다.]예.
탑을 올라가기 위해 동의를 구해야 하는 종족은, 산와족뿐만 아니고, 요정족, 새기족, 흡혈종, 몽마족, 순인종, 지정족, 귀인족만도 아니라, 저희 인간들이기도 하니까요.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둥의 특권이 발동됩니다.] [48층 및 49층의 퀘스트를 변경합니다.] [스테이지 통합.] [연쇄 계층 진행.]아이김 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설원에 남아 홀로 문파의 기둥을 지키고 있는 노인도.
어느 옛스러운 한옥의 마루에 앉아, 하늘을 지켜보고 있을 소녀도.
[‘탑’에 속한 인물 전원에게 투표권을 부여합니다.] [스테이지와 상관없이 투표권의 행사는 동등합니다.]“어?”
“뭐야, 이 표시…….”
[30층부터 47층까지의 공략 영상을 편집합니다.] [투표권을 가진 자들에게 편집된 영상이 재생됩니다.] [신기루를 거니는 공녀는 ‘적당히 편집했으니까 비밀이 드러날까 걱정하진 마! 서비스!’라고 메세지를 보냅니다.]우리가 다만 우리이기 위해서.
[현재.] [49층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행운이 함께한다면.
[투표 개시.]우리의 다음 이야기는, 지금까지보다, 좀 더 위의 스테이지에서 시작될 것이다.
286화.